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억 327화
22. 악(惡)의 필름(7)
한 달 뒤, 부산 교도소.
탈옥 사건 때 친분을 쌓은 교정 직원들의 호의로 나는 면회실이 아닌 변호사 접견을 위한 쾌적한 방의 소파에 앉아 있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교정본부 직원이 고개를 내민다.
“과장님, 장진수 데려왔습니다.”
“예, 들여보내 주세요.”
“13하26 5899, 들어가.”
13하26 5899 오랜만에 들어보는 녀석의 수감번호이다. 돌아와서도 같은 방을 쓰는구나.
나는 교정본부 직원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 탈옥을 위해 한계까지 다이어트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왔구나.
나는 소파를 눈짓했다.
“앉아. 직원분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직원이 나가고 장진수 녀석이 수갑을 찬 채로 소파에 앉는다. 나는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다 물었다.
“머리는 어때?”
녀석이 자기 머리를 쓱 만져본 뒤 고개를 끄덕인다.
“치료 잘 받고 있습니다.”
“몇 바늘 꿰맸냐?”
“오십 바늘 정도요.”
“많이도 꿰맸네. 안 죽은 게 용하다, 새끼야.”
녀석은 자기 머리를 긁다가 옅게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 얼굴을 굳힌 녀석이 물었다.
“부모님 장례는 치르셨습니까?”
“어, 어머니 묏자리 옆에 모셨다.”
“유감입니다.”
“유감은. 40년 가까이 그런 곳에 계시다 이제 제대로 모시게 됐으니 잘된 거지.”
녀석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강한 분이군요, 형사님은.”
“몰랐냐?”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강한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였다면 지금의 형사님보다는 조금 더 아파하고, 조금 더 슬퍼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관을 어머니 묏자리 옆에 안치할 때 나는 장례식에 참석했던 수녀님들과 강혁 아저씨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었다. 하지만 이 녀석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녀석이 화제를 돌린다.
“미카엘은 어떻게 됐습니까?”
“뭘 물어?”
“사형입니까?”
“당연하지.”
“어느 교도소로 갑니까?”
“그걸 내가 말해줄 것 같으냐?”
“…….”
“나 경찰이다. 너 잡을 때도 경찰이었고, 구종식 그 썩을 놈 잡을 때도, 지금도 경찰이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경찰일 거야. 가끔 찾아오마. 힘든 거 있으면 그때 말하고. 직원한테 부탁해서 자장면 한 그릇 시켜놨으니까 먹고 들어가.”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방을 나서려 했다. 그때 녀석이 등 뒤에서 나를 부른다.
“형사님.”
“음?”
돌아보니 소파에 앉아 지긋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이 보인다.
“제가…… 형사님을 구해줘서 이렇게 대해주시는 겁니까?”
“…….”
“한 달 동안 벌써 세 번이나 면회 오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이렇게 밥도 사주시고.”
“고맙냐?”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살면서 미카엘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이렇게 자주 보는 것도 처음이라 적응도 안 되고.”
“그래서 오지 마?”
“아뇨, 그건 아니고.”
나는 다시 녀석에게 다가가 거즈를 붙여놓은 머리를 슬쩍 만져본 뒤 뒤통수를 슬쩍 밀었다.
“고맙긴 뭘 고마워, 살인범 새끼가.”
녀석이 날 올려 본다.
“그럼 제게 왜 이렇게…….”
나는 녀석의 이마를 주먹으로 살짝 때리며 말했다.
“넌 뉘우치고 있다는 걸 아니까.”
“…….”
“그래도 지은 죄는 어쩔 수 없어. 평생 여기서 네가 죽인 사람들 생각하고 살아라.”
“…….”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들긴 후 다시 걸으려 하다 멈칫하며 녀석을 돌아보았다.
“장진수.”
“예?”
“너 아직도 피해자들이나 유가족들에게 안 미안하냐?”
“…….”
