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프로듀서
루이나 누나는 배우다.
그저 그런 배우가 아닌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배우였다.
올리비아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로맨스 장르에서 인지도가 있는 배우라면, 루이나 누나는 뮤지컬 영화에 특화된 배우였다.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던 누나다 보니 그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고, 뮤지컬 영화에 주로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누나가 나온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었고, 평소에는 극장에서 뮤지컬을 하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겠지 뭐.’
나도 에드워드 선생님과 다이애나를 데려왔는데 루이나 누나도 누군가를 데려오는 것도 딱히 이상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는 그릴 위로 삼겹살을 올렸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자 다이애나의 눈빛이 떨렸다.
“......어?”
“누군지 아세요?”
“네. 프로듀서세요. 그으..... 아델라 코딘의 [또 하나의 범죄]라는 작곡을 하신 분이세요.”
“.....아델라 코딘? 그 빌보드 1위 가수요?”
“네. 분명 데일 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시고 본명은.... 아. 키라나 로웰로 알고 있어요.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세요. 저희 학교에도 강연을 하러 몇 번 오셨고요.”
“그 유명인이 루이나 누나랑 친구.....일 리는 없을 텐데..... 직장 동료인가?”
프로듀서라면 뮤지컬 배우인 루이나 누나가 다니는 극장에서 음악 감독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제임스!”
그렇게 루이나 누나는 마당으로 들어오며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얼른 옷 갈아입고 나와 고기 먹자.”
“너한테 소개할 사람 있어!”
방금 다이애나한테 그 손님이 누군지 들은 상태였기에, 루이나 누나 옆에 있는 여성을 바라봤다.
나이는 메디슨 누나보다는 젊어 보였고, 루이나 누나보다는 많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였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제임스 씨? 키라나 로웰이라고 해요. 편안히 키라나라고 불러주세요.”
“제임스입니다. 그나저나 저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편안히 쉬려고 집에 왔는데 손님이 찾아왔으니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했다.
어딘가 불편함이 보이는 내 말에 키라나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일 때문에 찾아오긴 했는데, 그보다는 루이나하고 친구라서 온 거기도 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가 이번에 휴식을 취하러 온 거라서 웬만하면 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요.”
“아니에요. 저 같아도 쉬러 왔는데 누가 방해를 하면 짜증 나죠.”
키라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저 여기 온 적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작년에도 놀러 왔는걸요?”
내가 루이나를 바라보자, 루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작년에도 놀러 왔어. 너 군대 갔을 때.”
“놀러 온 거 맞아요. 원래 제임스 작가님이 루이나 동생인 것도 몰랐는걸요? 오기 전에 알았어요.”
“그럼 왜 누나가 저부터 소개시킨 건지 궁금하네요.”
그 말에 키라나가 아니라 루이나 누나가 답했다.
“원래부터 너한테 계속 연락을 주고 있었다고 해. DM을 몇 번이나 보내고 출판사에 연락도 했는데 한 번도 답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네?”
“그럴 거야.”
SNS는 잘 확인하지 않을 뿐더러, 친구가 된 사람이 아니면 아예 메시지를 보지도 않는다.
출판사한테는 내 작품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대통령이라도 무시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어째서 저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따가 들을게요. 일단 오셨으니까 고기나 한 점 하세요.”
그 말에 키라나는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 고기 좋아해요.”
***
나는 고기를 먹으러 온 고모부와 월리한테 정성스럽게 포장된 양장본을 내밀었다.
“이건 또 뭐냐?”
“[드래곤 마스터] 양장본인데 가져.”
그 말에 뒤쪽에서 채소 위주로 구워 먹고 있던 캐서린과 오로지 고기만 먹고 있던 이사벨의 눈빛이 돌변했다.
“제 자필 사인도 들어간 거예요.”
“흐음?”
고모부는 알루미늄 케이스를 향해 손가락을 두들겼다.
-통통!
