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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78화 (278/328)

살인의 기억 278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2)

산길 주변에 있는 잘린 통나무.

두 사람이 나란히 앉기에 부족함 없는 커다란 통나무 둥치에 나와 아저씨가 앉아 있다.

아저씨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혼자 확인했던 많은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자, 듣는 내내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신다.

나는 마지막으로 DNA 확인 절차까지 마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입을 닫았다.

아저씨는 그런 내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계신다.

그렇게 볼 필요 없어요, 아저씨. 나 아무렇지 않으니까. 엄마 얼굴도 모르고 컸는데 지금에 와서 엄마 죽음을 알았다며 우는 것도 억지스럽지 않을까요? 나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속으로 자기 위안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그때 따뜻한 아저씨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진다.

슬쩍 아저씨를 보니 언제나처럼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새끼,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정이 가더라.”

아저씨 말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하나도 슬프지 않았던 내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엄마 때문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유 없이 날 아껴주신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 그것이 나를 울컥하게 하고 있다. 괜히 창피한 생각이 든 나는 먼 산을 보며 툴툴거렸다.

“정이 가기는. 내 능력 때문에 경찰로 써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꼬신 거면서.”

“그렇게 보였냐?”

나는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괜히 민망해서 말한 건데 아저씨 눈빛은 꽤 진지하다.

나는 가만히 아저씨의 눈빛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뇨.”

당연히 아니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공부는 잘했으니 대학은 갔겠지.

하지만 최상위권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여건이 안 된다면 눈높이를 낮추었을 것이고, 결국 서울 내의 어느 대학을 나와 회사에 다녔을 것이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만 최선을 다하며 살았겠지.

아저씨는 그런 날 가만히 바라보다 어깨를 잡았다.

“유감이다.”

“…….”

“엄마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아뇨.”

“…….”

“별로 안 보고 싶었어요.”

“그래?”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보고 싶죠.”

“…….”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무슨 수로 그리워해요.”

“음.”

아저씨는 그래도 엄마라는 걸 알았는데 슬프지 않냐 묻는 것이겠지만 진짜 슬프지 않다.

내가 이상한 걸까? 경찰로 살며 잔인하고 인간 같지 않은 짐승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도 감정이 메말라 그런 걸까?

하지만 나는 정말 슬프지 않다. 그저 누군가 죽어 시신으로 발견되었구나.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좀 찜찜하다 정도랄까.

“제가…… 이상한 건가요?”

“…….”

“슬프지 않은 게 이상한 거예요?”

“아니.”

나는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 좀 해줘요. 나도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애도를 하죠. 그래도 자식인데 엄마 죽음을 알았으면 응당 애도도 하고, 추모도 하고 그래야죠.”

“…….”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저씨는 가만히 먼 하늘을 바라본다.

“경대 막 나와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같이 맹렬하게 꼬리 치던 똥개를 정신 차리게 해준 엄하고 태산 같은 선배였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똥개가 아저씨?”

아저씨가 날 보며 빙긋 웃는다.

“그래. 내가 그 똥개였다.”

“아저씨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미친놈이 내가 뭐 태어날 때부터 경찰이었냐?”

“그런 줄 알았죠.”

“그랬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지금쯤 청장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은 하고 있었을 텐데.”

“경찰 출신 법무장관도 있어요? 보통 대법원장이나 검찰 쪽에서 나오지 않나?”

“인마, 그래도 여기서 25년은 더 경찰 생활 했으니 더 올라갔겠지.”

“어이구, 청장도 부족해서 더 올라가고 싶으세요?”

“당연하지! 아주 벽에 똥칠할 때까지 국민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

“하하.”

나는 잠시 아저씨와 함께 웃다 물었다.

“처음 임관하신 게 몇 년도였어요?”

“84년.”

“순환보직 돌다 만난 건가요?”

“그때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냥 졸업하면 바로 현장 투입이지.”

“그럼 진짜 임관 직후에 만난 거네요?”

“그래, 그때 선배는 경장이었고. 내가 두 계급 높았지. 하지만 선배는 순경부터 시작해서 벌써 7년이나 경찰 일을 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냥 경찰서 소속 형사였지. 1986년에 형사기동대가 창설되면서 선배와 나는 함께 거기로 갔다.”

“80년대에 여자가 형사기동대에 소속될 수 있어요?”

“음, 대한민국에 여경이 등장한 것은 광복 직후인 1946년. 미 군정청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생기면서 함께 채용됐다. 첫해 여경 80여 명을 선발한 이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은 주로 수사부서보다는 내근에 배치됐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능력 있는 사람은 빛이 나게 마련이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모르는 내 엄마의 이야기. 나는 장진수에 대한 것을 잠시 잊고 엄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강혁 아저씨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 경찰서에 떡 출근을 했더니 웬 여경이 가죽점퍼를 입고 다리를 꼬고 있는 거야. 내가 들어가니 경례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황당했지. 여경이면 분명히 나보다 아래인데 말이야. 선배들 말이 경대 출신 초임 경위는 무시받기 좋으니 처음부터 휘어잡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서 강하게 나갔다.”

태산 같은 아저씨의 햇병아리 시절 이야기.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떻게요?”

“다른 놈들은 내가 곧 진급할 걸 아니까 설설 기는데, 하 선배는 아니었어. 오히려 날 걱정스럽게 봤지. 나는 그런 눈빛이 싫었다. 내가 잘나서 경대 나왔다고 생각했거든.”

“어휴, 한숨 나오는 사람이었네요.”

