살인의 기억 146화
12. 지하철 괴담(12)
끼익……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 온몸에 피란 피는 전부 얼굴로 쏠려 있는 것 같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 나는 눈앞이 흐릿해 여러 번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나는 곧 내가 쇠사슬에 발이 묶여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음을 눈치챘다.
나는 거꾸로 보이는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파마머리를 한 우락부락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날 슬쩍 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 것이 보인다. 이에 치태가 잔뜩 끼어 검은 얼룩이 있다.
“일어났네.”
남자는 쇠몽둥이를 들어 내 배를 쿡쿡 찌른다. 그가 찌를 때마다 매달려 있는 몸이 뒤로 밀렸다가 또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온다.
남자가 테이블로 손을 가져가 내 신분증을 집어 든다.
“경찰이네?”
제길, 빼앗겼구나. 테이블 위에 내 총과 지갑도 놓여 있다. 남자는 내 지갑을 열어 돈을 확인한 뒤 헛웃음을 지으며 지폐를 꺼낸다.
“만 삼천 원? 야, 경찰들 박봉이란 건 들었지만 지갑에 돈이 이게 뭐야, 이래서 밥이나 사 먹고 다니겠어?”
이 씨X 새끼가 지금 내 밥걱정을 해주는 건가? 나는 가만히 놈을 노려보았다. 기억에서 보았던 놈이 아니다. 이놈은 또 다른 공범인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 이런 때 형사가 지금 자수하면 정상참작은 해준다, 풀어주고 항복해 라는 얼빠진 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범죄자를 자극하는 꼴밖에 안 된다.
남자는 내 얼굴로 지갑을 툭 던진 후 허리를 숙여 거꾸로 매달린 내 머리채를 잡고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온다.
“승진이 따라왔다며? 뭐 알고 따라온 거냐?”
승진이?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추적한 놈은 보이지 않는다. 그놈 이름이 승진이구나. 나는 말없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욕을 내뱉는다.
“이 새끼 눈빛이 왜 이 모양이야?”
그는 내 머리채를 놓고 쇠몽둥이로 내 배를 강하게 가격한다.
“억!!!”
고통에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지만,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바람에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팔이 밑으로 툭 떨어진다. 남자는 쇠몽둥이를 어깨에 척 올리며 말했다.
“야 씨X 짭새 새끼. 이제부터 내 질문에 답이 느리면 처맞는 거다, 알았냐?”
남자는 쇠몽둥이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 알고 따라왔냐고 물었다.”
“…….”
뻐억!!!
“커억!!”
“이 씨X놈이 상황 파악이 안 되나. 퉤.”
남자는 앞뒤로 흔들리는 내 몸을 바로 세우려 복부에 쇠몽둥이를 찔러 넣으며 말했다.
“다시 묻는다. 아 씨X. 계속 같은 소리 하기도 지겨운데 아까 질문 다 듣고 씹었지, 이 씨X 새끼야? 대답해.”
“…….”
“또 처맞을까?”
이놈들은 내가 경찰이란 걸 안다. 적당한 거짓말로는 속아 넘기기 어렵다. 나는 복부에서 올라오는 강한 고통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내가…… 쫓던 용의자와 닮은 사람을 따라왔다.”
남자는 내 답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린다.
“용의자? 무슨 사건인데.”
“소매치기.”
“하? 씨X 우리가 개 양아치, 홍어 X으로 보이지, 씨X놈아?”
빠악!!!
“크헉!!”
대답을 해도 때린다, 개새끼. 남자는 쇠몽둥이를 던진 후 전화를 걸었다. 가격당한 충격으로 몸이 앞뒤로 흔들리고 있는 나는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놈의 통화 소리를 들었다.
“이 새끼 깼는데. 소매치기 따라왔다는데? 모르지, 씨X. 승진이 새끼가 좀 양아치처럼 생기긴 했잖냐, 킬킬. 어, 바로 따? 장기는? 어, 박사 아직 안 왔는데? 아니 병신아. 박사가 와야 장기를 꺼내지. 내가 꺼내면 걸레 될 텐데. 그래, 30분 안에 오라고 해라. 뭐? 한 시간 반? 씨X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젠장, 알았다.”
박사? 장기적출을 전문으로 하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다. 남자는 전화를 테이블 위에 던진 후 쇠몽둥이를 주워 여러 대를 더 때렸다. 개새끼가 배만 때리는구나.
