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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49화 (149/328)

살인의 기억 149화

12. 지하철 괴담(15)

나는 히죽거리는 정지영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지?”

정지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내민다.

“대한민국 개인정보보호법 알지? 고객 정보는 함부로 말할 수 없어서.”

“…….”

이 미친 자식이 장기밀매하던 놈이 법을 들먹여? 나는 잠시 정지영의 말을 곱씹었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버림받고 영혼이 죽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인간의 죽음이다. 이희연처럼.

그렇다는 말은 이희연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의 남편인 김정국은 병원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했다.

나는 정지영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김정국이 이희연을 버렸다?’

만약 그가 아내인 이희연을 장기밀매 업자들에게 팔아넘겼다면 어떨까? 이희연은 평소 행실이 나쁘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죽을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남편 입장에선 원한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아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알게 된 남편이 살인을 하거나, 청부업자에게 교사 요청을 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하지만 장기밀매 업자에게 팔아넘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약 치정이 얽힌 원한 살인이라면 원한의 강도와 죄질이 매우 높고 나쁘다. 이희연은 정말 김정국으로 하여금 그토록 강한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한 걸까? 정지영은 더 답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물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도 개인정보인가?”

“뭐?”

“김정국 그놈 어떻게 됐냐고 물었는데.”

“…….”

“음, 뭐 생각해 보니 그것도 개인정보이겠네. 뭐 할 수 없지.”

정지영은 계속하라는 듯 손가락을 빙빙 돌린다. 나는 정지영을 노려보다 물었다.

“본업이 의사인데 왜 장기밀매에 손을 댔지?”

정지영이 팔짱을 끼며 삐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한참 날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죽일 듯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죽여 장기를 꺼낸 놈이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그 짓을 했다고?

내 표정을 본 정지영이 너도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몇 사람이 새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아?”

“…….”

정지영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편다.

“없어도 좀 불편한 거 말고, 목숨 오락가락하는 사람만 치면 다섯이야. 한 사람 죽음이 다섯을 살릴 수 있어.”

“…….”

이 미친 자식이 무슨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걸까? 정지영은 다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세상에는 살아봐야 별 도움 안 되는 목숨들이 여럿 있지. 아니, 오히려 사는 것이 민폐인 돼지들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정지영을 노려보며 물었다.

“예를 들면?”

정지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넌 세금을 얼마나 내지?”

“…….”

월급 명세서에 매달 나가는 세금이 명시되어 있지만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거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개인사업자도 아니니 어련히 청 차원에서 계산되어 나가는 거니까.

“그건 왜?”

“세금 중에 건강보험료 있지?”

“있다.”

“작년에 병원 몇 번 갔는지 물어도 되나?”

“간 적 없다.”

“그렇지? 건강보험료는 네가 반 내고 회사가 반을 내지. 월급 250쯤 받는다 치면 월 20은 나갈 거야. 그럼 회사가 20을 더 내니 넌 월 40의 건강보험료를 내지. 일 년이면 480만 원이야. 그런데 넌 작년에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정지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 안 되는 거 모르겠어? 네가 피땀 흘려 번 돈 480만 원이 사라졌다고.”

“…….”

“돈 못 벌어서 월 건강보험료 만 원도 안 내는 인간들이 네가 낸 돈으로 병원을 간다. 생각해 봤어? 네가 왜 그런 인간들을 위해 네가 번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세금을 몇 푼 못 내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다?”

“뭐, 비슷해.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지. 나도 병원에 오래 있어봐서 안다. 가난이란 놈은 대물림이 되는 법이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만들어놓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 말이지.”

“계속해.”

정지영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런데 세금 못 내는 인간들 전체가 그런 인간들일까? 그거 알아? 우리 병원장 삼촌은 연금으로 월 300을 받아. 하지만 근로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료가 제로에 가깝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나?”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만 골라 죽였다 이 말인가?”

“킬킬, 그럼 좋았겠지. 근데 하다 보니 그래 가지고는 돈이 안 되더군.”

이 망할 새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만 죽이려고 하다 돈 안 되니 무차별적으로 죽였다는 거 아닌가?

“네 기준엔 세금 못 내는 사람들이 죽여야 될 대상으로 보였나?”

정지영이 검지를 까딱인다.

“아니, 건강보험이 잘 돌아가는 나라가 선진국인 건 나도 알지. 하지만 모두가 책임을 다하고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 국가보험이야. 누구는 뼈 빠지게 일만 하고, 누구는 혜택만 누린다면 그건 잘못된 정책이지.”

나는 천천히 정지영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정지영은 물러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나는 그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릴 때 다쳐본 적이 있나?”

정지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건 왜?”

“친구들과 운동하다 어디 부러져 본 적 한 번은 있지 않나?”

“그래, 있는데 왜?”

“너는 그때도 병원에 갔다. 너는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았다. 세금 한 번 안 내던 그때도.”

정지영이 실소를 지었다.

“난 또 무슨 소리라고. 그건 우리 아버지가 낸 세금이지. 난 누구에게 신세 안 지고 살았어. 난 그런 쓰레기들이 아니니까.”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낸 건강보험료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네가 혜택을 봤지. 네 말대로라면 넌 그때 가치 없는 쓰레기였겠군.”

정지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지금 나는 열심히 일해서 그때의 빚을 청산했다.”

“그럼 네 아버지는 지금 뭘 하시지?”

“은퇴하셨다.”

