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79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3)
“제 부모님 사건 수사…… 혼자 계속해 오신 거죠?”
“음.”
“어디까지?”
나무 둥치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무릎을 붙잡으며 일어난다.
“끙. 하, 나이를 처먹으니 일어날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게 되네. 이거 왜 이런 건지 아냐?”
“모르죠, 난 안 늙어봤는데.”
“망할 놈.”
“하하.”
아저씨는 앉아 있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 시간 되냐?”
“왜요?”
“잠깐 같이 갈 곳이 있어서.”
“멀어요?”
“차로 한 20분.”
“괜찮아요.”
“근데 너 여기 왜 왔냐?”
나는 절이 있는 방향을 보며 말했다.
“장진수 놈의 아지트가 가까운 곳에서 발견됐어요.”
강혁 아저씨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장진수? 어떻게 찾았어?
“오 선배가 찾아냈죠.”
간단히 선배가 아지트를 찾은 방법에 대해 설명하자 아저씨가 빙긋 웃는다.
“캬, 가끔은 아날로그가 먹히는 법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오진규 그놈을 데려온 건 신의 한 수였다 이 말이지.”
나는 가자미눈을 뜨고 받아쳤다.
“제가 데려온 거거든요? 아저씨 처음에 반대했으면서.”
“내가 언제 이놈아.”
“그랬잖아요?”
“기억 조작이냐? 반대는 영훈이가 했지, 인마. 난 그래도 괜찮나 고민하다 허락해 줬다.”
음. 그런가?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하긴 내가 아무나 데리고 오고 싶다고 데리고 올 수 있는 조직이 아니지. 어쨌건 최종 결정은 아저씨가 했으니 옳은 말이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사건과 관계된 장소인가 보죠?”
“그냥 따라와, 인마.”
아저씨가 다시 한번 바닥을 바라본다. 이제는 구덩이도 없는 낙엽 쌓인 산길. 아저씨는 물끄러미 그곳을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나도 해야 할까? 가만히 아저씨가 보던 곳을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라는 말은 아직 안 나오네요. 당신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슬퍼하고 싶지만 아직 난 그럴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 어머니이고, 나는 당신의 아들이란 건 천륜이겠죠. 잡아오겠습니다, 당신 죽인 사람. 살아생전 효도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그것밖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성당 앞에 어린 나를 버린 엄마. 이제 와 엄마에 대한 애정이 생기진 않았지만 적어도 날 그냥 버린 게 아니란 것을 알고 나니 마음속 응어리 중 원망이라는 커다란 돌덩이가 깨어지는 기분이다.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 난 그거면 됐다.
아저씨는 절 앞 주차장에 내려온 뒤 장진수 아지트를 한번 확인했다. 갑자기 현장에 나타난 청장 덕에 조사 중이던 모든 형사들이 얼어붙었다.
아저씨는 잠시 놈의 아지트를 힐끔 본 뒤 얼른 나와 구시렁거린다.
“젠장, 내가 범인이냐? 새끼들이 전부 나만 보고 있네. 야, 빨리 가자. 괜히 왔네. 방해만 되고.”
웃음이 나온다. 고위 경찰들은 이런 현장에 일부러 나와 잔소리를 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며 사기를 북돋아주곤 하는데 아저씨는 오히려 괜히 자신이 방해가 될까 빨리 자리를 피해준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경찰의 정점이라 정말 다행이다.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산길을 내려와 시내로 들어온 뒤 약 10분쯤 가니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적어도 30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아파트 상가 앞에 차를 주차한 아저씨가 내리며 말했다.
“따라와.”
차에서 내려 상가 건물을 올려 보았다. 아직도 저 건물이 멀쩡히 서 있는 게 신기할 만큼 낡아 빠진 상가 건물이다.
“여긴 뭡니까?”
아저씨가 날 힐끔 본 뒤 답을 하지 않고 건물로 들어간다. 1층에는 세탁소와 수퍼, 철물점이 있고 2층에는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이 있었지만 3층부터는 폐허나 마찬가지인 상가.
총 4층 건물의 상가 꼭대기 층에 올라가자, 쇠창살 문이 계단 앞부터 우리를 가로막는다. 어울리지 않게 디지털 잠금장치가 달린 문 앞에 선 아저씨가 말했다.
“기억해, #890310*이 비밀번호다.”
아저씨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걸 바라보던 나는 빙긋 웃었다.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잊을 수가 없지. 그런데 여긴 도대체 뭐지?
아저씨는 계단 중간에 설치된 철문을 연 뒤 올라가 새로운 문 앞에 선다. 이번엔 평범한 사무실 현관문이다. 역시 디지털 잠금장치가 있다.
“여기 비밀번호는 거꾸로. #013098*이다.”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찰이 이중 보안 장치 비밀번호를 그렇게 쉽게 만들어도 돼요?”
“이제 바꿔야지, 네가 주민등록상 내 밑으로 들어오면 가족이 되니까.”
“…….”
아,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아저씨에게 내가 가족이 아니니까 생년월일을 쓰는 것이 보안상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문제가 될 거란 뜻이구나.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기 뭐 하는 곳인데요?”
“보면 알아.”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아저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부 전경을 보고 그대로 몸을 굳혔다.
“이게…….”
사방의 벽면에 붙어 있는 지도들. 그리고 그 위에 붙어 있는 작은 포스트들. 깨알 같은 글자가 적인 포스트는 적게 잡아도 이백여 개가 넘는다.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책상 위에는 백과사전만 한 두께의 서류들이 쌓여 있고, 책장에는 겉면이 가죽으로 된 오래된 수첩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이게 다 뭐예요?”
