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11화
16. Journey to crime(13)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 이놈 말을 듣고 움직이는 것이 인력과 시간 낭비는 아닐까? 나는 놈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자 움찔 놀란 놈이 얼른 말한다.
“진짜입니다! 진짜로 물었어요!”
진짜이겠지. 네가 처한 상황이 있는데 거짓말은 아니겠지. 문제는 저놈이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목격자나 참고인은 자신이 본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중에는 오히려 수사 혼란을 가중시키는 진술들이 있다. 이것을 잘 판단해 움직이는 것이 형사의 자질이다.
전화를 품에 넣으며 돌아온 오진규가 말했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열 번을 속아도 열한 번 가보는 게 형사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나는 임진택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몽타주 제대로 그려내면 그때부터 넌 안 건드린다. 약속하지.”
임진택의 얼굴이 밝아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형사님!”
나는 연주가 녀석과 함께 몽타주를 그릴 동안 노트북으로 CCTV를 확인하고 있는 관우 곁으로 갔다. 관우는 지난 며칠간의 CCTV를 돌려보다 날 보며 윙크한다.
“찾았습니다.”
오진규와 내가 있는 방향으로 화면을 돌려주는 관우가 말했다.
“여기 이놈입니다.”
오진규가 턱을 쓸며 말했다.
“얼굴 식별이 안 되네.”
CCTV 속의 범인.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스크까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지만 CCTV 화면의 사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알아볼 수 없다.
피부가 약간 검은 편이고 턱이 뾰족한 편. 꾹 다문 입술의 양 옆에 골이 파인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
관우가 화면을 돌리자, 피해자의 카메라 가방과 핸드폰, 무선 이어폰을 넘기는 놈의 모습이 나온다.
뒷모습만 보이는 임진택이 돈을 세서 건네자 액수를 확인하지도 않고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획 돌아 내려가 버리는 범인.
관우는 계단 쪽 CCTV까지 확인 후 일어났다.
“건물 밖에 설치된 CCTV들 따서 역추적해 보겠습니다.”
오진규가 관우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부탁한다.”
관우가 먼저 나가고 곧 오진규의 핸드폰이 울린다. 정선규에게서 문자가 온 모양이다. 오진규가 액정을 확인하며 말했다.
“총 셋입니다.”
오진규가 먼저 문자를 확인하고, 내게 넘겨준다. 나는 신상명세를 확인하며 물었다.
“생각보다 적네요. 삼 개월이나 되는데.”
오진규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웃는다.
“거기 범인이 있어야 말이죠. 거기 있는 놈들은 정식으로 한국에 취업비자 발급받아서 들어온 놈들입니다. 만약에 범인 새끼가 불법 밀입국을 했거나, 취업비자 만료 후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된 상태라면 전입 신고를 했을 리가 없죠.”
음, 정보가 훤히 드러나 있는 외국인이라. 나는 세 명의 주소를 본 뒤 다시 지도를 펼쳤다. 셋 모두 범인의 버퍼 존 안에 살고 있다. 셋 모두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 우크라이나 출신 남성도 있었으나 서양인이라고 제외할 순 없다. 특히 구소련 시절에 연방에 속했던 국가에는 고려인들이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무척 비슷하다. 물론 범인이 조선족 말투를 썼다는 프로파일과는 다르지만 우크라이나 출신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가정도 놓치면 안 된다.
오진규가 핸드폰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과장님.”
“정선규 계장에게 형사들 지원 좀 받으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진규가 움직이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연주가 몽타주 작업을 끝내고 스케치북을 내민다.
“과장님, 여기요.”
연주가 그린 몽타주. 솜씨가 무척 좋다. 범인의 얼굴은 아까 CCTV에서 보았던 대로 뾰족한 턱에 꽉 다문 입술이다. 가장 중요한 눈매와 코도 꽤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눈매가 약간 위로 들린 범죄형 눈매. 코는 무척 낮은 편이다.
“동양인 외모 맞네.”
“그래 보여요. 아마도 중국 쪽인 것 같고.”
