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167화 (166/328)

살인의 기억 167화

14. 목격자(3)

두 시간 후 성현 여자고등학교 앞.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도착한 나는 밀물처럼 밀려 나오는 여고생들을 바라보며 민지를 찾고 있다.

여고생들이 힐끔거리니 괜히 나이 먹은 아저씨 주제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된다. 주차된 차에 비친 머리도 한번 만져보고 얼굴에 뭐 묻은 건 없는지 확인을 하다 문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실소를 지었다.

“너 서른 넘은 아저씨다, 인마.”

창문에 비친 내게 질책하며 던진 말. 조카 같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우르르 몰려다닌다. 뭐가 그리 좋은 건지 까르르 웃으며 걷는 아이들. 저 나이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 걸까? 공부하느라 하루를 다 쓰는 아이들인데.

그때 학교 정문에서 걸어 나오는 키 큰 여학생이 보인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민지 사진과 대조해 보았다.

“생각보다 키가 크구나.”

저 정도면 연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주 키는 176㎝이다. 맨날 봐서 크다는 걸 잊고 있었는데 다른 여학생들을 보니 사뭇 그녀가 무지 큰 키라는 것이 상기된다.

아직 하복을 입고 있기에 하얀 반팔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은 아이. 아이는 질환을 앓고 있다.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되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날 보자마자 빤히 바라보고 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왜 저리 빤히 보는 걸까?

생머리 사이로 드러난 귀가 무척 예쁜 아이다. 질환이 없었다면 어느 동네 여신이라 불리며 인근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을 것 같다.

나는 민지와 눈을 맞춘 채 걸어가 앞에 서서 말했다.

“안녕?”

“…….”

민지는 답이 없이 날 빤히 보다 책가방을 어깨로 튕기며 말했다.

“경찰?”

“음, 나 경찰인 거 티 나?”

민지가 주변을 힐끔 본다. 모르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학교 친구들. 민지는 약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내게 눈짓한다.

“집에 가면서 이야기해도 되죠?”

“물론이지, 널 집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것도 내 임무이니까.”

“그럼 가요.”

민지는 조금 앞서서 걷는다. 나와 나란히 걷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학생들이 몰려 있는 구역을 나와 아파트 단지의 한적한 도로에 온 민지는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아저씨들 내 말 안 믿는다고 해놓고, 왜 또 왔어요?”

“안 믿어? 누가 그래?”

민지가 입술을 내민다.

“엄마가 내 병 말한 후에 내가 한 목격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폐기한다고 했어요. 몰라요?”

음, 그건 그럴 수 있지. 안면인식장애 목격자 진술을 법정에서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 아이인데 어떤 형사 놈이 이런 소리를 한 걸까? 이건 명백히 담당 형사가 잘못한 일이다.

나는 가만히 민지를 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난 몰랐지만 같은 경찰의 한 사람으로 대신 사과할게.”

“…….”

민지는 예상과 다르게 바로 사과를 해오는 내 태도에 잠시 당황하더니, 팔짱을 끼며 차갑게 말했다.

“됐어요, 경찰들 사과하는 거 안 믿어요. 자기들 필요할 때는 간도 빼줄 기세였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어. 왜 왔어요?”

나는 일단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민지는 가만히 신분증을 본다.

난 자세히 확인하라는 의미로 신분증을 아이의 하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신분증에 있는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민지. 그러다 어느 순간 실소를 흘리며 날 째려본다.

“지금 나 놀려요?”

“음?”

민지가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 아저씨 얼굴과 이 사진이 같은 사람인지 분간 못 해요. 다 알고 온 거면서.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

아, 이 정도 중증이었구나. 괜히 미안해지네. 고의가 아니었는데. 나는 예상보다 까칠한 반응을 보이는 민지의 태도에 머리를 긁었다.

아이는 악한 범죄자도 아니고, 제 발로 목격했다고 신고해 준 고마운 목격자다. 강압적인 태도로 진술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빨리 묻고 가요.”

잠깐 고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제대로 된 진술을 해줄까? 혹시 십 대의 치기로 괜히 수사에 혼란을 주는 거짓 진술을 하지는 않을까?

수사의 모든 발걸음은 소중하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전체가 망가진다. 소중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퍼즐 조각을 찾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것이 수사인데 과연 지금 진술받는 것이 옳은 걸까?

하지만 시간이 없다. 지금도 살인범은 밖에서 또 누굴 죽일지 물색 중일 수도 있다.

“그래,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질문 몇 가지만 하고 금방 사라져 주마.”

“네, 해요.”

삐딱한 얼굴로 팔짱을 낀 민지. 나는 미리 준비했던 질문을 던졌다.

“두 아이를 목격한 게 문구점 앞 맞아?”

“네.”

“네가 봤을 때부터 두 아이가 같이 있었어?”

“네.”

“범인이 아이들을 데려갈 때 주변에 다른 어른은 없었어? 왜 말리지 않았지?”

민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들이 제 발로 아저씨 따라갔어요. 그 아저씨가 애들 억지로 끌고 가는 거 봤으면 당연히 소리치며 어른들 불렀겠죠. 아는 아저씨 따라가는 것 같아서 그냥 집에 간 거예요.”

“애들이 납치당한 건 어떻게 알았어?”

