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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기억-296화 (296/328)

살인의 기억 296화

20. vetus silentium(오래된 침묵)(20)

미카엘이 장진수를 데리고 성당으로 왔다. 자, 그럼 이제 미카엘 신부 쪽의 이야기를 물어 시기를 짐작하면 되겠다.

“미카엘 신부님이 단양 상진 성당에 오신 게 2011년이던데.”

“그럴 거예요.”

“신부님이 장진수를 데려온 건 신부님이 부임 후 한참 뒤였습니까?”

“아! 그러네요. 신부님이 부임한 첫해에 데려왔어요. 부임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난 후였으니까 토마스가 우리 성당에 나오기 시작한 게 2011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군요. 그때 장진수에게 부모님이 있었습니까?”

율리아 수녀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적이 없었거든요. 나중에 다른 분들께 토마스의 부모님이 실종 후 사망 처리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척 안타깝다고 생각했었고.”

여기까지 얻은 정보로 생각해 보면 미카엘 신부가 장진수를 상진 성당에 데려왔을 당시 이미 놈의 부모는 살해당한 다음일 확률이 높다.

율리아 수녀님이 말을 이었다.

“토마스는 미카엘 신부님을 참 좋아했어요. 늘 같이 다녔죠.”

“수녀님.”

“네?”

“단순히 좋아해서 다닌 것 같았습니까?”

“무슨 뜻이죠?”

“부모님같이 굴었냐는 질문입니다.”

“아.”

율리아 수녀님이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라고 하기보다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신부님 말씀에 토를 다는 적이 없었거든요. 토마스는 사교성이 없는 편이라 친구도 만들지 않았어요. 저희 성당에는 청년부가 따로 운영되고 있는데 거기 모임도 한 번을 안 나왔으니까요. 늘 신부님만 따라다녔어요.”

“미카엘 신부님이 다른 성당으로 부임한 후에는 어땠습니까? 새로 오신 신부님에게 그렇게 대했습니까?”

율리아 수녀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아니요, 그러지 않았어요. 토마스는 미카엘 신부님이 이곳을 떠나고 다시 외톨이가 되었죠. 하지만 한 번도 미사에 빠진 적이 없었어요.”

놈에게 의지할 사람은 미카엘 신부밖에 없었다. 즉, 놈은 성당의 사제를 모두 좋아한 것이 아니라 미카엘 신부님만 숭배했던 것이다.

“수녀님은 장진수를 어릴 때부터 보셨죠?”

“생각보다 그리 오래 보진 못했어요. 스무 살 남짓할 때부터 봤어요. 더 어릴 때는 모르고.”

“대학을 다닐 때도 여기 나왔나요?”

“네, 맞아요. 단양 제일 대학교를 다녔거든요.”

단양 제일 대학교 해양학과. 장진수가 다닌 학교이다.

“이후 취업을 했는데 그때도 성당에 나왔습니까?”

“네, 이곳에서 꽤 유명한 수족관에 취직했다고 들었어요.”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언제였나요?”

“음……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어요. 수족관은 어쩌고 떠나는지 물었는데 그만뒀다고 했고요. 서울에 좋은 일자리가 생겨서 올라간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율리아 수녀님의 증언은 놈의 움직임과 일치한다. 놈은 이곳에서 대학을 나오고 취직을 했다가 직장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귀한 물고기에 단백질 투명화 작업을 시도하다 걸려 해고당한 후 서울로 올라갔다.

“수녀님, 혹시 장진수 일기장 같은 거 못 보셨습니까?”

“일기장…… 그런 걸 제가 봤을 리가.”

“가죽 표지로 되어 있는 A5용지 크기의 일기장인데.”

“가죽이요? 아! 토마스가 매일 들고 다니던 수첩. 그게 일기장이었나요?”

봤구나. 나는 옳다구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예, 보신 적 있나요?”

“네, 미사 시간에 거기에 항상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을 적고는 했어요. 가끔 성당 앞에 앉아 그림도 그렸고.”

