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살인의 기억-313화 (313/328)

살인의 기억 313화

21. 40년 그리고 35년(13)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 딱 그게 지금 내 기분이다. 나는 급히 노인의 빈 막걸리 그릇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그 이야기 자세히 좀 부탁합니다.”

“응? 뭘 자세히 말하라는 거요?”

“사제 이야기 말입니다.”

“실종된 사람 물으러 와서 갑자기 사제 이야기는 왜?”

사제가 용의자라고 말할 순 없다. 이 사람이 얼마나 신실한 종교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영어로 목사를 의미하는 단어는 minister, reverend, pastor, priest 등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통용되는 호칭은 pastor. 이 단어는 초원이나 목초지의 관리자를 뜻한다. 주님의 어린 양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일종의 목동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신부를 뜻하는 단어는 priest, Catholic이며,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father. 즉, 아버지라 부른다.

가톨릭에서 사제가 가지는 지위는 매우 높으며 잘못된 신앙을 가진 이들은 신부님 자체를 섬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수사 시 사제가 용의자임을 밝히면 난항을 겪는 일이 많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 수사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도 사제에 대한 증언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슬쩍 노인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아, 저희가 당시 여기 계시던 분들을 많이 인터뷰했는데 신부님 이야기는 처음이라서 여쭤봤습니다.”

노인은 내 얼굴을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음…… 그때 우리 회사에 와서 2주간 일을 배우고 간 신부는 아주 젊은 사람이었어. 이야기도 많이 나눴지. 술을 빚는다는 행위는 기다림의 미학인데, 숙성 과정을 살필 때는 특별히 집중해야 될 일이 없어서 대화를 많이 나누거든.”

“혹시 이름 기억하십니까?”

“에이, 40년 전에 2주 본 사람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나? 난 마누라 이름도 가끔 생각이 안 나는데.”

“혹시 얼굴 보시면 기억나실까요?”

“글쎄…… 그 후로 한 번도 안 봐서. 아…… 잠깐만. 그래, 그게 있었지. 잠깐만 기다려 보슈.”

노인이 일어나 사무실 책상 서랍을 뒤지다 찾는 것이 없는지 진열장에 꽂힌 앨범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앨범을 뒤지던 그가 손바닥으로 앨범을 탁 치며 말했다.

“여기 있네. 1989년 3월.”

검은색 표지를 가지고 있는 두꺼운 앨범. 겉면에 당시 근무하던 회사 이름이 써 있는 앨범 속에 매우 오래된 사진들이 있다. 어떤 사진은 흑백이고, 어떤 사진은 컬러였지만 컬러 사진의 화질도 그리 좋지 않다.

노인은 앨범의 비닐을 조심스럽게 벗긴 후 안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1989년도 3월에 제2공장 출범식이 있었거든. 그때 찍은 사진이요.”

제2공장 출범식? 회사 사원도 아닌 사제가 왜 이때 사진을 찍었을까? 나는 노인이 내미는 사진을 받아 들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진을 뚫어지게 보던 나는 관우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카엘 신부 젊은 시절 사진. 그거 좀 찾아봐.”

“예, 과장님.”

옆에 있던 관우가 노트북을 열었지만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노인에게 정보를 묻는다. 노인은 인터넷은 문외한인지 밖에서 직원을 불러와 인터넷을 연결해 주었다.

관우는 뛰어난 검색 실력으로 미카엘 신부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을 띄웠다.

독거 노인을 위한 도시락 봉사를 하는 미카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민 관우가 말했다.

“완전 젊을 때는 아니고 연도가 1994년인 걸 봐서 삼십 대 시절인 것 같습니다.”

나는 관우가 내미는 노트북 화면 옆에 노인이 준 사진을 붙였다.

제2공장 출범식 때 찍은 사진이라지만 직원들이 공장 앞에서 모여 찍은 사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술을 빚는 과정을 배우고 있는 미카엘의 사진이다.

아마 당시 기념사진을 찍으며 사제의 사진도 함께 찍어둔 모양이다.

노인은 노트북을 보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같은 사람이네?”

나는 노트북 화면 옆에 붙은 사진을 노려보았다. 미카엘이 아버지가 실종되던 때 이곳에 있었다. 대구에, 그것도 아버지가 출장 왔던 양조장에.

‘우연이 아니다.’

나는 미카엘 신부가 보통 사제가 아닌 악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가 이곳에 있었던 것과 내 부모님의 실종은 무관하지 않다.

관우가 몸을 내밀고 두 사진을 비교한 뒤 날 바라보고는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의 눈에도 동일인으로 보이기 때문이겠지. 옆에 노인이 있으니 말은 삼가고 눈빛만 보내는 관우.

나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저기 어르신.”

“어르신은 무슨, 사장이라고 부르쇼. 어르신이 뭐 나이만 처먹으면 어르신인가. 나 같은 주정뱅이가 어르신은 무슨.”

“예, 사장님이 편하시면 그리 부르겠습니다.”

“그래, 왜요?”

“혹시 이 사람. 술 빚으러 여기 온 뒤에 다시 온 적은 없습니까?”

“없는데.”

“소식도 모르시고요?”

“음, 연락이 없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고. 뭐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때 이후로 왕래가 없었던 것 같아요.”

“혹시 그 사람.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음?”

“다른 사제들과 좀 다른 행동을 했다거나, 수상한 행동 같은 거 없었습니까?”

“수상한 행동이 뭐……. 아, 아아. 그렇지. 이상한 게 하나 있었지.”

“뭡니까?”

노인이 노트북에 붙은 사진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 때, 제2공장 출범식을 한 이유가 양조장이 잘 돌아가서 확장을 한 거니 잔치를 했을 거 아니요? 당시 사장이 큰맘 먹고 닭을 잡았거든? 그때 직원들 다 먹이느라 한 오십 마리 잡았지.”

