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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168화 (167/328)

살인의 기억 168화

14. 목격자(4)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우리 민지가 범인과 눈이 마주쳐요? 아악!”

민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상황 설명을 하자, 민지 엄마가 기절할 듯한 얼굴로 비명을 지른다. 집에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에서 눈을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민지는 범인의 얼굴에 대해 진술했지만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말은 내게 처음 했던 모양이다.

“즉시 지시를 내려 24시간 증인 보호프로그램을 가동하겠습니다. 금일부터 외출 시에는 꼭 경호 인력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민지 엄마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시, 시장 갈 때도 같이 가주나요?’

“가급적 안 가시길 추천드립니다만, 꼭 가야 할 상황이시면 동행할 겁니다.”

민지 엄마가 커튼을 열고 밖을 살피며 말했다.

“집 밖에서 경호하는 거죠? 집 안에 들어오는 건 아니죠?”

“네, 빌라 주변과 집 현관문 앞에서 대기할 겁니다.”

“혀, 현관문이요? 옆집에 피해가 갈 텐데.”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경호 인력이 빌라에 사는 모든 분의 얼굴을 체크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현관문 앞도 경호가 필요합니다.”

“후…….”

민지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 줄 알았는지 큰 눈을 깜빡이며 엄마 눈치를 본다. 엄마가 민지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아이 등을 쓰다듬는다.

“형사님, 잘 좀 부탁드려요, 애는 학교에 가야 되니 집에만 있게 할 수도 없고.”

“경호 인력이 동행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특별히 좀 신경 써주세요.”

“네, 저도 자주 와서 보겠습니다.”

엄마는 다시 민지를 바라보며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다. 그러다 문득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식사 안 하셨죠? 저녁 먹을 시간인데, 바깥양반 오면 식사 좀 하고 가세요.”

나는 즉시 일어나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뇨, 아뇨! 이러면 제가 불편해요.”

“어머니, 빨리 경호 인력 배치를 하는 쪽이 더 중요합니다.”

“…….”

담당 형사에게 대접을 잘해야 자기 딸에게 더 신경을 써줄 거란 엄마 마음인가 보다.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서로 돌아가 경호 허가를 받고, 빨리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지 엄마가 슬그머니 물러나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다음에 꼭 식사 대접할게요, 형사님.”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민지에게 명함을 주고 눈을 맞췄다.

“아저씨 목소리 기억했지?”

민지가 날 빤히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전화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혹시 뭐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알았지?”

“네…….”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꼭 동행하는 순경 옆으로 가고. 길을 걷다가 누가 가까이 오기만 해도 그래야 돼. 알았지?”

민지는 내 말에 겁을 먹은 얼굴이 된다.

“제가……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쳐서 그런 거예요?”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이상으로 겁을 줄 필요는 없지만 조심해야 한다. 범인이 행인으로 위장해 부지불식간에 흉기로 아이를 찌르고 달아날 수도 있다. 민지가 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데…….”

“범인은 네가 그런 상태라는 걸 모르잖아.”

“…….”

평범한 삶을 살기 버거운 질환을 가진 것도 서러운데 억울하게 범인의 타겟이 되게 생긴 아이. 민지는 얼마나 속이 타고 억울할까?

나는 민지 머리를 만져주며 위로하고 싶었지만 열아홉이나 먹은 아이를 아이 취급 하면 오히려 나쁜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러났다.

“그럼 또 올게.”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빌라를 나서자마자 본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들은 본부장님은 굳이 청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하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빌라 앞에서 서성거렸다. 한 시간쯤 기다리니 순찰차 두 대가 온다.

여섯 명의 인력이 빌라 주변을 살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근처를 벗어난 나는 다음으로 살해된 두 아이의 부모 집으로 갔다.

첫 번째로 만날 사람은 10세 우현지의 집.

아이 잃은 부모 심정을 어찌 말로 설명하겠는가? 그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반드시 만나야 한다. 마지 못해 초인종을 누르자, 잔뜩 갈라진 여자 목소리가 울린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눈이 퉁퉁 부은 젊은 여성 얼굴이 보인다. 딸이 이제 열 살이니 엄마가 젊은 것이 당연하다.

“현지 어머님이십니까?”

“……네.”

그녀 뒤에서 또 다른 여성이 나온다. 둘이 비슷한 연령대로 보인다. 나는 다른 여성을 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방문자는 내 쪽이지만 경찰 신분을 빌려 질문을 던졌다. 뒤에서 나타난 여성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연정이 엄마예요…….”

아, 두 사람이 같이 있었구나. 내 입장에서는 두 집을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던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기색을 보일 순 없다. 얼마나 마음 기댈 곳이 없었으면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겠냐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언론을 통제했다고 해도 피해자 부모인 연정 엄마에게는 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 수사를 맡게 된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 현도경 과장입니다.”

현지 엄마가 말없이 현관문을 좀 더 열어준다. 안으로 들어가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따뜻한 홍차를 내온 두 엄마가 소파 아래의 바닥에 털썩 앉으며 흐느낀다.

“흐흑…….”

“흑흑…….”

아이 잃은 서러운 엄마의 눈물. 나는 한동안 그녀들이 울 시간을 주며 기다렸다. 20분이 넘게 흐느끼던 두 사람은 눈물을 닦으며 날 바라본다. 이제 이야기를 들을 차례이다.

