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22화 (121/216)

122화. 자막의 장벽

다이애나의 말에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아..... 가장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네.’

그건 바로 주인공 콜린이 조현병 환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스토리와 설정을 충실히 지켜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설정에 오류를 범했다.

현실성과 범죄 사건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수정했을 때도 점차 사라지는 소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잊혀졌기 때문이다.

‘소리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느냐에 초점을 맞춰 버렸어...... 젠장. 이걸 깨닫지 못하다니.....’

가장 기본적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 그거 치료되는 과정이 아니었어?”

캐서린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해석하는 건 독자마다 전부 다르다 보니, 캐서린은 조현병 증상이 완화되는 것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일곱 권이나 되는 장편 소설이니까. 증상이 벌써 완화되면 안 되는데.....”

다이애나의 의견을 따르면 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캐서린의 말대로 가면 중간중간에 어째서, 그리고 어떤 식으로 증상이 완화되고 있는지 보여주면 된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모습에 다이애나는 슬며시 말을 건넸다.

“차라리 이건 어떠세요?”

“네? 뭐가요?”

“콜린이라는 분이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니까...... 작가님이 쓰시는 소설은 콜린이라는 탐정이 가장 어렵게 해결했던 사건들로 말이죠.”

“......회고록!”

콜린이 경험한 일을 수기로 작성하여 회고록처럼 진행되는 것.

회고록이란 자신의 생애 중 가장 특별했던 사건만을 적어놓은 것이다.

즉, [일곱 개의 죄악] 시리즈를 콜린이 사건을 해결했었던 회고록으로 표시한다면, 캐서린의 의견과 다이애나의 의견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전체적으로 손을 봐야겠지만.......’

이렇게 된다면 콜린의 과거 회상 장면 스토리도 이어질 수 있었다.

[일곱 개의 죄악 : 【질투】]편에서는 콜린의 과거 회상이 조현병을 걸리는 시기를 암기하는 정도에서만 끝이 났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어째서 콜린이 조현병을 이겨내고 탐정이 되어야 했는지를 적고 그 스토리가 이어지는 또 다른 [일곱 개의 죄악]을 집필하면 된다.

“좋네요.”

그 말에 다이애나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감돌았다.

“아 참. 오늘 저희 집 마당에서 BBQ할 건데 괜찮나요?”

“저는 상관없어요!”

“나도 상관.....없어.”

캐서린은 슬쩍 포동포동해진 자신의 뱃살을 바라보더니 말끝을 흐렸다.

“아, 아직은 괜찮은 편이야.”

그러더니 조용히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소리가 상당히 컸기에 제임스와 다이애나의 귓가에도 들렸다.

다이애나는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나저나 마당에서 BBQ를 해 먹어도 되나요? 옆집에서 뭐라고 하지 않으세요?”

“어차피 옆집이라고 해도 몇십 미터 옆에 있고, 뭐라고 할 분도 아니세요. 같이 와서 드시면 좋고요.”

몇십 년 동안 마주 보고 살던 이웃들이라 그런지 굉장히 친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내 전역 파티 때도 오셨던 이웃분들도 있었고, BBQ 파티를 하면 간혹 오셔서 같이 드시고 술도 마신다.

“헤에..... 저희 집도 예전에 마당에서 BBQ를 즐겼었는데,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이 냄새난다고 뭐라 했거든요.”

“하긴 그것도 그렇죠. 거리가 가까우면 고기 냄새가 약한 것도 아니고 이웃집하고 서로 합의하에 해야죠.”

특히 다이애나의 집 같은 경우는 주택단지였기에 이웃들과의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캐서린 넌 월리 차 타고 올래? 아니면 지금 올래?”

“음...... 조금만 기다려줘. 글은 거의 다 썼거든? 한 10분이면 될 거야.”

“빨리 쓰고 와.”

캐서린은 서둘러 다 식어버린 핫초코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성스럽게 만든 핫초코를 먹지 않으면 엄마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다이애나도 캐서린의 행동에 덩달아 식어버린 핫초코에 손을 가져갔다.

***

집으로 가기 전 중간에 아시안 마트에 들러 고기를 구매했다.

‘여기도 많이 달라졌네.’

요즘 이런 마트에 오면 괜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한국 음식이나 식품이 일본이나 중국 식품에 밀려 구석에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일본과 중국 음식이 구석에 있고 한국 식품이 제일 앞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 불과 2~3년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도시인 뉴욕과 LA뿐만 아니라 이런 소도시 마트까지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문화의 힘인가......’

다시 한번 문화라는 힘의 무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고기는 고기다.

나는 질 좋은 삼겹살부터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구매했다.

“한국식 BBQ로 먹을 건데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예전에 먹어본 적 있었는데 맛있었어요!”

그렇게 카트를 끌고 고기뿐만 아니라, 집에서 마실 술과 음료도 더 카트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술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캐서린이 톡톡 등을 찔렀다.

“오빠.”

“왜?”

“아까부터 저 여자아이가 오빠를 따라다니는데?”

“응? 누가?”

캐서린의 말에 ‘설마 나인 걸 눈치챘나?’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골 동네라 날 알아볼 사람이 적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목도리 하나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서린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중학생 정도 되는 소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응? 한국말?]”

갑자기 들려온 어색한 한국말에 당황했다.

“[하, 한국 사람 맞으시죠?]”

“[그렇기는 한데.....]”

나는 당황하며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을 바라봤다.

옷에는 어느 팬덤을 의미하는 보라색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아. 혹시 Hunter?]”

