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80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4)
나는 살짝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라고 정이 들 틈도 없었으니 난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동요가 일었던 모양이다.
물끄러미 서류 뭉치를 바라보던 나는 꽤 오랜 시간 겉면만 바라보다 천천히 앞장을 넘겼다.
아저씨는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며 날 힐끔거리다 내가 서류를 넘겨보기 시작하자 말했다.
“알다시피 발견 일자는 2023년 11월 10일이다. 신고 시각은 오후 4시 10분.”
“등산객이 발견한 겁니까?”
“아니, 동네 주민. 아, 주민이라고 하는 게 맞나?”
“무슨 말이에요?”
“음…… 사실 사체를 발견한 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가 발견한 사체를 주인이 신고한 거고.”
개. 엄마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가운 산속에 매장되어 있다 개에게 발견되었다. 만약 내게 어릴 적 엄마와의 추억이 남아 있었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쳐 버렸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서류를 넘겨보다 멈칫했다. 엄마의 백골 사체 사진이 보인다. 이미 누렇게 변색되어 발견된 백골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볼 순 없지만 KCSI가 표기해 둔 골절 부위의 하얀 테이프 숫자가 서류를 넘기던 날 멈추게 한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아저씨를 보았다.
“오른쪽 쇄골 골절, 갈비뼈 골절, 대퇴부 골절에 전신 미세 골절이 열아홉 군데?”
아저씨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잉폭행이다. 문제는 이게 결정적인 사인은 아니란 거야.”
나는 다시 서류를 넘겼다. 함께 발견된 물건들의 기록과 사진이 보인다.
“발견 당시 빨간 천으로 손목이 묶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
손목이 묶여 있던 사람이 사망한다고 줄이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백골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부와 근육, 세포들이 사라지며 헐거워진 줄이 벗겨져 발견되는 경우는 꽤 많다. 이런 경우 시신과 함께 발견된 끈의 매듭과 백골의 자세를 보고 묶여 있었는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강혁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KCSI 감식 결과 손목이 묶인 것은 나 선배가 사망한 후라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인상을 쓰며 아저씨를 보았다.
“이미 죽은 사람 손을 왜 묶어요? 묶어놓고 때린 것도 아니고.”
“사인을 매장에 의한 질식사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었지만, 백골 시신이라 기도에서 흙이 검출된 것이 반드시 호흡에 의해 검출된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아. KCSI가 시간을 두고 조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사인 불명이다.”
이런 사건의 사례는 놀랄 만큼 많다. 범인은 피해자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매장까지 하고 산을 내려갔는데 피해자가 스스로 매장지를 빠져나와 살아남거나, 지나는 행인이 우연히 구해준 전례도 있다.
나는 서류를 든 채 중얼거렸다.
“뭔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봤기에…….”
강혁 아저씨가 내 쪽으로 오며 말했다.
“네가 읽은 기억이 진짜라면 개구리 소년 사건과는 좀 다를 수 있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갔다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케이스이고. 네 엄마는 시내에서부터 쫓겼으니 이 산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목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음.”
“다음 장을 봐라.”
아저씨 말에 서류를 넘기자, 사체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하얀 종이 위에 올려둔 사진이 보인다.
“붉은 끈이 총 세 개.”
“그래, 손과 발을 모두 묶었던 거다.
보통 손과 발을 묶은 끈은 두 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인 중에 꽤 많은 수가 손목과 발목을 뒤로 묶은 후 다른 끈으로 서로를 연결해 둔다. 만에 하나라도 죽지 않은 사람이 혼자 매장지를 빠져나올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끈은 총 세 개다.
“추측된 흉기 목록이다.”
아저씨 말에 맨 아래를 본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무로 만든 둔기?”
아저씨가 서류를 짚으며 말했다.
“끝이 사각형인 나무 둔기. 이런 거 본 적 있냐?”
“아뇨. 철제나 고무 망치까지는 본 적이 있는데.”
“이러면 보통 각목이라고 생각하지.”
“음, 그럴 수 있겠네요.”
“매장지에서 흉기로 추정되는 나뭇조각이 나왔다.”
“발견된 곳이 산인데. 나뭇조각 나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학명 Cornus kousa F. Buerger ex Hance. 한국에서는 산딸나무라고 불리는 나뭇조각이었다. 게다가 겉면에 니스까지 칠해져 있는 가공 나무였고.”
“산딸나무?”