쇠가 울리는 소리에 이사벨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아, 아빠! 뭐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케이스에 손상 가잖아!”
“어차피 내 건데 뭐가 그리 걱정이니?”
“그, 그래도......”
“가지고 싶으면 이번 겨울 방학에도 루니아하고 애니를 잘 돌보도록. 그러면 줄게.”
“아, 알았어! 대신에 아까처럼 케이스에 손상 갈 만한 짓은 절대 하지 마! 절대로야! 절대!”
“알았어 이것아. 얼른 가서 먹던 고기나 먹어. 입이 고기 기름 범벅이니까 좀 닦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해! 안전이 최고야!”
“에휴. 알았다. 얘는 대체 왜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건지 원......”
이사벨이 떠나가자 이번에는 캐서린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접시에는 구운 당근과 감자 같은 작물 채소들이 구워져 있었다.
씩씩하게 걸어와 월리가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놔.”
“싫어.”
“어차피 너 보지도 않잖아.”
“안 봐도 줄 이유는 없어.”
“새벽마다 컴퓨터 소리 크게 하고 소리 질러줄까?”
“미친년. 이거 가격 보니까 상당하던데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줄 것 같아? 꺼져.”
“그 돈 내가 줄 테니까 내놔.”
“......얼마 줄 건데?”
“......근데 얘들아. 내 앞에서 그렇게 프리미엄 거래를 대놓고 해도 되는 거니?”
캐서린이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두 개를 올리자 월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 하나를 더 올렸다.
곰곰이 생각하던 캐서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내놔.”
“여기.”
얼마를 표현한 건지 모르겠지만, 캐서린이 상당히 큰 지출을 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돈은 있어?”
“얼마 전에 정산 금액 들어와서 괜찮아. $3,000 정도로 양장본을 얻었으니 그리 손해는 아니지 뭐.”
한화로 350만 원을 냈는데 적은 돈이 아니라는 건가.
‘하긴, 엄청 비싸게 거래됐다는 말은 들었으니까...... 그나저나 내 양장본으로 내가 이득을 못 보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더니... 월리 저 자식 가만히 앉아서 돈 버네.
어차피 선물은 준 순간 내 손을 떠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상황이 웃겼다.
난 들고 있던 나머지 양장본 하나를 다이애나한테 내밀었다.
엄마가 재운 한국식 갈비가 맛있는지 연신 포크를 움직이던 다이애나는 내가 내민 양장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켁켁!”
사레가 들렸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던 다이애나는 진정을 하고 다시 내가 내민 양장본을 바라봤다.
“받으세요.”
“저, 정말로 저 주시는 거예요?”
“네. 이래저래 다이애나한테 신세 진 적이 많으니까요.”
북 페스티벌 안내부터 시작해서 오늘 있었던 [일곱 개의 죄악] 품평까지 여러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보니 한 권 정도는 주고 싶었다.
“고, 고마워요 작가님......”
다이애나는 기쁜 듯이 책을 끌어안았다.
“이게 양장본이야?”
그 모습에 제시카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다이애나가 안고 있는 양장본을 쳐다봤다.
“응.”
“아리야도 [블랙 & 월드]인가? 그거 양장본 가지고 엄청 기뻐하던데. 나도 한 권 주라.”
“꺼져. 넌 팔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아리야한테 들어보니까 이번 양장본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하던데? 그럼 비싸게는 안 팔리겠네.”
“그건 사인회에 온 사람들만이고, 내가 주는 거엔 적혀 있지 않아. 쉽게 말해 프리미엄이 붙겠지.”
그 말에 다이애나와 캐서린의 얼굴이 잠시 굳어지더니 이내 환하게 밝아졌다.
특히 캐서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솔직히 사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신인 작가로서 예상치 못하게 나간 큰 지출에 뼈아팠다.
하지만 제임스가 직접 준 프리미엄에 받는 사람 이름까지 기입되어 있지 않다면... 이 양장본의 가격은 사인회에서 배포된 양장본의 가격보다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월리를 비웃으며 캐서린은 구워진 당근을 맛있게 먹었다.
