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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87화 (287/328)

살인의 기억 287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11)

“운영하시는 동안 혹시 경찰이 오간 사건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수상했던 사건 몇 개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질문이다. 나는 스스로 한심함을 느꼈다. 하다못해 대략적인 시기라도 알려줘야 옳다.

하지만 나는 미카엘 신부가 이곳에서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어르신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사건에 다가가며 타겟을 좁혀야 한다.

건물주 할아버지는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잠긴다.

“음, 처음 여인숙을 연 1975년. 그때는 말이야, 참 가난한 시절이었지. 젊은 경찰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1975년에 그 유명한 연예인 대마초 파동이 있었거든. 이름을 말할 순 없지만 서울에서 도주한 뒤에 우리 여인숙에 찾아와 장기 투숙하던 가수가 있었어. 여기서 잡힌 건 아니지만 대구 어딘가에서 결국 잡혀갔다고 했지.”

아차, 1975년도 이야기부터 해달라고 했던 건 아닌데. 하지만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른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리 길게 말하는 성격도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들어보자.

할아버지가 턱을 괴고 말했다.

“그리고 연쇄살인마가 잡혔어. 그때 난리도 아니었거든. 웬 살인자가 경기도 인근에서 사람을 열한 명이나 죽이고 두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면서 형사들이 전국의 여인숙을 뒤지고 다녔지.”

1975년에 잡힌 연쇄살인마. 김대두 사건이다.

“그렇군요, 계속해 주세요.”

할아버지는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협조적이다.

“음, 그 해는 그 외에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고…… 음, 그다음 해에는 여기 아이들이 아주 난리가 났었지.”

“아이들이요?”

“응, 한국 최초 만화영화가 개봉했거든.”

1976년에 개봉한 한국 최초의 만화영화. 태권V 이야기다. 이건 넘어가자.

“그 후로 또 기억 나는 사건은 없으셨나요?”

“음, 1970년대 후반…… 그 시절에 제일 큰 사건은 아무래도 박정희가 암살당한 사건이었어. 진짜 난리가 났거든 계엄령 선포되고 밤이 되면 길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손님도 들어오질 않고. 힘든 시절이었지.”

1979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쪽 일은 더 들어도 소득이 없겠다.

나는 과감히 연도를 뛰어넘기로 했다. 미카엘 신부가 단양으로 간 건 2010년 10월부터.

신부로 첫 부임한 곳은 순창, 시기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다.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이 시기이거나, 이때보다 약간 앞일 확률이 높다.

“혹시 1985년 이후부터 기억나는 사건 없으세요?”

“응? 글쎄, 어디 보자…….”

할아버지는 한참 곰곰이 생각해 보신 후 말했다.

“아, 그때. 기억이 나.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열불이 터져.”

“무슨 일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이를 갈며 말했다.

“미친 미국 놈들이 프로레슬링을 방영해 주기 시작하면서 남자 놈들이 여인숙 방 잡아놓고 거기서 레슬링 놀이 한답시고 집기 다 부수고, 난리였지. 하도 질려서 한동안 남자 놈들만 들어오는 손님은 한 방에 안 넣었어.”

나도 본 적 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WWF였다고 들었다. 세계 자연 기금 협회와 약자가 같아서 바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또 있나요?”

“옳거니. 그리고 얼마 후에 한동안 동네가 시끄러웠지. 대구교도소 양심수 32명이 교도관들에 의해 집단으로 폭행당해서 기자들이 몰려와 동네가 아주 시끌시끌했거든.”

대구교도소 양심수 폭행사건의 이야기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물었다.

“사회현상 말고, 여인숙에서 있었던 일 위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인숙? 음, 어디 보자…….”

할아버지는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1985년…… 86년……. 뭐가 있었더라.”

“경찰이 들이닥치거나, 조사를 받으신 적 없으세요?”

“하도 많아서 원.”

여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직접적인 죄를 짓지 않더라도 도망자나 수배자가 여인숙에 숨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절 여관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성매매를 공개적으로 알선하기도 했기에 경찰에 조사를 받은 일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말했다.

“음, 여관바리 수사하는 거 아니지?”

“예? 그게 뭔데요?”

“뭔지 모르면 됐고. 하여간 성매매 이런 거 가지고 문제 삼으려는 거 아니지?”

“예, 전혀 아닙니다.”

“그럼 그런 것들은 다 넘어가고…… 어디 보자.”

할아버지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아, 이상한 일 하나 있었지.”

“뭡니까?”

“이게 자네가 찾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주 이상한 일이 있었어.”

“말씀해 주세요.”

“서울 말투를 쓰던 양반이 한 명 왔었거든?”

“예.”

“출장을 온 것 같았어. 한 삼 일 묵어 간다고 했었지.”

“예, 그런데요?”

“근데 이 사람이 삼 일 치 숙박비를 다 내놓고 하루 만에 사라져 버렸어.”

하, 한숨이 나온다. 이런 걸 묻고 싶은 게 아닌데. 답답해진다. 내게 좀 더 정보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할아버지는 내 표정을 보지 못하고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잇는다.

“진짜 이상한 일이었지. 그날 분명히 그 사람이 저녁때 들어왔거든? 다음 날 나가는 건 못 봤고. 마지막 날에도 나가는 걸 못 봤어. 12시가 넘어서 방에 청소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이 사람 짐이 그대로 있더란 말이야. 그래서 내가 혹시 출장이 길어진 건가 보다 하고 그 방은 청소를 안 했어. 혹시 늦게 나가는 거면 나중에 추가 요금 받으려고 말이지. 근데 안 오는 거야? 다음 날이 되도 안 오고, 그다음 날이 되도 안 오고.”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 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막상 다른 이야기 중 뭘 해달라고 할지도 모르는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잇는다.

