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99화 (98/216)

99화. 올리비아 (2)

“카페 회장님이요?”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카페에는 단체 채팅방이 있거든요. 거기서 회장님하고 대화할 수 있어요.”

“회장님 정체를 아시나요?”

올리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카페 회장님은 항상 들어와 계신 건 아니거든요. 얘기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요. 그래도 가끔 대화할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소아암 후원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때 카페 회장님이 자신이 후원하는 병원이 있는데 그곳에 후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저한테 권하셨어요.”

“병원을 후원......”

“저도 정체는 몰라요. 만나본 적도 없고요. 근데 연락처는 알아요. 필요한 일 있으면 전화 달라고 하셨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해본 적은 없어요.”

한 명이 아닌 병원 전체를 후원하려면 돈이 상당히 많아야 할 텐데...?

그냥 많은 정도로도 안 되고 하다못해 중견기업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연락처 드릴까요?”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멍하니 있었다.

미팅이어서 오래 걸릴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이어서 올리비아까지 만나니 몸에 있는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올리비아랑 무슨 얘기 나눴어?”

누나와 매니저는 꽤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식사를 하느라 우리가 나눈 대화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나눴어. 그보다 누나는 이제 어떻게 할래? 집으로 바로 갈 거야?”

시간이 상당히 늦었고, 거기에 지금 운전하고 있는 차는 내 차라서 누나가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택시라고 해도 늦은 시간이라 그냥 보내기도 걱정이었다.

“으음.... 어떻게 하지.....”

“소파밖에 없지만, 우리 집에서 자고 가든가.”

“그게 좋겠네. 어차피 너네 집은 따듯하니까. 이불 정도만 줘.”

“그래”

누나도 상당히 피곤해 보였기에 그냥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소파에서 자더라도 방바닥이 따뜻하기도 하고, 거기에 소파는 침대로 써도 될 정도로 널찍하기에 상관없으리라.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집으로 향했다.

***

“끄응......”

어제 너무 무리했던 건지 다음 날 일어났을 땐 몸이 완전히 굳어진 것처럼 피곤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잤어야 했는데 피곤하다고 그냥 잔 게 독이었다.

“피곤해?”

일어나니 누나가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누나는 괜찮아?”

건네는 머그컵을 받아들고 누나의 상태를 살폈다.

나와 비교하면 그래도 얼굴 상태가 굉장히 양호해 보였다.

“나는 어제 아무것도 안 했잖아? 피곤하긴 해도 하룻밤 자고 나니까 괜찮아졌어. 근데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관절이 조금 뻐근하긴 하네.”

호로록.

따뜻한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이지만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았다.

“누나는 회사에 언제 가야 해?”

“오후까지만 들어가면 되니까 아직 시간 있어. 물론 밥 먹고 나서 바로 가야겠지만.”

“밥? 뭐 먹을 건데?”

“그냥 간단하게 집에 있는 걸로 먹으려고 했는데, 집에 식재료가 어떻게 하나도 없냐? 밖에 나가서 먹어야지 뭐.”

“그럼 나간 김에 마트 좀 들러서 먹을 것 좀 사야겠네. 나가 있어 봐. 옷만 갈아입고 나가자.”

“그래.”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직 안 왔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SC라스틱에선 아직 이렇다 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누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운동을 슬슬 시작해야 할까 봐.”

밥을 먹으러 가며 뭉친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별다른 운동 없이 계속해서 같은 자세로 글만 쓰니 몸이 만신창이가 돼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너네 빌딩에 헬스장 있지 않아? 필라테스도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필라테스? 그 몸 근육 풀어주는 거?”

“응. 그거 남자한테도 좋다던데 그거나 해보지 그래?”

“음.....”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너처럼 제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직업에 좋다고 들었거든? 한번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하긴, 몬태나에선 부모님 일 도와주면서 몸을 가볍게 풀긴 했는데, 여긴 따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없으니... 누나 말대로 뭐라도 하는 게 좋겠네. 물론 추리 소설을 다 적은 후에나 가능하겠지만.”

“추리 소설은 얼마나 적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초반 중의 극 초반이야. 하아...... 이야기를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지도 막막해 지금.”

집에 가서 바로 쓸 예정이었지만, 아직 명확하게 생각나는 스토리가 없었다.

집에 가서 파일을 열고 한참이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침 뭐 먹을 거야?”

“대충 햄버거 먹자. 햄버거.”

“어제 그렇게 비싼 거 먹었으면 소화되지 않게 며칠 굶는 건 어때?”

“레스토랑 음식은 나하고 안 맞나 봐. 밥 먹으면서 계속 햄버거가 먹고 싶더라. 누나는 괜찮았어?”

“응. 나야 가끔 먹으니까. 그럼 햄버거나 먹을까?”

“좋지.”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명물 아웃앤인 버거 내부로 들어갔다.

***

누나가 가고 난 후, 나는 다시 컴퓨터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 적었던 [일곱 개의 죄악 : 【질투】] 파일을 열어놓고 읽고 또 읽었다.

수정할 부분을 찾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적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주인공이 살인 사건 현장에 가야 할 타이밍인가.’

