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31화 (130/216)

131화. 초능력 세계

애니가 울자 이사벨하고 다이애나는 서로 애니를 끌어안으며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달래봤자 애니는 계속 울음을 터트렸고,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충격인가?’

하긴, 애니가 봤을 때 중성화는 동심 파괴나 다름없겠지...

‘며칠 있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니까.’

그때 되면 상황을 다시 설명해주는 게 좋겠지.

아무튼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나는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무리해가며 글을 쓴 보람이 있네.’

한 시간 정도 수정을 하자 드디어 [일곱 개의 죄악 : 【질투】]의 퇴고가 끝이 났다.

‘그나저나 이제 얠 어떻게 하지......’

문제는 어느 출판사에 이 소설을 맡기는가였다.

‘어느 곳에 맡겨도 이해는 해주겠지.’

선택받지 못한 쪽은 아쉬움을 숨기지는 못할 테지만 내 뜻을 두 곳 다 이해는 해줄 것이다.

‘역시 빌에이든 미디어가 나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SC라스틱하고 어울리는 글은 아니었다.

거기에 최근 상승세를 보여주는 빌에이든 미디어다 보니 충분히 이 글을 커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C라스틱이 아쉬워하지 않을 소설이라......’

그래도 아예 입을 싹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습작들을 확인해볼까?’

내가 어린 시절에 적었던 습작들은 전부 동심이 있던 상태로 글을 적었기에 SC라스틱하고 어울리는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근데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제목을 본다면 내용이 떠오르긴 하더라도 내가 적은 습작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그 내용들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이럴 때는..... 도움을 받아야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응? 갑자기 왜 전화했어 오빠? 내가 뭐 놓고 갔나?

“야. 이사벨.”

-왜?

“너 내가 적은 습작 중에서 또 뭐 투고한 거 없지?”

-다, 다, 다, 다, 당연하지! 사, 사람을 뭘로 보고 진짜!

“사람을 잘 봐서 두 작품이나 투고했냐? 아무튼 그 이후로 없는 거지?”

-그거에 대해선 내가 할 말은 없는데..... 그 두 작품 이후로는 진짜 투고한 적 없어. 아무튼 그게 궁금해서 전화한 거야?

“아니. 도움이 필요해서.”

-도움?

이사벨이 막 나가기는 하지만 아예 보는 눈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소설을 보는 눈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사벨이 투고한 두 소설이 전부 대박 나지 않았는가.

“일단 와봐.”

-지금? 집으로? 이 시간에?

“응. 내일 맥플러리 사줄게.”

-......몇 개?

“먹고 싶은 만큼 사줄게. 고모부 몰래.”

-지, 지금 갈게! 조금만 기다려!

이사벨은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

***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사벨은 유일하게 내가 적은 습작을 읽은 인물이었다.

그 누구도 내 습작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내 작품을 재밌어하는 인물이 이사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방에 몰래 들어와 습작을 읽던 경험이 있으니, 내 고민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동 문학에 어울리는 소설을 찾고 있는데 습작 중에 재밌는 게 있었냐고?”

“응. 말 그대로야. 너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대답을 바라는 내 말투에 이사벨은 눈을 반짝이며 콧대를 높였다.

“당연하지! 내가 오빠가 쓴 글을 몇 번이나 읽어봤는데! 나한테 맡겨! 내가 반드시 찾아줄게!”

“그래그래. 맥플러리 많이 사줄게 열심히 찾아줘.”

“응!”

내 습작은 오로지 집에 있는 컴퓨터에만 저장되어 있었다.

혹시나 삭제가 될까 봐 USB에도 저장은 해놓았지만, 그 USB 역시 이 집에 있었다.

“으음......”

이사벨은 모니터 화면에 떠올라있는 파일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어때?”

“어디 보자..... [달팽이 여행]?”

이 시절의 나는 제목을 더럽게 못 짓는 인간이었어서 제목만 봐도 이게 달팽이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그건가?”

제목을 보니 내용이 떠올랐다.

물론 가느다란 실처럼 떠오른 거라 정확히 생각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아마, 느림보 달팽이가 갇혀있던 구역에서 벗어나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하던 이야기였지?’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어린 시절 ‘좁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이라는 한국에서 읽은 동화책이다.

자신의 다리가 느리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달팽이는 마을에서 벗어나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달팽이의 다리로는 무리였기에 달팽이는 지나가던 개미한테, 메뚜기한테, 참새한테, 갈매기한테, 소한테 부탁하여 세상을 돌아다닌다.

달팽이가 그들한테 부탁하는 방식은 솔직히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내 물건을 부쉈으니 저기까지 데려가 줘, 내 물건이 너 때문에 사라졌으니 나를 데려가 줘, 그렇게 세계를 여행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이건 그림책이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도 재밌는 내용이잖아?”

