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미션 컴퍼니 수장
점심이 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새벽부터 잠을 청했기에 늦게 일어나서인지 몸이 찌뿌둥해서,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자기 전에도 스트레칭을 해서 그런지 다행히 금세 몸이 풀렸다.
“으아아.....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메일 생각하는 거지만 이 미국이라는 땅덩어리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건지,
나는 어깨를 툭툭 치며 호텔 밖으로 나와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왔어?”
그곳에는 캐서린과 함께 메디슨 누나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응? 누나 언제 왔어?”
“한 20분 전에? 너 아직 자고 있다고 해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깨우지 그랬어.”
“됐어. 어제 무리했잖아? 네 얼굴이 뉴스에 계속 나오더라고.”
“흠흠.”
“아무튼 얼른 가자. 캐서린 너는 어떻게 할 거니?”
“저도 가도 돼요?”
“가도 되기는 하는데, 심심할 수도 있어.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으음..... 그래도 가볼래요. 살면서 미션 컴퍼니 안으로 들어갈 일이 몇 번이나 있겠어요?”
“어차피 가도 마음 편히 구경은 못 할 테지만..... 그래, 그렇게 해 그럼.”
“네!”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꿈을 선사해준다는 미션 컴퍼니 본사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캐서린은 좋은 것 같았다.
“제임스, 정장 가지고 왔어?”
“아니 이번엔 놓고 왔는데.”
“정장 샀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안 가지고 왔어?”
“본사에서 계약을 진행할지는 몰랐지.”
“후우..... 백화점에서 정장 대여하든가 사서 가자. 그리고 시간 아직 충분하니까 얼른 씻고 와!”
“그전에 나 커피 한 잔만......”
커피 한 잔 마시러 온 것뿐인데 누나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먹던 커피를 손에 쥐여주는 누나의 싸늘한 눈빛에 나는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위치한 미션 컴퍼니는 호텔에서 자동차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할 위치에 있었다.
나는 깔끔한 정장을 대여하고 누나가 가져온 차량에 올라탔다.
‘미션 컴퍼니..... 월드 미션 테마파크......’
서서히 다가오는 거대한 왕국의 모습에 약간 위압감이 들었다.
텔레비전 혹은 컴퓨터로만 보던 미션 컴퍼니의 웅장한 모습은 그 누구라도 처음 오면 그 자태에 매료될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미션 컴퍼니에.”
우리가 도착하자 저번에 봤던 조니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조니.”
“하하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임스 작가님! 그나저나 옆에 있는 여성분은 누구......?”
“친구 동생인데 경험 삼아 데려왔습니다.”
“캐서린이라고 해요.”
“안녕하십니까, Ms 캐서린! 하하! 미션 컴퍼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조니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미션 컴퍼니 건물 안으로 데려갔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만, 캐서린 양은......”
“그냥 회사 주변을 구경하고 있어도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괜찮아요. 제가 구경하고 싶어서 온 건데요. 뭘.”
미션 컴퍼니 내부는 구경할 수 없지만, 외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구경해도 되기에 캐서린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쪽으로.”
조니는 우리를 데리고 회장실로 향했다.
어느 회장실과 마찬가지로 꼭대기 층으로 향하니, 덩치가 큰 중년 남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아 올슨.
새로운 미션 컴퍼니의 수장은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양팔을 벌리며 우리를 환영했다.
“미션 컴퍼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아 올슨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권입니다. 그냥 편하게 제임스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하하하하하! 뉴스에서 봤던 모습보다 실물이 더 멋지십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죠!”
대표실 안으로 들어오고 소파에 앉을 때까지 무언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담배를 피우시나?’
창문을 다 열어놓고 공기 청정기도 틀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담배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독한 시가를 피우는지 냄새가 독했고,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메디슨 누나는 대표실로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대표실 자체도 뭔가 이상했다.
‘아기자기할 줄 알았는데..... 총이 전시되어 있네?’
물론 격발이 안 되는 장식용 총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들한테 꿈과 미래를 선도하는 미션 컴퍼니 수장의 자리에 저런 게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이었다.
우리가 탁자에 앉자 노아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비서로 보이는 남성이 차를 가지고 왔다.
“담배를 끊는다고 끊었는데 이게 쉽지 않더군요. 냄새가 심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애초에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대표의 자리에 앉아계신 분이신데 가끔씩 생각나시겠죠. 너무 자주 하는 게 문제가 되는 거지 가끔 피우면 약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도 예전부터 흡연을 하셨기에 담배 냄새에 나름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나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메디슨 누나는 담배 냄새가 불편한 것 같았다.
물론 나만 알아차릴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작가님 혹시 오늘 돌아가십니까?”
“네. 저녁에 돌아갈 예정입니다.”
“이런..... 아쉽군요. 미션 컴퍼니 안내를 해드릴까 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하하. 계약을 하게 되면 언젠가 또 오게 될 텐데 그때 하면 되죠.”