그렇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려던 그때였다.

-띠리리리리리~♪

“누구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발신인을 확인하니 루시아였다.

“네. 루시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어제 미션 컴퍼니에 가셨던 일은 잘 마무리되셨나요?

“네. 얼추 마무리됐어요.”

-참! [드래곤 마스터]에 관해서는 노아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셨나요?

“아..... 아직 나누지 못했어요.”

실은 그것 때문에 누나와 함께 간 것이었는데, 오디션과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지느라 이건 그냥 전화로 상의한 뒤 누나가 알아서 진행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블랙 & 월드]에 집중 중이라 한동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건 아니죠?”

-네. 물론이죠! [드래곤 마스터 2부] 수정 건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나는 잠시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반응이 나쁘지는 않을 거야.’

캐서린의 글을 수정한 뒤로, 캐서린도 정신을 차렸는지 더 이상 나한테 글을 보내준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새롭게 변화된 내 글에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다.

-우선..... 읽자마자 바로 연락드리고 싶었는데요. 미션 컴퍼니 건도 있고, 주말도 있었다 보니 늦게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아뇨. 어차피 그때 전화했어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어제 정말로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다행이네요. 우선..... 작가님이 보내주신 소설을 보고 한 차례 회의가 있었어요.

“회의요?”

-네. 소설에 관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싶을 때 저희는 전체 회의를 열거든요. 저번에 보내주신 수정 건도 회의를 걸쳐서 낸 의견이에요.

“아.....”

루시아 혼자만의 판단이 아니었구나?

-일단 작품의 디테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상황 묘사가 너무 좋아졌어요! 뿐만 아니라 내용이 막힘없이 레이스 하는 것처럼 뻥뻥 뚫려서 흡입력이 대단했어요!

“다행이네요.”

-드래곤들의 디테일도 너무 과하지 않고 적당히 들어가 있어서 좋았어요. 하스랑 다른 드래곤들의 차이도 더욱 명확해진 것 같고요. 뿐만 아니라 블랙 드래곤을 찾으러 가는 여정도 굉장히 자연스러워져서 전에 보내주셨던 수정본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재밌는 소설이었어요!

“하하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그럼 더 이상 수정할 부분은 없는 건가요?”

-네. 저희 측에서는 그렇게 느꼈어요. 다만, 작가님이 별로다 싶으시면 다시 수정해서 보내주셔도 돼요. 저희는 언제나 기다릴게요.

“이번 수정본은 저도 마음에 들어서요. 그냥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넵! 그럼 [드래곤 마스터 2부] 계약서는 1부와 똑같이 해서 전자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루시아가 급히 말을 뱉었다.

-참! 이번에 작가님 주소로 [드래곤 마스터 1부 : 혼혈 드래곤] 양장본이 보내질 거예요! 포장이 전부 끝난 상태는 아니라, 포장 케이지와 책, 도감을 따로 해서 보내드렸어요! 책에 사인하시고 포장 케이지에 넣는 과정은 굉장히 쉽거든요.

“케이지요? 종이 상자가 아니고요?”

-네! 알루미늄 케이지를 준비했어요. 포장하는 방법은 문자로 알려드릴게요!

종이 포장 상자를 준비했던 빌 에이든 미디어와는 색다른 방식이었다.

물론 양장본 가격이 빌 에이든 미디어보다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몇 권이나 보내셨나요?”

-10권 보냈어요. 혹시 모자라실까요?

“아뇨. 충분해요. 언제쯤 배송되나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도착해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루시아와 전화통화를 끝낸 후 나는 다시 모니터 화면을 바라봤다.

-우두두둑!

“써볼까?”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

콜린은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재밌는 곳에 왔네?]

정확히는 콜린이 아닌,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그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사람이 죽었어..... 킥킥! 어디 보자..... 10.... 20.... 30? 아니야. 그보다 더 많이 죽었어 낄낄낄낄! 죽음의 향기가 나는 곳이야.]

콜린은 그 소리를 무시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경찰들은 비밀리에 병동 전체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콜린.’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콜린은 자신한테 인사하는 FBI 관계자의 말을 무시하며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계자는 그런 콜린이 익숙한지 아무런 반발 없이 콜린한테 이번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살인 사건인지, 집단 자살 사건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습니다. 현재 분만실에서 30명의 사람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30명?’

‘네. 목을 매달고 말이죠. 그리고 그들의 발밑에는 신생아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이곳에서 30명 그 이상이 죽었을 거라고 속삭였다.

‘계속 말해봐.’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지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CCTV도 확인해봤는데 10분 정도 에러가 발생했다고 하네요.’

‘에러라.....’

‘보안 업체가 수리를 하자마자 화면에 목을 매단 3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요. 직원들도, 보안 업체들도, 의사들도 모르게 이루어진 거예요.’

‘......교수형이라도 당한 건가? 어떻게 그렇게 단번에 죽을 수가 있지?’

콜린의 말에 답한 건 FBI 관계자가 아닌 소리의 주인이었다.

[킬킬! 죽일 방법은 많지! 교수형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뭐지?’

[그건......]

***

“그건...”

나는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살인자에 이입될 차례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