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올리비아
‘최우수회원?’
그렇다면 콜린을 알고 있는 것도 나름 이해가 된다.
다만, 지금까지 내 소설을 본 최초의 연예인은 아마 라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라울의 SNS로 내 글이 입소문을 탔으니 말이다.
“아. 참고로 라울 씨가 SNS에 올리기 직전에 저도 보고 있었어요. 쉽게 말해서..... [나인 드래곤] 카페가 창립되었을 때부터 같이 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 말은.... 라울 씨가 SNS에 올리기 전부터 [나인 드래곤]이 있었다는 말 같은데요?”
“네. 맞아요.”
“그건 좀..... 놀랍네요.”
“물론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부터 인기가 많았던 건 아니에요. 당시 [사막의 전쟁].... 아니 [사막의 전갈]은 서점 구석에나 있었으니까요.”
“.....잠깐만요. [사막의 전쟁]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아셨어요?”
“‘사촌 오빠는 드래곤’이라는 회원분이 알려주시던데요? 개인적으로 전 [사막의 전갈]보다 [사막의 전쟁]이 더 입에 달라붙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고요.”
‘이사벨인가?’
닉네임을 듣자마자 이사벨임을 한 번에 알아차렸다.
“아무튼 저희 최우수회원들은 초기부터 카페를 운영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라울의 SNS로 유입이 많아지면서 최우수회원들 기준이 높아진 거죠. 그리고 한참 후에 콜린에 대해 알게 된 거고요.”
“콜린을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최우수회원들만 있는 단체 채팅방이 있거든요. 거기서 알게 됐어요. 콜린은 이제 괜찮아졌나요?”
아무래도 올리비아는 콜린이 환자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조현병 환자라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이 완화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다만, 아직 시간은 걸린다고 하네요.”
“그래요? 아쉽네요. 몸이 아파서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언젠가는 나갈 수 있겠죠. 본인도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콜린이 저에 대한 이야기를 채팅창에 한 건가요? 제가 콜린과 인연이 있는 걸 어떻게 아신 건지 해서요.”
“네. 작가님이 누나 친구의 동생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이야기를 하느라 채팅방에 한동안 콜린 씨 채팅만 올라왔을 정도인걸요? 후후. 그런 걸 보면 콜린 씨는 카페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해요. 그것 때문에 최우수회원이 된 거지만요.”
“최우수회원......”
예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최우수회원분들의 정체가 대체 뭔가요? 예전부터 무슨 대통령이 있다, 대기업 회장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저까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렇.....지는 않을걸요?”
“네?”
“최우수회원은 총 16명 있어요. 그중에서 신원을 밝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끝까지 정체를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중에는 저도 있고요.”
“결국은 올리비아 씨도 알지 못한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진짜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하긴, 그런 사람들이라면 제 글을 볼 시간도 없겠죠...? 아무튼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야기는 이게 끝인가요?”
“아뇨. 이건 아니고..... 아. 일단 음식이 나오네요. 먹고 나서 이야기할까요?”
“네. 그러죠.”
고급 레스토랑은 처음이었지만 대충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는 알고 있었다.
에피타이저부터 나오는 음식을 차례대로 먹기 시작했다.
‘맛있기는 한데 감질나네....’
맛은 있었다.
입안을 촉촉하게 감싸는 정체불명의 과자 같은 것이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조금 신기하다고 느껴졌다.
분자요리라고 들었는데 아무튼 신기한 경험이었다.
‘근데 이걸 사 먹을 바에야..... 패티에, 양파에, 피클에 양상추 거기에 시원한 콜라까지 주는 뜨끈한 햄버거를 든든하게 먹고 말지.’
이 코스의 가격은 한화로 대략 42만 원 정도였다.
이 돈이면 햄버거가 몇 개야.
아무튼 얼추 식사가 끝나갈 때쯤 올리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작가님을 따로 뵙자고 한 이유는요.”
“네. 말씀하세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의 대단한 배우가 왜 날 따로 불러낸 걸까?
아까부터 궁금했다.
“호, 혹시 일단 사인 먼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야. 물론이죠.”
“부탁드릴게요!”
올리비아는 묵직한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사막의 전갈], [블랙 & 월드], [블랙 & 월드] 양장본, [드래곤 마스터], [리턴 패션 디자이너]를 꺼내 들었다.
‘양장본도 있네?’
일단 올리비아가 가져온 책에 전부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자 올리비아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얼굴을 지었다.
‘진짜 아름다우시네... 근데 설마 볼일은 이게 전부인가?’
올리비아는 활짝 웃으며 무언가를 또 꺼냈다.
“이건 제 선물이에요.”
“선물?”
“네! 언젠가 만난다면 꼭 드리고 싶었어요!”
올리비아가 준 건 작은 하얀색 상자였다.
긴장된 얼굴의 올리비아를 보니 범상치 않은 것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볍네?’
상자는 무척이나 가벼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곱게 접힌 편지 봉투가 한가득이었다.
“이건.....”
“패, 팬레터에요. 집에 가서 읽어보세요.”
나는 편지를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팬레터의 주인은 올리비아인지, 새하얗고 뽀얀 피부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네...... 고마워요.”
