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177화
14. 목격자(13)
사실 강혁 아저씨의 말은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했다.
솔직히 스스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나는 괜찮다.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식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다 큰일 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난 그저 우울할 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내 자리의 전화가 시간 단위로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전화했다면 안 받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사건이 배당되는 사무실 전화를 안 받을 순 없다. 수신자가 누구인지도 표기되지 않는 구형 전화기였기 때문이다.
따르릉, 따르릉.
“네,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병원 다녀왔냐?
“아직 안 갔어요.”
-뒤질래?
따르릉, 따르릉.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병원 다녀왔냐?
“나중에 간다고요.”
-뒤질래?
따르릉, 따르릉.
“하……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 수사과입니다.”
-병원 다녀왔냐?
“아 좀!”
-뭐가 문제야, 이 새끼야! 청장이 손수 병원 예약까지 걸어놨는데 왜 안 가, 이놈의 자식아!
따르릉, 따르릉.
“하…… 예, 또 뭐요?”
-병원 다녀왔냐?
“간다고요, 간다고요! 지금 일어납니다!”
-병원에 전화해서 확인해 볼 거야, 꼼수 쓰다 걸리면 뚝배기 깨질 줄 알아라.
“병원 어디예요?”
-이 자식이 지금 나랑 장난질을 치나. 문자로 보내놨는데 확인도 안 했냐?
“…….”
-진료 끝나면 바로 문자 보내. 내가 직접 의사 선생에게 확인할 테니까.
“하…… 알았어요.”
전화를 끊자, 관우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역시 청장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우리 과장님.”
“…….”
젠장, 이게 사랑이냐? 사랑을 빙자한 스토커 범죄다, 이건.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사건 배당되면 바로 연락 줘.”
연주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진영월 송치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벌써 떨어질 리가 없죠. 그냥 일 보시고 바로 퇴근하시죠.”
늘어져 있는 연주와 관우. 오진규는 구석에서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다. 그동안 많이 피곤했으니 휴식이 필요했을 거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아저씨에게 온 문자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퇴근해.”
나는 주차장으로 가며 아저씨 문자를 확인했다. 예약된 병원은 명륜동에 있는 정신의학과. 다행히 여기서 먼 곳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병원 이름이 낯이 익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평생 정신의학과에 가 본 적이 없으니 분명 어디서 스쳐 가며 본 이름일 것이다.
차를 몰아 병원 주차장에 주차한 후 병원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가자 간호사 두 명이 데스크에 있다 묻는다.
“처음 내원이신 가요?”
“예.”
“혹시 예약하셨고요?”
“예.”
“성함이?”
“현도경입니다.”
“잠시만요.”
간호사가 예약 현황을 확인 후 시간을 본다.
“많이 늦으셨네요.”
“…….”
그렇겠지. 아저씨가 예약한 건 오전 열 시. 지금은 오후 네 시다.
“죄송합니다, 일이 좀 많아서. 오늘 안 될까요?”
좋은 핑계다. 너무 늦어서 다음에 예약 잡겠다고 둘러대고 샛길로 빠지면 되겠다. 하지만 간호사는 내 기대를 가뿐히 무시하며 친절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뇨, 사실 선생님이 오전부터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늦게 오신다고 해도 꼭 진료 보실 거니 안내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
젠장, 더럽게 오지랖도 넓은 선생인가 보네. 아님 강혁 아저씨와 무슨 관계가 있는 의사인가? 나는 하는 수 없이 로비의 소파에 잠시 앉아 기다렸다. 철저한 예약제인지 병원 로비에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오 분가량 기다리자 진료실에서 한 여성이 퉁퉁 부운 눈으로 걸어 나온다. 뭐지? 왜 울면서 나오는 거야? 병 고치러 왔다가 우는 건 자신에게 중대질병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인데. 에이, 정신의학과에서 암 진단이 나왔을 리도 없고.
여성은 눈물을 훔쳤지만 얼굴은 밝다. 뭔가 후련한 얼굴이다. 계산을 하고 있는 여성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도중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현도경 환자님. 진료실로 가시면 됩니다.”
음, 뭔가 겁이 나는데? 설마 나도 저렇게 질질 짜면서 나오게 되는 건 아니겠지? TV에서 보는 것처럼 최면 치료한답시고 눈앞에서 구슬 흔들어대면 당장 박차고 나올 거다.
나는 머뭇거리다 진료실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나무 문을 슬쩍 열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십니다.”
“어서 오세요.”
어? 여자 목소리다. 의사 선생님이 여성인가 보다. 나는 문을 닫으며 의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안경을 쓴 40대 여선생님. 빙긋 웃음 짓는 그녀가 일어나며 말했다.
“역시 형사 일이 업인 분이라 바로 알아보시는 군요. 본 지 꽤 지났는데.”
“아…….”
아씨,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뭐였지? 나는 슬쩍 그녀 책상 위에 있는 명패를 본 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최예림 선생님.”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현도경 경…… 아, 이제 총경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냥 과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호호, 네. 앉으세요.”
최예림 선생. 그녀는 애니메이션 킬러 황지영의 주치의였던 의사다. 황지영이 DID(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증언해 준 의사이기도 하다.
음, 하필 사건 관계자에게 부탁할 건 뭐냐. 하여간 강혁 아저씨 오지랖은 알아줘야 한다.
나는 갈색 가죽이 고급스러운 전동 의자에 반쯤 눕듯이 앉았다. 최예림 선생이 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으며 말했다.