나는 복근에 최대한 힘을 주고 고통을 분산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자는 다섯 대나 더 때린 후에 쇠몽둥이를 집어 던진 후 침을 뱉는다.
“퉤! 괜히 처따라와서 죽을 자리를 찾냐? 재수 오지게 없는 새끼네, 이거.”
남자는 다가와 내 귀싸대기를 한 대 더 때린 후에 밖으로 나갔다. 입에 고인 피를 뱉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복부의 고통을 참았다.
주변을 보니 매우 낡은 공장 같아 보인다. 그런데 바닥에 비닐이 깔려 있고, 벽에는 핏물이 번져 있다. 정체 모를 기계들마다 사람 피와 살점들이 끼어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가 아지트다.’
젠장, 조금 더 빨리 지원 요청을 했어야 했다.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 걸 모를 텐데.
나는 인기척을 확인한 뒤 허리에 힘을 주어 튕겨 올라간 뒤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발목엔 밧줄이 아닌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건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한다. 총이라도 있었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 내게는 총도 없다.
그때 밖에서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고성이 오간다.
“저 새끼 뭐야!”
“씨X놈 죽여 버려!”
뭐지? 누가 온 걸까? 장기밀매 조직 간에 다툼이라도 일어난 걸까?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소란한 틈에 탈출하지 않으면 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그것도 온몸에 장기를 다 털린 채로.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튕겨 앞뒤 반동을 만들었다. 이빨에 치태가 잔뜩 낀 더러운 새끼가 앉아 있던 자리. 그곳에 내 총과 신분증, 지갑이 그대로 놓여 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튕겨도 테이블 위에 손이 닿진 않는다.
대신 놈이 버리고 간 쇠몽둥이가 의자에 끼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최선을 다해 몸을 튕겨 쇠몽둥이를 잡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끼익, 끼이이익!!!
‘제발, 제발!’
몸이 여러 번 앞뒤로 흔들렸다. 하지만 쇠몽둥이에는 절대 닿지 않는 손. 제길,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수녀님들과 아저씨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올걸.
그때 누군가의 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의 발소리를 따라오는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린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 과장님!”
거꾸로 보고 있어 그런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 이름도 아니고 직급을 부를 사람이 누구일까? 나는 입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핏물을 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오…… 경감님?”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오진규 경감은 내 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즉시 총을 꺼내 들고 뒤를 겨눈다.
“오지 마, 이 새끼들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오진규 경감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친다. 그러자 그를 따라 거리를 두고 들어오는 일당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피 묻은 앞치마를 두른 다섯 놈. 아까 날 때린 놈도 섞여 있다. 쇠몽둥이는 비교적 약한 흉기였는지 도끼와 톱을 든 놈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방으로 들어온다.
“어, 영감. 총 함부로 쏘면 어깨 빠진다? 제대로 쏠 수나 있겠어?”
오진규 경감이 천천히 물러나며 내 쪽으로 온다.
“움직이지 마, 이 새끼들아. 대가리에 빵꾸 나기 싫으면.”
“어이구, 무서워라. 영감 말처럼 쏘려면 대가리 쏴서 한 방에 보내야 될 거야. 안 그럼 우리가 당신 대가리를 날릴 테니까.”
맨 앞에 선 놈이 뒤를 힐끔 보며 말했다.
“문 잠가.”
뒤에 서 있던 놈이 열쇠를 꺼내 문을 잠근다. 이상한 문이다. 보통 잠금장치는 밖에 있다. 그런데 이 방은 특이하게도 잠그는 열쇠 구멍이 안쪽에 있다.
문을 잠근 놈이 열쇠를 넘기자, 맨 앞에 있던 놈이 히죽 웃으며 열쇠를 제 주머니에 넣는다.
“자, 다 죽이고 열쇠 들고 나가든가, 아님 영감이 저 새끼 끌어안고 같이 죽든가 해야겠네?”
오진규 경감은 총을 겨누고 천천히 물러나 내 옆에 선 뒤 속삭였다.
“몸 좀 어때요?”
“여기는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오진규 경감은 내 발목에 감긴 족쇄를 슬쩍 본 뒤 주변을 살피다 놈들 중 하나가 움직이는 걸 보고 공포탄을 쏜다.
