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환자가 쓴 책
[물고기가 낚은 인간]
말 그대로 물고기가 인간을 속였다는 제목이었다.
제목 그대로 인간을 멍청하게 묘사해 놓은 책이었다.
‘비판이라고 해야 하나?’
내용은 솔직히 수준 이하였다.
이런 책이 출판사에 눈에 들어 출판되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내가 책을 읽다 잔 적이 몇 번이더라?’
어렸을 적부터 하루에 한 권씩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은 적도 많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을 읽을 때 중간에 자는 건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어릴 때나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만, 아무튼 책을 읽다가 잘 정도의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겠고, 스토리도 엉망진창이다.
심지어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글 곳곳에 무슨..... 자신이 진짜 그런 경험을 했다는 듯이 적혀 있었지?’
책의 내용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가 이상한 것투성이였지만, 나는 꾹 참고 [물고기가 낚은 인간]이라는 책을 끝까지 정주행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다시 읽으니 전날보다는 내용이 머릿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마지막이 되어서야 누가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조현병 환자가 쓴 책이라.....”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 글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조현병 말기 환자가 자살하기 직전 적은 유서를 바탕으로 적은 책이라고 한다.
유서에는 조현병 환자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오든이라는 사람이 책으로 옮겼다고 한다.
유서를 바탕으로 책을 적은 오든은 조현병 환자인 칼리와 자신의 이름을 합쳐 칼리 오든이라는 필명으로 [물고기가 낚은 인간]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책.....인가.’
어째서 이걸 나한테 보낸 거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책은 발매가 중단되었고, 판매수입도 형편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책을 왜 준 것일까?
‘콜린한테 줘볼까?’
일단 책을 읽어놨으니 언젠가 쓰임새가 있겠지.
나는 책을 곰곰이 바라보다가 이내 책장에 꽂아 넣었다.
***
‘누나는 어디 갔지?’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갈 누나가 아니었기에 갑자기 사라진 게 의아했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혼자서 대충 점심을 막 때웠을 때,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저번에 봤던 NDA 직원 프렌과 더불어 두 명의 남자가 더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프렌. 근데 뒤에 분들은.....?”
“매니저입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서 작가님의 채널을 관리하면 힘들 것 같아서요. 아! 그리고 채널은 만들어졌는데 확인하셨습니까?”
“아뇨. 요즘 바빠서 확인을 못 했네요. 끝나고 확인해볼게요.”
“하하. 영상은 아직 1개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확인해주세요.”
매니저들은 서둘러 전원이 켜져 있는 컴퓨터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나저나 작가님. 오늘 추천할 책은 고르셨나요?”
“음..... 네.”
“저번에 작가님이 추천하신 [잡초 재생기록]이 구글 채팅 순위에 오르기도 했거든요! 다만, 이제는 전자책으로만 구할 수 있게 돼서, 새 종이책 가격이 $1,000 이상으로 거래되었다는 소문도 있더라고요. 내용도 생각보다 괜찮고 신선하다는 평도 많았고요.”
“다행이네요. 저만 재밌는 걸 추천한 게 아닌가 살짝 걱정도 했었거든요.”
초반 부분이 너무 극악으로 재미없는 소설이기에 괜히 추천했다가 역풍을 맞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웠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작가님은 그런 류의 소설을 추천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원래 목적이 그거였지 않나요?”
“아. 네. 설명이 부족했군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매니악한 소설이 아닌, 시간이 상당히 흐른 시점에 지금 사람들이 읽어도 상당히 재밌을 법한 그런 소설을 추천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음..... 한 마디로 매니아류가 아닌 누구나 읽기 쉬운 그런 소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거기에 오래된 소설이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팬분들이 마치 화석을 발굴하는 느낌이라 찾는 재미가 있다고들 하십니다. 물론 전자책으로도 있어야겠지만요.”
프렌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전자책이라......’
책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내용을 알 수 있는 그런 책을 추천해달라는 뜻이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 재밌을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어도 그런 책만을 꼬집어서 추천하는 건 역시 어렵겠네요. 일단 염두에 두곤 있을게요.”
“네! 못 찾으셔도 할 수 없죠. 그럼 오늘도 재밌는 방송 부탁드립니다!”
“네. 노력해볼게요.”
SNS와 뮤튜브 커뮤니티에 몇 시에 Live 방송을 시작할 것인지를 올렸다.
어차피 한 시간 정도는 정리하거나 카메라 설치에 시간을 들여야 하기에, 그 시간 동안 나는 몬태나주에 계신 부모님이 보낸 책장 사진을 살폈다.
읽은지 너무 오래된 책들도 많아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책 제목을 보면 당시 분위기와 내용이 떠오르기에 이렇게 사진이라도 책 제목을 확인하며 오늘은 무슨 책을 추천할지 확인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Live 방송을 할 시간이 다가오자 소파에 앉아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는 내 옆으로 프렌이 다가왔다.
“작가님. 방송 시간 3분 전이에요.”
“아. 벌써요?”
“네. 혹시 추천하실 책을 아직 정하지 못하셨나요?”
