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294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18)
꽤 오랫동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물론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다.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팀원들.
그들은 어떤 사건에서 증거를 잡아낸 것이 기억을 읽은 것이었냐는 질문을 수없이 던진다.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궁금했던 것을 그동안 묻지 않고 어떻게 견딘 것인지 신기할 만큼 많은 질문들이 오간다.
나는 그들 속에 서서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며 후련함을 느꼈다. 사람이 이래서 마음속 고민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인가 보다.
연주가 재잘거리며 묻는다.
“처음 우리 같이했던 사건이 장진수 사건이잖아요? 그때도 기억 읽었어요?”
“어.”
“어떻게요? 장진수 기억 읽은 거?”
“아니.”
“그럼요?”
“개.”
“…….”
관우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든다.
“개요? 멍멍 개?”
내가 민망한 얼굴로 볼을 긁자 연주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아! 그 하얀 개!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하는구나. 하긴 연주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이니까.
“칠구.”
“아, 맞다. 와, 개의 기억도 읽을 수 있구나.”
오진규가 가만히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건강원 때는 뱀의 기억을 읽은 겁니까?’
“음, 확실하지 않아요. 뱀의 기억일 수도 있고, 장소에 남겨진 기억일 수도 있어요.”
“호.”
연주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문득 물었다.
“혹시…… 피해자 입장의 기억도 읽은 적 있어요?”
“어.”
“…….”
세 사람이 조용해진다. 피해자 입장의 기억. 그것이 무엇인지 자명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질려 살해당하던 바로 그때의 기억. 그것은 보통 사람이었다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겨질 만큼 강렬한 기억들이었다. 특히 여주 주유소 사건 때 산 채로 소금 공장 바닥에 매장당한 여성의 기억을 읽었을 때는 나도 무척 힘들었다.
연주가 코를 비비며 말했다.
“우리 과장님 많이 힘드셨겠다.”
관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그러게. 나였으면 미쳐 버렸을 텐데.”
녀석들. 역시 내 마음 알아주는 건 너희뿐이다. 오진규가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물었다.
“원하면 읽을 수 있는 겁니까? 아무 조건 없이?”
오진규는 이런 상황에서도 뼛속까지 형사다.
“아뇨, 악의가 있어야 됩니다.”
“악의?”
“예, 그냥 얄미운 정도가 아니라, 상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수준의 악의를 느끼고, 매개가 발생할 경우 읽을 수 있습니다.”
“음, 발동에 한계가 있는 능력이군요. 결국 아무나 붙잡는다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건데. 거짓으로 상대를 미워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
실험을 해봤냐는 의미이겠지. 거짓으로 악의를 발산했을 때에도 기억을 읽을 수 있는가는 수사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니까.
“아뇨, 해봤습니다만, 불가능했습니다.”
“시도는 해보셨고요?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황지영 사건입니다.”
연주와 관우가 조용해진다. 성폭력 피해자가 저지른 살인사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탄생시킨 인격이 사람을 죽였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황지영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정황증거를 잡고 난 이후부터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녀에게 죽은 마약 중독자 쓰레기 피해자의 시신에서 기억을 읽었죠.”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와 검지를 비빈다.
“음, 활용 방법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겠군요. 그럼 하나 더 묻겠습니다.”
“예.”
“과장님 부모님 사건과 다른 사건의 기억 간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서로 분간할 수 있습니까?”
이건 확실하다.
“예, 타인의 기억을 읽으면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의 사건을 읽으면 두통이 없습니다.”
“오, 그래요?”
“네, 그뿐 아니라 부모님 사건과 연관된 타인의 기억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인의 기억이라 해도 제 부모님 사건과 연결점이 있으면 두통과 어지러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예, 선배님.”
오진규는 연주와 관우를 힐끔 본 뒤 물었다.
“우리들 기억도 읽으신 적이 있습니까?”
“…….”
연주와 관우의 시선이 내게로 와 꽂힌다. 제일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두려움을 느낄 거라고 했던 강혁 아저씨 말씀이 떠오른다.