아무리 공포탄이라도 가까이서 맞으면 쇼크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건들거리며 총이 안 무섭다던 녀석들은 생각보다 큰 총소리에 움찔 놀라며 몸을 움츠린다.
오진규 경감은 공포탄을 쏘고 진부한 대사를 내뱉는 대신 녀석들이 움찔하는 틈에 테이블 위에 있는 내 총을 낚아챈다. 두 개의 권총을 든 오진규 경감을 본 나는 급히 속삭였다.
“주세요, 제가 쏘겠습니다.”
오진규 경감이 내게 무언가를 던진다. 하지만 그건 총이 아니었다. 떨어뜨릴 뻔한 작은 무엇인가를 겨우 받은 나는 그것이 족쇄의 열쇠임을 알고 즉시 허리를 튕겼다.
내가 열쇠로 족쇄를 풀기 시작하자, 날 두들겨 팼던 파마머리 남자가 고함을 치며 달려든다.
“헬 조선 짭새 새끼들은 총 못 쏴! 그냥 덤벼, 씨X!”
탕탕!!
오진규 경감이 남은 공포탄 두 발을 쏜 뒤 외쳤다.
“이제부터 실탄이다! 경고한다, 움직이지 마!”
“지랄!!”
도끼를 든 놈이 덤벼든다. 오진규 경감은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의 다리를 차 넘어뜨린 후 녀석을 밟고 총을 겨눈다.
“대가리 빵꾸 나야 정신 차릴래, 이 새끼들아!”
밟힌 놈이 히죽거리며 웃는다.
“어, 쏴. 나는 저승 가고 넌 빵에 가고. 같이 인생 종 치자.”
“뭐 이런 미친 새끼들이 다 있어?”
“킬킬.”
오진규 경감이 황당한 눈으로 밟힌 놈을 보고 있을 때 히죽거리던 놈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며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놈의 얼굴에 발이 내리꽂힌다.
쾅!
발에 밟히며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힌 놈이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혼절해 버린다. 황당한 얼굴의 오진규 경감이 눈을 든다.
족쇄를 풀고 바닥에 떨어진 힘을 이용해 놈을 밟아버린 나는 복부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갈비 나갔나 보네, 으.”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공장. 나는 복부를 어루만지다 날 때린 파마머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너 이빨에 똥 낀 새끼. 넌 이제 죽었다.”
오진규 경감에게 총을 받아 테이블 위에 놓인 건 캐리어를 찬 뒤 집어넣자, 오진규 경감이 뭐 하냐는 눈빛으로 묻는다.
“현 과장님? 총은 왜 넣으십니까?”
나는 총을 겨누고 있는 오진규 경감을 쓱 바라보며 그의 총에 손을 올렸다.
“저놈들 말이 맞습니다. 총 없는 놈들한테 쏘면 징계받습니다.”
“…….”
“칼과 몽둥이는 대충 몸으로 때우는 게 대한민국 경찰이죠.”
“아니 그래도…….”
남은 네 명. 맨 앞에서 히죽거리던 놈이 톱을 어깨에 올리며 웃는다.
“오, 똑똑한 경찰도 다 있네?”
나는 목을 좌우로 풀며 나섰다.
“머리에 피 쏠려 죽는 줄 알았다, 이놈들아.”
바로 그때, 밖에서 요란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한 놈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나는 오진규 경감에게 속삭였다.
“지원 부르셨습니까?”
오진규 경감이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계단 앞에서 핏자국 발견하자마자 지원부터 불렀습니다. 혹시 지원 오기 전에 무슨 일 터질까 싶어 들어온 거고.”
어쩐지 시간 끄는 것 같더라. 나는 물러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입가에 피를 묻히고 웃는 날 미친놈 보듯 하던 녀석들이 주춤주춤 물러난다.
“그럼 시간이 없겠네.”
오진규 경감이 물었다.
“시간이요? 무슨 시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놈들에게 다가가는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놈들 패 죽일 시간.”
녀석들을 향해 걸어가자, 밖에 다른 경찰들이 왔다는 걸 알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문을 열라 지시한 놈이 톱을 휘둘렀다.
“오지 마, 씨X 새끼야!”
“아까는 오라며, 이 새끼야. 이랬다, 저랬다 해?”
나는 주먹을 풀며 네 녀석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날 때린 파마머리를 보며 말했다.
“이빨에 똥 낀 새끼. 넌 맨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