나는 먼저 현지 엄마에게 질문했다.

“현지가 아빠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가는 길에 일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현지 엄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의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제과점이 집에서 200미터도 안 떨어져 있어서 혼자 보냈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어요, 우리 딸.”

“…….”

“아빠 놀래줄 거라고…… 엄마에게도 자기가 고른 케이크 안 보여줄 거라고…… 그렇게 웃으면서 나갔는데. 흑흑.”

나는 엄마의 서러운 눈물에 다시 말을 잃었다. 다시 울기 시작하는 현지 엄마.

나는 시선을 돌려 연정 엄마를 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연정 엄마는 휴지를 구겨 코 아래에 대고 있다.

“연정이는 그 시각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여덟 살인데. 혼자 놀게 하신 겁니까?”

“아뇨…… 둘이 나갔어요. 원래 시장 볼 때 애 데리고 나가서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 시장 본 뒤에 데려오는데…….”

고작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범죄는 TV에서나 나오는 먼 이야기라 생각한 안전 불감증이 큰일을 낳는 법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엄마에게 그런 질책을 할 순 없다.

“사건 예상 시간은 오후 4시 30분입니다. 아이들 실종신고 최초 접수는 오후 7시 20분. 애들을 찾으러 다니신 건 언제부터입니까?”

연정 엄마가 현지 엄마를 본다. 아마 현지 엄마가 먼저 찾기 시작한 모양이다. 현지 엄마는 울며 말했다.

“현지가 케이크 사러 나간다고 집을 나선 게 4시 15분쯤이었어요. 왕복 15분이면 충분한데 너무 안 와서 집 밖에 나가 본 게 4시 40분이었고. 제과점에 가서 물어보니 애가 한참 전에 케이크를 사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동네를 뛰어다니며 현지 이름을 외치고 다녔어요.”

연정 엄마가 말했다.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현지 엄마가 울면서 애 이름 부르는 걸 듣고 놀라서 물었어요. 그랬더니 현지가 없어졌다고 하길래 저도 함께 찾으려고 했어요. 일단 연정이를 집에 데려간 후에 다시 나오려고 놀이터를 봤는데…… 연정이도 없었어요.”

현지 엄마가 휴지 뭉텅이로 눈을 꾹 누르며 코를 훌쩍인다.

“둘이서 두 시간 넘게 찾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파출소에 가서 실종 신고를 했어요. 순경분들이 뛰어나가서 애들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고, 다음 날은 실종사건 전담 팀이란 사람들이 와서 수사를 했고…… 현지가 발견된 후에는…… 강력계 형사라는 사람들이 와서 조사를 했어요…….”

상황 설명을 모두 들은 나는 묻기 싫은 점을 물어야 했다.

“평소 두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교육을 하셨습니까?”

“네…….”

“네,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나는 민지의 진술을 떠올렸다. 두 아이는 범인과 잠시 대화를 하고 얼른 가자고 손을 끌었다고 했다.

평소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부모의 교육을 받은 아이가 아무 의심 없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속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지의 진술로 미루어 범인은 면식범일 확률이 있다.

“혹시 동네에서 아이들과 안면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됩니까?”

현지 엄마가 표독한 눈빛으로 말했다.

“동네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당장 나가서 남자들 머리채를 잡을 것 같은 얼굴.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수사 절차상 여쭙는 겁니다.”

현지 엄마가 숨을 몰아쉰다. 잔뜩 흥분한 기색이다. 그녀 대신 연정 엄마가 말했다.

“빌라 사는 사람들은 보통 이웃들과 얼굴은 알고 지내죠. 계단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남자가 몇이나 됩니까?”

“안 세어 봐서 모르지만 열은 넘을 거예요.”

“현지와 연정이가 마주치는 사람 중 성인 남자는 동네 사람들뿐입니까?”

두 엄마가 서로를 마주보다 말했다.

“아뇨…….”

“또 있습니까?”

머뭇거리는 두 엄마.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표정이다. 나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이든 아주 작은 단서라도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모든 걸 말씀해 주셔야 됩니다.”

현지 엄마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 교회에 다녀요. 교회에서 만난 성도들 중에 남자들이 꽤 많긴 한데…… 설마 교회 사람이 그럴 리가 없죠.”

교회. 그래,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다 신성한 곳이다. 각자가 믿는 신을 만나는 곳이니까. 하지만 신성한 것은 신이지 그곳을 찾는 인간이 아니다. 어떤 인간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단순히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신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는 사람도 많지만 쉽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대상을 물색할 범죄자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 종교집회 현장이니까.

나는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어느 교회입니까?”

“안양…… 재성 교회요.”

“언제부터 다녔습니까?”

현지 엄마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둘 다 모태신앙이라 갓난아기 때부터 다녔어요.”

현지는 열 살. 적어도 10년 이상 한 교회를 다닌 것이다.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고 마주친 사람의 숫자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제발 그 교회 규모가 작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조사할 대상이 좁혀질 테니까.

나는 몇 가지를 더 물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해드려 송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조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두 엄마가 내 손을 꽉 잡는다.

“형사님. 꼭! 꼭 잡아주세요.”

“제발 부탁해요, 우리 딸 죽인 그놈. 꼭 좀 잡아주세요.”

나는 새끼 잃은 가녀린 두 엄마를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꼭 잡아서 두 아이 영정 앞에 무릎 꿇고 빌게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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