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동물 2
혼자 있는 아기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는 달리, 어미가 아닌 사람한테 길러져서인지 우리가 다가오자 기쁜 듯이 울며 다가왔다.
“쯧쯧..... 불쌍한 녀석이야.”
“어째서 부모한테 버림받은 건가요?”
“여우 녀석이 부모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를 물어갔어. 이 녀석만 남았는데 새끼가 사라졌다는 쇼크 때문인지 남은 이 아이를 방치하더군.”
“.....이런”
“고양이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판단된 곳에만 새끼를 낳는데 그게 하필 마당이었어..... 다른 동물들이 못 들어오게 막는다고 해도, 여우같은 녀석들은 담벼락을 넘고 들어오더군.”
아무리 집안에 고양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고 해도, 고양이들과 대화할 수 있지 않은 이상 고양이들한테 이곳이 더 안전하다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눈도 못 떴을 때부터 돌보던 녀석이라 사람을 무서워하진 않아.”
“제가 데려가도 정말 괜찮을까요?”
“쯧. 어차피 그 녀석 말고도 돌봐야 할 고양이들은 많네. 끝까지 책임져주고 싶지만..... 키울 수 있는 자본과 시간이 있는 사람이 입양을 해준다면 나야 좋지.”
그 말에 고모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 봬도 제 조카가 마을의 자랑입니다. 자랑!”
“그런가?”
“예!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은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녀석입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밭을 사도 될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녀석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호오? 자네 사업이라도 하는 겐가?”
“그냥..... 소소하게 글이나 씁니다.”
나는 홀로 냥냥 거리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손으로 들어올렸다.
겨우 손바닥에 찰 정도로 작디 작은 아이였다.
“글?”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모르실 거예요. 하하..... 그보다 이 아이 이름은 있나요?”
“아직 짓지 않았네. 입양 갈지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이름까지 지으면 정이 드니까.”
“그럼.....”
품종은 샴고양이로 수컷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 병아리 이름이.....’
소설 속 드래곤의 모티브가 되었던 병아리의 이름은 팡이었다.
이름을 성의 있게 지으면 먹기 힘들어진다는 아버지의 말에, 내방 구석에 있는 곰팡이에서 이름을 따왔었다.
“팡이로 하자.”
“pang-i? 그게 뭔 뜻인데?”
“한국말이에요. 그냥 구석에 있는 무언가란 뜻이에요. 하하.”
그렇게 팡이의 입양이 확정되자마자 베티부인이 방문을 두들겼다.
****
베티 부인이 해준 아침밥은 정말 맛있었다.
다만, 우리한테 줄줄 알았던 미트 파이라던가, 생선찜 등의 요리들이 전부 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료를 싫어하는 고양이들이 많거든요. 저염식이라 먹어도 괜찮아요.”
“......”
“고양이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사람이 먹으면 비릴 수 있어요.”
아무리 고양이를 위한다고 해도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거기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드래곤을 위한 음식을 체계적으로 구상해보자. 그리고 드래곤 훈련 방법도.’
드래곤을 위한 지식과 그들을 길들이기 위한 음식 등 여러 가지 스토리라인들이 생각났다.
“고양이는 개처럼 마당에서 놓고 키우면 안 되네.”
“그럼요. 그런데 어느 고양이들은 마당에 돌아다니다 오고 그러던데요?”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게 딱히 좋은 생각같진 않네. 심지어 개들조차 코요태같은 들짐승들에게 잡혀가는데 고양이들은 어떻겠는가. 팡이의 형제도 그러지 않았나?”
“그걸 생각 못했네요.”
“여우나 코요태같은 녀석들은 특히 조심해야 해. 몸도 날렵한 녀석들이라 담벼락도 쉽게 넘을 수 있어서 길고양이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니까.”
아기 드래곤은 아직 너무 여리다.
거기에 돌연변이 드래곤이다보니 다른 드래곤들보다도 몸이 약하다는 걸 생각하는 게 좋겠지.
“똑똑한 고양이들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모래에 적응 훈련시키게.”
“화장실에서 처리하면 좋지 않아요? 치우기도 쉽고.”