“에이 한 권만 줘.”
“나도 몇 권 못 받아서 이미 줄 사람이 정해져 있어. 그리고 너 내 소설도 안 읽잖아?”
나는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시끄럽고 온 이유나 말해.”
“.....눈치챘어?”
“내가 널 모르냐?”
제시카는 딱히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프리미엄 판매 이런 것도 귀찮아서 안 할 성격이라 이런 양장본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한테 온 이유는 아마 다른 게 있을 것이다.
“헤헤..... 귀여운 내 동생!”
“.....너하고 나하고 기껏해야 한 살 차이야. 징그럽게 달라붙지 말고, 뭔데 그래?”
“나하고 사진 한 장만 찍자.”
“.....싫은데?”
“자 치즈~”
“야야! 으극! 아야야야야야!”
내가 싫다는 말에 제시카는 강제로 내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요즘 운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제시카의 힘을 이길 수 없었기에 강제로 사진이 찍혔다.
나는 목을 주무르며 제시카를 노려봤다.
“안 어울리게 웬 사진이야?”
“히히히히! 몰라도 돼! 고맙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더니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저 음흉한 미소가 굉장히 찝찝했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 참아주기로 했다.
절대 제시카가 무서워서 참은 게 아니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네. 뭐..... 이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왜 저러는 걸까요?”
내 말에 대한 답은 앞쪽이 아닌 뒤쪽에서 들려왔다.
“아마 레나 오스틴 때문이 아닐까요?”
“레나 오스틴?”
키라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 테니스 스타 선수예요. 차를 타고 오면서 들었는데 제시카 양이 레나 선수의 팬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어째서 저와 사진 찍은 이유가 되는 거죠?”
“최근에 레나 선수가 메이저 대회 우승 인터뷰로 쉬는 시간마다 드래곤 원 작가님의 소설을 읽는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니 친분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찍은 게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일리 있네요. 제시카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자세하시네요?”
“직업병이죠. 후훗.”
나는 갈비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루이나 누나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세요?”
“제가 프로듀싱한 뮤지컬에서 만났어요. 그 이후로는 제이든 때문에 가끔 만났죠.”
“제이든......?”
“ABA 연예계 기자요.”
“네. 루이나 누나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아무튼 제이든 때문에 친해진 건가요?”
“처음에는 일 때문이었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친해졌어요. 그 이후로 같이 쇼핑도 하면서 놀러 다니죠.”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제이든이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인맥이 이렇게 넓은 거예요? 기자라서 그런가?”
“전혀요. 그렇게 인맥이 넓은 사람은 아니에요.”
“빌보드 1위 곡을 프로듀싱한 사람과도 아는 사이인데요?”
그뿐만 아니라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루이나 누나가 출연하는 영화들도 제이든이라는 사람이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제 남자친구거든요.”
“아....?”
그러면 이해가 가지.
“예전부터 제임스 작가님과 관련된 일이면 제이든이 정신을 못 차렸거든요. 그 때문에 한번 뵙고 싶었어요.”
“그렇군요. 아 아까 일 때문에 오셨다고도 했는데 무슨 일인가요?”
“지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방해되는 건 아닌지...”
“식사도 거의 다 했으니 괜찮습니다.”
그 말에 키라나는 옆에서 고기를 오물거리고 있는 다이애나를 보며 말했다.
“[블랙 & 월드] 그리고 [드래곤 마스터]를 주제로 노래를 만드셨죠?”
“우물우물?”
“아. 다 먹고 말하셔도 돼요.”
“꿀꺽.”
다이애나는 음식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블랙 & 월드] 작사는 작가님이 하셨어요. 제가 한 건 작곡이고요. [드래곤 마스터] 가사도 작가님이 한 번 수정해주셨고요.”
“역시.....”
키라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하고도 한 번 작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 전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