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88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12)
“방금 말했던 그 사람? 왜, 그 사람 찾은 거야?”
“…….”
“응?”
“아뇨, 못 찾았습니다.”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자기 배를 만진다.
“솔직히 면식 있던 사람도 아니지만 내 가게에서 사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자꾸 가슴에 남아 있어. 꼭 찾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여태까지도 못 찾았군. 그게…… 아마 1989년도에 있었던 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1989년. 내가 태어난 바로 그 해이다. 엄마에게 일이 생긴 건 아버지가 대구 출장을 간 때였다. 일의 순서는 모르지만 어머니도 실종된 후 최근에 산에서 백골로 발견되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살짝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할아버지 옆에 가 앉아 숨을 골랐다.
사건의 순서는 아직 모른다.
어머니 사건이 먼저 나고 아버지도 사건에 휘말린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또한 같은 범인이 일으킨 사건인지 확실하지 않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어머니는 서울에서 일을 당했다.
또한 아버지 쪽은 아직 시신이 나온 것이 아니다. 단순 실종일 수 있지만 이제 막 갓난아기를 가지게 된 아버지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버리고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건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손님……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십니까?”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손님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진 않아. 하지만 하도 이상한 사건이고 이후에 날 찾아와 묻는 사람이 많아 기억이 나.”
“어떻게…… 생겼어요?”
“큰 안경을 썼어. 검은색 뿔테.”
“…….”
“키가 좀 큰 편이야. 지금에야 애들이 워낙 커서 모르겠지만 그 시절 일반인 평균 키에 비해 꽤 큰 사람이었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
내 아버지는 키가 크셨구나. 나도 큰 편이다. 아버지가 크셔서 나도 이렇게 큰 것이구나.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가 내게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진다. 살면서 부모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고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생경하다.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하세요?”
할아버지는 날 가만히 바라보신다. 나이를 허투루 먹은 분이 아니신지 내 표정을 보고 뭔가 있음을 짐작한 할아버지가 나직하게 물었다.
“그 사람 가족인가?”
“…….”
“나이를 보니 아들뻘 되는 것 같은데.”
“저는…….”
“음?”
“형사입니다.”
“응?”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입니다.”
현중이가 듣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아들임을 밝혔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가족임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가 그의 아들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수사가 금지되어 있는 경찰 내부의 암묵적인 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실을 현중이가 알게 되면 당연히 최영현에게 보고가 들어갈 것이다.
물론 강혁 아저씨가 청장이니 내가 수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은 묵살당하겠지만 괜히 분란은 만들고 싶지 않다.
할아버지는 날 살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다 짧은 한숨을 쉰다.
“뭐, 그런가? 어쨌든. 딱 하루 본 사람이라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고. 음…… 그래.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 같았어.”
“……어떻게 아십니까?”
“당시는 말이야. 지금처럼 개나 소나 전화기 들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어. 공중전화 아니면 여인숙에 비치된 전화를 썼지. 시외전화를 쓰려면 따로 돈을 줘야 되고 말이야. 그때 그 사람이 서울에 전화를 한다고 했어. 돈을 오백 원이나 주길래 거슬러 주려고 했더니 오래 통화할 거라고 했고. 청소를 하며 오가다 들었는데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더군.”
그랬구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사랑하셨구나.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그냥 밥 먹었냐, 애는 아픈 곳 없냐 이런 질문이었네. 그냥 우리네 아버지들이 늘 하는 질문이었지만 목소리가 참 다정한 사람이었어. 나도 우리 마누라한테 저런 말투로 말하면 좀 덜 싸울까 싶기까지 했거든. 그 시절 무뚝뚝한 남자들과 다르게 아주 다정한 말투로 말하던 게 기억이 나.”
아버지의 다정한 말투와 음성. 나도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가 없겠지.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부터 사라질 때까지 기억 나는 모든 일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디, 별거 없어. 들어와서 자기 출장지 잘 왔다고 전화 한 통 하고 나한테 와서 여기 맛있는 중국집이 있냐고 물었어. 그래서 지금은 없어진 중국집 하나 괜찮다고 소개해 줬더니 나가더군. 밥만 먹고 들어왔는지 금세 들어와서 방에 들어갔어.”
“여인숙에 처음 왔을 때가 몇 시쯤 됐는지 기억나세요?”
“음,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저녁때였을 거야.”