“아뇨, 읽은 적 없습니다.”
바로 부정한 덕분일까? 연주와 관우가 배시시 웃으며 서로를 본다.
“하긴 과장님이 우릴 죽여 버리고 싶었을 리가 없지.”
“그렇지? 근데 관우 넌 가끔 죽여 버리고 싶을 때가 있긴 한데.”
“뭐? 언제?”
“오타쿠 짓 할 때. 좀 전에 히어로 어쩌고 할 때도 죽여 버리고 싶었거든.”
“야, 네가 그래서 슈퍼 히어로가 못 되는 거야. 우리 과장님은 그런 생각 하실 분이 아니니까 저런 능력이 있는 거고. 하늘은 능력에 어울리는 인간에게 힘을 주시는 법이다.”
“지랄.”
오진규는 질문이 끝났는지 소파에 등을 기댄다. 나는 더 질문이 없냐는 눈빛을 보내다 다시 부모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참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듣고 있던 오진규가 다시 손을 든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장님 어머님이 계신 무덤에 얽힌 기억이…… 청장님 기억인데요?”
팀원들이 모두 아저씨를 바라본다. 구석에서 듣고 있던 아저씨가 뭐? 하는 표정이 된다. 오진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전에 상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악의를 가져야 기억을 읽으신다고.”
팀원들의 시선이 다시 아저씨에게 꽂힌다. 아저씨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손사래를 친다.
“뭐 들었어? 지 기억에 얽힌 건 스스로 제어가 안 된다니까. 저놈 저거 처음에 읽은 기억도 병원에서 상담받다가 떠오른 거야.”
오진규가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
“그렇죠? 설마 우리 존경하는 청장님을 미워할 일이 있었겠냐 싶었습니다. 설마하니 말입니다, 하하.”
아저씨는 얼굴이 붉어져서 나를 째려본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물론 매개는 필요합니다만 악의 없이 제 사건에 대해 볼 수 있었습니다.”
관우가 수첩에 내 말 중 중요한 내용 몇 개를 요약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범인의 기억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범인이 거울을 보는 장면의 기억을 읽은 게 아니라면 상대의 얼굴은 알 수 없다. 이거 맞죠?”
“응.”
“흠, 그래도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면 증거 수집이 훨씬 편해지겠네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증거로는 뭔가 더 수사해 볼 수 없으니 연관이 있는 장진수 사건 계속 진행하면서 새로운 단서나 기억이 나오길 바라야 하는 상황이군요.”
“그래.”
관우가 마지막을 정리해 준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모두 이해한 모양이다.
바로 그때 오진규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한 뒤 구석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응, 알았다. 그래.”
오진규가 전화를 품에 넣으며 다가온다.
“장진수가 과장님을 뵙고자 한답니다.”
구석에서 신문을 보던 강혁 아저씨가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
“그 새끼 깨어났어?”
오진규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몇 시간 전에 의식이 돌아왔답니다.”
“의사는 뭐래? 인터뷰 가능한 상태라는 허락받았어?”
“의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인데 본인이 원한답니다.”
“음, 본인이 원한다…….”
아저씨가 날 바라본다.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던 아저씨가 말했다.
“너 장진수 놈에게 맺힌 거 남았냐?”
맺힌 거? 있지, 아주 많지. 간 크게도 감히 내가 자란 성당을 덮쳤으니까. 수녀님과 아이들 피해가 없어 망정이지 손끝이라도 다쳤으면 그 새끼는 내 손에 죽었다. 물론 아저씨가 한 질문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걱정 마세요, 총 맞고 누워 있는 놈 팰 정도로 앞뒤 없진 않으니까.”
강혁 아저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가끔 앞뒤가 없으니까 걱정을 하는 거지, 망할 놈아. 네놈이 패서 병원 입원한 놈이 한둘이냐?”
“…….”
연주가 싱글싱글 웃으며 끼어든다.
