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32화 (32/216)

32화 친구

-하루 남았는데 다들 어떰?

ㄴ나는 일단 기대중.

ㄴ나는 약간 실망중.

ㄴ나는 조금 설렘중.

ㄴ나는 조금 당황중.

-실망? 당황? 왜?

ㄴ장르 문제지 뭐. 난 어반 판타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

ㄴ난 좋아하긴 하는데 만화로만 좋아해.

ㄴ인정! 나도 그래. 어반 판타지는 정말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니까.

ㄴ그건 무슨 뜻이야?

-왜 걱정되는 사람이 많은지 설명해준다. 어반 판타지는 확실히 ‘흥미로운’ 내용으로 만들지. 현실에 판타지를 뒤집어쓰는 거니까 말이야. 단점이 있다면 따분하다는 거?

ㄴ따분?

ㄴ글을 아무리 잘 써도 이미 시장에 어반 판타지가 너무 많이 나왔어. 요즘 어반 판타지가 뜨지 못하는 이유가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ㄴ아하.

ㄴ그러고 보니 최근 어반 판타지 소설을 보면 항상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것 같다고 생각들더라.

-솔직히 [사막의 전갈]도 작가님 필력이 긴장감을 극도로 올려줘서 재밌는 거지 내용 자체를 보면 단순함. 테러조직 아내 사망 -> 복수 이 두 가지가 내용의 끝이니까.

ㄴ그럼 필력에 숨어있던 실력이 이번 소설에서 드러날 거라는 거지?

ㄴ그런 뜻은 아니고, 일단 재미는 있을 거야. 작가님이 글 쓰는 걸 보면 복선이라던가, 내용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든가, 특히 캐릭터의 행동 묘사력은 신이나 다름없으니까.

-결국에는 하나라는 거잖아. 작가님 필력에 맞는 스토리인지, 아니면 필력에 묻힐 스토리인지.

ㄴ필력에 묻힐 스토리라.....면 으으.... 약간 실망스럽긴 하겠네.

ㄴ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잖아.

내가 올린 SNS 마지막 게시글에서 지금 키보드 배틀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필력에 걸맞는 스토리일 것인가 아니면 필력에 묻힐 스토리일 것인가 라고 말이다.

‘어반 판타지라는 게 이런 단점이 있을 수 있구나.’

쓸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인지하고 쓰지 않았다.

‘그보다 독자들 수준이 굉장히 높네.’

나도 장르 소설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신했는데, SNS에 올라오는 댓글들 수준을 보니 독자들의 내공이 상당했다.

“팡이야.”

-냐아아아아앙!

팡이를 부르자 부엌에서 오늘도 무언가를 얻어먹고 있던 작은 고양이가 헐레벌떡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달려왔다.

-그릉그릉그릉그릉~!

그러더니 발톱을 세워 내 다리를 나무 오르듯 올라와 무릎 위를 꾹꾹이해줬다.

“사진 찍을까?”

-니양?

나는 꾹꾹이를 하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팡이를 사진 찍은 다음 곧장 SNS에 올렸다.

『제임스 권(Dragon one)

【사진】

[블랙 & 월드] 발매 하루 전에 인사드립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양이 입양했습니다.』

여전히 성의 없는 SNS였다.

****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나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식탁 위에는 작은 접시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찢어진 닭가슴살 몇 조각이 놓여있었다.

“왜 잘 먹고 있던 팡이를 부르니?”

“또 간식 주셨어요?”

“원래 어릴 때는 많이 먹어야 해.”

나는 팡이를 간식이 담겨있는 접시 앞에 놓아주었다.

식탁 위에 털달린 짐승이 올라오면 좋지 않다고 항상 이야기 하셨지만, 팡이한테는 그러지 않으셨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먹이시는 거 아니에요? 이 쪼끄만 게 벌써 뱃살이 너무 많이 나왔잖아요.”

“계단 몇 번 올라가면 사라져. 아까 네가 불렀을 때도 계단에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안간힘 쓰더라.”

“그래도 너무 먹이진 마세요. 사료 순치가 막 끝난 아이잖아요.”

“얘는..... 알았으니까 얼른 씻고 와라. 삼계탕 해놨으니까.”