“잘 지냈어요?”
“형사가 잘 지내면 안 되죠.”
“하하, 왜요? 형사가 잘 지내면 이 나라가 평화롭다는 뜻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전혀 평화롭지 않습니다.”
“음, 우리가 모르는 어둠을 항상 주시하고 계시는 분이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황지영은 일어나 미리 끓여둔 따뜻한 물로 차를 우려내 온다.
“캐모마일입니다. 머리를 맑게 해줘요.”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는 날 우두커니 지켜보던 선생이 말했다.
“요즘도 황지영 씨를 치료하고 있어요.”
“…….”
황지영.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성범죄 피해자였던 그녀는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해 현재 교정본부에서 운영 중인 정신의학병원에 수감되어 있다.
“상태 호전은 있습니까?”
최예림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황지영 씨의 경우에는 매개가 되는 애니메이션 관련 물품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환자였으니까요. 물론 상세 호전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닐 거예요.”
그렇겠지. 자신을 괴롭히던 악마가 이미 죽었으니까. 어쩌면 더 이상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다른 인격을 배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호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완치 판정이 나도 그녀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오히려 완치되지 않고 거기 있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판정을 받으면 감옥으로 이송될 테니까.
나는 황지영의 마음 아픈 사연을 떠올리며 말없이 차를 마셨다. 최예림 선생이 그런 나를 보며 물었다.
“이번 사건. 뉴스에서 봤어요.”
“…….”
“아동 납치살인 사건이라고 들었는데.”
“예…….”
“수사할 때 많이 힘드셨죠?”
“뭐…… 괜찮습니다.”
“청장님께 들었어요.”
하, 아저씨도 참 별 이야기를 다 했네. 수사기밀까지 다 까발린 건 아니겠지?
최예림 선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과장님에 대해 물었어요.”
“…….”
응? 나에 대해? 뭘 이야기하신 거야? 최예림 선생이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남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으시다고.”
나는 차를 마시다 너무 놀라 기침을 터뜨렸다.
“콜록! 콜록!”
“아, 여기 휴지.”
차가 코로 들어갔다가 줄줄 흘러내린다. 나는 급히 얼굴을 닦으며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선생이 그런 날 보며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환자 비밀은 절대 지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나는 휴지를 구기며 물었다.
“아저씨가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까지 했다는 말씀입니까?”
나보고는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해놓고 이렇게 쉽게?
최예림 선생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치료를 하려면 환자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요.”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최예림 선생이 반쯤 마신 내 찻잔을 받아 테이블 위에 올린 후 내 전동 의자를 좀 더 뒤로 눕혔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까 그냥 한숨 푹 주무신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가끔 질문을 던지면 간단히 답하시면 되고. 싫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이 오면 그냥 주무세요. 꼭 답을 하기 위해 깨어 계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최면 요법 같은 겁니까?”
“하하, 아니요.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시고.”
음, 최면은 아니구나. 괜히 긴장한 건가? 나는 편히 누워 천장을 보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편안한 목소리로 선생의 말이 들린다.
“몸에 긴장을 푸시고, 천천히 눈을 감으세요.”
나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머리가 복잡하다. 어둠 속에서 어린 현지와 연정이 생각이 떠오른다.
그 작은 아이들이 내 손에 코와 입이 눌려 버둥거리다 생명을 잃었던 경험. 현지 시신을 토막 내고 피 묻은 손을 떨며 바라보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마음 구석에 쌓여 있다 고개를 든다.
여주 사건의 피해자였던 손은정 씨의 기억도 떠오른다. 곧 내가 생매장될 거라는 걸 안 그녀가 느꼈던 무한한 공포심. 애절하게 빌고 빌었던 그녀의 마음과 기억들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범죄자의 기억을 읽는다.
나는 범죄와 관련된 사물의 기억을 읽는다.
그것은 동물의 기억일 때도 있고, 사람의 기억일 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기억을 읽을 때가 가장 명확하지만 그만큼 힘들다.
내가 사람을 죽인 당사자가 되었을 때도.
내가 곧 죽임을 당할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나는 그 모든 기억들을 읽으며 조금씩 마음에 상처를 쌓았던 모양이다.
눈을 감는 일상적인 행위에도 내 마음이 급하게 요동친다.
편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눈을 감고 조용히 머릿속에 밀려오는 많은 기억들을 밀어냅니다. 군대 시절 눈을 치웠던 기억처럼 커다란 불도저로 기억의 편린들을 밀어낸다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도움이 된다. 나는 어이없게도 정말 불도저가 마음의 기억들을 밀어내는 상상을 했다. 한 번, 두 번. 불도저는 내 마음속을 여러 번을 지나간다. 불도저가 밀고 간 자국이 많아질수록 점점 백지화되는 기억들.
“몸에 최대한 힘을 빼고, 소파에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세요. 편안한 물속을 유영하는 상상을 해도 좋아요.”
나는 선생님의 말처럼 휴양지에 놀러 가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상상을 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보느라 눈이 부시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편안하게 물살에 나를 맡긴다.
“편안한 휴식이 되시기를.”
음, 강혁 아저씨가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다. 자주 와도 되겠는데? 그냥 한숨 푹 자고 간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잠시만 자자.
아주 잠시만.
나는 소파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내 눈에 비친 어둠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제길…… 난 좀 쉬고 싶었는데. 또 이러네. 그런데 이번엔 또 뭘 보여주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