지금까지 팬레터를 받은 적은 있었는데, SC라스틱과 빌 에이든 미디어 측에서 팬레터를 먼저 검토하느라 그 방대한 팬레터를 받게 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사실 팬레터의 대부분이 연참을 하라는 귀여운 협박이었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팬한테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팬이 내 글을 사랑한다는 증거인 팬레터와 또 하나는 내 글을 읽고 캐릭터를 상상하며 그린 일러스트다.
금전적인 선물이 아니라 내 글을 읽고 공감한다는 증거인 이 두 가지 선물이야말로 팬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팬레터는 제가 적은 것도 있지만..... 제 여동생이 적은 것도 있어요.”
“여동생?”
올리비아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동생이 있어요. 그런데 제 여동생도 작가거든요.”
“호오?”
“물론 언론에 나올 정도는 절대 아니고요. 저도 여동생이 작가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있어요. 그 애한테 방해가 되지 않게요.”
“혹시 필명이나 작품을 알 수 있을까요?”
“필명은 크리스탈 빈이에요.”
“.....크리스탈 빈? [백조의 총]을 집필한 작가님 맞나요?”
“어? 아세요?”
“제가 책을 다양하게 보는 걸 좋아해서요. 최근에 읽어본 적이 있어요.”
정말 읽어본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들렀던 LA 서점에서 잘 안 팔리는 책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더 들어가, 중고책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본 적이 있었다.
즉, 안 팔리는 건 기본에다가 너무 소장 가치가 없어서 중고책으로 팔리는 그런 책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내용을 전부 보진 않았는데.’
서점에서 책 내용을 끝까지 읽는 건 실례였다.
그저 줄거리, 첫 서장 정도만 읽고 살지 말지 결정하는 편이었다.
[백조의 총] 서장을 읽자마자 바로 책을 닫고 다른 책을 확인했지만...
‘내용이 분명......’
되살아난 귀족의 추리 소설이었던가?
죽은 귀족이 갑자기 되살아났고,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찾는 내용이었다.
다만, 필력이 부족하고, 내용 설명도 너무 단순했을뿐더러, 시대적 배경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서 딱 봐도 망작이라 판단해 그냥 내려놓았다.
“재미없으셨죠?”
“크, 크흠!”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그냥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없는 거 알아요.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해서 재고로 많이 쌓여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하하..... 동생분이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괜히 자매가 아니죠. 그래서 저희 둘 다 작가님을 굉장히 좋아해요.”
올리비아의 직접적인 말에 나는 괜히 목덜미를 쓸어넘겼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에다가도 사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올리비아는 서점에서 봤던 [백조의 총]이라 적힌 소설책을 꺼내어 나한테 슬쩍 내밀었다.
자신의 소설이 아닌 남의 소설에다가 사인해주는 건, 작가의 프라이드를 건드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그런 걸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동생분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셀리나예요!”
나는 [백조의 총]이라는 소설에 ‘셀리나의 글에 축복이 있기를’과 ‘앞으로 성장해서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게 응원할게요’를 적은 다음 사인을 해주었다.
“그나저나 오늘 사인을 해달라고 이렇게 거나한 저녁을 사시는 건 아닌 것 같고.....”
“아, 제가 받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사인을 부탁드리려고 한 건 맞아요!”
“정말요?”
“네. 잠시만요.”
올리비아는 다리 밑에서 꼬질꼬질한 책 한 권을 집었다.
‘저 가방에선 책이 몇 개나 나오는 거야..? 그런데 [드래곤 마스터].....?’
아까 사인해준 건 새 책들이었는데 지금 꺼낸 건 몇십 번이나 읽은 것 같이 너덜너덜한 책이었다.
“그건.....”
“제가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있는 병원에 봉사활동과 후원을 하고 있거든요. 거기서 작가님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사인을 받고 싶다고 해서요.”
“소아.....암....이요?”
“네.”
올리비아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치료비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하고 있었다.
“13살 남자아이인데요. 드래곤 원 작가님 책을 너무 좋아해서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도 가고 싶어 했는데...”
올리비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말기예요.”
“......”
“가족분들도 현재 손을 내려놓은 상태고, 그 아이도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은 상태예요. 저한테 슬쩍 와서 [드래곤 마스터]에 사인을 받고 싶다고 부탁해서요. 마침 오늘 오디션이 있어서 제가 꼭 작가님 사인을 받아다 준다고 한 상태거든요. 죄송해요.”
“죄송할 거야 없죠. 그나저나 말기면......”
“앞으로 그 아이의 삶은 두 달도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꼭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어요.”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병에 걸린 것도 힘든 일인데, 자신의 삶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는 대체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까.
‘고작 사인을 해준 것만으로 그 아이가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성인이건, 노인이건 간에 죽음은 무서운 법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병원이 어디죠?”
“네, 네?”
“제가 찾아갈게요. 그 아이한테 이 책을 들고 직접.”
올리비아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멍하게 바라봤다.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아이가 제 사인을 받고 싶어 한다는데 당연히 가야죠.”
“제, 제가 일정을 알아볼게요! 그 아이가 정말 좋아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당연히 너무너무 좋아할 거예요!”
올리비아는 자기가 사인을 받은 것보다 더 감격한 얼굴로 눈가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인 드래곤] 카페 회장님도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회장님이 후원하는 병원이기도 하거든요!”
“......네?”
방금 누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