“웬 삼계탕이에요?”

“닭 몇 마리 얻었는데 몸집이 작아서 삼계탕으로 해먹기 좋더라고. 아침부터 시원하게 먹어야 오후에 힘내고 글 쓰지.”

“......아침?”

나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따듯한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아침?”

“그래. 지금 아침 7시야.”

그럼 에밀라씨는 이 이른 아침에 전화 받아 준 건가?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요즘 시간 개념이 없어서 큰일이네.’

그래도 글을 전부 수정했으니 당분간 몸을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식탁에 앉으며 어머니가 뚝배기에 담아오는 삼계탕을 바라봤다.

“.....웬 뚝배기?”

“배달로 시켰다.”

“헤에. 이런 것도 배달 되는 구나..... 그런데 평소에는 이런 거 안 사시잖아요?”

“너도 이제 네 앞가림을 할 줄 아니까 돈을 아낄 필요가 없잖아. 지금까지 모은 거 이런 데라도 써야하지 않겠니?”

“하긴..... 그럼 겨울에 여행 갔다 오시는 게 어떠세요?”

“얘는, 우리 나이에 무슨 여행이니?”

“왜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여행 자주 가시는데요.”

“됐다. 이 마을에 사는 것만으로도 항상 여행 온 느낌이라 가고 싶지도 않아. 시끄럽고 얼른 밥이나 먹어.”

“네. 그보다 아버지는요?”

“이미 먹고 나가셨어. 오늘 정리할 게 많다고 하더라.”

엄마는 앞치마를 벗고 닭가슴살을 싹싹 긁어 먹은 팡이를 애지중지 쓰다듬으며 말했다.

“팡이 데리고 고모네 가 있을게.”

“근데 팡이는 왜 데려가요?”

“이 어린 아이를 어떻게 집에 혼자 내버려두니! 어쩜..... 생각 좀 하렴.”

“그래도 낯선 곳에 가면 팡이가 불안해하지 않겠어요?”

“네가 글 쓸 때 데려가 봤는데 오히려 애니랑 놀 수 있어서인지 좋아하더라.”

“.....”

“아무튼 먹고 치워놔. 팡이야 엄마랑 고모네 갈까요?”

-냥!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팡이를 소중히 품 안에 안고 밖으로 나가셨다.

“.....실환가?”

내 부모님을 고양이한테 빼앗긴 느낌이었다.

****

나는 밥을 먹고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부족했던 비타민 D를 보충하려는 것처럼, 따뜻한 오전 햇살을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마음껏 흡수하고 있었다.

“.....뭐하지?”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나도, 따로 취미가 없어 할 게 없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농사일을 도와드리러 가볼까 했지만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런 말이 왜 생겼나 했는데, 지금에서야 왜 생겨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푹 쉬고 싶은 느낌이었다.

“......웹소설이나 한 번 써볼까?”

이럴 때를 위해서 캐서린한테 웹소설에 관해서 물어보지 않았던가.

‘캐서린은 분명..... 만 글자에서 만 오천 글자 정도를 한 화로 쓴다고 했던가?’

한 화만 올리면 좋지 않으니, 서장과 함께 1화를 같이 올리는 게 좋다고 했던가?

“근데 뭘 쓰지?”

로맨스 장르가 좋다고는 하지만,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장르가 로맨스다.

로맨스 다음은 판타지 소설이 인기가 많다지만, 현재 판타지 소설만 두 개를 연재하고 있는데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SF도 재밌기는 한데..... 너무 전문적이라 자신 없단 말이지.”

판타지 이상으로 인기가 많은 장르물이었지만, SF 물에서 눈이 높은 미국인들의 만족을 끌어내기가 힘들 것 같았기에 과감히 포기했다.

“나머지는..... 일반 장르 소설인가.”

가장 인기가 없는 소설이지만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소설이기도 하였다.

[사막의 전갈]도 일반이기도 하고 그 외에 어린시절부터 적은 습작 대부분이 일반 문학이었다.

“일반 문학이라고 해도..... 장르를 뭐로 할까?”

추리, 스릴러, 추격, 성인 등 장르는 많았다.

