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51화 (151/328)

살인의 기억 151화

12. 지하철 괴담(17)

대한민국 경찰청장실.

제복을 입은 강혁이 전화를 받고 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은 후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노려본 강혁이 수화기로 전화기를 수차례 때린다.

“야이 개새끼들아!!!”

쾅! 쾅! 쾅! 쾅!!

전화기가 부서져라 때리는 강혁 아저씨. 아저씨의 부름에 장영훈 본부장님과 함께 청장실에 와 있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평소에도 저런 모습일 것이 뻔하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물었다.

“청와대 전화입니까?”

강혁 아저씨가 수화기로 전화기를 때리는 걸로는 화가 안 풀리는지 전화기를 통째로 들어 벽에다 던져 버린다.

“아오, 이 인간 같지 않은 새끼들! 장기 밀매하는 새끼들보다 이 새끼들이 더 나빠!”

강혁 아저씨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인상을 쓴다.

“하…….”

장영훈 본부장님이 물었다.

“뭐라고 하는데요?”

“하, 씨X. 최대한 천천히 처리하랍신다, 씨X놈들. 언론에서 좀 더 떠들게 두라고 말이야.”

곧 대선이다. 이 사건은 현 정부의 홍보로 더할 나위 없는 패이다. 어떤 정권에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수사에 착수한 뒤 이 정도 성과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는 이 기회에 현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집단인지 단단히 홍보하려는 모양이다.

장영훈 본부장님은 그 점을 이해하고 있는지 날 힐끔 보며 말했다.

“들었지?”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지. 우린 공무원이니까.

“예.”

강혁 아저씨가 날 째려보며 말했다.

“예는 무슨 얼어 죽을 예야? 저 새끼들 얼어 죽을 정치 놀음에 동참해 줄 생각 없다. 모레까지 검찰에 송치해.”

장영훈 본부장님이 실소를 짓는다. 오랫동안 강혁 아저씨를 모셔왔기에 저 불같은 성정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괜찮겠습니까? 청와대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강혁 아저씨가 테이블을 발로 차며 말했다.

“몰라, 씨X. 어차피 청장 임기 2년인데 잘 보여서 어디 쓰려고. 그냥 해!”

“예, 알겠습니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날 보며 웃는다.

“들었지?”

강혁 아저씨도 참. 저 성정으로 어떻게 청장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윗사람들 입맛 맞춰주기도 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기소해야 될 범죄자가 30명입니다. 저희 팀이 고작 셋이라 모레까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강혁 아저씨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 왜 충원 요청을 안 해? 애들 더 뽑으라고 했잖아.”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요.”

강혁 아저씨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 인마. 사람 없어서 너네 애들만 고생하면 누가 알아줄 것 같으냐? 공무원 사회에서 그런 거 없다, 인마. 빨리 더 뽑아.”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알아주실 분이 내 상사이니 괜찮을 것 같은데. 장영훈 본부장님이 물었다.

“최영현은 어때?”

나 대신 강혁 아저씨가 손사래를 친다.

“최영현은 됐어. 그놈 지금 종로경찰서 에이스 소리 듣는다고 하더라. 팀장 역할 멀쩡히 잘하고 있는 놈 데려오면 그 팀은 어쩌라고. 가뜩이나 도경이 놈 나올 때 그 팀 애들 몽땅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제 역할 하는 팀으로 만드는 데 오래 걸렸어. 다른 놈 뽑아.”

장영훈 본부장님이 다시 물었다.

“여주 경찰서에서 지원 왔었던 놈은? 최우진인가? 걔는 어때?”

음, 괜찮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재라고 보긴 어렵다. 솔직히 그 정도 형사는 발에 차이도록 많으니까. 내가 잠시 고민하자 강혁 아저씨가 옆구리를 쿡 쑤시며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을 달라는 거냐, 이놈아. 대충 뽑아.”