녀석이 답을 하지 못한다. 아직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알지만 그로 인한 미안함은 느끼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나는 이해가 된다. 녀석은 구종식 놈에게 장기간 세뇌를 당했기에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녀석이 자신의 그런 부분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진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것은 녀석을 응원하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눈앞에 있는 놈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연쇄 살인범이란 걸 잊지 않았다. 뉘우친다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연쇄 살인범 중에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유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옥에 사는 짐승, 악마들과 조우하며 산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무척 어렵다.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인간이 가장 무섭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 녀석의 뉘우침을 통해 꺼져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아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잡고 귓가에 나직한 말을 남겼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미안해지고, 남은 유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내게 말해라. 모두는 아니겠지만 네게 꼭 사죄받고 싶은 유가족이 그때도 있다면 내가 모셔와 주마.”
“…….”
“나 간다.”
나는 다시 여길 찾을 거다. 그때마다 이 녀석의 마음속에 인간적인 감정이 나타나는지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나의 삶에 있어 큰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
* * *
고시원 뒤 포장마차.
오늘은 주인아저씨가 가게 최고의 명당을 내주었다.
비록 도로 옆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였지만 이곳에서도 노른자 자리는 따로 있다. 바로 가장 안쪽, 바로 옆이 절벽이라 안전 바로 막혀 있는 자리이다.
산 위에 있는 포장마차였기에 이곳에 앉으면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나는 늦은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불빛 아래 있는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나와 함께 야경을 보고 있던 강혁 아저씨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몰라서 묻냐? 야근이지, 뭐야?”
“에이, 멋없게.”
“멋은 염병,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지, 이놈아.”
나는 씩 웃으며 다시 야경을 바라보다 소주잔을 들고 아저씨를 보았다.
아저씨는 오늘 은퇴하셨다. 명예로운 은퇴. 내가 꼭 선물해 주고 싶었던 아저씨의 은퇴는 순조롭게 끝났다.
“은퇴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아저씨는 나와 잔을 부딪친 후 쓴웃음을 짓는다.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분식집 하신다면서요.”
“진짜 할래?”
“왜 저한테 물어요?”
“같이하기로 하지 않았냐?”
“어이구, 앞날 창창한 사람한테 그게 무슨.”
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 새끼, 구라였냐?”
“아뇨? 할 건데요.”
“안 한다며?”
“아뇨, 저 은퇴하고 한다고요.”
“인마! 너 은퇴하면 내가 몇 살인데!”
나는 빙긋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걱정 마세요. 제가 괜히 최연소 총경입니까? 최대한 빨리 청장 찍고 금방 돌아갈 테니 좀 쉬세요.”
아저씨는 잠깐 삐쳐 있었지만 내가 경찰 생활을 계속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는지 금세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나는 소주를 한잔 들이켜고 야경을 보며 물었다.
“아저씨.”
“아직도 아저씨라고 부르기 있냐?”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라고, 이 질풍노도의 중2 같은 놈아. 더럽게 말 안 듣네.”
“그건 시간을 좀 주세요.”
“음, 그래. 쉽게 안 되겠지. 그래, 왜 불렀냐?”
나는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은 왜 죄를 짓는 걸까요?”
“음.”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아니.”
“왜요? 안 궁금해요?”
아저씨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본다.
“그냥 하나만 기억해라. 죄에 빠지는 존재는 인간이고, 그 죄를 슬퍼하는 자가 성자이며, 죄를 자랑하는 자는 악마이다.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들만 존재한다.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의인과,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는 죄인이다. 우리는 부디 전자로 살아가길 희망해야겠지.”
아저씨의 말에 나는 싱긋 웃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아저씨는 나의 혼란스러운 고민을 이런 식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해결해 주시곤 한다. 앞으로 살아 계시는 내내 내게 이런 존재로 남아주시기를 빈다.
나는 아저씨 잔을 새로 채워주며 말했다.
“장진수 말인데요.”
“음.”
“자기 죄를 알고 있어요. 그런 놈도 갱생이 가능할까요?”
“음…… 글쎄.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지. 실수는 항상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용기가 있어야 하겠지. 놈이 자기 잘못을 깨달은 것으로 끝나면 그뿐이다. 유가족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어쩌면 그런 놈도 인간으로 죽을 수 있겠지.”
음, 그런 걸까? 유가족의 생각은 어떨까? 나는 구종식을 평생 용서할 생각이 없는데. 이 분노와 슬픔도 어쩌면 세월이란 힘 센 장사 앞에서 언젠가는 옅어지고 마는 걸까?