아저씨는 오래되어 구멍이 숭숭 뚫린 가죽 소파에 웃옷을 벗어 던져두며 말했다.
“수사 자료.”
설마. 이게 다 내 부모님의 사건을 쫓기 위해 쌓아둔 자료라고? 자기 가족도 아닌 사람의 사건 수사에 이렇게 집요할 수 있다고?
강혁 아저씨가 책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대한민국에 아직 남은 미제 사건. 뭔지 알아?”
나는 처음 와 아직 생소한 사무실 가운데 서서 머뭇거리며 말했다.
“두 건 남았다가 얼마 전에 경기남부연쇄살인 사건이 해결되며 이제 단 한 건 남았죠.”
“뭔지 말해봐.”
나는 웃옷을 벗어 대충 빈 곳에 던져두며 말했다.
“1991년 3월 26일 대구에서 실종된 다섯 어린이. 일명 개구리 소년 사건입니다.”
“자세히.”
나는 책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언론에는 개구리를 잡으러 간 소년들이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찾으러 산에 간 것이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아이들을 찾는 캠페인이 일어났습니다. 세제나 공중전화 카드에 아이들 얼굴을 찍어 전국에 배포했지만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11년 뒤인 2002년에 도토리를 주우러 와룡산에 갔던 동네 주민이 유골을 발견해 실종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바뀌었죠.”
아저씨가 오래된 수첩을 열어보며 말했다.
“그래, 젠장. 그 사건에 5년간 35만 명의 경찰 인력 투입됐다. 그런데도 찾지 못했지. 사체 감식 결과 흉기로 찍힌 자국이 무려 25군데나 난 아이도 있을 만큼 끔찍하게 살해당했는데 말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를 용의자로 지목하기도 했죠. 피해자의 집을 부수고 파보기도 했죠, 아마?”
강혁 아저씨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젓는다.
“하, 새끼 잃은 부모들에게 못 할 짓이었지.”
아저씨는 잠시 고인이 된 아이들 생각을 하다 말했다.
“왜 못 잡았다고 생각하냐?”
나는 아저씨의 짧은 질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경찰대 재학 시절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체가 발견된 것이 아이들의 집에서 불과 도보 10분 거리였다는 점을 들어 당시 주변 수색을 했던 경찰들의 초동 수사가 허술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다.
“글쎄요.”
아저씨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당시 경찰의 부실 수사라고 생각하진 않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것도 있었겠지만 언제나 사건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니까.”
“쯧, 인마. 내가 당시에도 경찰이었다고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저씨가 담당이었어요?”
“아니? 난 서울 경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지.”
“근데 뭘 조심스러워요? 어차피 같은 경찰들도 서로 까고 그러는데.”
나는 잠시 고민해 본 뒤 말했다.
“일단 그 사건은 매우 잔인했어요. 아이들 두개골이 파열되어 있었으니 둔기에 의한 살인이며, 싸이코패스가 일으킨 살인이란 프로파일이 가장 많죠.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뭐지?”
“동일한 수법의 연쇄살인이 없다는 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싸이코패스라는 놈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이 마구 갖다 붙였지만 연쇄살인이라는 키워드가 없으면 싸이코패스라는 단어를 붙이기 힘들어. 하지만 개구리 소년 이후에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
참혹하고 입에 담기 싫은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처음부터 범인을 잡지 못했다면 다음 사건이 일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연속된 사건 안에서 분명히 실수가 일어나고 그 실수를 토대로 범인을 잡는다. 그것이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찰들이 연쇄살인범을 검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개구리 소년 사건은 단 1회성 범행으로 사건이 끝나 버렸다. 그렇기에 검거가 어려웠던 것이다.
강혁 아저씨가 옆에 쌓아둔 자료를 뒤적이며 말했다.
“넌 왜 범인이 비슷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30년 넘게 조용하다고 생각하냐?”
“…….”
“그냥 편하게 말해. 어디 학교에 강의 나온 것도 아니고 둘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이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는 범인이 아이들을 죽인 방식이 놈 특유의 수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저씨는 멈칫하며 날 바라본다.
“자세히 말해봐.”
나는 팔짱을 끼고 사무실을 크게 돌며 말했다.
“만약 범인이 원래부터 살인범이라면. 아이들을 죽인 방식을 자신이 남기는 고유의 표식과 다르게 가져갔다는 뜻입니다.”
아저씨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왜?”
“우발적 살인일 확률이 높으니까.”
“호? 비슷한 사건이 없었던 이유가 우발적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거나.”
아저씨가 서류 더미 중 한 뭉치를 꺼내 내게 툭 던진다.
“내 생각도 같다. 어쩌면 범인 놈은 원래 살인범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가 봐서는 안 될 어떤 비밀을 숨겨야 하기에 그것을 목격한 아이들을 죽였을 수 있다. 고작 열네 살 먹은 아이가 백골이 되어도 남아 있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무려 전신에 스물다섯 군데나.”
나는 아저씨가 내민 서류를 붙잡으며 말했다.
“예, 전형적인 과잉 폭행이죠. 두개골 함몰만으로 충분히 살해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필요치 않은 상처를 너무 많이 입혔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원한 살인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그 어린 다섯 아이에게 그토록 강한 원한을 가진 놈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범인은.”
나는 서류 뭉치를 주워 들며 말했다.
“아이들을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러므로 확실히 죽이기 위해 과다 공격을 한 것.”
아저씨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가 손에 든 서류 뭉치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래, 내 생각도 같다. 방금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파일을 봐.”
나는 제목 없는 서류 뭉치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게 뭔데요?”
아저씨는 순간 슬픈 눈매를 그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네 엄마 사체 검시 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