“예. 그때 되면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한 10분 정도 서로 대화를 했을까? 분위기가 얼추 가벼워지고 나서야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빌 에이든 미디어와 저작권에 대해 이야기는 맞춰놓은 상태입니다.”
누나는 가져왔던 서류를 조니한테 건넸다.
조니는 서류를 자세히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사인만 받으면 [블랙 & 월드]는 저희와 함께하게 됩니다.”
메디슨 누나한테 받았던 서류를 다시 나한테 내밀었다.
“여기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누나가 내 사촌이라는 사실은 바로 알릴 생각이 없었기에, 누나는 나한테 존대를 하며 서류를 가리켰다.
-스윽
누나가 가리키는 위치마다 내 이름을 적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조니, 그리고 노아 회장과 차례대로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 선생님이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그러자 악수를 한 상태로 노아 회장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예.....?”
“에드워드 선생님하고 친분이 있어서 가끔 대화를 하곤 합니다. 최근에 이야기를 하다가 [블랙 & 월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네네!”
“선생님이 맡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으, 음악 감독을 말입니까?”
“예. 노아 회장님을 만나면 그렇게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하하.....! 이거 에드워드 선생님을 직접 찾아뵈어야겠군요.”
노아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려 하고 있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안면 근육은 노아가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설.
미션 컴퍼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노장이 복귀한다는 소식만으로 미션 컴퍼니의 주가가 오를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작가님. [드래곤 마스터] 계약은 언제 진행하시겠습니까?”
“하하. 그건 양장본이 나온 후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블랙 & 월드]를 계약하러 온 거지 [드래곤 마스터]를 계약하러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은 [블랙 & 월드]에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혹시나 해서 여쭤봤는데 확고하시군요.”
“그냥 고집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제 작품이 영화화로 진행 중이긴 하지만, 실체화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거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것이 작가님의 뜻이라면 저희는 언제나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노아의 웃는 얼굴에 나도 기꺼이 미소 지었다.
***
제임스 작가를 배웅한 뒤 노아는 회장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본능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어 시가를 찾았다.
“이렇게 기쁜 날에 담배를 피우실 생각이십니까?”
옆으로 다가온 조니와 비서에 노아는 행동을 멈추고 등을 의자에 푹 기대었다.
“그래 기쁜 날이지..... 노장이 귀환한다고 하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귀환은 아니지만요.”
고작 한 작품을 담당해줄 뿐일 테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애초에 우리가 원하던 게 그거였잖아? 에드워드 선생님과의 불화를 잠재우는 거.”
현재 미션 컴퍼니의 최대 목표는 불화를 일으켰던 사람들과 다시 화해하여 회사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전 CEO와 에드워드는 말다툼이 많았고, 결국 불화를 그대로 끌어안은 상태로 갈라지게 되었다.
CEO가 바뀐 뒤로 과거에 있었던 불화를 하나하나 잠재우고 있었지만, 가장 큰 문턱인 ‘노장과의 불화’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줄 노장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노아는 계속 노력했고, 결국 그 실마리를 잡았다.
에드워드 선생님이 주시하고 있는 [블랙 & 월드]와 계약하는 것.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작가이자, 악마의 재능을 가진 제임스 작가와의 계약은 여러 의미로 미션 컴퍼니에 필요했다.
뛰어난 작품 그리고 그 작품을 지탱할 수 있는 음악.
그리고 그 두 가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미션 컴퍼니의 자본.
이 3가지가 합해진다면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드래곤 마스터]도 우리가 가져와야 해.”
“알고 있습니다.”
“쯧. 그냥 오셨을 때 같이 계약하면 좋을 것을......”
“그나저나 총은 안 드셨네요?”
“농담으로 한 말을 진담으로 들으면 어떡해? 그보다 [리턴 패션 디자이너]도 우리 쪽으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이건 우리와 맞지 않으니까.”
아동 문학보다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의 열렬한 팬인 노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막바지에 다가오고 있는 [리턴 패션 디자이너] 1권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기대하고 있었다.
“아쉽네. 아쉬워......”
노아는 장식용으로 보이는 실탄 총을 쓰다듬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
우리는 건물 밖을 구경하고 있던 캐서린을 데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창문 밖 풍경을 구경하며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누나한테 말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끝났네.”
그 말에 누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계약 자체를 빨리 끝낼 수 있게 지금까지 계속 쏟아부었으니까 가능한 거야. 무엇보다 미션 컴퍼니 측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았으면 아직 계약서 작성도 안 됐을걸?”
“그 정도야?”
“응. 그쪽도 급하다는 거지. 애초에 다른 작가였다면 노아 그 양반은커녕 조니 그 양반도 만날 수 없을걸?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거지.”
“헤에......”
“그나저나 어떻게 할래? 호텔에서 짐 챙기고 바로 집에 갈 거야?”
“아니. 약속이 있잖아.”
“약속?”
“기억 안 나?”
“아...... 그거?”
“응. 그거.”
우리들의 말에 뒷좌석에 타고 있던 캐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