장진수 녀석에게 희생된 피해자의 유가족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질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저씨가 내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데니스 닐슨이란 연쇄살인범이 있다. 감옥에 30년 넘게 수감되어 있지. 그 녀석이 감옥에서 담당 형사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지.”
“뭐라고 썼는데요?”
아저씨는 야경을 바라보며 마치 명시를 읊는 듯한 표정으로 편지를 왼다.
나는 여기 앉아 있네. 오래, 아주 오래.
나 홀로 해변에 앉아 있네.
속삭이는 바다를 곁에 두고.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며, 희망하며.
모래가 눈물로 얼룩지고
파도가 죽은 것을 토해 내는구나.
바다는 삶을 토해 내고,
우리 인간들은 모래 위에 앉아
너 그리고 나는
항상 그렇게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다.
경대 시절 잠시 이 범죄자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지만 이런 편지 내용까지는 몰랐다.
아저씨는 놈의 편지 내용을 말해준 뒤 팔짱을 꼈다.
“세상에 악한 사람은 없다. 오직 악행만이 있을 뿐.”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는 팽팽한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듯 인생길을 걸어간다.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며, 그 밧줄은 심연 위에 놓여 있다. 가다가 동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해 도덕적 우월성을 성취할 수도 있다.”
나는 씩 웃으며 일어나 아저씨 옆에 섰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네요.”
아저씨는 멋진 척을 하다 정곡을 찔렸는지 헛기침을 한다.
“에헴, 이래서 똑똑한 것들은 싫어.”
“하하.”
“잠깐, 근데 동물이 뭔 죄를 지어? 악행은 인간만 하는 짓인데.”
“음?”
“니체 이놈도 이거 사이비였네. 안 그래?”
“하하!”
아저씨는 씩씩거리며 한참이나 니체 욕을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목 과장님, 오 선배님, 그리고 연주와 관우가 저 멀리서 뛰어 올라오며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반겨주며 말했다.
“나는 어쩌면 끝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악마들을 잡으러 다니는 데 쓴다고 해도 말이죠.”
아저씨가 멀리서 올라오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린다.
“네가 희망을 갖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악마들을 잡는 거다, 이놈아.”
나는 빙긋 웃으며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런 내게 나의 가족들이 달려와 안긴다.
밤하늘 구름 속에 숨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도 웃고 계신다.
잘했다고, 수고 많았다고.
<연재 후기>
안녕하세요, 살인의 기억을 아껴주신 독자님들.
작가, 경우勁雨입니다.
살인의 기억은 살인마의 인터뷰 이후 두 번째로 도전한 범죄 스릴러 소설인 만큼
개인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합니다.
물론 성적은 살인마의 인터뷰 쪽이 훨씬 좋아 새로 도전하는 장르에서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글이 잘 다듬어진 글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이 작가로서 살아가는 제게 소중한 인생 경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번의 연재를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저는 더욱더 단단한 작가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 후에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하는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 후회만 하지 않도록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 생각입니다.
살인마의 인터뷰와 달리 살인의 기억의 마지막은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주인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것은 악은 어떤 경우도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악과 대항해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은 살인마의 인터뷰와는 또 다른 결말이죠.
글을 준비하며 저는 실제로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수많은 범죄 예시, 범죄 현장의 사진, 범죄자들의 사진과 말, 시신들의 참혹한 사진을 보는 내내 그러한 마음은 더해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결말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주니까요. 어쩌면 제가 잡고 싶었던 인간을 향한 희망은 저 스스로가 놓고 싶지 않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메인이 되는 에피소드는 가톨릭과 연관된 부분이 많아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저희 삼촌이 신부님이시고, 누나가 수녀님이시기에 정보는 많이 얻었지만
이런 내용을 쓰려고 이것저것 물었다는 걸 두 분이 아시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다음 신작이 나온다면 제가 두들겨 맞고도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동안 살인의 기억을 사랑해주셨던 여러분.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계셨기에 완결까지 글을 쓸 수 있었고,
여러분이 계시기에 저는 또 다른 신작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기획이 완료되지 않았기에
미리 예고해 드릴 순 없지만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준비 기간 동안의 글 소식이나, 작가의 이야기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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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저는 더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항상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모두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