나는 임진택을 힐끔 보며 몽타주를 흔들었다.
“범인 검거하고 얼마나 비슷한지 한번 보지. 만약 크게 다르게 생긴 놈이면 다시 찾아온다.”
임진택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흔든다.
“틀림없습니다! 몇 번이나 온 놈이라 얼굴 확실히 기억합니다!”
연주가 실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음.”
“오 선배님은 어디 가셨어요?”
“최근 삼 개월 내에 이쪽으로 전입해 온 외국인들 만나러.”
“아하.”
나는 연주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서로 돌아가서 정선규 계장을 만나. 몽타주 주고 형사들에게 뿌려. 이 동네 잘 아는 형사들 중에 혹시 얼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과장님은요?”
“난 동네 좀 더 돌아보고 갈게.”
“네, 아차. 중앙공원 쪽에 형사들 잠복 지시할까요?”
“그래, 중앙공원뿐 아니라 다문화 거리 전체에 잠복형사 배치해.”
“네, 알겠습니다.”
나는 연주와 함께 전당포 밖으로 나와 거리를 살펴보았다.
전당포가 있는 상가 건물 뒤쪽으로 펼쳐진 대단지 빌라. 540m 안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며 동네를 보니 일상적인 거리 풍경이 무척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사는 악마들과 늘 동침하고 있다.
연주를 복귀시킨 후, 나는 혼자 다문화 거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도 어쩌면 범인이 매일 걷는 길일지도 모른다.
동네 지리를 익히기 위해 골목 골목을 누비며 가느라 직선 거리로 걸으면 15분이면 가는 곳에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오늘도 여전히 부산스러운 다문화 거리. 아직 장사하기 이른 시간이라 손님보다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판을 깔고 장사 준비를 하는 아주머니들과 몇 번 눈이 마주쳤다. 그녀들은 그때마다 각 나라의 언어로 호객행위를 한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중국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른다. TV에 자주 나오는 ‘맛있다’는 단어 정도만 귀에 들어온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반응 없이 걷기만 하는 날 한국어로 부른다.
“오빠!”
응? 갑자기 오빠? 내가 돌아보자 50도 더 된 아주머니가 큰 칠면조 다리를 들며 웃는다.
“이거 맛있어, 먹고 가.”
“…….”
“오빠, 여기 싸다.”
아주머니의 한국어에 반응하는 날 본 주변 상인들이 너도 나도 어눌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한다.
“오빠, 오빠. 이거 중국에서 유행하는 과자다! 집에 사 가면 칭찬받아.”
“오빠, 지갑 싸게 줄게, 사줘.”
70은 돼 보이는 할머니까지 날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민망함에 서둘러 길을 걷다 보니 한적한 골목에 스쿠터를 대고 담배를 태우는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보인다.
남자들은 날 힐끔 보곤 다시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삶에 찌든 얼굴들.
언뜻 마약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피골이 상접하고, 피부가 좋지 않은 두 남자다.
나는 그들을 힐끔 보고 길을 걷다가 문득 놈들의 허리 춤에 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멈췄다. 다시 두 남자의 바지를 보니 잭 나이프가 벨트 사이에 꽂혀 있다.
저런 행색의 녀석들이 칼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일반적일 리 없다. 나는 주변을 살핀 후 골목길로 들어갔다.
헬멧을 깔고 담배를 태우고 있던 놈들 중 하나가 날 보며 눈썹을 꿈틀거린다.
“什麼?”
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한 놈이 돌아보며 가라고 손짓한다.
“離開, 混蛋.”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감이 욕 같다. 나는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한국말 할 줄 알아?”
두 녀석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듯했다. 하지만 난 봤다. 내가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자 순간적으로 굳어지는 두 녀석의 눈빛을.
헬멧을 깔고 앉은 녀석이 잠시 당황하다 인상을 쓴다.
“走開,別打擾我.”
놈이 일어나 헬멧을 머리에 쓰고 스쿠터 위에 앉는다. 서서 담배를 태우던 녀석이 그 뒤에 올라타며 말했다.
