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6화
22. 악(惡)의 필름(6)
경악한 놈의 얼굴. 나는 놈의 표정을 마주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종교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꽁꽁 포장된 놈의 살인 의지를 하나씩 깨부수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오래된 열등의식을 깨부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말했다.
“네 아버지 말이야. 사과 장수를 하던 아버지.”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놈의 눈썹이 꿈틀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사 내용을 말했다.
“젊은 시절에 사냥을 하셨던데. 어린 너를 데리고 사냥을 가기도 했겠지?”
“…….”
“뭘 잡았지?”
“…….”
“왜 이래? 별 이야기 아니잖아, 그냥 사냥 이야기일 뿐이야. 너도 알 텐데. 어차피 증거는 다 나왔고 넌 사형이 확정적인 마당에 사냥 이야기 정도 못 할 건 없지 않나?”
놈이 세상의 법으로 사형을 받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것을 성스러운 순교로 생각하든 아니든 인간의 법으로 철퇴를 내릴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아니, 어쩌면 이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것을 감사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신을 위해 순교하는 것이 아닌 평생 바퀴벌레가 나오는 축축한 감옥에서 썩게 될 테니까.
놈이 날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토끼와 꿩.”
“음, 불법은 아니었네?”
“그 시절엔 사냥이 불법이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있었나?”
“별로.”
“그냥 아버지가 가자고 해서 간 건가?”
“네.”
“그럼 재미있는 사냥은 없었나?”
“…….”
놈은 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보았다. 놈이 멈칫하는 것을.
나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있네. 그렇지?”
“…….”
“아아, 살인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아버지와 사냥에 대한 질문인 거 나도 잊지 않았어. 재미있는 사냥은 어떤 거였지?”
“…….”
놈은 잠시 생각을 하다 머뭇대며 말했다.
“멧돼지 사냥이었습니다.”
“오, 그래. 그 시절에 멧돼지는 농사를 망치는 주범이었으니까.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은 멧돼지 사냥을 해도 되는 기간이 있으니 그때도 그랬겠지. 그래, 그게 왜 재미있었나?”
“위험하니까.”
“위험해?”
“네.”
“멧돼지 사냥이 위험하다…….”
토끼와 꿩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총을 쏘고 공격을 하면 도주한다. 하지만 멧돼지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이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도 먼저 공격할 때가 있다.
“정리하자면 스릴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
“…….”
그때 취조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관우가 허리를 굽히고 들어와 메모지 한 장을 전해주고 나간다. 메모지를 본 나는 씩 웃었다.
[장진수 긴급 수술 성공.]
녀석, 살았구나. 끈질긴 녀석이다. 총을 맞고도 살더니 이번에도 살아나네.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이.”
구종식이 날 바라본다.
“장진수 말이야.”
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나는 메모지를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살았다.”
“…….”
“네 범행 일체가 기록된 이놈의 일기장과 발견된 증거를 대조해 보는 건 시간문제야. 괜히 버티지 말고 말을 하지 그래.”
“나는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습니다.”
“그래? 할 수 없지, 그건. 네가 부끄럽지 않다는데 내가 어쩌겠어. 그건 넘어가자고. 그런데 질문이 있어.”
내가 인정해 주어서일까? 놈의 표정이 약간 나아진다.
“뭡니까?”
나는 다시 턱을 괴고 말했다.
“아까 말이야,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그러는데. 네가 죽인 사람들이 쓰레기였다고.”
“예.”
“뭐라고 했지? 창부, 포주, 건달이라고 했나?”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놈의 얼굴에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 나는 턱을 괴고 놈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럼 네 엄마도 창부였냐?”
“…….”
“아냐? 그럼 포주나 건달?”
“…….”
“그것도 아냐? 그럼 왜 죽인 거야? 앞뒤가 안 맞는데.”
앞뒤가 맞을 리가 없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였는데. 나는 놈을 좀 더 자극하며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아니면 신이 시켰나? 머릿속에서 막 죽이라고 시켰어?”
“…….”
“네가 생각해도 지랄이지? 신이 그런 소릴 할 리가 없지.”
놈은 내 도발에 발끈하며 언성을 높인다.
“그 여자는 쓰레기였습니다!”
“오, 그래? 그럼 방금 네가 말한 범주에 드는 사람이었다는 건가?”
“이 세상 쓰레기가 꼭 창부, 포주, 건달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음, 그건 그렇지. 왜? 무슨 짓을 했는데?”
“…….”
놈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간음을 했습니다.”
간음(姦淫). 결혼을 한 사람이 부부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했다는 뜻이다. 즉,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놈은 지금 알까? 방금 스스로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걸 인정했다는 것을.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서류를 뒤척이며 말했다.
“네 어머니는 암 환자였다. 그건 알고 있었나?”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어머니 죽음 후에 경찰이 말해줬습니다.”
“가만있어도 죽을 사람이었는데 굳이 먼저 죽였던 거네?”
“…….”
“그럼 네 아버지와 여동생은? 그것도 네가 한 건가?”
“아닙니다!”
놈이 발끈한다. 음, 이쪽은 아닌가 보군.