“[네! 맞아요! 이, 이 발음이 맞나요?]”

“[응, 맞아. 근데 나 영어 할 줄 알아서 영어로 해도 되는데.....]”

“[배운 한국어르..를! 어, 어..... 한국 사람과? 대화해 보고 시었어!]”

몬태나주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그건 일부 지역이다.

우리 동네도 한인들이 많긴 했지만, 이 마트는 우리 동네하고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에 한국인이 적었다.

“[제 발음 좋나요?]”

“[응. 좋아.]”

“[아싸!]”

그러더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아. 오빠가 한국인이라서 다가온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캐서린이 무슨 일인지 알겠다며 다가왔다.

“뮤튜브 영상에 있더라고. 요즘 한류 열풍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그래서 한국 사람이 지나가면 괜히 한 번 말을 건다고 하더라고.”

“아...... 그런 거니?”

“[네! 맞아요! 저! MTS 팬이에요! 갑오징어 게임도 전부 봤어요!]”

“.....그거 너는 보지 못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알기론 갑오징어 게임은 잔인해서 NC-17 등급을 받아 청소년은 관람이 불가한 걸로 알고 있는데.

“[헤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소녀는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인사를 하고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소녀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더 웃긴 건 소녀의 부모님이 입고 있는 옷이 갑오징어 게임에서 나왔던 초록색 추리닝 복장이라는 것이다.

추워서 패딩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요즘 저런 일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학교에도 한국인 애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애들한테 한글을 배우는 애들도 있어요.”

“진짜?”

“네. 물론 어렵지만요.”

한글을 발음하는 건 쉬워도 익히기는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특히 서양권은 문장구조가 다르다 보니 특히 한글과 일어를 쉽게 체득할 수 없다고 들었다.

“다이애나도 배웠어요?”

“네. 근데 저는 그 아이들한테 배우지 않더라도 한국말 조금은 할 줄 알아요.”

“......응?”

그 말에 캐서린과 나는 얼탄 얼굴로 다이애나를 바라봤다.

“진짜요?”

“네. 할아버지랑 친하게 지내시는 한국계 교수분이 계시거든요. 어릴 적에 재미 삼아 한국말을 가르쳐 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 조금 배운 게 아직까지 기억나더라고요.”

“...... 정말 신기한 일이 다 있네.”

“그래서 저는 다른 애들과 다르게 갑오징어 게임을 더 재밌게 봤어요. 간혹 알아들을 수 있겠더라고요. 미국인들은 자막을 보는 걸 귀찮게 생각하니까요. 그렇다고 더빙으로 보자니 내용이 전체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고...”

“근데 다이애나.”

“네! 작가님!”

“갑오징어 게임 다이애나도 보면 안 되지 않나요?”

“......헤헤.”

그 말에 움찔하며 말을 돌리는 다이애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1인치 자막의 장벽인가......’

한국의 유명 감독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이 없다면 더 많은 작품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은 예능에서도 자막을 사용할 정도로 자막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만, 미국은 토크쇼나 드라마, 영화에서도 자막 사용을 어색하게 여긴다.

“남의 일이 아니지..... 내 글도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으니까.”

“해외 진출...,.? 아. 그게 벌써 그렇게 진행됐어?”

“어. 다음 달쯤에 시작될 것 같아. [사막의 전갈] 영화화에 편승하려나 봐.”

“영화! 드디어 만들어지는 거야?”

“응. 제작 기간이 짧아서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마그누스 감독님이시니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문득 말을 하고 나니 살짝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까지 잊고 있던 게 갑자기 생각났으니 말이다.

“얼른 고기나 먹으러 가자.”

이럴 땐 맛있는 걸 먹고 잊어버려야지.

***

집에 도착하니 낮잠을 푹 자고 숙취를 풀고 일어난 아빠가 BBQ 그릴에 숯을 넣고 있었다.

“선생님은요?”

“일어날 낌새가 없어. 그 감독님 술 좋아한다는 말 거짓말인가 봐. 고작 그 조금 마시고 취하실 줄은 몰랐는데.”

“아빠 기준에서 조금이겠죠...”

그 말에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던 다이애나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술은?”

“물론 사 왔죠.”

나는 픽업 트럭 트렁크를 열어 사 온 고기와 술을 꺼냈다.

“월리도 온다고 하네요.”

“잘됐네. 계속 머리만 굴리면 복잡하기만 하니까 푹 쉴 줄도 알아야지.”

숯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고모부 가족이 등장했다.

“근데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집이 굉장히 붙어있네요? 마당도 같이 쓰시는 것 같고.”

“원래 저희 집이 고모부네 집에 있는 창고였거든요. 창고를 뜯고 개조해서 지금의 집이 된 거예요. 돈이 모이면 이사 가려고 했지만 딱히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헤에......”

“그나저나 에드워드 선생님이 걱정이네요. 술을 잘 못 하시는데 그렇게 마시셨으니..... 아마 내일이나 일어나실 것 같네요. 해장국을 준비해야겠어요.”

“할아버지는 괜찮으실 거예요. 나이에 비해 정말 정정하신 편이니까요.”

그렇게 두런두런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메디슨 누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누나. 그 두 명은 언제 온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비슷하니까 같이 온다고 하더라. 곧 올.... 아. 저기 오네.”

저 멀리서 루이나와 제시카가 탄 차량이 다가와 문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루이나 누나와 제시카가 내리는데 연이어 또 다른 누군가가 내렸다.

‘누구지?’

루이나 누나와 재밌게 대화하고 있는 여자였는데, 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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