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12화
16. Journey to crime(14)
“같은 동포끼리 이러는 거 아임니다.”
“맞습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나는 조선족 억양으로 한국어를 술술 하는 두 녀석을 보며 슬그머니 헬멧을 내렸다.
“내가 뭘?”
억울한 얼굴을 한 녀석들이 자신들의 쥐어 터진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보십시오!”
“왜 때립니까, 경찰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왜 때렸는데?”
두 녀석의 입이 다물어진다. 자신들이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헬멧을 깔고 앉으며 말했다.
“누가 손 내리라고 했지?”
무릎을 꿇고 있던 녀석들이 다시 발딱 손을 올린다. 나는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두 녀석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름.”
침을 꿀꺽 삼킨 녀석들 중 처음에 서서 담배를 태우던 놈이 먼저 말했다.
“도정학입니다.”
헬멧을 들고 있던 놈이 입속에 고인 피 때문에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마지헌입니다.”
나는 고분고분해진 녀석들 앞에 앉아 턱을 괴고 도정학에게 물었다.
“하는 일은?”
“배달합니다.”
나는 마지헌을 눈짓하며 물었다.
“넌?”
“저도 배달합니다.”
“무슨 배달?”
“재료 트럭이 요 안에는 못 들어옵니다. 트럭 오면 물건 받아서 가게로 갖다 줍니다.”
“일반인 가정에 배달은 안 하고?”
“안 합니다, 아니 못 합니다.”
“왜?”
“…….”
“왜 안 하냐고? 거기도 돈 좀 될 텐데.”
마지헌이 입속에 피를 꿀꺽 삼킨 후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음, 배달을 왔는데 조선족 말투를 쓰면 싫어하는 건가? 하긴 영화 속에서 조선족 이미지가 좀 안 좋긴 하지.
“사람들이 배달 오면 싫어했구나? 그럼 말을 하지 말지, 그랬냐?”
마지헌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배달받는 사람들이 아니고 배달하는 한국 사람들 말입니다.”
“음?”
“한국에 그거 있지 않습니까? 핸드폰으로 배달시키는 거.”
“어, 있지.”
“거기 배달을 시키면 각 동네에 있는 라이더 사무실에 연락이 가고, 거기서 다시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일이 배분되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에 우리도 그거 따라 하려고 했는데 한국인 사장들이 절대 자리 안 줍니다. 우리가 여기 상가 것만이라도 배달하려고 했는데 길에서 우리 보면 오토바이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음, 자기 밥그릇 안 빼앗기려고 그런 모양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외국인이니 더 그랬겠구나. 뭐, 이 녀석들의 그런 속사정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다.
“그건 됐고.”
내가 두 녀석을 슬쩍 보자, 손을 더 번쩍 든다.
“이 동네에 흘러들어 오는 놈들 꽤 있지?”
“…….”
“언제, 왜 왔는지 모르는 그런 놈들.”
도정학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밀항하는 애들 말씀하시는 거면 이쪽이 아니고 인천 쪽으로…….”
“그쪽 말고. 어디서 일하다 도망친 놈들이나, 밀입국자 중에 일자리 구하러 오는 놈들 말이다.”
“…….”
두 녀석이 서로를 바라보며 아는 사람 있냐는 신호를 보낸다. 나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낙서를 하며 말했다.
“삼 개월 전에 갑자기 나타나서 일용직이나 식당 일일 아르바이트 하는 놈. 혹은 도박장 들락거리는 놈 중에 마땅히 하는 일 없는 놈. 그런 놈 있어, 없어?”
내 말에 도정학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이놈이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도정학을 노려보며 물었다.
“생각나는 놈 있구나?”
“…….”
마지헌이 도정학을 본다. 녀석도 도정학이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눈치라는 것을 느꼈는지 묻는다.
“누구?”
“…….”
도정학이 가만히 날 바라보다 말했다.
“말하면 우리 보내줄 겁니까?”
“어.”
“벌금도 안 물리는 겁니까?”
“어.”
“진짜입니까?”
“진짜라고 새끼야. 몇 번을 말해.”
“…….”
도정학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게…… 몇 개월 전부터 이 동네 얼쩡거리는 놈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얼쩡거린다는 의미가 뭐야?”
“그냥…… 하는 일 없이 동네 돌아다니는 놈입니다.”
나는 아까 연주의 몽타주를 찍어 둔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놈이야?”
화면을 본 도정학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마지헌이 함께 화면을 보다 놀라며 물었다.
“이놈…… 어저께 그놈 아니야?”
응? 어저께 그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마지헌이 도정학을 힐끔 본 뒤 헛기침을 한다.
“콜록, 아, 아닙니다.”
나는 다시 도정학을 보았다. 녀석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더 맞을까?”
두 녀석은 내 협박에도 입을 꾹 다문다. 그러다 내가 한숨을 쉬며 다시 헬멧을 들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희가 말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진짜 죽습니다!”
응? 무슨 소리야, 이게. 갑자기 너희들이 왜 죽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나는 헬멧을 내리며 물었다.
“자세히 말해.”
마지헌은 도정학에게 눈짓을 보낸다. 네가 말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도정학은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 말했다.
“일단…… 동네 돌아다닌다고 말한 놈은 그 그림처럼 생긴 놈이 맞습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역시 이 동네를 잘 아는 놈들이 정답이었다. 사냥감을 물색하기 위해 몇 시간이나 중앙공원 인근을 배회하는 놈이니 당연히 배달하는 녀석들 눈에 띄었을 것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게…… 어제 그놈이 좀…… 맞았습니다.”
“응? 왜?”
도정학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게…… 1번가 형님들…….”
1번가 형님들?
“조폭?”
