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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5화 (114/216)

115화. 아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아암 말기, 그것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가 병원에서 나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의사의 동의를 받기도 힘들고 부모로서 아이를 어딘가 밖으로 데려간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영화 속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마지막 소원이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 가는 거라는 건 현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척추 안까지 파고 들어간 암세포를 제거하는 기술이 없는 이상, 아이의 생명을 늘리는 건 무조건적인 안전과 보호뿐이었다.

“......저희 집을요?”

나는 혹시나 잘 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한번 되물었다.

-네..... 작가님이 집필하시는 공간에 가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아이의 부탁인데 그 정도도 못 하겠는가?

“괜찮을까요? 저희 집에 와도.....”

청소를 조금 빡세게 하더라도 아이의 면역력이 버텨줄 수 있는지 걱정이었다.

계속된 항암치료로 인해 면역력이 많이 낮아졌을 텐데, 세균이 득실거릴 것 같은 내 집에 오게 한다는 게 우려가 됐다.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 같아요. 혹시 몰라서 의사분도 같이 동행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집은 최대한 청소해 놓을게요..... 오시는데 몇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으신가요?”

-지금 바로 출발할 예정이라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한 시간이라..... 여기서 병원이 가깝나 보네요. 그럼 제가 집 주소 알려드릴 테니 그쪽으로 오세요.”

-네! 정말 고마워요 작가님!

“뭘요. 이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올리비아와 전화를 끊고 나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요 며칠 동안 바빠서 정리를 못 했던 집이다. 깨끗할 리가 없었다.

설거지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며, 맨발로 다니다 보니 다른 집보다는 깨끗한 편이지만 그래도 청소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어 먼지가 가득했다.

‘빨래 거리도 있고..... 한 시간 안에 혼자 다 할 수 있으려나?’

처음 오는 작가 집일 텐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각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기에 서둘러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를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덜컥.

갑자기 내가 열지도 않은 문이 뜬금없이 열렸다.

“제임스 왜 또 전화를 안 받아?”

“제, 제임스 작가님? 오늘 운동하는 날인데 왜 연락이 없으세요?”

문이 열리고 메디슨 누나와 아리아나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메디슨 누나는 내가 살아있나 걱정해서 온 것 같았고, 아리아나는 오늘이 운동하는 날이었는데 올 생각이 없으니 혹시나 해서 올라온 것 같았다.

“둘 다! 잘됐다!”

“......응?”

“네?”

“나 청소 좀 도와줘! 급해!”

내 말에 그녀들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

일단 청소를 하면서 사정을 말하니 메디슨과 아리아나는 흔쾌히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었다.

아리아나는 어차피 손님이 오면 헬스장 직원이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 도와주겠다고 하였고, 메디슨 누나는 아이의 사연을 듣곤 그냥 묵묵하게 나를 도왔다.

3명이 합세해 어질러져 있던 집을 청소하니 금방 끝낼 수 있었다.

특히 자취를 오래 한 누나의 청소 실력이 빛을 발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 시간하고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름이 뭐니?”

깨끗이 정리된 방바닥은 휠체어 바퀴로 인해 더러워졌지만 그런 건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할 뿐.

“브록스라고 해요.”

창백한 얼굴에는 힘이 없었지만 목소리는 기운찼다.

“그래 브록스. 내가 누군지 아니?”

“제임스 작가님이요!”

“하하! 정답이야.”

브록스의 뒤에는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평상복을 입고 있는 흑인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무래도 저분이 의사인 것 같았는데, 그렇게 본 이유는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브록스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니?”

“네...... 작가님이 글을 쓰시는 곳을 보고 싶었어요.”

“하하. 그럼 몬태나 주로 갔어야 했는데 미안하네. 이곳에서 쓴 글은 많지 않거든.”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냥... 보고 싶었는걸요?”

“그리 넓지 않은 집이지만 마음에 들 때까지 실컷 보렴.”

나는 쪼그렸던 다리를 펴고 브록스의 부모님들한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임스라고 합니다. 혹시 브록스의 휠체어를 제가 끌어줘도 될까요?”

“무, 물론이죠.”

암세포가 척추까지 침투하여 하반신이 마비되었기에 브록스는 휠체어를 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브록스의 아버지가 잡고 있던 휠체어 손잡이를 넘겨받아 집 안쪽으로 천천히 밀었다.

“우와아.....”

혹시 몰라 열어 놓은 베란다 밖으로는 대도시 LA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다.

브록스는 이런 장관이 처음인지 반짝이는 눈으로 멍하니 창밖을 구경했다.

“작가님은 이런 풍경을 보며 글을 쓰시는 건가요?”

“물론이지. 좋은 것을 보면 머리에 맑아지는 느낌이 들거든.”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집으로 오고 나서 베란다 밖 풍경을 본 적은 굉장히 드물었다.

그래도 아이의 동심을 헤칠 수 없으니 이런 거짓말 정도는 괜찮겠지.

“서재를 보고 싶어요!”

“서재? 아아..... 미안한데 어쩌지? 이 집에는 서재가 없어.”

“네? 왜요?”

“이사 오느라 책은 전부 전 집에 놓고 왔거든. 책 몇 권이 있기는 한데 따로 서재나 개인 공간은 없단다. 있다고 하면 침실 정도일까?”

“흐에..... 아쉬워요.”

“하하! 대신 이런 책은 있단다.”

나는 소파 베개 뒤편에 숨겨뒀던 알루미늄 케이스를 꺼냈다.

