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50화 (150/328)

살인의 기억 150화

12. 지하철 괴담(16)

병원에서 김정국을 감시하고 있던 관우는 산소마스크를 쓴 김정국을 바라보다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고 신분증을 내밀었다.

“저기, 주요 보호관찰이 필요한 분이라 그런데 지금 김정국 씨 상태가 어떻습니까?”

의사는 신분증을 자세히 본 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차트를 확인한다. 김정국의 담당 의사가 아닌 모양이다. 그는 차트를 넘겨보다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낙상하며 머리 쪽에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왼쪽 다리에 충격이 몰려서 세 군데가 골절됐습니다. 후유 장애가 예상됩니다만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협업 수술이면 회복 가능할 겁니다.”

관우가 김정국을 힐끔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못 깨어나는 겁니까?”

의사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글쎄요, 신체적인 부상 때문에 혼절한 것 같진 않습니다. 사람 몸이란 게 신비해서 정신적 충격 때문에 몸이 쇠약해지기도 하니까요. 환자 개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본인이 깨어나기 전엔 모르는 법이죠.”

“후.”

“그럼 이만.”

“아, 예. 감사합니다.”

관우는 떠나가는 의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자살까지 하는 거야? 애가 아직 어린데 혼자 남겨두고 말이야. 아버지란 인간이 이래도 돼?”

김정국이 호흡을 하며 산소마스크에 김이 서리는 것을 확인한 관우는 당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근처 자판기를 찾았다.

동전을 넣고 제일 달달한 커피를 뽑은 관우가 중환자실로 돌아와 다시 김정국을 확인했다. 자리 비운 것이 1분도 안 되어 그런지 얌전하게 누워 있는 김정국.

관우는 커피를 마시며 벤치에 앉았다. 중환자실 창문 가운데에 불투명 스티커가 붙어 있어 앉으면 그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었기에 잠시 앉은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창문 쪽을 노려보며 커피를 마셨다.

바로 그때 불투명 유리 뒤편으로 뭔가 움직임이 포착된다.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난 관우 눈에 산소마스크를 자기 손으로 떼버리는 김정국이 보인다. 깨어난 걸까?

김정국은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었는지 이곳이 어딘지 파악하는 얼굴로 주변을 바라본다. 그러다 점점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오열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놀란 간호사들이 중환자실 문을 열고 뛰어들어 간다. 김정국은 온몸을 뒤틀며 오열한다. 덕분에 부러진 다리를 고정했던 부목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다.

간호사들이 몸으로 김정국을 누르며 소리치는 것이 보인다. 중환자실이라 함부로 들어가 도울 수 없는 관우가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또 왜 저러는 거야, 하.”

간호사들의 콜에 달려온 의사들이 몸부림치는 김정국을 누르며 외친다.

“김정국 환자님! 진정하세요! 따님 수술이 끝났습니다!”

몸부림치던 김정국이 멈칫한다. 그러더니 의사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새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의사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진정하세요. 다 괜찮을 겁니다!”

김정국은 떨리는 눈빛을 툭 떨구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나만 죽으면 되는 거군요.”

“예?”

김정국이 팔에 꽂혀 있던 링거를 강제로 뽑아버리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옆에 있던 화상 환자를 드레싱하던 의사를 노려본 김정국이 침대에서 뛰어내린다.

다리가 부려져 있기에 바닥에 쓰러지는 김정국. 의사들이 그런 그를 부축하려 하자, 화상 환자 드레싱을 위해 가져다 놓은 트레이에서 메스를 붙잡는 김정국.

“물러나!”

포장이 되어 있는 메스를 들이미는 김정국.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물러난다. 바닥에 엎드린 채 메스를 휘두르며 주변인의 접근을 차단한 김정국이 메스 포장지를 제거하며 말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그래야 내 딸이 잘살 수 있어!”

물러난 의사들이 외쳤다.

“김정국 환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정국이 메스를 휘두르며 외쳤다.

“오지 마! 다가오면 함께 가는 거야!”

관우는 중환자실 입구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여차하면 중환자실이고 나발이고 들어가 제압해야 할 상황이다.

그때 관우의 전화기가 울렸다. 혹시나 해서 진동 모드에서 벨 모드로 바꿔두었기에 상황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웃기는 벨 소리가 울린다.

-전화 받아~ 안 받을 거야? 콱 물어버릴 거야~

갑자기 울리는 웃기는 벨 소리에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겸연쩍은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 전화를 받는 관우.

“예, 과장님.”

-김정국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해.

“예?”

-장기밀매 업자에게 아내를 팔았다.

“헉!”

-바로 체포해.

“예!”

전화를 끊고 허리를 편 관우.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 머리를 긁은 관우가 웃으며 수갑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중환자실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좀 들어가겠습니다. 긴급체포 상황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김정국은 관우가 긴급체포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눈이 커지며 메스를 높게 들었다. 그와 동시에 관우의 몸이 쏜살같이 날아간다.

* * *

장기밀매업자 다섯 명과 적출 전문의 한 명 체포.

희생자 일곱 명, 희생자를 장기밀매 업자에게 판매한 가족들 중 사실을 아는 자까지 방조죄로 포함하여 체포하니 한 사건으로 인해 체포당한 이가 30명을 넘겼다.

대형 사건이기도 했지만 지하철 괴담을 수사해 실제화를 증명 후 체포까지 완료한 사건이라 언론에는 큰 이슈가 되었다.

게다가 가족들이 같은 가족을 팔아넘겼다는 사실까지 더해지자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는 이 기회를 틈타 자신들의 업무 능력을 과시했고, 뉴스는 연일 해당 뉴스를 보도한다.

범인들을 취조하고, 가족들을 체포하며 벌써 삼 일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국가수사본부 앞은 기자들로 장사진이다. 도저히 꺼질 생각을 하지 않는 지옥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이슈가 된 것이다.

