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조현병
이틀 전. 사인회를 하기 전날 옥상에서 에밀라와 전화를 마치고 나는 곧장 제시카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이야?
“내일 저녁에 LA로 출발하고, 모레 미션 컴퍼니에 갈 예정이야.”
-아. 깜빡하고 있었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그걸 깜빡하냐?”
-사람이 깜빡할 수도 있지 더럽게 짹짹거리네. 아무튼 이틀 후에 만날 수 있다는 거지?
“응. 주말은 아니지만. 아리야 씨한테 이야기해 놔줘.”
-알았어. 근데 몇 시에 만날 거야?
“끝나면 전화할게. 몇 시에 끝날지 몰라, 저녁에 끝날 수도 있고.”
-그럼 아리야 번호를 너한테 보내줄 테니까 네가 그때 연락해줘.
“그 정도야 쉽지. 그나저나 시간은 가능해?”
-나는 어차피 못 가서... 아리야가 알아서 할 거야.
“안 올 거야?”
-주말 아니면 힘들다고 그때 말했었잖아. 그날은 공부하고 훈련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을 것 같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나 했더니..... 뭐. 상관없긴 하지.”
솔직히 제시카의 얼굴은 그리 보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허구한 날 괴롭힌 누나인데 보고 싶은 게 더 이상한 거지.
-아리야한테 주소 알려달라고 할 테니까 그쪽으로 가.
“알았어.”
제시카하고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로 주소가 왔다.
‘조현병이라......’
지금까지 조현병 환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니, 만났을 수도 있었지만, 그가 조현병 환자인 걸 알아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최우수 회원인 그를 만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
누나는 말한 주소 근처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찾아갈 수 있을 거야. 호텔에 갈 때는 택시 타고 가고.”
“응. 그럴게.”
“그럼 나 갈게.”
“고마웠어.”
누나는 다시 일하러 회사로 향했고, 나와 캐서린은 말해주었던 주소로 향했다.
근처에 내려주었기에 금세 아리야가 말한 주소지로 향할 수 있었다.
‘카페?’
아무래도 카페에서 보자고 한 것 같았다.
우리는 빈티지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고, 우리는 간단하게 마실 커피를 산 뒤에 자리에 앉았다.
“전화를 해봐야겠지?”
“그래야지. 언제쯤 만나자고 약속은 안 잡았어?”
“계약이 언제 끝날지 알고? 그냥 오늘 만나자고만 했어.”
나는 핸드폰을 들고 제시카가 알려주었던 아리야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띠리리리리링~!
전화를 걸자 뒤쪽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벨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갈색 머리카락에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또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마주 보았다.
“아리야 씨?”
그러자 그녀가 감격에 찬 눈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지, 진짜 드래곤 원 작가님.....! 흐아아.....!”
“하하......”
“패, 팬이에요! 정말 팬이에요! 진짜예요!”
“네. 감사합니다..... 하하.”
그녀의 격한 반응에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
아리야 베이든이라 소개한 여성은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쳐다봐서 부담이 될 정도였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으...... 남동생분이 조현병이시라고요?”
“네! 아. 넵!”
“저를 만나고 싶다고......”
“헤헤. 드래곤 원 작가님 팬이라면 누구나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 할 거예요. 그저..... 제 남동생이 열렬한 팬이고, 거기에 증상까지 완화시켜 주신 분이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예......”
아리야는 커피잔을 잡으며 약간의 망설임을 보였다.
“솔직히..... 제가 만나 달라고 했다고 작가님이 억지로 만나주시는 건 저도 원하지 않아요. 그저, 제 바람일 뿐이니까요.”
맞는 말이다.
내가 굳이 만나줄 의무는 없었다.
나도 바쁜 사람이고, 제시카의 친구라고는 하지만 고작 그뿐인 사이였다.
다만 한 가지 굳이 이유를 들자면.
“동생분이 최우수등급 회원이라고 하셨죠?”
“네. 조현병에 걸린 이후로 작가님의 소설을 엄청 파고들었나 봐요. 하루에 게시글도 수십 개씩 올리고, 댓글도 많이 쓰고..... 그 덕력을 인정받아서 최우수 회원으로 승급된 것 같더라구요.”
“만날 이유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LA에 왔는데 계약만 하고 돌아가면 섭섭할 것이다.
최우수등급 회원이라면 팬들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팬인데 만나보고 싶은 건 당연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네에.....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럼 동생분한테 안내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저를 따라오세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카페에서 나가서 한 5분 정도 걸으니 하우스 동네가 나왔고, 똑같은 모양의 하우스가 이어져 있는 곳에서 아리야는 한 집으로 다가섰다.
“저희 집이에요.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들어온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중년의 남성이 거실에서 나와 우리한테 다가왔다.
“아리야? 누구니?”
“아빠. 이분이 드래곤 원 작가님이셔.”
둘이 나누는 대화의 톤은 낮았다.
큰 소리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줄이는 것 같아 보였다.
“드래곤 원? 이분이?”
“어제 뉴스에 나왔다고 하는데 안 봤어?”
그러지 아리야의 아버지는 당황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일 때문에 바빠서..... 애초에 뉴스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지..... 드래곤 원 작가님이신데.”
“흠....흠....”
아리야의 아버지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헨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라고 합니다.”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임스 씨 덕분에 제 아들이 조금이지만 증상이 괜찮아졌습니다. 병원에서도 이 같은 경우는 일어나기 정말 흔치 않다고 하더군요.”