“그, 그건.....!”

브록스는 내 손에 들린 알루미늄 케이스를 보자 동그랗게 눈을 반짝였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는데도 내가 들고 있는 케이스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지 손을 뻗을 정도였다.

다행히 몸이 고정되어 있어서 앞으로 쏠리지는 않았다.

“이게 뭔지 아니?”

“야, 양장본이잖아요! [드래곤 마스터] 1부 양장본이요!”

“하하하하! 맞아.”

나는 케이스를 브록스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선물이란다. 내 사인을 가지고 싶다고 했지? 양장본에 사인이 되어 있을 거야.”

“저,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남자는 한 입 가지고 두말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흐윽!”

브록스는 케이스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보였다.

“고, 고마워요..... 흐윽......”

조용히 흐느끼는 브록스를 나는 차분히 끌어안았다.

“오늘 하루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 브록스.”

***

브록스의 생명은 기껏해야 두 달, 길어야 세 달이라고 하였다.

어린아이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너무 빠르게 깨우쳤다.

브록스는 내가 준 양장본을 꼭 끌어안은 상태로 기쁜지 내 침실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뒤쪽에서 브록스를 바라보고 있는 흑인 할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음..... 무슨 일인가?”

“이야기 좀 하려고요. 브록스.....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건가요?”

“길지 않네. 솔직히..... 이번 연도를 넘기는 것도 힘들어.”

“.....제가 들었던 말과 다르네요.”

“병이라는 건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까. 특히 브록스의 암세포는 이미 척추까지 전이됐어. 곧 있으면 전신이 마비될 걸세. 그리고..... 아니, 아니네. 아무튼 다음 주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오늘 먼 거리에 나오는 걸 허락해 준 걸세.”

“.....그렇군요.”

“보통의 아이라면 미션 월드랜드를 가거나, 동물원 같은 평소에 가지 못했던 장소로 가고 싶어 할 거네. 다만, 그런 곳은 세균이 더 득실거리니 차라리 이런 집이 더 안전할 수 있지.”

“불행 중 다행인가요?”

“불행은 불행이네. 어째서 신은 저렇게 어린아이한테 저런 거대한 짐을 지게 한 건지..... 쯧.”

나와 말을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시선은 계속해서 브록스를 향해 있었다.

“그보다 소개가 늦었네요. 제임스라고 해요.”

“조셉이네.”

“그럼 조셉. 아까 말씀하셨죠?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평소에 가지 못했던 장소로 가고 싶어 한다고 말이죠.”

“.....그렇다네. 한 번도 가지 못했기에 부모들은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려가 마지막 추억을 주고 싶어 하지.”

“그럼 제가 브록스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아니, 제가 브록스한테 어떤 추억을 줄 수 있을까요?”

“......”

그 말에 조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셉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올리비아, 아리아나와 메디슨 누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가, 이 좁은 방을 보는 것만으로 추억이 될 수 있을까?

고작 그런 것으로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역시..... 없겠죠?”

“......그저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던 아이네. 그냥 저 아이한테 좋은 이야기나 해주게나.”

“제가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아! 차라리 다른 걸 선물로 주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다른 거?”

나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브록스한테 다가갔다.

“헤이, 브록스.”

“작가님!”

내가 다가왔음에도 브록스는 들고 있던 양장본을 놓치지 않았다.

그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최근에 글을 하나 썼거든? 알고 있니?”

“아! [일곱 개의 죄악 : 【질투】] 말이죠? 저! 작가님 Live 방송 때 들었어요!”

“오? 그래?”

“네! 근데..... 아마 제가 볼 수는 없겠죠?”

[일곱 개의 죄악 : 【질투】]가 발매되는 날은 아마 내년일 것이다.

그때까지 브록스는 자신이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 작가님을 봤고 이렇게 근사한 선물도 받았는걸요?”

행복한 듯 웃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할진대, 이렇게 작은 아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리가 없었다.

내가 볼 땐 브록스는 그저 부모님한테, 어른들한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담담한 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래에 비해 너무 일찍 철이 든 브록스는 너무도 왜소하고 가련했다.

“누가 볼 수 없다고 장담하래?”

“네?”

“여기는 내 집이라고? 그럼 내 집에서 보면 되잖아?”

브록스는 잠깐 제임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의미를 깨달은 브록스의 눈동자가 서서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저, 정말요?”

“물론이지. 오늘 [일곱 개의 죄악 : 【질투】] 집필이 마무리됐거든. 책을 품평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브록스 너한테 맡겨도 되겠니?”

“저, 정말 제가 읽어봐도 되는 건가요? 제가.....요?”

“당연하지! 아까 말했잖아? 남자는 한 입 가지고 두말하지 않는다고! 자자! 내 컴퓨터로 갈까?”

“네!”

본래 [일곱 개의 죄악 : 【질투】] 집필이 끝나면 가장 먼저 캐서린한테 보여주기로 약속했었다.

뭐... 내가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셈이 됐지만... 그래도 브록스한테 가장 먼저 이 소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수정도 다 하지 못해서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을 보고 브록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근데 내용이 잔인해서 사실 네 나이에 보면 안 되긴 하거든...? 괜찮으려나...”

“저는 그 나이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까요...”

나는 브록스한테 시선을 주며 슬쩍 조셉과 그의 부모를 바라봤다.

모두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나는 곧바로 컴퓨터 전원을 켜서 [일곱 개의 죄악 : 【질투】] 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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