“아뇨아뇨. 몇 권 후보를 정했는데 뭐로 할까 잠시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프렌은 내가 자리에 앉자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 자리를 맞추며 말했다.
“그럼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프렌의 말과 함께 방송이 켜졌다.
-제임스 작가님! 사인회 수고하셨어요!
-반갑습니다!
-lol! 제임스 작가님 사인회 저도 가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또 한 번 시청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
한 번 정도 방송을 해봤다고 어떤 방식으로 방송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파악이 됐다.
첫 번째 방송과 비교하면 두 번째 방송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 편은 아니었다.
첫 방송에는 7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들이 들어왔지만, 이번 방송은 5만 정도에서 잠잠해졌다.
시청자 유입 속도가 잠잠해지자 나는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권입니다! 와... 오늘도 많은 분들이 제 방송을 보러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하하하!”
저번에 비해서 2만 명이나 빠진 방송이었지만 이 역시도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걸 프렌한테 이미 들은 후였다.
“우선 사인회다 뭐다 해서 궁금하신 것들이 많으실 텐데 그런 건 조금 이따 이야기 나누도록 하고요! 일주일 동안 기다리신 책 추천 방송을 먼저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천 방송이 끝나면 간단하게 서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 한뒤, 저번 주에 말했던 제가 글을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알려드릴까 해요!”
그 말에 시청자들 채팅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엄청난 레시피를 공개하는 셰프처럼 유명 작가가 글을 쓰는 방법 또한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궁금해할 비밀이기도 하였다.
“자! 그럼 우선 추천부터 시작할게요! 오늘의 책은 바로 이겁니다!”
내 말에 화면 오른쪽에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일러스트로 되어 있었으며, 일러스트와 함께 그려진 붉은색 표지는 딱 봐도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임을 암시했다.
“로맨스 소설인 [너의 마음을 죽인 그날 밤에]라는 책입니다! 아! 우선 어린아이들은 잠시 물러나 주세요! 조금 자극적인 부분이 많으니까요!”
-어느 정도로 자극적인가요?
-저번에 작가님이 추천하신 [너와 같은 그림자를 밟고 싶어]보다도 자극적인가요?
-야설인가?
올라오는 댓글들에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 정도로 자극적이지는 않아요. 다만, 이건 야설처럼 야릇하게 자극적인 게 아닌 조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단 내용부터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이것도 상당히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이었기에 내용 전체가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내용에 대해 러프하게 설명할 정도의 기억은 남아 있었다.
“우선 이 책의 발매일은 2002년이에요. 한일 월드컵이 있었던 년도이죠. 하하 저도 그때는 한국에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한국에 있었고, 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국으로 왔었다.
당시엔 축구에 큰 흥미가 없었던 터라 어째서 도시가 그렇게 붉게 물들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 책의 내용은 한 여자를 납치한 남성의 이야기부터 시작돼요. 이 책의 재밌는 점은 대화를 진행하면서 그 대화 속에서 납치당한 여성과 납치범인 남성의 생각과 감정이 따로 전개된다는 것이에요.”
-설마..... 스톡홀름 증후군인가요?
-스톡홀름 증후군? 그게 뭔가요?
납치범과 감정과 생각.
이 세 가지가 절묘하게 교합되어 있는 병이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다.
“아시는 분들도 있으시네요. 한때 새로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스톡홀름 증후군에 관한 책이 맞아요. 스톡홀름 증후군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이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화되어 가해자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가해자를 변호하는 현상을 말해요.”
-아..... 쉽게 말해서 가해자한테 동질감을 느껴서, 가해자의 범죄를 감싸주는 그런 느낌이네요?
올라오는 채팅창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제 궁금증은 없으신 것 같고, 간단하게 내용 설명을 시작할게요. 내용 자체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맞아요. 다만, 그렇게 간단했다면 제가 여러분들한테 추천하지 않았겠죠? 제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리수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잘 승화시켰다는 거예요.”
보통 로맨스 소설은 상대방과 사랑에 빠지는 그 과정에서 무리수가 많이 생긴다.
게다가 스톡홀름 증후군이 걸린 여자 주인공을 주제로 쓰다 보니 무리수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것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넘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자는 처음부터 스토리를 이미 어느 정도 구상해 놓으셨던가, 아니면 시놉시스를 상세히 적어둔 것 같아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이리저리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이 탄생하지 않거든요.”
-스토리는 재밌나요?
-근데 무리수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소설의 질도 떨어질 텐데.....
-이것도 처음 보는 소설이네요. 억지 요소가 있으면 이상하게 당장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작가님들도 글을 쓰시다가 스토리가 막히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건 이해하는데..... 솔직히 독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죠.
채팅을 읽은 나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무리수를 둘 때도 있어요. 그래도 [너의 마음을 죽인 그날 밤에]만큼은 무리수가 있더라도 끝까지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릴게요. 감정과 생각의 묘사가 정말 리얼하니까요. 자! 오늘의 추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책 추천이 끝나고 시청자들이 가장 기대하던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