나는 강혁 아저씨를 보며 씩 웃었다.

“최영현 경위는 안 됩니까?”

강혁 아저씨가 눈을 흘긴다.

“그놈은 빼라고. 걔 지금 탈옥수 잡으러 다닌다. 지금 그놈 빼면 팀 안 돌아가, 수사에 문제 생겨. 그놈만 빼고 말해. 다른 놈은 다 발령내 준다.”

“약속하셨어요?”

강혁 아저씨는 금방 대답하려고 하다 멈칫한다. 가자미눈으로 날 바라보는 강혁 아저씨가 말했다.

“날 달라는 거 아니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내가 아무리 간이 커도 경찰청장에게 일을 시키진 못하지. 내가 고개를 젓자 아저씨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네가 대가리다. 너보다 윗사람 달라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좋아, 약속한다. 누구 데려갈 건지나 말해.”

나는 날 바라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오진규 경감님. 그분 주세요.”

두 사람의 얼굴에 황당함이 맴돈다.

“뭐……?”

강혁 아저씨도 내 부탁을 예상 못 했는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오진규 그 양반을?”

“예.”

강혁 아저씨가 장영훈 본부장님을 본다.

“가능해? 동대문 쪽에 발령낸 지 얼마 안 됐는데.”

장영훈 본부장님이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끼어들었다.

“그러니까요. 아직 자리 잡기 전에 데려가는 편이 낫지 않아요?”

강혁 아저씨는 일리 있다는 듯 본부장님을 본다.

장영훈 본부장님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본인이 수락하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은 과장이었는데 도경이 밑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기분 상해할 것 같은데.”

강혁 아저씨도 그 점이 우려되는지 턱을 괸다.

“음, 그건 또 그렇지.”

강혁 아저씨는 날 힐끔 본 뒤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진규야? 이번에 같이 사선 넘어보니 정이라도 생긴 거냐?”

나는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원래 마음에 들었어요. 경험도 많으시고 임기응변도 빠르고. 이번에 보니 판단도 좋던데.”

장영훈 본부장님이 동의한다.

“오진규 그 친구가 순경부터 경찰 생활 시작해서 경감까지 올라온 사람입니다. 아주 밑바닥부터 시작한 친구라 경험 하나는 어디가도 안 밀리죠.”

강혁 아저씨가 잠시 고민한다.

뭘 그렇게 고민하는 척하세요? 실의에 빠진 오진규 경감에게 직접 찾아가 위로를 건네고 계속 경찰 생활을 하게 만든 사람이 본인이면서. 사실은 속으로 내가 오진규 경감을 택한 걸 좋아하고 있잖아요.

강혁 아저씨는 날 가만히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오진규 본인이 허락한다면 발령내. 하지만 본인이 거절하면 할 수 없다?”

됐다. 만약 거절하면 직접 설득하러 갈 것이다. 어차피 충원을 해야 된다면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팀에 절대적으로 모자란 건 바로 경험이기 때문이다.

만족하는 얼굴이 된 날 바라보던 강혁 아저씨가 물었다.

“이번 사건에…… 아이 하나가 껴 있었지?”

역시 아저씨는 모든 걸 알고 있구나.

“예, 새별이라고. 심장 수술 받고 지금 회복 중입니다.”

강혁 아저씨가 한숨을 쉰 뒤 장영훈 본부장님께 말했다.

“네가 뒤 좀 봐줘라.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얼마나 불쌍하냐.”

“예, 청장님.”

“보육원 지정도 좋은 곳으로 신경 쓰고.”

“예.”

나는 슬그머니 끼어 들어 말했다.

“저기, 청장님.”

“뭐.”

“보육원 말인데.”

“국가에서 알아서 잘 지정해 줄 거다. 걱정 말아.”

“그게 아니고. 사실 루이사 수녀님께 부탁을 좀 드렸는데.”

강혁 아저씨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놈 기른 그 보육원?”