처음 대구에 내려와 바로 양조장으로 갔다. 출장지에서 일을 보고 저녁때 여인숙에 와 체크인을 한 것이다.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동네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들어와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은 기억하세요?”
“아니, 다음 날은 안 보였어. 아침 일찍 나갔나 보다 했지. 그리고 다시는 보이지 않았어.”
아버지는 언제 실종되신 걸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을 나가다 그랬을까? 아니면 늦은 밤에 일을 당했던 걸까? 30년도 넘은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내게 다가온 현중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기, 과장님.”
“음.”
“신부님 이야기 물으러 오신 거 아닙니까?”
“…….”
그렇지 참. 미카엘 신부에 대해 확인하려고 왔다가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완전히 정신이 팔렸다. 나는 할아버지 쪽을 보며 물었다.
“혹시 여인숙에 신부님이 오신 적 있습니까?”
“신부? 결혼한 여자 말인가?”
“아뇨, 성당에 계신 신부님 말입니다.”
“아…… 모르겠어. 그 검은 옷에 목에 하얀 거 달린 옷 입은 사람들이 신부 맞지?”
“예, 맞습니다.”
“그런 옷 입은 사람은 못 봤어. 하지만 모르지, 혹시 다른 옷을 입고 있어서 내가 몰랐을지도.”
“주변에서도 보신 적 없습니까?”
“주변에서?”
“예, 주변을 기웃기웃했다거나.”
“음…… 기억에 없는데. 가끔 대구에 뭔 성지가 있다고 단체로 오는 신부들이 요 앞을 지날 때는 있었지만 여인숙 근처에서 기웃대는 신부가 있었을 리가 없지.”
후, 그렇구나. 미카엘 신부가 했던 말은 뭘까? 단순히 지나가는 말이었을까? 아님 이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을 착각한 걸까?
일단 여기서 알아낼 것은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이 여인숙에서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강혁 아저씨가 알고 있다는 건 여기서 알아낼 건 이미 다 알아냈다는 뜻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명함을 꺼내 할아버지 손에 쥐여준 내가 말을 덧붙였다.
“혹시 뭔가 생각나시는 게 있으시면 언제든 좋으니 연락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손에 쥐어진 명함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지. 근데 내 아들놈이 사고 친 거 없는 거 확실하지?”
나는 찔끔하며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순성이 녀석을 힐끔 보며 웃었다.
“글쎄요, 제게 걸린 건 없으니 안심하세요.”
“에이, 저 원수 같은 놈.”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려, 살펴 가시게.”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 건너편 건물을 노려보는 내 옆으로 온 현중이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과장님?”
“넌 아까 내가 지시한 대로 미카엘 신부 옆에 붙어 있어. 내일 서울 올라오면 도착 한 시간 전에 내게 문자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한다, 수고해.”
“수고하십시오, 충성.”
경례를 하고 병원 쪽으로 걸어가는 현중이. 나는 녀석의 뒷모습과 함께 보이는 병원을 노려보았다.
“미카엘 신부. 당신 정말 뭔가 있는 거야?”
그가 아버지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뭔가 있다는 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 * *
다음 날, 강북구 광산 사거리.
1.5톤 트럭에서 뛰어내린 관우가 짐칸에 실린 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과장님, 고시원에서 꽤 오래 살지 않았어요?”
조수석에서 내린 나는 약간 멋쩍게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짐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관우가 박스 두 개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무리 옷에 관심이 없으셔도 그렇지. 몇 년이나 고시원에서 사셨는데 옷이 달랑 라면 박스로 두 개 나오는 건 좀 심하네요. 심지어 이 안에 속옷, 양말도 다 같이 넣었는데.”
“뭐…… 그럼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하하, 뭐 우리 엄마가 보시면 좋아했겠네요. 맨날 옷 많이 산다고 뭐라 하시는데. 과장님이 우리 엄마 아들이었으면 사랑받으셨을 겁니다, 하하.”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빨리 마무리하자. 오늘 대구에서 미카엘 신부가 올라온다. 보육원 경호 인력도 늘리고 직접 보육원 가서 있어볼 요량이니까 이사 빨리 끝내자고.”
관우가 짐을 내리다 말고 날 바라본다.
“진짜 미카엘 신부에게 뭔가 있을까요?”
“…….”
“과장님 말씀을 듣고 전후 사정 고려해 보면 장진수 놈이 단순히 삐뚤어진 종교 신념 심어줬다고 저러는 것 같지 않기는 한데. 그렇다고 미카엘 신부가 범죄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 이거 원.”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빨리 짐 내려.”