“그러면 발바닥 젤리가 항상 축축하지 않나! 발에 오줌도 계속 묻히고 다닐 텐데, 자네는 집에 오줌 묻은 발로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있으면 좋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대소변 문제는..... 적지 말자.
아무튼 나는 될 수 있는 한 고양이 키우는 방법에 대해 자세한 조언을 얻고자 했다.
“잘 키워주게.”
“네. 감사합니다.”
도널드와 베티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내 품에 안겨 자고 있는 팡이를 미련이 가득한 얼굴로 한참이나 바라보셨다.
‘하긴 눈도 못 떴을 때부터 키우셨으니까..... 정이 안 드는 게 이상한 거지.’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말로만 그럴 뿐, 그간 들었던 정이 쉽사리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럼 이만 가보게.”
더이상 보면 정말 못 떠나보낼 것 같았는지, 도널브와 베티 부인은 팡이한테서 시선을 떼고 뒤돌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언제든지 보고싶을 때 저희집에 놀러오셔도 괜찮아요.”
-냐앙~!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팡이는 나지막하게 울 뿐이었다.
****
팡이를 집으로 데려오자 부모님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와 팡이를 바라보셨다.
“웬 고양이냐?”
“집에서 키워보고 싶어서요. 그래도 되죠?”
“먹지도 못하는 걸 쓸데없이 왜 키워?”
“제가 책임지고 키울게요. 걱정마세요.”
“쯧쯧..... 이미 데려온 걸 뭐라 할 수는 없다만은.....”
아빠는 살짝 못마땅하다는 눈빛이셨지만,
반면 평소 동물을 좋아하시던 엄마는 상자 안에 겁먹은 상태로 있는 팡이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셨다.
“어머? 샴고양이네?”
“아시네요?”
“고양이를 모르더라도 샴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니? 어머 귀여워라. 얘 이름이 뭐니?”
“팡이요.”
그 말에 관심 없어 보이던 아빠까지 미간을 찌푸리셨다.
“.....팡이? 어릴 적에 키웠던 그 닭?”
“네. 어감이 귀여워서요.”
“그래도 먹으려고 키웠던 녀석하고 똑같이 이름 지으면 어떡하니?”
“왜요? 고양이들 이름 짓는 거 보니까, 쿠키니 젤리니 크림이니 먹는 걸로 많이 짓던데요?”
“그래도 그렇지...... 에휴.”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겁먹은 팡이를 향해 손가락을 내미셨다.
그러자 팡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을 피해 상자 안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고양이는 예민해서 입양가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우선 방안에 놓고 적응할 때 까지 기다려주자.”
“안 그래도 도널드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채취가 묻은 수건을 가져왔으니 당분간 같이 놔두라고 하더라고요.”
“애 불안해 하니까 얼른 올라가봐. 참. 아침은 먹었니?”
“네. 먹고 왔어요.”
팡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장 어둡고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뜬 팡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자. 일단 하루 정도는 내버려 두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그럼 나는 밀린 잠이나 자볼까.”
도착하자마자 밤새도록 글을 수정해서 그런지 아직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멀뚱멀뚱 내 방을 탐색하고 있는 팡이를 내버려 둔 채 잠에 빠져 들었다.
*****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펼쳐진 충격적인 상황에 말문이 턱 막혔다.
“허허허허허! 이놈 봐라?”
-냐앙? 냥!
내 침대 옆에서 허리를 수그린 아빠와 놀아주고 있는 팡이가 보였다.
어디서 갈대 하나를 뜯어 왔는지, 갈대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휘둘러주자 팡이가 마지못해 놀아주는 느낌이었다.
‘일어나야 하나.. 아니면 쭉 자고 있는 척을 해야 하나?’
언제 몰래 내 방까지 들어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탐탁지 않아하셨던 아까와는 다르게 아빠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웃음꽃이 피셨네.’
아빠가 저렇게 인자하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일에 치여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셨던 아빠가 무방비 상태로 웃는 그 모습을 잠깐만이라도 내버려두고 싶었다.
‘모른 척 하자.’