“비슷한데…….”
“왜 맞았는데?”
“돈 잃고 난동 부리다가…….”
돈 잃고 난동 부리다가 조폭에게 맞았다? 나는 퍼즐을 맞추다 물었다.
“도박?”
“…….”
다시 입을 다무는 도정학. 나는 녀석의 반응을 보고 범인이 어제 조폭이 운영하는 도박장에서 구타를 당했음을 눈치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박장까지 신고하는 꼴이 되니 입을 다물었던 모양이다.
“어디야?”
“예?”
“어디서 맞았냐고.”
“그게…… 저쪽 골목길에서.”
“도박장은 어디서 해?”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죽을래?”
“지, 진짜 모릅니다! 맨날 장소가 바뀝니다. 그리고 저희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놈들이 거길 어떻게 갑니까? 종일 일해도 기본 판돈도 못 채웁니다.”
나는 다시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놈이 거기 자주 가나?”
“잘 모릅니다.”
“기본 판돈이 얼마야?”
“10만 원입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본 판돈이 10만 원이라고? 얼마나 큰 도박판이길래?”
“아, 아니 그게 아니고. 10만 원을 가지고 있어야 입장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후, 놀래라. 점 10만 원 놓고 마작 판이나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면 대규모 도박장 검거 작전을 해야 할 뻔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면 도박하다 돈을 잃은 놈이 난동 부리다 요 근처 골목길에 끌려 나와 조폭에게 맞는 걸 이 두 녀석이 목격했다는 거구나.
나는 생각을 정리하다 이상함을 느꼈다. 누군가 맞고 있거나 싸움이 나면 구경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보여준 건 사진이 아니라 몽타주이다. 격렬하게 맞고 있던 사람 얼굴을 그림을 보고 알아볼 만큼 자세히 봤다는 건 좀 이상하다.
나는 도정학을 보며 물었다.
“너 이놈 처음 본 거 아니지?”
“…….”
나는 나뭇가지로 도정학의 머리를 툭 때리며 말했다.
“말을 해, 인마. 백만 원 내고 싶어?”
“…….”
도정학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게…… 한 달인가 전에 중앙공원에 스쿠터 세워놓고 담배 태우고 있는데 이놈이 불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려줬는데 조선족 말투라서 고향이 어딘지 물었습니다.”
범인의 프로파일 중 일부이다. 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지린성 퉁화시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생소한 이름에 되물었다.
“퉁화시? 연변 아니고?”
마지헌이 끼어들었다.
“연변에만 조선족 사는 거 아입니다.”
뭐, 별 관심은 없다. 나는 다시 도정학을 보며 물었다.
“이름은 안 물었나?”
“그때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이름을 듣고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럼 밀접한 관계는 아니고 그때 한 번 스치며 본 정도라는 뜻이다.
“그 이후에는?”
도정학이 말했다.
“스쿠터 타고 배달하다 마주치면 손이나 들어 보이는 사이였습니다.”
음, 확실히 얼굴을 구분할 만큼 여러 번 보긴 봤구나. 단지 친분이 없을 뿐.
“얼굴도 아는 사이인데 어제 맞는 거 그냥 지켜만 봤어?”
“…….”
도정학은 말문이 닫혔고 대신 마지헌이 끼어든다.
“형사님, 그 형님들 엄청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괜히 끼었다가 뼈도 못 추립니다.”
음, 한마디로 겁이 났다는 거네. 이해가 된다. 나는 마지헌을 보며 물었다.
“너도 같이 봤어?”
“예.”
“얼마나 맞았어?”
“한 이십 분쯤 맞았습니다.”
“어이구, 안 죽었냐?”
“안 죽었습니다.”
“어떻게 알아?”
“형님들 가고 정학이랑 가서 괜찮냐 물었습니다.”
범인과 이야기를 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자세히 말해봐.”
마지헌이 도정학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범인에게 가서 말을 건 사람은 도정학인 모양이다. 하긴, 안면이 있는 쪽은 도정학이니 그럴 수 있겠다.
나는 도정학을 보며 물었다.
“뭐라고 했어?”
도정학이 잠시 머뭇거린다.
“그냥……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피 닦으면서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지 발로 갔어?”
“예…….”
“끝이야?”
“…….”
마지헌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냥 말해라, 인마. 그 새끼 이상하다고 했잖아, 내가.”
나는 마지헌을 힐끔 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지?”
마지헌은 참다못해 나섰다.
“욕을 했습니다.”
“…….”
뭐냐, 그게. 그렇게 맞았는데 당연히 욕이 나오지. 그게 뭐 이상해?
“그게 뭐?”
“욕을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뭐?”
“죽여 버린다고.”
“하, 그게 뭐 인마. 다들 하고 사는 소리인데.”
“아닙니다! 정학이가 그냥 그 형님들 무서운 사람들이니 참으라고 했더니 그 새끼가 피 뱉으면서 지가 사람 죽여봤다고 했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마지헌이 주변을 둘러보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견하고 말했다.
“저런 거. 저런 거 있으면 다 죽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실 미친놈처럼 웃으며 가길래 소름 끼쳐서 더 안 따라갔고.”
돌멩이. 범인의 프로파일과 일치한다. 나는 입을 꾹 다문 도정학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날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자식. 진짜 사람 죽인 겁니까?”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였다. 그것도 둘이나. 그리고 열이나 되는 사람을 중태에 빠뜨린 극악한 놈이다.”
마지헌이 놀라며 도정학을 보며 소리쳤다.
“거봐! 내가 그 새끼 미친놈이라고 했지!”
도정학도 설마 진짜 놈이 살인자인지 몰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일어났다.
“놈에 대해 아는 거 모조리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