“예, 그래서요?”

노인이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근데 그때 회사가 덩치를 막 불리고 있어서 금전 여유가 좀 없었어요. 그래서 살아 있는 닭을 사와서 여기 일하는 아줌마들한테 좀 잡으라고 시켰거든? 남자들이 뭐 닭 잡을 줄 아나? 같은 폼은 다 잡으며 센 척만 할 줄 알지, 막상 살아 있는 닭 보면 전부 도망가는 게 남자 놈들이다 이 말이야.”

갑자기 닭 이야기로 빠진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건 사양인데. 노인이 말했다.

“아줌마들한테 일 맡겨놓고 우린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사제가 일어나더니 돕겠다고 가는 거야. 난 붙잡았지. 사제가 뭐 그런 일을 하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한사코 가더라고.”

그게 뭐. 어디가 이상한 거냐? 내 표정이 나빠질 무렵 노인이 다시 말을 잇는다.

“백숙이 나오고, 고기 뜯고 술 마시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며칠 뒤에 사제는 술 빚는 거 대강 배우고 돌아갔지. 근데 그 사람이 돌아가고 난 후에 공장 아줌마들이 자기들끼리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

이상한 소리? 나는 엉덩이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어떤 소리였습니까?”

“아니, 그 사제가 그때 닭 잡는 거 전부 자기가 할 테니 밑 준비만 하라고 했다는 거야. 스님이 아니니 살생하는 거에 거부감은 없겠지만 형사님들 혹시 신부님이 닭 잡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수?”

“음.”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고. 아줌마 중에 한 명이 사제가 닭 잡는 게 못 미더워서 몰래 가서 한번 봤는데 글쎄…….”

“글쎄…… 뭡니까?”

노인이 몸을 부르르 떨며 닭을 거꾸로 든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사제가 공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닭을 잡는데 이렇게 거꾸로 들고 목을 치고 있더라고 했어.”

닭 목을 쳤다. 순간 장진수 놈의 사건을 처음 만났을 때 개가 먹고 있던 닭들이 떠오른다. 그때 꽤 많은 닭이 피 칠갑을 하고 죽어 있었다.

노인이 자기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이상한 게 원래 닭을 잡을 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다리를 딱 잡고 가랑이를 확 찢어. 그럼 닭이 기절을 하거든? 그때 목을 친다 이거야. 근데 그 사제는 맨정신인 닭을 거꾸로 들고 목을 치는데 도마에 놓지도 않고 거꾸로 든 상태로 조선 시대 망나니가 사람 목 치듯이 쳐버렸단 거야. 칼을 웬만큼 써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불가능해. 요리사도 아니고 사제가 그랬다고 하니 이상하지 않소?”

“음.”

나는 순간적으로 예전에 개의 기억을 읽었을 당시 장진수 녀석이 닭을 죽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놈은 닭을 거꾸로 들고 목을 친 후 피를 사방에 뿌렸었다.

노인은 내가 반응을 해주니 신이 나는지 입술을 핥아가며 침을 튀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말이야. 모가지를 치면 피가 나올 거 아냐? 그럼 원래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를 빼. 어느 정도 빠지면 물에 담가놔야 비린내가 빠지거든. 근데 그 사제는 닭 피가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거꾸로 들고 있었다고 했수.”

노인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물론 이건 공장 아줌마들이 했던 소리요. 내가 직접 본 건 아니고. 으,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치네. 가고 나서 알았으니 망정이지 옆에 있을 때 알았으면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을 거요.”

나는 이야기를 듣다 관우와 눈을 마주쳤다. 관우는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생리학적으로도 냉혈한(冷血漢)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정신 심리학 연구진 등 다수의 분석에 따르면,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겪는 공포 반응이 나타나지 않거나 적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예를 들어 동물이 죽는 끔찍한 사진을 보여줘도 동공이 커지지 않는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도 손에 땀이 나지 않으며, 롤러코스터를 태워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는다.

저런 점 때문에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도 죄책감이나 불쌍한 마음보다 ‘죽으면 어떤 소리를 낼까?’ 이 동물은 죽을 때 ‘어떤 표정일까?’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더 크다.

노인이 막걸리를 마신 후 결정적인 말을 내뱉는다.

“아줌마들이 내색은 안 해도 뒤에서 할 말은 다 하거든? 내가 담배 태우다 들었는데 그 사제가 닭 잡으면서 실실 웃었다고 했어. 으, 소름 끼쳐. 내가 그 뒤로 성당 나가기가 무서워서 10년 넘게 안 나갔다니까?”

나는 말없이 관우와 눈빛만 교환 중이다. 미카엘 신부를 용의선상에 올릴 이유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관우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더니 내게 화면을 보여준다. 오 선배에게서 온 문자다.

[교수에게 자백받았다.]

관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시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었던 교수에게 알리바이가 위증이었다는 자백을 받았다는 것은 해당 사건 재조사 시 제1의 용의자로 미카엘 신부를 소환조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일어나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협조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나야 뭐…… 도움 준 게 전혀 없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와 공장을 벗어난 후 차에 탄 나는 관우에게 말했다.

“오 선배님께 미카엘 신부 긴급 체포하라고 전달해.”

“아직 증거 없습니다만. 체포가 아니라 임의동행 요청해야 되지 않을까요?”

“교수의 증언으로 위증죄는 성립할 수 있어. 임의동행 수준이라면 천주교 주교회의가 신병을 넘겨주지 않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서울 올라가실 거죠?”

“어, 나 장진수 병원에 좀 내려줘라.”

“거기 가시게요?”

“그래, 미카엘 신부와 대질 조사하기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더 있어.”

“알겠습니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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