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16화 (115/216)

116화. 아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

아직 어린 브록스가 읽기에 [일곱 개의 죄악 : 【질투】]는 굉장히 잔혹한 내용이 많았다.

목을 맨 30명의 피해자, 장기 매매 시설, 뒷골목 살인사건, 닭 사료 믹서기에서 발견된 병원장의 시신 등 하나같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묘사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콜린이 범죄자를 신문하는 과정도 상당히 인정사정없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묘사가 있었다.

[콜린은 펍에서 본 남자의 뒤를 친 다음 의자에 묶었다. 흠씬 두들겨 패도 이야기하지 않자 콜린은 남자의 엄지발톱을 뽑은 다음 그곳에 기름을 부었다. 그래도 요지부동인 그의 발톱에 불을 붙인 후 서서히 타들어 가도록 그곳에 톱밥을 뿌렸다. 남자는 그런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콜린은 묶여 있는 남자의 무릎에 기름을 졸졸 부었다. 발가락에 붙어있던 불이 무릎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충 설명해서 이 정도지 실제 읽고 있는 브록스는 그 남자의 몸에 투영된 것 같은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 외에도 항문에 폭탄을 심는 영화의 장면을 넣어보기도 했고, 강제로 자석을 삼키게 하여 몸을 흔들어 내장이 터지게 하거나, 눈알에 사철 가루를 집어넣는 고문 장면도 있었다.

그런데도 브록스는 묵묵히 마우스 드래그를 내리며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시간은 괜찮나요?”

소설에 흠뻑 빠져 있는 브록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조셉한테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오후 늦게 도착했던 터라 벌써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는데도 브록스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리아나는 중간에 전화가 와서 헬스장으로 내려갔고, 브록스의 부모님은 묵묵히 뒤에서 브록스를 살피고 있었다.

메디슨 누나와 올리비아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브록스의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너무 늦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집중하는 아이를 중간에 데려가는 건 몹쓸 짓이지 않겠나.”

“그래도.....”

“놔두게. 어차피..... 브록스한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차라리 좋아하는 거라도 실컷 보는 게 좋겠지.”

조셉의 말에 우리는 한참이나 브록스가 소설을 다 읽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더 흘렀을까?

“후하......!”

한참이나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브록스가 행복한 듯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말..... 정말 재밌었어요!”

“읽기에 불편하지 않았니?”

“네! 조금 무섭긴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얼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이네. 혹시 재미없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내용에 이상한 부분은 없었고?”

“음..... 오타가 조금 보였어요. 이상한 부분도 있었고요.”

“하하. 아직 수정 전이라서 그런 부분이 많을 거야. 내용을 다시 가다듬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쉬워요..... 다음 권도 보고 싶었는데.”

브록스의 아쉬운 볼멘소리에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오렴. 다음에 왔을 때는 [드래곤 마스터 2부] 원고를 보여줄 테니까.”

“지, 진짜요?”

“그럼! 아까도 말했지만 남자는.....”

“한 입 가지고 두말하지 않는다!”

“하하! 정답이야! 아쉬워하지 말고 다음에도 와!”

건강해지면 와,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조셉한테 들었던 것처럼 브록스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되도 않는 희망고문은 브록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희망이 아닌 즐거움만 브록스한테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다시 올게요! 꼭이요!”

브록스의 생기 넘치는 웃음에 부모님들 역시 따뜻한 미소를 지었지만, 집으로 들어온 뒤부터 한 곳에만 서 있던 조셉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없던 그림자가 새겨졌다.

***

브록스가 돌아가고 올리비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제임스 작가님.”

미국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문화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거나 복종을 뜻하는 의미였기에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정말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뭘요. 제가 원해서 한 건데요.”

그제야 올리비아는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래도 고마워요. 브록스가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그래요.”

“행복이라......”

그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브록스의 어두운 얼굴이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다.

“그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을 텐데.....”

내 중얼거림을 들은 메디슨 누나는 조용히 커피를 가지고 왔다.

“너도 그만 쉬어. 꼴을 보니까 또 안 쉬었지?”

“아냐. 어제 충분히 쉬었어. 한스 할아버지하고 술도 마셨는데 뭘.”

“.....한스 할아버지? 아. 그 시큐리티 할아버지 말하는 거지? 할아버지하고 가끔 술 마시나 봐?”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데 어제는 왠지 모르게 마시고 싶더라고.”

“할아버지 상태가 오늘 유독 안 좋아 보여서 왜 그런가 했는데, 너하고 술 마셔서 그런 거였구나?”

이곳에 올 때마다 경비실에서 편안히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웬일로 시름시름 앓고 있어서 왜 그런가 했는데 제임스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아무튼 이제 그만 쉬어. 너 추리 소설도 마무리 단계라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까 완결 냈나 보더라? 또 무리해서 쓴 거지?”

“그건 아니고..... 애초에 정말 마무리 단계여서 그냥 조금 더 스토리를 추가했을 뿐이야. 내일 Live 방송하고 수정 마무리해야지. 그보다 올리비아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이제 가서 먹어야죠.”

“배달시킬 건데 같이 드시고 가는 건 어떠세요? 아..... 혹시 피자하고 치킨 싫어하시려나...?”