‘구상이 안 떠오르는데..... 과거에 적었던 것들을 확인해 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새롭게 생각해보자.’

우선 머릿속에 남자 주인공을 생각해본다.

전형적인 백인이지만 헤어스타일은 약간 어두운 갈색 빛의 머리카락.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고, 몸집은 왜소하며, 말을 할 때 약간 더듬는 습관으로.

‘나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걸로 하고.’

이렇게 되면 소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불리(왕따)를 기본 베이스로 깔아볼까?’

미국에서도 왕따 문제는 항상 대두되는 사건이다.

특히, 총기가 합법인 미국에선 왕따를 당하던 소년, 소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뉴스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왕따 당하는 아이의 극단적인 생각을 글에 담아볼까.....? 아니면 복수물? 정체를 숨긴 어쌔신? 그것도 아니면 성장물? 로맨스로 갈아타볼까?’

역할에 따라 스토리는 변할 것이고, 그 스토리 또한 코믹으로 갈 수도 있고 진중한 분위기로 갈 수도 있었다.

‘흐음.’

생각할수록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길어졌다.

‘주인공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해볼까? 하아..... 어디 참고할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왕따가 아니어도 좋다.

그냥 영감을 받을 만한 사건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있던 사이 픽업트럭이 우리 집 앞으로 다가왔다.

“응? 월리?”

“여!”

창문이 열리고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월리가 있었다.

“어쩐 일이야?”

“펍 가자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날 겸.”

“친구라..... 굳이?”

월리 빼고는 딱히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만나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에일리도 온다는데.”

“.....됐다. 마음 접었다.”

“진짜?”

“응.”

과거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였다.

물론 고백하기도 전에 차였고, 애초부터 접점도 많이 없었다보니 나 홀로 짝사랑했던 여자였고, 나름 흑역사였다.

“진짜지?”

“그렇다니까? 애초에 아직 여자 만날 생각 없다.”

“아주머니한테 들어보니까 너 시간개념이 없다며? 너 같은 녀석이 결혼을 빨리해야 안정감이 생긴다고 나한테 하소연 하시더라.”

“......진짜?”

부모님이 아들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아직 결혼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벌써 결혼 얘기를 운운하신다는 말인가.....

“아무튼 타. 어차피 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싫어. 무엇보다도 너 맥주 마시고 취하면 내가 뒷수습해야 하잖아? 야. 차라리 낚시 어때?”

“.....낚시?”

“어. 머리 비우고 싶을 땐 술보단 낚시가 더 좋더라.”

“맞다. 너 에일리한테 차이고 나서 낚시 엄청 따라다녔지?”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오냐? 아무튼 갈 거야 말 거야?”

“그래 가자. 어차피 걔네들 만나도 시시한 이야기나 하겠지 뭐.”

“입대하기 전날에 입대 술은 내가 사줄게.”

그 말에 월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네가 한국 갈 때 내가 샀다?”

“그러니까 사준다는 거지. 낚싯대 가져올 테니까 좀만 기다려.”

“그래.”

*****

몬태나 주는 천애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펼쳤다.

목표는 잉어.

미친 듯이 잘 잡히며 무엇보다 손맛이 좋았다.

“이놈의 잉어는 언제 멸종하냐.”

“미국에서나 잉어를 안 먹지. 한국가면 먹는다.”

“너도 안 먹잖아.”

“.....민물고기는 나하고 안 맞아서.”

그것도 있지만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누가 잉어를 먹으러 가겠는가.

물론 집에 가면 몸보신 하라고 부모님이 잉어를 푹 끓여다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집에도 못 오고 모텔을 전전하다 다시 들어가니 민물고기하고는 연이 멀었다.

“그나저나 왜 생각을 비우려고 온 거야?”

“웹소설을 하나 적어볼까 하는데 생각이 많아져서.”

“캐서린이 적는 거?”

“응.”

“뭐 적으려고 했는데?”

“뭐..... 고등학교 소년의 성장 이야기?”

그 말에 월리는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네가 에일리를 짝사랑할 때가 고등학교 때 아니었냐? 에일리를 만나면 뭐라도 생각나는 거 아니야?”

“......”

천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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