“그럼 이제 돼지가 됐겠군.”

“…….”

“아닌가? 네 논리대로라면 네 아버지도 죽어야 할 사람인데.”

정지영이 웃음기를 지우고 날 노려본다.

“말장난을 하는 건가?”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인간이 어떤 부류인지 아나?”

“뭐?”

나는 검지를 하나 펴며 말했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새끼들이다.”

“…….”

“책이란 물건은 이상해. 틀린 궤변을 늘어놓아도 권위 있는 사람이 썼다는 이야기에 마치 그것이 진실처럼 느껴지지.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읽어서 자신만의 생각을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편협한 시선으로 쓴 책 한 권만 읽은 놈은 평생 그게 진실인 줄 아는 착각 속에 사는 거다. 그게 바로 너 같은 부류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먹으로 책상을 슬쩍 때렸다.

“잘 들어, 정지영.”

정지영은 날 노려보고 있다. 나는 정지영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사람은 본래 힘이 없이 태어나 힘을 가지게 되고 다시 힘이 없는 존재로 돌아간다. 힘이 있을 때 일해서 세금을 내고 힘이 없던 시절의 빚을 갚고 앞으로 내게 다가올 힘 없는 미래에 대비한다. 그것이 건강보험이 돌아가는 구조다.”

나는 조금 더 강하게 책상을 내려쳤다.

“잠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시절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어도 시원치 않을 돼지가 아니라! 언젠가 잘되어 제 몫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지영은 내 말이 틀렸다는 듯 코끝을 찡그린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궤변을 들어줄 생각이 없던 나는 의자를 발로 툭 치며 말했다.

“절뚝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할머니가 병원에 오시면, 네 엄마를 떠올려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엄마가 병원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떠올려라. 그럼 네가 내는 세금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나는 정지영의 답을 듣지 않고 취조실을 벗어났다. 더 대화를 하면 머리가 썩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자 연주가 기다리고 있다 말했다.

“정지영 신문 계속하실 겁니까?”

“아니, 저놈은 됐다. 장기밀매 우두머리 파악됐어?”

“네, 여기.”

연주가 서류를 내민다. 신상명세를 넘겨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몇 번 취조실이야?”

“4번이요.”

“알았다, 바로 시작하자. 아, 관우 쪽에서는 연락 없고?”

연주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10분 전에 김정국 씨 깨어났다고 연락 왔습니다. 지금 중환자실에 있답니다.”

“눈 떼지 말고 감시하라고 해.”

“네, 과장님.”

연주에게 지시를 하고 4번 취조실 문을 연 나. 기억 속에서 본 두 놈 중 정지영을 제외한 나머지 한 놈이 앉아 있다. 아까 도끼를 휘두르던 놈이다.

나는 의자를 끌어 놈의 앞에 앉은 후 그를 노려보았다. 아까 많이 맞아서 그런지 눈치를 보는 녀석.

나는 잠시 놈을 노려보다 노트북을 열었다.

“이름.”

“…….”

답이 없다. 나는 눈만 들어 놈을 보았다.

“한 번 더 묻게 하면 아까 봤던 장면 다시 보여준다.”

“그, 그! 박영동입니다.”

“직업.”

“……장기…… 밀매업자.”

음, 이건 괜히 물었구나. 귀가 썩을 것 같네.

“살해한 사람들 총 몇이야?”

“그게…… 장부가…….”

“장부가 있어?”

“예…….”

“어디 있지?”

“사무실에 있는데.”

KCSI가 싹 털어갔으니 거기 있을 거다. 나는 창문 쪽을 바라보며 눈짓했다. 연주에게 장부가 회수되었는지 확인을 시키는 것이다. 다시 박영동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팔짱을 끼고 물었다.

“대충 몇이야?”

“한 일곱 명쯤…….”

하, 일곱이나 되는구나. 여론이 알면 난리가 날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의 시신은 어디 버렸어?”

“바다에 버렸습니다.”

“어디?”

“인천…….”

“자세히.”

“…….”

나는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자세히!”

“히익!!”

불행 중 다행이다. 악질인 건 이쪽이 더하지만 이 자식은 정지영 놈처럼 돌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아닌가? 정지영은 안 맞아서 그런 건가? 지금이라도 가서 몇 대 쥐어박을까?

내가 잠시 고민하며 눈을 굴리자, 그것이 꼭 자신의 어느 부위를 때릴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박영동이 얼른 말했다.

“사, 삼목도 선착장에서 서쪽으로 30㎞ 지점! 시멘트 통에 넣어서 버렸습니다!”

제길, 또 대규모 수색부대를 동원해야 한다. 이번엔 바다를 뒤져야 하다니 고생 좀 하겠다.

“장기적출 대상자 물색 방법은?”

“…….”

내가 다시 노려보자 박영동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게…… 거래를 통해서…….”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불현듯 불안한 느낌이 든다.

“거래?”

박영동이 울대를 꿀렁거리며 말했다.

“그, 그게. 저희는 정말 아무나 죽인 게 아닙니다. 다 협의를 통해서 돈을 주고 구매한 건데…….”

감히 누가 살아 있는 인간을 거래한단 말인가? 불현듯 정지영의 뒤틀린 미소와 그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의 진짜 죽음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영혼이 죽음을 맞이할 때. 비로소 그것이 진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이희연 그 여자처럼 말이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설마 거래를 한 사람들이…….”

박영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그들의 가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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