관우가 트럭에서 박스를 내리며 내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집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분다.
“이야, 좀 오래된 집 같아 보이긴 해도 단독 주택이네요. 게다가 전세도 아니고. 대단하십니다. 저도 과장님처럼 고시원에 살면서 돈 모으면 집 사는 게 가능할까요?”
“넌 어차피 부모님과 같이 살잖아. 나보다 환경 좋은 놈이 지금까지 돈 못 모았으면 앞으로도 못 모아.”
“와, 펙폭 지린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모으라고. 근데 나 이 집 내가 산 거 아니다.”
“에? 그럼요? 누가 사주기라도 했어요?”
누가 사준 거나 마찬가지지. 얼굴도 모르는 내 부모님이 말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유산이라는 건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필연적으로 받은 유산이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관우를 재촉했다.
“빨리해야 시간 내에 끝나. 잡소리 그만하고 빨리하자. 미카엘 신부가 성당에 돌아오기 전에 보육원 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예, 번개처럼 끝내죠!”
관우는 원래 몸이 날래다. 짐이 별로 없어서 트럭 운전사 아저씨까지 세 명이 대여섯 번 왕복해 마당에 짐을 내리니 벌써 짐의 하차가 끝났다. 아저씨께 돈을 챙겨 드리고 마당에 쌓인 내 짐을 바라보았다. 고시원이 풀 옵션이라 전자제품을 사지 않는 바람에 더 단출한 내 짐.
전자레인지, 냉장고, 에어컨, TV. 전부 새로 구입해야 된다. 가져온 짐은 대부분 옷가지와 개인 위생 용품들. 먹다 남은 음식물들이 30%고. 나머지는 모두 책이다.
경찰대 때부터 모아온 범죄 심리 관련 책자들이 삼백 권도 넘기에 그나마 짐이라고 할 게 생긴 것이다.
관우가 얼른 책을 쌌던 줄을 가위로 자르며 말했다.
“이거 어디 둘까요?”
“어, 일단 마루 위에 그냥 둬.”
“그냥 두면 혼자 정리하셔야 되는데. 그냥 저 있을 때 하시지.”
“책장을 사야 정리하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책장 어디 두시게요?”
“안방.”
“그럼 안방에 갖다 두면 되죠.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게.”
“그래, 그럼 부탁한다.”
관우와 함께 책들을 나른 후, 옷가지들도 밀어 넣었다. 가구가 하나도 없으니 정리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쓰던 컵이나 냄비들을 싱크대 위에 정리해 둔 것이 전부다. 시간이 모자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아돈다.
관우가 실소를 지으며 마당으로 나와 말했다.
“이사를 했는데 짐 정리에 30분도 안 걸리는 건 처음 봤네요. 이야, 여기 좋은데요? 운치 있고. 마루에 앉아서 이 작은 마당 보면서 커피 마시면 죽이겠네. 비 오면 더 운치 있겠어요.”
음, 관우 말이 맞다. 은근히 운치가 있는 곳이긴 하다. 게다가 부모님의 기억도 묻어 있고. 관우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문들을 열어보다 마당 한편의 작은 시멘트 건물의 문을 열어보며 말했다.
“여긴 뭐지, 오래된 집이라 그런가? 옛날에 연탄 두던 창고같이 생겼는데.”
관우가 알루미늄 문을 열어보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저긴 뭐지? 예전에 와서 보긴 봤는데 안까지는 안 봤다.
“뭐 있어?”
관우가 안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다시 밖으로 나온다.
“호, 보물창고 같네요. 옛날 물건들인가 본데. 이거 잘 닦아서 황학동 시장 가서 팔아도 될 것 같지 않아요?”
관우 손에 아주 예전에 손가락을 걸어 돌려 쓰던 다이얼 전화기가 들려 있다. 진짜 오래된 물건 같아 보이네. 관우가 먼지를 후후 불며 걸레로 전화기를 쓱쓱 닦는다.
“이야, 40년은 넘어 보이는 전화기 같네요. 이거 방송국 소품 담당하는 사람이 보면 눈 뒤집어져서 달려오겠는데요?”
관우가 닦아서 내미는 검은색 전화기.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옛날 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누가 쓰던 전화기일까? 가만히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 시야가 점점 흑백으로 물들어가며 관우를 포함한 집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뭐지? 이 전화기가 뭔데?
왜 이걸 보고 기억을 읽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