“그랬다. 그때의 나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내 수사 지시에 반대하는 선배를 무시했다. 솔직히 그 당시에 남자 형사들도 불만이 많았어.”

“왜요?”

“여경들은 조금만 잘해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스타가 되던 시절이었다. 남자 형사들이 범인 잡는 건 당연한 거고, 여자가 그런 험한 일을 한다는 걸 대단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으니까. 실제로 별거 아닌 일로 여경의 활약이 뉴스에 자꾸 나오니까 위에서도 수사 종결 보고서에 활약상도 없던 여경을 억지로 끼워 넣어 뉴스거리로 만들곤 했거든.”

“음, 다른 형사들이 싫어할 만하네요.”

“하지만 선배는 달랐어. 당시 뉴스에서 형사기동대에 여경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다 거절했지.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고 뒤에서 험한 일만 골라서 하던 사람이었다.”

“인정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계기? 하하.”

아저씨가 슬픈 미소를 입에 건다.

“선배가 내 목숨을 구해준 게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할 때쯤? 그렇게 말해야 될 거다.”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미친 망아지같이 날뛰는 날 구해준 게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난다. 선배가 아니었으면 난 초임 경찰 때 죽었을 거다. 범인 새끼들이 휘두르는 칼 맞고 야산에서 뒤졌겠지.”

“좋은…… 경찰이셨나요?”

아저씨가 날 바라본다.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던 아저씨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다.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

그렇구나. 내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잠시 우리 둘 간에 침묵이 흐른다.

아저씨는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배에 대한 애도를 위한 침묵을. 나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알아가고 있는 이 순간이 생경한 느낌에.

“1988년에 퇴직하셨던데. 형사기동대까지 간 사람이 왜 그렇게 빨리 퇴직했어요? 자료를 보니 경사 진급 직후에 퇴직하셨던데.”

강혁 아저씨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저씨는 말없이 날 바라만 보고 계신다. 왜 이러는 걸까? 나는 가만히 아저씨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저…… 때문인가요?”

“…….”

배 속에 나라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험한 일을 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그녀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안 이후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아저씨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결과적으로 널 키우기 위한 건 맞지만, 퇴직 당시에 널 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퇴사했다는 뜻인가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혹시 아시나요?”

“그래, 안다.”

“…….”

선뜻 이야기해 달라는 말이 안 나온다.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아는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와 아버지에 대해 안다고 해도 어쩔 것인가? 나이 삼십 대 중반이 넘어 이제 와 그에게 찾아가 내가 당신 아들이라고 할 것인가?

내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자, 아저씨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 엄마와 같은 날 실종됐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실종……이요?”

아저씨는 심각한 눈빛으로 한숨을 쉰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선배님은 실종 상태였다가 2023년 11월 10일에 백골 사체로 발견됐다. 실종된 해는 1989년. 도경이 네가 태어난 해다.”

“……그럼 1994년에 사망 처리되었겠군요.”

“맞아.”

“아버지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래.”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버지도 경찰?”

“아니, 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주류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라고 들었어. 나도 딱 한 번 얼굴 봤다. 회식 때 선배를 데리러 왔었지.”

“이름은…… 아세요?”

딱 한 번 얼굴을 본 사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사실 일부러 안 본 것이지 찾아보려면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경찰이니까.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안다.”

나는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아저씨가 하늘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죽었다. 내가 가만히 있었을 것 같으냐?”

“…….”

그래, 아저씨 성격에. 몇 년이나 그 사건에 대해 파고들었겠지. 시신이 나오지 않아 살인사건 성립이 안 되니 정식 수사는 못 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수사를 했을 것이다. 그때 엄마와 아버지가 동시에 실종되었다는 걸 알아냈겠지.

“이름이 뭔데요?”

“현지성.”

현지성. 내 아버지 이름은 현지성이었구나. 그나마 엄마가 날 성당 앞에 놓을 때 이름이라도 써놔서 아버지 성이라도 제대로 물려받은 모양이다.

“부부가 동시에 실종되었는데 경찰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개최가 연달아 진행되던 격동의 시대였고. 밝히는 것보다 묻어버리는 진실이 더 많은 시대였지. 하루에도 밀항선 타는 사람이 백 명도 넘던 시절에 사람 한둘 사라지는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군사정권에 찍힌 사람들, 더 잘 살아보려 외국으로 가고 싶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던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상부 허가도 받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수사해야만 했지.”

“그렇구나.”

아저씨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쉰다.

“후, 선배는 결혼을 하고 경찰 선후배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선배 실종도 한참 후에 알았지. 나는 당시 선배가 널 가졌는지도 몰랐다. 출생신고라도 했더라면 수사 중에 네 존재를 알았을 텐데. 그럼 찾아보기라도 했을 텐데.”

“출생신고도 안 되어 있었어요?”

“그래.”

“나 진짜 갓난아기였구나.”

“응?”

“아, 하하. 아뇨. 기억 읽은 게 좀 있어서.”

아저씨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기억? 네 스스로의 기억을 읽었다는 뜻이냐?”

“아시잖아요? 그때 최 선생에게 들으셨다면서.”

아저씨도 그 이야기를 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엄마 아들이란 걸 몰랐던 때이다. 아저씨는 내 꿈 이야기를 떠올리며 표정이 심각해진다.

“만약 그게 진짜 선배의 기억이라면…….”

나는 하늘을 바라보다 엄마가 발견된 자리를 내려 보았다.

“엄마와 아빠는 그때 뒤를 쫓던 놈에게 살해되었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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