“아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두 사람은 왜 자살을 한 걸까?”
“…….”
놈이 시선을 떨군다. 나는 몸을 놈에게 내밀며 말했다.
“몰라? 내가 말해줘? 두 사람은 네가 어머니를 죽인 걸 알고 있으니까.”
“…….”
“어디 가서 말도 못 했겠지. 내 아들이, 내 오빠가 아내, 엄마를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은 없으니까 말이야. 아버지는 결국 아내의 시신을 집 안에 숨겼다. 혼자 했겠지만 여동생도 그걸 지켜보고 있었겠지. 정신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아니, 네 집에는 온통 어머니 시신이 썩으며 풍기는 냄새가 진동하고 하고 있었다. 잊으려 해도 계속해서 나는 냄새 때문에 두 사람은 괴로웠을 거야.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겠지. 그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다.”
“…….”
“결국 셋 모두 네가 죽인 거야.”
구종식이 수갑 찬 손으로 테이블을 마구 내려친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버지와 동생은 내가 안 죽였어!”
“아아, 그래. 직접 죽인 건 어머니, 간접 살인으로 아버지와 여동생. 됐나?”
씩씩거리는 구종식. 나는 일어나 있는 놈을 노려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앉아, 이 새끼야.”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다시 말하지만 너 이제 사제 아니다. 일반인 신분의 범죄자에게 취해줄 수 있는 예의라도 건지고 싶으면 앉아.”
놈은 나를 노려보다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살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합니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겁니다.”
놈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놈이 드디어 정화가 아닌 살인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나는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다시 한번 도발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죽일 때 어떤 소리를 내시던가?”
놈이 날 죽일 듯이 노려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고양이 여든아홉 마리. 죽을 때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 않던가?”
놈의 눈에 경악이 깃든다.
“어, 어떻게.”
“네 어머니는 어때? 어떤 소리를 내며 죽던가?”
“…….”
“그건 궁금하지 않았나 보지?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때?”
“무슨 말입니까?”
“네가 죽인 다른 사람들 말이야. 모두 다른 소리를 내며 죽던가?”
“…….”
놈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고양이를 처음 죽인 건 아마 네놈이 어릴 때였겠지?”
“…….”
“너 혹시 개구리 삶기라는 말 아냐?”
“모릅니다. 개구리는 죽여본 적이 없어서.”
“어 알아. 재미없었을 테니 안 죽였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뒤로 돌아갔다. 어깨를 잡은 나는 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펄펄 끓는 물에 살아 있는 개구리를 넣으면 놈은 빠져나오려고 사력을 다하다 죽는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자신이 삶아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유유히 헤엄치다 죽는지도 모르고 저승으로 가지.”
“……무슨 뜻입니까?”
“지금의 네 모습 같지 않아? 처음에는 고양이, 그리고 개. 종국에는 사람.”
“…….”
“너는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살인에 둔감해진 거다.”
“그게 무슨!”
나는 발작하려는 놈의 어깨를 꽉 누르며 고함을 질렀다.
“아가리 닥치고 들어, 이 짐승 같은 새끼야!”
“큭!”
나는 놈의 어깨를 눌러 테이블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다시 말했다.
“네놈이 생명을 죽이기 시작한 건 종교를 갖기 전이다.”
“…….”
놈은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버둥거리다 내 말을 듣고 멈칫한다. 나는 놈의 옆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음속에 대고 물어라. 네가 신에게 기도할 때처럼 네 마음속에 물어봐. 네놈이 한 짓이 신이 시켜 한 짓인지 네가 하고 싶었던 짓인지.”
“…….”
“어린 네놈이 장난처럼, 단순히 죽을 때 내는 소리가 듣고 싶어 생명을 죽일 때도 신이 네게 시켰나? 어머니를 죽일 때는 어땠지? 혹시 죽이고 난 뒤에 신의 계획을 가져다 붙였던 건 아닌가? 순서를 한번 생각해 봐.”
“…….”
“그리고 말이야.”
나는 놈의 귀에 입을 바싹 들이대고 속삭였다.
“우리 수녀님이 말씀하셨지.”
“…….”
“기도를 하다 신의 음성이 들리면, 그것이 신의 음성인지 악마의 음성인지 잘 생각해 보라고. 악마는 신의 뒤에 숨어 속삭일 때도 있다고 말이야.”
“…….”
“어때? 다시 생각해 봐도 그게 신의 음성인가?”
놈의 눈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견고해 보이던 놈의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형을 당하면 역사 속 순교자들처럼 백 년, 이백 년 후에 숭고한 죽음으로 기억될 것 같나? 웃기는 소리. 넌 못 죽어. 감옥에서 늙어 죽으면 몰라. 한국은 사형 집행 안 한다고, 이 새끼야.”
나는 다른 손으로 놈의 머리를 테이블로 밀어붙인 후 다시 속삭였다.
“만약 사형을 집행한다 해도 네가 순교자로 불릴 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에 분명히 한 줄은 남을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널 기억하겠지.”
나는 놈의 귀가 떨어질 정도로 크게 고함을 질렀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로,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