제일 궁금했던 것이다. 민지는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와서 목격자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납치당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다는 건데. 뉴스에는 얼굴이 안 나왔고, 부모가 뿌린 실종 전단지를 보았다고 해도 그때 자신이 목격한 아이와 동일인지 알 수 없는 민지이다. 어떻게 신고를 결심한 걸까?

민지는 자꾸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싫은 기색이다.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날 째려보던 민지가 마지못해 말했다.

“옷이요.”

“옷?”

“얼굴은 못 알아봐도 옷은 기억해요. 뉴스에서 애들 얼굴 모자이크한 거 봤어요. 놀이터에서 놀던 그 애. CCTV 화면이 나왔거든요.”

8세 연정이의 이야기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동네 언니인 우현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함께 걷다 납치된 그 아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마지막 모습이 CCTV에 담겼고, 아직 아이의 죽음을 모르는 시민들에게 해당 모습이 얼굴만 가려 공개된 바 있다.

궁금증 일부가 해소되었다. 옷을 보고 목격자 신고를 한 것이구나.

“당시 무슨 옷을 입고 있었지?”

민지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뉴스 안 봤어요? CCTV에 나왔잖아요.”

“아니, 두 아이 중에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 말고, 다른 아이.”

민지의 얼굴이 굳어진다. 10세 현지가 사망했다는 뉴스는 이미 알려졌기 때문이다. 죽은 아이 이야기를 하기 그런지 잠시 머뭇거리던 민지가 발끝으로 바닥을 차며 말했다.

“밑단 접은 8부 청바지에, 하얀 바탕에 빨간 줄무늬 슬리브 티셔츠. 머리는 정수리 위에서 묶은 사과 머리.”

현장 한쪽에 버려진 현지의 옷가지들과 동일하다. 역시 민지는 진짜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였다.

“또 다른 건 없었고?”

민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케이크요.”

“음?”

민지가 자기 손을 들며 말했다.

“한 손에 하얀색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어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빠 생일을 맞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용돈으로 케이크를 사러 나갔던 아이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잠시 죽은 현지와 연정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민지는 연정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현지 생각에 침울해진 얼굴이다.

관할서 형사들이 목격자의 자격이 없는 민지의 질환을 알고 모질게 대해 경찰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그렇지 이 아이도 본성은 무척 착한 아이 같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의 죽음에 저토록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아이가 나쁜 아이일 리 없다.

잠시 후 고개를 든 내가 물었다.

“혹시 애들이 그 사람 따라갈 때 특이점은 없었어?”

“특이점?”

“응, 가기 싫어하는 눈치나 이런 거 없었나 해서.”

“음.”

민지가 잠시 생각해 본 뒤 말했다.

“아뇨, 오히려 애들이 그 사람 손을 잡고 빨리 가자고 했어요.”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이들 쪽에서 먼저?”

민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 사람 손을 잡고 잡아끌었어요. 빨리 가자고. 그 모습 때문에 당연히 가족이거나 아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고.”

아이들이 먼저 가자고 범인 손을 잡고 끌었다고? 도대체 왜?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는 교육은 받았을 텐데. 혹시 면식범인 걸까?

“목소리 들었어?”

“아뇨, 너무 멀었어요.”

후, 못 들었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사람 얼굴 어땠어?”

얼굴을 봤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민지가 본 사람의 모습은 당연히 범인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들어야 한다.

민지는 말하기 거북한지 잠시 머뭇거린다. 어쩌면 답답했던 관할서 형사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 이런 반응일 수도 있다. 질환이 있으면서 왜 목격자 진술에서 그 사람 얼굴 몽타주를 그리는 작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는지 질책했겠지.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같은 형사라 그런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형사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잘못된 행동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민지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차림새는 평범했어요.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차림이었고, 나이는 저랑 비슷한 정도. 피부가 하얀 편이었어요. 머리는 짧았고, 눈이 가늘고 길었어요. 쌍커플이 없고 코는 높긴 한데 볼이 넓어서 전체적으로 코가 크다고 느껴졌어요. 입술은 코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었고, 색이 조금 옅었어요.”

응?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거리가 멀어서 목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자세히 봤던 이유가 있니?”

민지가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툭 차며 말했다.

“그냥 버릇.”

버릇? 대충 이해가 간다. 얼굴을 식별할 수 없는 아이는 주변을 기억하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통 사람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민지가 안타깝다.

민지가 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몸을 흔들다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도 마주쳤고.”

나는 민지의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고?”

민지가 날 바라본다.

“네?”

나는 민지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갑자기 자신을 붙잡는 날 놀란 얼굴로 보는 민지. 나는 아이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민지는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다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 마주친 거요?”

“…….”

“그건 뭐…… 그냥 다른 사람들과 눈 마주칠 때도 많은데요, 뭐.”

범인이 민지를 보았다.

민지는 범인이 아이들을 납치하는 장면을 보았다.

바로 그때 범인과 민지의 눈이 마주쳤다.

범인은 민지의 질환을 모른다.

고로, 범인 입장에서는 목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민지가 위험하다.

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파트 단지 내부라 사람이 많진 않다.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나는 아직 놀란 얼굴이 되어 있는 민지에게 무겁게 말했다.

“불편하겠지만 당분간 경찰 보호가 필요할 것 같다, 민지야.”

크고 동그란 눈을 깜빡이는 민지가 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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