“그래, 대한민국에서는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신이 발견된 산에는 이 나무가 자생하지 않아. 그래서 산딸나무로 만든 나무 둔기를 흉기로 봤다.”
“음.”
“손, 발목을 결박하고 살해한 사건은 몇 있었다. 하지만 나무 둔기. 그것도 산딸나무 둔기로 사람을 찍어 죽인 사건 들어본 적 있어?”
“아뇨.”
강혁 아저씨가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2023년에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기에 아직 미제로 등록되지는 않은 사건이다. 하지만 결국 미제가 되겠지.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제 사건은 개구리 소년 사건을 포함해 두 건이 되는 거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콜드 케이스.
그중 하나가 내 부모님의 사건이 되는 거다. 나는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리 정이 없어도 내 부모님을 그렇게 만들 순 없다.
“아버지 쪽은 수사하셨습니까?”
강혁 아저씨가 복잡한 눈빛으로 서재에 잔뜩 꽂힌 수첩들을 바라본다.
“그래, 시신이 나오지 않으니 행적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 네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다닌 사람들. 동네 이웃들의 증언. 내가 인터뷰한 사람만 오백 명은 넘을 거다.”
그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혼자 확보했다는 말인가? 아저씨의 집념은 엄청났구나.
“당시 주류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고 했죠?”
“그래, 중소기업이라 재정이 탄탄하지 못했어. 결국 2001년에 폐업했다. 당시 네 아버지 직급은 대리였고. 실수령 월급은 11만 5천 350원이었다.”
월급 실수령액이 11만 원 남짓. 공제금액을 빼고 생각하면 월급으로 책정된 금액은 20만 원 중반일 것이다.
“적네요.”
“적기는 인마. 그때 한국은행 16호봉 직원 월급 실수령액이 14만 원 남짓이었는데. 중소기업에서 그 정도 벌이면 많은 거지. 능력 없는 가장은 아니었어.”
그렇구나. 내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모든 것이 생소하다. 남들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라는 존재가 가진 이야기들. 나는 그것이 무척 생경하다.
아저씨가 말을 잇는다.
“결혼 당시 전세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직장만 확실하면 대출이 쉬웠거든.”
“어디였습니까?”
“네 아버지 현지성 씨의 직장 근처인 강북구 광산 사거리 근처 주택이다.”
“지금도 있습니까?”
“있다.”
“…….”
가보고 싶은 마음과 간다고 내가 뭘 알아볼 수 있겠냐 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어차피 기억에도 없는 집인데 간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두 분에게 가족은 없었습니까?”
강혁 아저씨가 책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에게 동생이 있었다. 88년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며 스페인으로 이민을 갔는데, 89년도에 네 아버지가 실종되자 한국에 들어와 백방으로 형을 찾았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찾지 못했지. 사실 이 사무실도 그 사람과 내가 만든 곳이다. 네 조부모님들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동생. 내게 삼촌이 되는 존재이다. 나는 천애 고아인 줄 알았는데 내게도 가족이 있었다.
“그분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저씨가 고개를 떨구신다. 나는 아저씨 반응을 보고 그분이 어찌 되셨는지 짐작했다.
“젠장…… 그때 네가 하 선배 아들인 걸 알았다면. 적어도 얼굴은 보게 해줄 수 있었는데.”
“돌아가신 겁니까?”
“그래, 네가 날 처음 만난 게 여덟 살 때였나?”
“그쯤이었습니다.”
“그땐 살아 있었다. 2000년에 간암으로 별세하실 때까지 형을 찾아다녔던 분이니까.”
아저씨가 책장을 열고 수첩 한 권을 꺼내 내민다.
“이 안에 사진이 있다. 네 아버지와 삼촌, 어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이지.”
“…….”
또다시 마음속이 충돌한다. 보고 싶은 마음과 열고 싶지 않은 마음.
하지만 나는 경찰이다. 비단 내 부모님의 사건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보아야 한다.
나는 천천히 수첩을 열었다. 단 한 장의 사진.
주택을 배경으로 대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사람. 남자 둘은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유일한 여성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다리는 쩍 벌리고 서서 웃고 있다. 새색시 같은 수줍은 모습은 전혀 없는 유쾌한 여성.
“이분이…… 엄마인가요?”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이 사람이 내 엄마. 우리 엄마는 이렇게 생겼구나. 거친 경찰 일을 해서 그런지 남자처럼 서 있는 우리 엄마는 무척 예쁘지만 요즘 미인형처럼 호리호리하고 마른 체격이 아니다. 남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골격이 좋다.