관우는 보고서를 작성하다 3분에 한 번씩 울리는 전화기를 결국 꺼버리며 한숨을 쉬었다.

“와, 진짜 난리가 났네. 선배들에 후배들까지 전화해서 물어대고. 기자들이 화장실까지 기어들어 와 있어서 오줌 싸러 가기도 힘들다니.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수사과는 달랑 셋이다. 체포한 사람이 30명이나 되니 보고서 쓰는 것도 일이다. 연주도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다 말했다.

“요강에다 싸.”

관우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싫거든!”

“그럼 참아.”

관우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TV 리모컨을 든다.

“뉴스 계속 나오고 있겠지?”

TV를 틀자, 국가수사본부 건물이 나오는 화면이 보이고, 리포터가 끊임없이 상황에 대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연주가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린다.

“시끄러워, 꺼버려.”

관우도 괜히 틀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TV를 끄려던 그 순간.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마크가 그려진 기자회견장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청와대는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일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번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며, 국가적인 유감을 표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과 정부가 한마음이 되어…….

관우가 TV를 꺼버리며 인상을 쓴다.

“지랄하네, 미친 새끼들.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데 국민 여론 이용하고 싶으냐, 미친놈들.”

감히 입에 담기 힘든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짐으로 인해 누군가는 웃고 있다. 그 생각을 하니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관우가 리모컨을 던져버린다.

“에이씨 더러운 세상.”

연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야, 빨리 보고서 작성이나 해. 저 난리 났는데 빨리 처리해야지.”

관우가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튕기며 말했다.

“아씨, 짜증 나! 바빠 죽겠는데 사람은 둘뿐이고! 과장님은 어디 가셨어?”

“병원.”

관우 눈이 휘둥그레진다.

“병원? 어디 아프셔?”

“아니, 새별이.”

“…….”

김정국의 딸 김새별.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아빠는 이미 없을 것이다. 김정국은 벌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김정국을 직접 체포했던 관우가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쉰다.

“김정국 씨 말이야.”

연주가 키보드를 두들기다 멈춘다.

“어.”

“경찰이 이런 생각 하면 좀 그렇지만…… 안됐더라.”

“…….”

상대는 가족을 장기밀매업자에게 팔아넘긴 범인이다. 그런 자가 안됐다고 말하는 관우. 하지만 조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연주는 말없이 한숨을 쉰다.

김정국의 아내 이희연.

그녀는 동네 사람들 말처럼 술집에 나가는 여자였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행실이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 일을 한 이유는 오직 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함이었다.

딸의 증세가 점점 악화되고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오자 그녀는 남편과 상의해 자신의 목숨을 팔아 딸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김정국은 처음에 극렬히 반대했지만 아내는 단독으로 장기밀매업자들과 접촉한 뒤 남편에게 모든 돈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 돈으로 딸을 살렸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으로 아내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딸을 살려낸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살을 택하려 한 것이다. 원한 때문에, 혹은 빚 때문에 가족을 팔아넘긴 다른 이들과 김정국은 다른 케이스다.

하지만 법은 그를 살인교사 죄로 지정했고, 정상참작은 하되 실형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김정국은 유치장에 있을 때에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형사들에게 막혔고, 그는 제발 죽게 해달라며 애원했다.

그의 사정을 안 형사들도 안쓰러워했지만 그렇다고 죽게 둘 수는 없기에 24시간 감시 속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이다.

관우가 자기 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쉰다.

“어린애는 무슨 잘못이냐, 후.”

다섯 살 새별이. 아이는 이제 홀로 커야 한다. 나중에 커서 엄마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해 수술비를 벌고, 아빠는 감옥에 있다는 걸 알면 아이가 얼마나 슬퍼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자책하게 될지도 모른다.

관우가 꺼버린 TV를 노려보며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저 개X끼들은 정당 홍보하느라 언론에 불을 지피질 않나. 상처받을 애는 어쩌라고. 씨X 것들.”

* * *

관우와 연주가 하던 일을 멈추고 진한 한숨을 쉬고 있는 시각, 홍연병원.

나는 수술을 마치고 아직 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한 가녀린 아이를 중환자실 창문 밖에서 바라보고 있다.

저 아이가 깨어나면 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과연 내게 아이가 겪은 이 참혹한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용기가 있을까?

나는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음 한편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아이는 살아가며 차가운 세상의 시선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이 정도 이슈가 된 사건이라면 기자들이 아이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그때 그 사건의 아이 근황이 어쩌고 하며 잊을 만하면 또 기사를 써 이슈를 만들어내겠지.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는 생각도 하지 않는 언론에 의해 아이는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때 내 옆으로 두 사람이 다가와 새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아이야?”

나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날 키워 주신 두 수녀님이 새별이를 바라보고 계신다.

“네, 부탁해도 될까요?”

루이사 수녀님이 새별이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귀엽고 예쁜 아이네.”

로사 수녀님이 아이를 보며 말했다.

“물론 국가에서 보육처를 정하겠지만 우리 쪽에서 강력하게 요청하면 데려올 수 있기는 해.”

나는 두 수녀님께 허리를 숙였다.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루이사 수녀님과 로사 수녀님이 미소 지으며 중환자실에서 눈을 꼭 감고 있는 새별이를 바라본다.

“천사 같은 아이야. 엄마의 눈물로 살아남은 작은 생명아. 너는 누구보다 소중한 생명을 가진 아이란다.”

부디 이 아이가 엄마 잡아먹고 살아남은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를 살인 방조하게 만든 저주받은 아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소중한 생명을 가진 아이로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두 수녀님이라면 나를 바르게 키워주셨듯 아이도 바르고 밝게 키워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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