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66화 (165/328)

살인의 기억 166화

14. 목격자(2)

오진규는 회의실로 돌아왔지만 다행히 불편한 기색은 아니다.

실시간으로 인질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혹은 이미 마음속에서 사건을 지웠는지 알 수 없는 표정.

그는 평소처럼 연주가 인쇄해 나눠준 브리핑 자료를 살피고 있다.

나는 오진규를 잠시 관찰하다 말했다.

“연주야, 시작하자.”

“네, 과장님.”

연주가 빔 프로젝터를 조작한다. 지방에 있는 문구점 입구의 사진이 떠오른다.

“일주일 전인 9월 23일. 안산시 만안구 안양 8동 문구점 앞에서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10세 우현지 양과 8세 이연정 양이 납치되었습니다.”

오진규가 사진을 보며 물었다.

“문구점 천장에 저거 CCTV 아니야?”

연주가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습니다.”

관우가 끼어들었다.

“문구점 CCTV의 용도는 제품의 보호와 강, 절도 사건 시 증거자료 제출을 위함이라 보통 외부가 아닌 내부 방향을 찍습니다. 문구점 외부에서 납치사건 발생 시엔 안 찍혔을 거예요.”

연주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관우 말이 맞습니다. 문구점 CCTV에는 찍히지 않았습니다.”

오진규가 잠시 얼굴을 찌푸린 후 달력을 본다.

“사건 발생 예상 시간은?”

“오후 4시 30분입니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과 겹친다. 하교 중에 납치된 걸까? 오진규가 다시 달력을 보며 말했다.

“9월 23일은 일요일인데?”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부모님 진술에 의하면 9월 23일이 10세 우현지 양 아버지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용돈을 모아 아빠 생일 케이크를 사러 나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가 찾으러 나갔다가 두 시간 이상 아이가 보이지 않아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답니다.”

“8세 아이는?”

“이연정 양은 우현지 양의 학교 후배라고 합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함께 커서 두 살 터울임에도 친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같이 케이크를 사러 간 건가?”

“아닙니다, 부모님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연정 양은 그 시각에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우현지 양을 만나 함께 걷다 납치된 걸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두 아이가 나란히 함께 걷다 납치된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시신 사진 보자.”

연주가 버튼을 누르자, KCSI에서 찍힌 시신의 사진이 보인다.

어린이의 시신은 항상 안타깝다. 물론 성인이라고 덜 안타까운 건 아니지만, 아직 꿈을 이루지도 못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마음이 더 안 좋다. 게다가 어린이의 시신이 토막이 나 있기까지 하다.

나는 본래의 모양에 맞게 배치된 시신의 모양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시신…… 아직 전부 회수 못 한 거야?”

“네…… 아직 오른쪽 팔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개새끼가. 어린이를 죽인 것도 모자라 토막을 내 여기저기 흩뿌려 놨다.

“어디서 발견됐어?”

연주가 자료를 보며 말했다.

“먼저 발견된 10세 우현지 양의 시신은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발견된 이연정 양의 시신은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 IC 인근 야산에 암매장되어 있었습니다.”

“발견 루트는?”

“개와 함께 군자천을 산책 중이던 행인이 유난히 개가 한 곳의 냄새를 맡길래 이상한 걸 먹을까 싶어 발로 풀을 들췄다가 잘린 손을 발견하고 신고했습니다.”

“이연정 양은?”

“예비군 훈련을 하던 도중, 휴식 시간에 잘 곳을 찾던 예비군이 숨으려고 언덕에 올라가 구덩이를 팠답니다. 주변을 보니 다른 곳과 달리 흙이 좀 부드러워 보여서 팠는데 거기서 잘린 머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오진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번째 시신은 매장했다고?”

“네, 선배님.”

오진규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첫 번째 시신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줘. 그때도 매장되어 있었어?”

연주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유기되어 있었습니다. 수풀에서 몇 점이 나왔고, 하수도에서도 나왔습니다. 물속에서도 두 점이 발견되었는데 KCSI 조사에 따르면 물살에 떠내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오진규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린다.

“첫 번째 사건은 정신병자처럼 보란 듯이 시체를 흩뿌려 놓고, 두 번째 시신은 매장했다? 이거 뭐 하는 놈이야?”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첫 번째 사건의 시신 유기 방식은 전형적인 싸이코패스 살인자다. 자신의 살인을 온 세상이 알도록 전시하는 형태의 유기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두 번째는 왜 매장했을까? 지금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인은?”

연주가 거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비구폐색 질식사입니다.”

여타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는 경부압박 질식사와 다르게 비구폐색 질식사는 입과 코를 막아 상대를 사망케 만드는 수법이다.

“시신을 토막 낸 도구는?”

“톱입니다. 목수들이 나무를 자를 때 쓰는 대형 톱이라고 합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을 봤나. 나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말했다.

“또 다른 특이 사항은?”

“…….”

연주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KCSI 검사 결과, 유사 성행위 흔적이 나왔습니다.”

이런 제기랄. 오진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10세, 8세 여아를 상대로 말인가?”

연주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나 참담한 사건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관우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사건을 정리하며 말했다.

“정리해 보면 범인은 안양시에서 둘을 납치, 어디인가에서 어린이들을 성추행하고 죽인 후, 수원과 시흥에 시신을 유기했다는 거네.”

관우가 일어나 벽에 붙어 있는 서울, 경기의 지도에 관련 지역을 표기한다.

“만안8동에서 호매실IC까지 20㎞, 군자천까지 28㎞라. 호매실IC와 군자천까지의 거리도 28㎞. 반드시 차로 이동했겠네.”