저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고급 음식이 나로선 상당한 충격이었기에, 혹시나 그런 것만 먹는가 하고 문득 생각난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에 고귀함이 묻어있는 배우라 그런지 솔직히 피자하고 치킨을 먹는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예전에 햄버거 광고인가? 그것도 솔직히 안 어울린다는 평가도 많았지?’

서민 음식인 햄버거를 무슨 전통 있는 귀족가 영애가 먹는 것처럼 보여서 혹평이 있기는 했지만, 반대로 너무 아름답게 먹어서 엘프가 먹는 음식이라고 회사에서 홍보하며 웰빙 햄버거로 유명해졌다고 들었다.

“저 치킨 좋아해요!”

“아. 그러면 드시고 가실래요? 제가 배가 좀 고파서 음식을 많이 시킬 건데 둘이서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래요.”

“물론이죠! 아. 그래도 콜라는 다이어트 콜라로 부탁드릴게요.”

다이어트 콜라는 그녀의 최소한의 양심이구나.

***

아리아나도 오늘 청소를 도와주었으니 밥 한 끼는 대접하고 싶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회원이 갔는지 아리아나는 음식이 도착했을 때쯤 우리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기름진 음식인데 먹어도 괜찮아요? 보통 닭가슴살이나 샐러드 그런 걸 먹지 않으세요?”

“저도 사람인데 먹고 살아야죠! 먹고 또 운동하면 되니까요.”

기승전 운동으로 통하는 아리아나의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튼 우린 거실에 음식을 가져다 놓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루이나가 보낸 게 있을 텐데 받아놨어?”

“어. 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주셨어. 근데 그게 뭐야?”

“안 열어봤어?”

“응. 열어 볼 시간이 없었지. 먹는 건 딱 봐도 아니던데.”

나는 기름 묻은 손을 티슈에 쓰윽 닦은 뒤 누나가 말한 택배상자를 가져왔다.

책이나 한 권 들어갈 법한 작은 상자였기에 책 말고는 뭐가 들어가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책이야?”

“응. 책이야. 루이나하고 친한 제이든이라는 사람이 너한테 주고 싶었던 거라고 하더라고.”

“그걸 왜 나한테 직접 말하지 않고 누나한테 말했데?”

“너한테도 말은 해놓는다고 들었는데? 연락 안 왔어?”

“.....요즘 바빠서 전화 오는 것만 받고 있는데 전화는 안 왔어. 아무튼 이게 책이라는 거지?”

책이라고 하니 흥미가 생겼다.

“열어본다?”

“그러든가.”

테이프를 살살 뜯은 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검은색 바닷물결이 흐르는 듯한 표지를 가진 책 하나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한 번 뜯었던 걸 재포장한 건가?’

포장은 무척 섬세하고 정성스러웠지만, 아무래도 몇 번 읽었던 책인지 여기저기 흠집이 보였다.

“......어?”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꺼낸 다음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아는 책이야?”

“아니.”

“근데 왜 놀라?”

“아니 그냥...... 뭔가 책 분위기가 좋아서.”

책 저자를 보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무리 내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도 모든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요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책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이상했다.

“칼리.... 오든?”

“칼리 오든? 책 저자야?”

“응. 책 발매일은 2010년 부근인데..... 왜 이 책을 나한테 준 거지?”

내가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자 덩달아 올리비아와 아리아나의 시선이 쏠렸다.

“[물고기가 낚은 인간]...... 장르 소설인가?”

포장을 벗겨내니 책의 상태가 더욱 잘 보였다.

여기저기 생활흠집은 나 있더라도 중고 책치고는 굉장히 깔끔했다.

책 표지를 넘겨 서장을 확인하니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반판타지 느낌의 소설이었다.

“흐음.”

그냥 오래되고 팔리지 않는 책이 집에 있다고 나한테 보내줬을 리는 없고...

“일단..... 재밌는 소설인지 아닌지는 읽어봐야 알 것 같네. 밥 먹고 읽어보지 뭐.”

“안 돼요!”

“네?”

아리아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운동해야죠! 지금까지 5일 동안 운동도 안 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계셨잖아요! 그럼 근손실 온다고요! 거기에 이런 기름진 음식들까지 먹었는데 당연히 몸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먹고 운동하셔야 해요!”

“어......”

아리아나의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엄청 피곤한데 그냥 안 하면 안 될까...?

“오늘은 무조건 하셔야 해요! 5일 동안 손목을 과하게 사용하셨으니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서 그 긴장을 풀어야죠. 밥 먹고 얼른 헬스장으로 내려가요!”

“......”

올리비아와 메디슨 모두 아리아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무언의 동의를 표시했다.

나는 그 모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책을 조용히 소파에 내려놨다.

***

아리아나와 운동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우선 땀으로 푹 젖은 몸을 씻어냈다.

뽀송뽀송해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 털썩 쓰러진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 책.....”

그러다 그 책이 생각났다.

도대체 무슨 책인지 궁금했던 터라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읽어보려고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는 메디슨 누나가 자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있는 책을 집고 침대로 향했다.

“조금만 읽다 자볼까....”

그렇게 책 표지를 열고 한 다섯 쪽 남짓 읽었을까.

“쿠울......”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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