“그림이요?”

“네, 무슨 그림을 그리나 싶어 물었는데 안 보여줬어요. 토마스는 항상 비밀이 많은 아이였으니까.”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 이 말씀이시죠?”

“네, 한 번은 시장에 갔다가 밖에서 그 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손에 쥐고 다녔어요.”

“그걸 어디 보관하는지는…… 당연히 모르시겠죠?”

“네, 그건 몰라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미카엘 신부님에 대해 질문 좀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은 왜…….”

“아, 별거 아닙니다. 그저 형식적인 질문입니다.”

“아, 네.”

“장진수 말고 미카엘 신부님이 아끼던 아이는 없습니까?”

“음, 모두에게 잘해주셨던 분이지만 특별히 토마스를 더 아꼈어요. 그 아이만큼 데리고 다녔던 아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미카엘 신부님이 여기 계실 때 남과 다른 행동이나 말을 했던 기억은 없으십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음, 글쎄요 저도 단정 지어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다른 신부님들과 차별화된 행동이나 말이 있었나 싶어서 여쭤본 겁니다.”

“아…….”

율리아 수녀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여신다.

“다른 신부님에 비해 산책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산책 좋아하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질문을 유도하려던 내게 율리아 수녀님이 말을 덧붙인다.

“밤 산책을 특히 좋아하셨어요.”

나는 멈칫하며 되물었다.

“밤 산책이라면 몇 시를 말씀하신 건지.”

“대중은 없는데 보통 밤 10시 전후로 나갔다 오세요. 한번 나가시면 두 시간쯤 걸리시고.”

“어딜 나가셨는지 모르십니까?”

“네, 그건 몰라요.”

사제가 밤에 산책을 나간다. 사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정보다. 사제라고 밤에 산책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미카엘 신부라고 생각하니 의심이 간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율리아 수녀님이 뭔가 떠오른 듯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

“아! 한번 신부님이 산책 나가셨을 때 저도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마주친 적이 있어요.”

“어디서 보셨습니까?”

“자전거를 타고 시장 쪽으로 가다가 논밭이 있는 거리에서 봤어요.”

“논밭?”

“네, 저쪽이요.”

수녀님이 가리키는 곳. 우연일까? 장진수가 시신들을 숨겨두었던 장소가 있는 방향이다.

나는 가만히 먼 곳을 응시했다. 설마 미카엘 신부가 장진수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걸까? 그때 율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그런데 그때 신부님이 토마스와 함께 있었어요.”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획 돌려 수녀님을 보았다.

“장……진수와 함께 있었다고요?”

“네, 자전거를 멈추고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토마스와 산책 중이라고 했어요.”

나는 다시 수녀님이 두 사람을 마주쳤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장진수가 살인을 하고 시신을 숨긴 곳 근처에서 미카엘 신부와 함께 산책을 했다?

“혹시 그때도 장진수가 일기장을 들고 있었습니까?”

율리아 수녀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가죽 수첩. 갈색 가죽으로 된 수첩이었어요.”

“다른 건 안 들고 있었고요? 수상한 물건 같은 거.”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음…….”

“아!”

뭔가 기억이 나신 걸까? 율리아 수녀님이 다시 입을 여신다.

“냄새. 냄새가 강하게 났어요.”

“냄새”

“네, 소독약 같은 냄새였어요.”

“소독약…….”

“토마스에게서 특히 많이 났어요. 기분 나쁠까 싶어 그 앞에서는 말 안 하고 나중에 신부님께 여쭤봤는데 토마스가 해양학과 입시 준비를 하느라 해부 실험 같은 걸 많이 해서 그렇다고 했어요. 실제로 토마스는 해양학과에 갔고.”

소독약 냄새가 났다. 수녀님은 지금 잘못 알고 계신다.

이미 해양학과에 입학을 해서 학교에서 진행되는 실험을 했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장진수는 입시 준비 중이었다. 대한민국의 입시는 실험 준비가 아니라 수능 공부다. 입시 준비 중인 아이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날 리는 없다.