“네, 안 될까요?”

강혁 아저씨는 잠시 눈을 굴리다 어깨를 으쓱한다.

“왜 안 돼, 거기라면 믿을 만하지. 영훈아, 그쪽으로 지정해라. 잡음 안 나게 아이 신상 철저히 비밀로 하고.”

“예, 청장님.”

강혁 아저씨는 지시를 마친 후 날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새끼, 이제 사람 다 됐네. 그런 것도 미리 챙길 줄 알고.”

원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절 뭘로 보고 계셨던 겁니까. 강혁 아저씨는 할 말을 다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럼 빨리 보고서 마무리해서 송치해.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는다.”

나는 씩 웃으며 일어나 말했다.

“진짜 괜찮겠어요? 청와대 눈치 안 봐요?”

“지랄, 이날까지 눈치 안 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눈치는 무슨. 꺼지라 그래. 어차피 임기 2년 채우고 안녕이야.”

하하, 역시 아저씨는 이래서 좋다.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 * *

이틀 뒤, 국가수사본부 앞.

수많은 기자들이 엽기적 사건으로 체포된 범죄자들의 검찰 송치 소식을 듣고 모여들었다.

경찰청에서 지원 나온 형사와 순경들의 통제 속에서 검찰로 가는 버스에 타는 범죄자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하게 차에 올랐다. 하지만 단 한 명은 예외였다.

형사들이 신변보호를 위해 머리에 씌워준 점퍼를 스스로 벗은 정지영.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의 얼굴이 드러나자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쏟아낸다.

“몇 명이나 죽인 겁니까?”

“왜 죽였습니까!”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장기적출한 것이 사실입니까?”

정지영을 비롯한 범죄자 인도 현장에는 물론 나도 있었다. 정지영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점퍼를 다시 씌워주었어야 옳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지금 수갑을 찬 김정국 씨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쓰레기 새끼의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동안 나는 조용히 김정국 씨를 차까지 이동시켰다. 혹여 나중에 새별이가 큰 뒤에 수갑 찬 아버지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발견하지 않길 기도하면서.

정지영은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돼지들을 도축한 겁니다.”

충격적인 말. 아우성치던 기자들마저 말을 멈춘다. 정지영은 소리 높여 말했다.

“세상에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존재는 분명히 있습니다. 도울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돕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는 병신들이 없길 바랍니다.”

정지영의 말이 전파를 타고 그대로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 봉고차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담당 검사가 실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어이구, 저놈 저거 사형 확정이네. 판사님도 보고 계실 텐데. 쯧쯧.”

김정국 씨를 차에 실은 나는 검사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검사 역시 수사과장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검사는 나와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다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발언 중인 정지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의대 공부해서 의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한 놈이 자기 재판할 재판장도 이 방송을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나 봅니다. 죄질이 악독하다는 판단을 내릴 근거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네요.”

나는 팔을 늘어뜨리고 서서 정지영을 노려보며 물었다.

“기소 형량은 얼마나 때릴 예정이십니까?”

검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사람 일곱 죽여서 장기적출…… 직접 사람 납치하고 판매 맡은 놈이 셋. 이놈들은 싹 징역 25년씩 때리고, 장기적출과 살인에 관계된 놈들은 다 종신형 때리려고 했습니다만…….”

검사가 정지영을 힐끔 보며 웃는다.

“근데 저놈이 스스로 사형 판결 내려달라 애원을 하는 것 같네요.”

검사는 날 보며 싱긋 웃는다.

“깔끔하게 전원 사형으로 기소하겠습니다. 아, 물론 정지영 저놈 제외하고 나머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확률이 높겠지만. 일단 사람 죽이고 아직도 저런 헛소리 지껄이는 정지영만은 반드시 사형이 구형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김정국 씨의 경우는 정상참작을 하겠지만 다른 놈들은 봐줄 필요 없죠.”

나는 검사를 바라보다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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