“我不知道你在說什麼,別告訴我.”
나는 스쿠터 주변을 빙 돌아 녀석들의 뒤로 돌아간 후 순간적으로 놈들의 허리에 꽂힌 칼 두 자루를 뽑았다. 그러자 놀란 놈들이 스쿠터를 넘어뜨리며 내게 달려든다.
“帶上它!”
“你在做什麼!”
나는 두 자루의 칼을 빙글빙글 돌리다 다른 손으로 수갑을 꺼냈다. 그것을 본 두 녀석의 얼굴이 다시 굳어진다.
“2015년에 이런 판례가 있었다. 접이용 칼의 칼날이 6㎝ 이상이고, 뾰족하고 날카로워 종이가 잘 베어지는 등 베기나 찌르기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짧은 칼도 도검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두 녀석의 칼을 빼 날을 확인했다.
“6㎝ 이상이네? 총포, 도검, 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1항, 제2항 및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에 의거, 두 사람을 현장 체포한다.”
나는 수갑을 꺼내 내밀었다.
“손 내밀어.”
두 녀석은 스쿠터까지 넘어뜨리고 달려들 기세로 따져 물었지만 어쩐지 덤벼들진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놈이 내가 경찰이란 것을 알고 있고, 한국어를 알아듣는다는 부분을 확신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수갑을 바라보는 두 녀석을 가만히 보던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이런 걸로 징역 안 간다. 벌금이나 나오겠지.”
“…….”
두 녀석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한다. 나는 수갑 찬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낡은 스쿠터를 보았다.
“그런데 2015년 판례에서 벌금 백만 원이 나왔어. 지금은 물가가 상승됐으니 좀 더 나오겠지. 너희들 백만 원 있냐?”
“…….”
“없으면 징역 가면 돼. 하루에 삼만 원인가 감해주니까 삼 개월 좀 넘게 살다 나오든가.”
두 녀석 중 한 놈이 골목길 밖을 살핀다. 하는 짓이 어찌나 눈에 훤히 보이는지 잡범에도 속하지 못할 놈들 같다. 두 놈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날 덮친다.
나는 칼과 수갑을 옆으로 던지며 웃었다.
“응, 이쪽 대화가 더 빠르겠지?”
오분 후 골목길.
입술이 터진 두 놈이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다. 두 녀석 중 하나가 깔고 앉았던 헬멧을 가져와 위에 걸터앉은 나는 턱을 괴고 놈들을 보다 말했다.
“손 똑바로 안 들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손을 번쩍 드는 놈들. 확실히 한국어를 알아듣는다.
“언제까지 연기할 생각이냐?”
손을 들고 있는 두 놈이 서로를 바라본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깔고 앉았던 헬멧을 들었다.
“그래도 타지 와서 열심히 일하는 녀석들이라 몸은 안 상하게 패줬는데. 이렇게 나오면 할 수 없지. 요즘 헬멧 튼튼하지? 이거 국산인가?”
헬멧 끈을 잡고 천천히 빙글빙글 돌리자, 침을 꿀꺽 삼키는 녀석들. 아주 나쁜 놈들은 아닌지 금방 겁을 집어먹는 모습이 귀엽다.
“한국에 돌팔매질이라는 놀이가 있어. 어릴 때 나도 꽤 해봤는데. 헬멧으로는 처음 해보네. 우리 동네 뒤에 살던 아저씨는 이걸로 멧돼지도 잡았다고 하던데. 사람한테도 되나 볼까?”
나는 점점 빠르게 헬멧을 돌리며 한 걸음을 걸었다. 바로 그때 두 놈 중 하나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자, 잠깐!!!”
다른 한 놈이 무릎으로 기어오며 빌기 시작한다.
“왜 이러는 겁니까? 그 칼은 그냥 가져가세요. 더 때리지 마세요!”
역시 한국말을 잘하는 놈들이었구나.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녀석들의 억양. 나는 두 녀석을 보며 씩 웃었다.
“너희 조선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