“여수에서 잡은 놈들 중에 우두머리 놈은 전치 육 개월 받았죠.”
“…….”
관우가 그때를 떠올리며 소름 끼치는 얼굴을 한다.
“그때 과장님이 그 새끼 패고 있는 거 보고 달려가 말렸는데 과장님이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알아? 애들이니까 살살…… 애들이니까 살살…… 이러면서 팼어. 근데 전치 육 개월 실화임?”
오진규가 웃음을 터뜨리고 나만 민망해진 상황. 나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장진수 놈은 병원에 누워 있는데 팰 일이 없지. 걱정들 하지 마.”
강혁 아저씨가 가자미눈으로 말했다.
“혹시 패면 잘리는 거다? 잘리면 나 은퇴하고 둘이 분식집이나 하자.”
잘못하면 해고한다는 이야기가 이토록 따뜻하게 들릴 줄이야. 잘려도 아저씨가 책임진다는 뜻이 내포되어 그런 걸까? 마음이 뜨뜻한 것이 무척 좋은 기분이다.
“후후, 예. 다녀오겠습니다.”
* * *
30분 뒤 쌍문동 한성 종합병원.
장진수의 병실 앞에서 주의 사항에 대해 10분이 넘게 설교를 들은 나는 손을 깨끗하게 소독하고 옷에도 스프레이형 소독제를 잔뜩 분사당한 후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산소마스크를 벗고 침대를 약간 세운 채 반쯤 누워 있던 장진수가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의사의 말대로 녀석의 2미터 밖의 자리에 섰다. 2차 감염의 위험성 때문이라니 지켜야지. 이놈이 또 발작을 일으켜 버리면 수사는 그만큼 지지부진해진다. 짜증 나는 일이지만 지금 녀석의 안위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하다.
나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놈을 훑어보았다. 가슴 아래는 이불로 가려져 있어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갈아입지 못한 환자복에 핏방울들이 번져 있는 것을 보니 의식 없는 동안 꽤 고생한 모양이다. 안색도 무척 창백하고, 오랫동안 씻지 못해 초라한 행색이다.
놈이 나를 보고 슬쩍 고개를 숙인다.
나는 가만히 놈을 노려보다 말했다.
“인사하고 지낼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장진수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제 형사님이 친구같이 느껴집니다.”
“뭔 소리야?”
“하느님과 신부님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형사님이거든요.”
“하느님과 대화도 나누냐?”
“예, 가끔 부르기도 하시고, 제 말에 답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속에서 천불이 일어났지만 괜히 이놈이 제일가는 가치로 두는 종교를 건드려 자극할 필요는 없다.
장진수가 구석에 있는 동그란 의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좀 앉으시죠.”
나는 녀석을 노려보다 의자를 질질 끌며 침대 앞 2미터 밖에 앉았다.
“사올 생각도 없었지만 바쁘게 와서 병문안 과일은 없다, 이해해라.”
장진수가 가만히 날 보며 웃는다.
“하나 배웠군요.”
“뭘?”
“누군가의 병문안을 가면 과일을 사가야 된다는 거.”
“…….”
나는 창백한 안색으로 웃는 장진수를 가만히 보며 물었다.
“살면서 누군가의 병문안을 간 적이 한 번도 없냐?”
“있었겠습니까?”
“…….”
친구도, 가족도 없는 놈. 삼십 대 중반에 남의 병문안 한 번 가본 적이 없는 녀석. 그런 녀석이 총을 맞고 창백한 안색으로 저리 누워 있으니 마음속에서 연민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눈앞의 이 녀석은 연쇄살인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나는 뇌리를 파고드는 연민을 억지로 뿌리치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장진수의 눈동자가 내게로 온다. 나는 놈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열 한 명이 아니라 아홉 명 죽인 거 맞아?”
나는 놈의 일거수일투족. 조그마한 변화도 놓치지 않을 작정으로 노려보았다.
놈은 회한의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일기장. 찾으셨습니까?”
“아니.”
놈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럼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