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에 큰 원을 그린다.

“범인의 행동반경으로 보았을 때 주거 지역으로 예상되는 곳은 의왕, 수원, 시흥 세 곳입니다. 관할서에 일단 이 세 곳에 거주하는 전과자들 데이터를 요청했습니다.”

나는 엄지를 들어주며 말했다.

“잘했다. 아, 목격자가 있다고 하던데.”

연주가 화면을 바꾸자, 생머리에 교복을 입은 아주 예쁜 학생 얼굴이 떠오른다.

“이름, 주민지. 19세로 인근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사건 당일 교회에 다녀오다가 두 아이가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오진규가 물었다.

“남자 얼굴을 본 건가?”

연주가 약간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보긴 봤는데…….”

응? 연주가 왜 저러지? 그러고 보니 아까 본부장님도 저런 표정이었는데. 연주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화면에 떠오른 주민지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이 학생. Prosopagnosia 환자랍니다.”

나는 연주의 말에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안면인식장애?”

오진규가 얼굴을 매만진다.

“하, 미치겠군. 그럼 전혀 딴 얼굴로 기억하고 있다는 거네.”

연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이 기억하는 얼굴은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답니다. 관할서 형사들이 주민지 씨의 진술을 토대로 범인을 추정하는 도중, 주민지 씨의 부모님으로부터 그녀의 병을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관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지, 딸이 사건 목격자로 진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 입장에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겠지. 자기 딸 진술 때문에 형사들이 혼란을 겪을 수도 있는데.”

이래서 본부장님이 이상한 사건이라고 했구나. 일단 하지만 무턱대고 목격자 진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장내를 정리하며 말했다.

“일주일 전이면 아직 CCTV가 남아 있을 거다. 관우는 사건 발생 예측 시간 전후 12시간 CCTV 싹 긁어와. 오 선배님은 전과자 데이터 검수를 맡아주십시오. 특히 성범죄 관련 전과자 중에 소아성애자 쪽을 집중적으로 데이터화 해주세요. 연주는 주민지 씨 부모님께 연락해서 인터뷰 잡아줘. 내가 직접 간다.”

“네, 과장님.”

“추가로, 최근에 목수들이 사용하는 톱을 구매한 자가 있는지 인근 상점 탐문해 보고.”

“네, 알겠습니다.”

나는 각자 지시를 받고 해야 할 일을 떠올리고 있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도 살인자가 밖에서 누굴 살해할지 물색 중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 무고한 희생자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실 테니 빨리들 움직이죠.”

“예! 과장님!”

* * *

몇 시간 후 안산시 만안구 안양8동 제이 빌라.

나는 매우 낡아 보이는 빌라를 올려 보며 연주가 보내준 주민지의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올라 주소지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약간 불안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나는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미리 전화 드린 국가수사본부 현도경입니다.”

“네…….”

아주머니는 불안한 얼굴로 내 뒤를 두리번거린다.

“혼자 오셨나요?”

“네.”

“들어오세요.”

아주머니는 시종일관 불안한 얼굴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작은 거실에 세 식구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빠, 엄마, 딸이 함께 사는 집인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날 거실 소파에 앉혀놓고 오렌지 주스를 가져와 내민다.

“휴, 딸아이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서……. 혹시 범인이 우리 민지가 목격자인 걸 알고 찾아오진 않겠죠?”

“주민지 씨 신상은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정 그러시면 증인 보호프로그램을 가동해 드릴까요?”

“그게 뭐예요? 그런 게 있어요?”

“예, 원하시면 주민지 씨 등굣길에 동행하거나, 집 주변을 경호할 수 있습니다.”

“그, 그거 해주세요.”

“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목격자라고 해도, 수사상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충분히 허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약간 안심된 얼굴을 한 아주머니를 살핀 나는 주변을 보며 물었다.

“바깥분은 회사에 가셨습니까?”

“네, 불안해서 연차 낸다고 했는데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못 쉬었어요.”

“주민지 씨는 어디 있습니까?”

“학교 갔어요. 아직 끝나려면 두 시간쯤 더 남았어요.”

주민지가 하교할 때 학교 앞에서 만나는 편이 좋겠다. 사진으로 얼굴을 익혀두었으니 찾기는 쉬울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어머니께 사건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없는지 묻는 편이 좋겠다.

“민지 씨에게 따로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아주머니의 얼굴이 흙빛이 된다. 두려운 눈빛으로 눈을 뒤룩거린 아주머니가 내 손을 덥석 붙잡고 물었다.

“그…… 아이 중에 한 명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뉴스에서…….”

한 명이 아니라 둘 모두다. 두 번째 시신이 발견된 직후, 경찰청에서 엠바고를 걸었기에 일반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상태일 뿐이다.

“예, 그렇습니다.”

아주머니가 극도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얼굴을 매만진다.

“아이고, 민지가 어쩌다 그런 걸 봐서는…… 아, 죄송합니다.”

어린이가 잔인하게 죽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제 새끼가 제일 중요한 것이니 아주머니 마음도 이해는 간다.

“괜찮습니다. 주민지 씨가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랑하는 딸의 질병이 마음 아픈 어머니가 한숨을 쉰다.

“네…….”

“선천적인 질병입니까?”

“아니요…….”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휴, 어릴 때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그 후로 그러네요.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많아요.”

“학교생활은 문제없습니까?”

“일단……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목소리로 구분하고 있어요.”

목소리. 그래도 구분 방법이 있기는 하구나. 만약 주민지가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구분이 가능하다. 그녀는 과연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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