살며시 떴던 눈을 다시 감고, 귀에 잔잔히 들려오는 행복한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다시 잠에 빠지려는 그때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이 양반아. 아무리 고양이가 좋아도 그렇지 적응할 때까지 좀 내버려 두지 그래요?”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보다 통조림은 사왔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지.... 그보다 팡이 사료 순치는 했을까요?”
“물에 불려서 통조림 섞어주면 먹겠지. 옛날에는 고양이들한테 사료나 통조림은 주지도 않았어. 그냥 먹다 남은 음식 섞어주면 먹었지. 그때 고양이들 참 많이 키웠는데.”
“많이 키운 게 아니라 지들이 그냥 집에 와서 살림을 차린 거겠죠. 아무튼 배고플 텐데 밥이나 주자고요. 혹시 몰라서 사료 사온 거 물에 불려놓고 있어요.”
부모님은 팡이를 마지막으로 쓰다듬고는 밥을 가지러 방안에서 나갔다.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냥?
“.....어째 부모님이 나보다 널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침대에 기를 쓰고 올라오려는 팡이의 조그마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
그로부터 며칠간 나는 팡이의 행동을 계속 관찰했다.
팡이의 행동을 관찰하며 혹시 부족한 게 있을까 뮤튜브에서 다른 고양이들의 행동들까지 하나하나 찾아보며, 작중 아기 드래곤의 행동 묘사를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 드래곤은 발톱을 갉는 걸 좋아한다.
[하스는 아카데미 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전부 엉망으로 만들어 교수님한테 혼났다.]
2. 날개가 달린 드래곤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
[하스가 갑자기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직 너무 어린 드래곤이다보니 날개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앞만 보고 올라간 것 같았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데 내려오기는 무서운 것 같아 교수님이 구해주셨다.]
3. 드래곤들은 특정한 식물의 냄새를 맡으면 안정감을 취한다.
[친구가 된 ‘베일’의 드래곤은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만 살았기 때문인지, 아카데미에 오자 불안 증상이 많아졌다. 교수가 ‘카시카 나무’를 불에 한 번 태운 다음, 말린 것을 드래곤한테 맡게 해주니 마치 몽롱한 약을 먹은 것처럼 좋아했다.]
4. 돌연변이 드래곤은 몸이 불균형해서 잠이 많다.
[하스는 24시간 중 18시간은 잠에 빠져 살았다. 돌연변이 드래곤 특성상 몸에 에너지가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다보니 잠이 많았다. 교수님들은 하스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말하셨다.]」
확실히 닭보다는 고양이의 행동반경이 다양해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덕분에 드래곤의 다양한 특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영상으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 차이가 확실히 다르네.”
1부에 관한 수정이 끝나자마자 곧장 출판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나저나 오늘 날짜가.....”
8월 11일. [블랙 & 월드] 발매를 하루 남긴 시점이었다.
‘글은 새롭게 쓰는 것보다 내용을 다시 수정하는 게 더 어렵다더니.....’
내용을 전체적으로 수정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양장본은 어떻게 됐나 연락이나 해볼까?’
나는 핸드폰을 들어 에밀라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작가님!
통신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라가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네요 작가님!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집필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아서 말았거든요! 마침 전화주셨네요!
“네. 내일이 출판일이기도 하고, 양장본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아! 작가님 사이트 안들어가보셨어요?
“네?”
-추첨사이트가 한동안 마비됐었어요! 서버 복구하느라 얼마나 애먹었는데요.. 양장본 반응 완전 굿이에요!
에밀라 목소리가 급격히 어두워진 걸 보니 정말 고생을 한 듯 싶었다.
마비될 정도였으면 이런저런 문의를 감당하느라 힘들었으리라.
“아.... 다행이네요.”
-추첨은 이미 끝났어요! 양장본은 일주일 뒤에나 출판이 가능할 것 같고요.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실까요?
“아뇨.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 맞다! 작가님 혹시 괜찮으시면 SNS에 내일 책이 출판된다고 올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작가님 팬분들만 있는 공간이다보니 홍보가 잘 될 것 같아서요.
“아. 그래야겠네요. 수고하세요.”
-네에~ 작가님도 수고하세요!
통화가 끝나고 SNS에 들어가자,
“....허.. 이게 뭐야.”
헛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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