“아뇨. 저는 그저 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제 글을 읽고 자신의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아드님이 더 장하지요. 저는 한 게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헨리의 감사하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헨리는 정말 나한테 감사함을 전하고 있었다.
‘신기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책으로 모든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책마다 장르가 있고, 사람마다 자신의 취향이 있는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건 당연히 무리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내 소설이..... 사람한테 희망을 준다라.’
기분이 묘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어도, 많은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책은 과연 무슨 책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겁니다. 잠시 거실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콜린 베이든은 어린 시절부터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10살쯤 됐을 때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처음에는 무시했었다.
그냥 바람이 귓구멍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소리라고 치부했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이런 요상한 소리를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머릿속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며 무언가 변했다.
‘뭐라 말하는 거지?’
고작 바람 소리라고 생각한 소리가 시간이 흐르자 아주 조금이지만 선명해졌다.
주기적으로 나는 이상한 소리를 결국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소리? 귀에 벌레가 들어간 거니?’
‘모르겠어요. 바람 같은 소리라서 계속 무시하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조금 짜증 날 정도로 들려요.’
‘그래? 상태가 계속 심해지니?’
‘그것도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당연했다.
아프지도 않고, 바람과도 같은 소리라고 하니 그저 그렇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귀 상태를 확인만 했을 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소리는 더더욱 선명해져 갔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괴로웠다.
바람과도 같은 소리라고 여겼던 소리는 더더욱 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폐허에 부는 싸늘하고 소름 끼치는 바람처럼 주기적으로 콜린의 머리를 괴롭혔다.
‘으윽!’
부모님한테 다시 말할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았기에 말하지 않았다.
그때라도 다시 부모님한테 상의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나중에서야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고등학교 9학년 프레시맨 정도 됐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왜? 나는 널 죽일 건데? 왜 네가 살아있는 거지?
-네 엄마는 널 왜 낳은 걸까? 어차피 살아가면서 쓸모도 없는데? 그냥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는 게 세상에 더 이롭지 않을까?
-그냥 나가 죽어. 죽는 거 무섭지 않아. 총 하나 구해서 그냥 머리에 쏘기만 하면 돼.
-얼른 죽어! 네 가족들 전부 불태워 죽여버리기 전에 얼른 죽으란 말이야!
-네가 죽지 않으면 가족들 하나하나 죽여버릴 거야. 네 아빠는 뼈마디를 잘게 자른 다음 악어 먹이로 던질 거고, 네 엄마는 중국인들한테 넘겨서 장기를 전부 팔아버릴 거야. 네 누나는 갱 조직에 넘겨버리면 죽기 전까지 그 짓을 당하겠지.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
.
.
.
.
-죽어어어어어어어!!!!!
머릿속에 목소리를 속삭이는 존재는 끔찍한 말을 내뱉으며 자살을 강요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가족을 지옥의 문 앞까지 괴롭힌 다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싫어......’
그때부터 콜린은 그 소리를 거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집에 있는 창문에 전부 시트지를 붙여 빛을 차단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구한 뒤 항상 베게 옆에 놓았다.
소리라는 것 자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시끄러! 시끄러! 시끄럽다고!’
집에 누군가 들어오기만 해도 그 소리의 주인이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 짹짹거리는 새소리 하나마저도 무서웠다.
그저 어두운 공간에 오직 자신만 존재했다.
‘약 먹어야 해. 콜린 제발......’
‘싫어! 날 죽이려는 거잖아! 그 약에 독 들었잖아! 왜 날 죽이려는 건데!’
부모라는 작자들은 이런 내가 귀찮아졌는지 나한테 독약을 먹이려 했다.
거짓 눈물까지 흘리며 감정에 호소했지만, 어차피 연기일 뿐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러는 건데..... 나한테 독약을 먹이려고 해?’
그때부터 이제 모든 게 상관없어졌다.
나는 살 거다.
살기 위해 몸부림 칠 거다.
그래..... 이게 나한테 가장 좋은 결과였다.
‘콜린.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책이라도 읽어주렴.’
어느 날 부모라는 작자들이 책을 가지고 왔다.
책의 이름도 다양했고,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읽지 않았다. 책에 날 죽이려 하는 내용이 있을 게 뻔했기에..... 부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책을 읽을 때만큼은 소리가 작아진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중하면 들리지 않아......’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도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었고, 읽어도 중간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소리는 다시 뇌리를 헤집었다.
하지만
단 한 권의 책만큼은, 몇 번을 읽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소리의 주인도 무서웠는지 그 책을 읽지 말라고 애원까지 할 정도였다.
악마가 적은 글씨여서인가?
이 책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할 때면 소리의 주인은 흔적을 감췄다.
‘읽자.’
콜린은 일어나자마자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드래곤 원 작가의 책을 꺼내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블랙 & 월드]로 주인공을 보면 왠지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읽었다.
‘2부가 언제 나올까?’
이제 귓가에 들리는 소리도 무섭지 않았다.
콜린은 진정한 의미로 조현병을 스스로 이겨내고 있었다.
-덜컥.
그렇게 책을 읽을 준비를 하던 콜린의 방으로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동양인 남성으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시, 싫어! 싫다고!
귓속에 울리는 소리가 마치 ‘악마’라도 만난 것처럼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안녕? 네가 콜린이구나?”
“.....!”
“제임스... 아니 드래곤 원이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