사실 해양학과를 다닐 때라 하더라도 그럴 확률은 낮다. 소독약은 빠르게 증발한다. 학교에서 나와 산책 중에 강하게 날 정도면 수녀님을 만나기 조금 전에 그것을 취급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속으로 수녀님 말을 곱씹다가 문득 그녀의 말 속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토마스에게서 특히 많이 났다고 하셨는데.”

“네, 맞아요.”

“미카엘 신부님께도 같은 냄새가 났다는 겁니까?”

“아, 네. 토마스의 실험을 도와줬다고 하시던데.”

순간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전신을 휘감았다. 미카엘 신부가 장진수의 실험을 도왔다. 이건 놈의 살인을 도왔다고 볼 수도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아니, 어쩌면 장진수는 단순히 행동만 하게 하고 뒤에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시킨 것은 미카엘 신부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는지 율리아 수녀님이 얼굴을 살피며 묻는다.

“어디 불편하세요, 형제님?”

“아…… 아닙니다.”

또 다른 확률이 나타났다.

수녀님께 명함을 드린 후 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성당을 벗어났다.

차에 올라탄 나는 방금 수녀님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미카엘이 토마스와 함께 살인을 저질렀다?”

나는 아까 수녀님이 가리킨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다 차를 출발시켰다.

시골길을 달려 10여 분을 가 논두렁 옆의 공터에 차를 주차한 뒤 내렸다. 아직도 폴리스라인의 찢어진 스티커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현장. 이곳은 장진수가 11년간 살인을 하며 시신을 보관해 둔 곳이다.

가톨릭의 성지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김범우가 체포된 바로 그곳. 대강면 신구리다.

나는 멀리 보이는 언덕을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차를 주차한 농가에서 약 백 미터 떨어진 산기슭. 길이 나 있지 않아 등산객이 없는 산의 초입에 예전과 같은 진흙 바닥이 펼쳐져 있다.

바닥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들. 아마 이것은 이 장소에 희대의 살인 현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후에 이곳에 와본 사람들의 발자국일 것이다.

왜 끔찍한 살인이 자행된 현장에 와보고 싶은지 이해는 안 되지만 장진수 사건이 보도된 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일부러 와서 담력 테스트를 한답시고 동굴 안에 들어가려다 체포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둠을 동경하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이 끔찍한 곳에 오려고 하는지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걷고 있는 내 시야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는 동굴 입구. 언덕이 시작되는 초입에 구덩이가 있다. 그리고 그 구덩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아도 보이는 건 없다.

구덩이 안쪽 깊숙한 곳에 또 다른 구멍이 있고, 그것이 놈이 만든 지옥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구덩이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아직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출입금지 안내문

이 지역은 살인사건 현장으로, 추가 수사를 위한

조사가 있을 수 있으므로 무단출입을 금합니다.

무단 출입 시 민, 형사상의 책임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단양 경찰서 강력계.

나는 폴리스라인 테이프 끝을 살짝 떼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간 뒤 다시 테이프를 잘 붙였다.

품속에서 플래시를 꺼내 켜자, 어두운 동굴 입구가 잘 보인다.

사실 나는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지금 서 있는 이 위치에서만 안을 보았다. 직접 들어가 시신들을 끌고 나온 것은 KCSI 대원들이다.

혼자 찾아와 그런 걸까?

검은 공동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솜털을 바짝 서게 만든다.

이곳에 많은 시신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10년이 넘게 여기 갇혀 있던 시신도 있었다.

나는 공동의 입구에 서서 안쪽을 플래시로 비추어 보다 결국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신발을 신었음에도 구덩이 안쪽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다.

나는 플래시로 아래를 비추고 몸을 낮춰 바닥을 보았다.

“누군가…… 여기 왔었다?”

플래시의 동그란 시야 속, 발자국 한 쌍이 공동 안쪽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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