“그 방을 계속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일단 짐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쓰던 방에 넣어놨어. 근데 한 일주일쯤 지난 후에 한 사람이 찾아와서 그 사람 어떻게 됐냐고 묻는 거야? 아니, 그건 내가 더 궁금한 일인데. 그래서 모른다, 짐도 그대로 두고 사라졌다고 했지.”

“예…… 그랬군요.”

“그래서 물었어.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랬더니 대구 쪽에서 크게 양조장 하는 사람인데 업체 사람이 출장을 왔는데 하루만 나오고 안 보여서 본사에 연락했더니 회사도 안 나오고 있다고 하길래 찾으러 왔다는 거야.”

“그래요?”

솔직히 별 관심이 안 가는 이야기다. 나는 속으로 어떤 질문을 해야 내가 원하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며 건성으로 답했다.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잇는다.

“일단 그 사람 안다고 하길래 짐을 넘겨줬어. 가지고 있다가 그 사람 찾으면 좀 전해주라고. 내가 가지고 있기 곤란하니까.”

“네…… 그거 말고 다른 일은…….”

“그런데 말이야.”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2년 뒤에 또 다른 남자가 와서 그 남자를 찾았어.”

음? 또 다른 남자? 이번에도 업체 사람이었던 걸까?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사라진 남자의 형제라고 하더군. 내가 해줄 이야기는 없다고 해도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그리고 5년 뒤에 그 남자가 또 왔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고 경찰까지 데리고 왔어. 사복 입은 형사였지.”

경찰까지 개입됐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나고 2년 뒤에 한 번, 5년 뒤에 한 번이라는 건 7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만약 실종이라면 벌써 사망 판정을 받았어야 하는 시간이 지났는데 경찰이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누군가 머릿속에 화살을 쏜 느낌이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뇌리를 스치는 기억 때문이다.

“여인숙…… 상호가 뭐였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상호? 어, 원래 서문 금은 여인숙이었다가, 저 원수 같은 아들놈 낳은 후에 순성 여인숙으로 바꿨는데. 왜?”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전화를 들었다.

“어르신 잠시 전화 한 통 하고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어? 나야 뭐. 남는 게 시간인데, 그러시게. 인마 순성아!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집에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대접해야지, 뭘 멀거니 서 있어? 당장 가서 커피라도 타 와, 이놈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찾았다. 갑자기 전화를 거는 날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는 현중이를 피해 집 밖으로 나온 나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 도경아.

익숙하면서 따뜻한 목소리. 한결같이 날 바라봐 주시는 강혁 아저씨의 목소리다. 그의 음성을 들으니 떨리는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아저씨.”

-어, 그래. 무슨 일 있냐?

“혹시 아버지 일 수사하며 대구 내려오신 적 있으세요?”

-음? 당연하지. 거기서 실종됐는데.

“…….”

-왜? 무슨 일인데?

“대구 내려와서 어딜 조사하셨어요?”

-너 왜 그래?

“저 지금 대구에 내려와 있어요.”

-수사 때문에?

“예, 장진수 사건 관련으로 내려온 김에 저도 살펴보고 싶어서요.”

-아, 그래? 음 대구에 몇 번 내려갔지. 그때 네 아버지가 출장 갔던 업체 쪽 조사하러.

“업체만 조사하신 거 아니죠?”

-아니지, 네 아버지가 묵던 숙소도 조사했다.

“…….”

-여보세요? 도경아?

“예, 듣고 있어요.”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아뇨, 별일 아니에요. 혹시 그 숙소가 어디였는지 기억하세요?”

-선배 일인데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여인숙이었다. 서문시장 안쪽 금은방 거리에 있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미카엘 신부의 행적을 쫓다 아버지가 실종된 여인숙에 흘러오게 되었다.

“여인숙 이름…… 기억하세요?”

-서문 금은 여인숙. 지금은 없어졌을 거야.

“…….”

진짜였구나. 진짜 내가 아버지가 실종된 여인숙 주인을 만난 것이구나.

“알……겠습니다.”

-뭘 알아?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예, 그냥 한번 거기 근처라도 가보려고요.”

-그래? 위치 찍어줘? 지금 없어져서 찾기 힘들 텐데.

“제가 알아서 찾겠습니다. 올라가서 봐요.”

-그래, 밥 굶지 말고 잘 먹고 다녀, 인마.

“네, 아저씨도 식사 잘 챙기세요. 끊어요.”

전화를 끊은 나는 담벼락을 등지고 서서 한참 전화기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길 건너편에 보이는 금은방 입구를 바라보았다.

대각선으로 반만 보이는 성인 오락실 건물. 저곳에서 아버지가 실종되었다. 대구에 있는 양조장에 출장을 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것이다.

당시 출장을 왔던 양조장 측의 사람도 아버지를 찾았고, 소속되어 있던 회사 사람들과 삼촌, 강혁 아저씨도 아버지를 찾아 이곳에 내려왔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라졌다.

그리고 미카엘 신부는 어떤 일을 했다.

그것은 서로 연관된 일이었을까?

나는 가만히 건너편 건물을 노려보다 몸을 돌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성이 놈이 내온 커피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대청마루에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커피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방금 말씀해 주신 실종자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억나시는 건 뭐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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