나는 두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 명은 사각형의 큰 알이 든 안경을 쓰고 있고, 한 명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
둘 다 비슷한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바지를 배꼽 위까지 바싹 끌어 올려 입고 있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둘 중 안경을 쓴 사람을 유심히 보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만졌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안경을 쓴 쪽이 내 아버지다. 나와 쏙 빼닮았으니. 아니, 내가 그를 닮은 것이겠지만.
아저씨가 사진을 보며 말했다.
“안경을 쓴 쪽이 네 아버지 현지성. 옆에 있는 사람이 네 삼촌인 현주성이다.”
“그렇군요.”
“배경은 첫 신혼 살림집이었던 주택이고.”
아주 오래된 사진의 배경. 그 시대 때 찍은 사진답게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보이는 대문이다.
“삼촌은…… 결혼 안 했나요?”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 만약 삼촌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내게 조카가 된다. 그럼 내게도 진짜 가족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스페인으로 간 지 일 년 만에 연락이 두절된 형을 찾겠다고 한국으로 들어와 10년이나 실종자를 찾던 사람이 결혼할 정신이 있었겠냐. 안 했다.”
“……그렇군요.”
역시 내게 남은 가족은 없구나. 강혁 아저씨는 잠시 내 눈치를 보다 화제를 바꾸신다. 벽에 걸린 서울 지도 앞에 선 아저씨가 펜을 꺼내며 물었다.
“기억을 읽을 당시에 하 선배가 쫓기던 곳이 쌍문 성당 근처였다고?”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예, 누군가 쫓아오고 있었고 엄마는 날 성당 앞에 내려놓은 후 쫓아오는 놈의 방향으로 뛰었어요.”
“거기서 잡힌 건 아니고?”
“네, 그놈 앞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방향을 꺾어 도주했어요.”
아저씨는 지도를 뚫어지게 보다가 몇 걸음 옆으로 이동해 또 다른 서울 지도 앞에 섰다.
“이게 89년 당시의 서울 지도다.”
같은 서울 지도이지만 연도에 따라 지리가 다르다. 큰 틀은 같지만 세부 도로나 건물이 달라지기 때문에 옛 사건을 수사할 때는 옛 지도로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사진을 다시 수첩 사이에 끼워 넣은 후 덮었다. 아저씨가 빨간 펜으로 쌍문 성당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 보인다.
“여기서…… 이리로? 아니면 이쪽인가?”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또 다른 펜을 잡아 들고 지도에 그림을 그렸다.
“아뇨, 성당 왼편에서 쫓아왔습니다. 그러니 여기 아래쪽에 범인이 서 있었겠죠. 엄마는 성당 입구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온 뒤 오른편. 그러니까 이쪽 골목으로 도주했습니다.”
아저씨는 중요한 정보를 얻은 사람처럼 집중해 지도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를 구해주고, 보살펴 주었던 사람. 그리고 서로 몰랐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어머니와 아버지 사건을 수사해 준 사람. 아저씨에게 빚을 또 져버렸다.
“아저씨.”
“어.”
“이제 다시 둘이네요.”
“뭐가?”
“이 수사를 함께하는 사람이요.”
지도를 뚫어지게 보던 아저씨가 날 바라본다.
“삼촌 돌아가시고 혼자 하셨잖아요. 이제 나랑 같이해요.”
아저씨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헛기침을 한다.
“나야 인마. 곧 은퇴할 노인이니 할 일 없지만 넌 현역인데 시간이 되겠냐? 할 일 많을 텐데.”
내 부모님의 사건이다. 아니, 사실 부모님 사건이 아니더라도 아저씨가 이토록 집요하게 파던 사건인데 당연히 도와야 할 것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싫으면 말고.”
아저씨가 고개를 획 돌리며 눈을 부라린다.
“누가 싫다고 했냐!”
“킥킥.”
“웃지 마 인마. 늙은이 놀리면 좋냐?”
“네, 좋네요.”
“뭐, 인마?”
내 멱살을 잡는 아저씨. 나는 아저씨의 거친 손길을 피하며 웃었다.
태어나서 엄마, 아빠, 삼촌의 사진을 처음 본 날.
나는 울기보다 웃기를 택했다.
내게는 아저씨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