“그렇긴 하지? 할 때 상상을 많이 했으니까.”

“그래서 이걸로 할 거야?”

“아니.... 일단은 킵하자.”

내용 자체는 동심에 어울렸지만 너무 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 뛰어난 내용도 아니었거니와 뭔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다음은 이거 어때? [쥬라기 월드에서 살아남는 법]”

“패스.”

“아니 왜?”

“이거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수정한다고 하면 할 수는 있는데 그리 끌리지는 않아.”

제목 그대로 쥬라기 월드로 간 주인공이 살아남는 이야기인데 너무 흔한 내용이었다.

“이거는? [아기 상어의 모험]”

“그거 ‘엄마 찾아 삼만리’하고 비슷한 내용일걸?”

“그럼 이건?”

“[고스트 템페스터]? 이건 조금 잔인하지 않아? 내가 중학생 때 적은 건데.”

“으음.... 어렵네.”

어린 시절에 적은 소설은 많아도 그 소설들이 전부 재밌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드래곤 마스터]도 솔직히 수정을 걸쳐서 재미가 있었던 것이지, 그냥 보면 많은 독자들이 실망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사벨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적은 소설들 중 가장 재밌었던 것들을 골라줬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3개 정도로 후보가 추려졌다.

“[고양이 협회], [별빛 나라], [코끼리가 먹은 장미]인가......”

“그나마 괜찮은 것들인데, 솔직히 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

“응. 수정을 한다면 그럭저럭 볼만하긴 할 것 같은데..... 내용이 너무 모티브를 따왔어.”

어렸을 때 취미 삼아 적었던 책들이다.

재밌게 봤던 작품들에 나만의 동심을 덧씌우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 때문에 다른 작품들을 표절한 꼴이 되었다.

지금 이사벨이 내민 3개의 작품도 글을 읽다 보면 무언가를 표절했다고 느꼈으니까.

“음......”

이사벨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내 파일 하나를 더 가리켰다.

“그럼 이건 어때?”

“그게 뭔데?”

파일에는 대충 알파벳으로 뭐라 뭐라 적혀 있었지만 도통 뭐라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영감을 받아서 글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없어서 그냥 미정인 상태로 저장해 놓은 것.

또 하나는 글을 적기는 했지만 중간부터 내용이 막힌 경우다.

첫 번째의 경우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보니, 아마 중간에 내용이 막혀서 방치해둔 파일일 것이다.

“나는 나름 재밌었는데 내용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더라고.”

“분량은?”

“그건 오빠가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야.”

“음......”

보통은 제목을 보고 내용을 유추하지만, 이건 제목조차 없었기에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파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해봐야 했다.

내용을 읽는 나는 서서히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

“의적에 관해서 적었더라고.”

“아. 이거...... 기억나네.”

내용을 보니 어째서 중간에 그만두었는지가 먼저 생각났다.

‘예전에 뉴스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은행에 강도질을 한 남자가 나와서 영감을 받은 거였지?’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내용을 확인했다.

‘분량은 그래도 상당히 많이 적어놨네......’

[드래곤 마스터]같은 경우는 하나의 스토리를 완료하고 난 후 1권으로 마무리 지었다면, 이 소설은 아니었다.

‘분량으로 보면 2권 정도인데..... 스토리가 너무 길어.’

작게 작게 스토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다 보니 그냥 권 수를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용을 적은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걸 전부 수정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래도 이 괴도 이야기는 재밌단 말이지.’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도둑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의 돈을 훔친다.

참고로 이 세계관에는 초능력자라는 뜬금없는 존재들이 존재하는데 주인공도 초능력자들이다.

물론 개연성은 개밥으로 줬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있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꼬마들의 영웅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소재였다.

“흐음..... 우선 세계관은 그대로 가져가는 게 좋겠네.”

어반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딱히 나쁘지 않았다.

세계관을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그냥 이대로 진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내용은 많이 손보는 편이 좋을 것 같고......”

우선 주인공은 사람이다.

[사막의 제국]처럼 짐승을 모티브로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어반판타지 세계관을 가져가다 보니 인간으로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가면 그건 동심이 아니지.”

초능력자라는 주인공의 이미지를 가져가려면 어반 판타지라도 세계관이 평범하면 안 되었다.

‘도시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초능력을..... 음.’

인간 모두? 선택받은 인간? 선택할 수 있는 초능력?

어떤 걸로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인간 모두라고 하면 초능력에도 등급을 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선택받은 인간만 초능력을 쓸 수 있다면 사회계급 문제가 들어갈 수 있었다.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어느 인간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데 거부하겠는가.

“이걸로 진행해보자.”

초능력 문제는 뒤로 젖혀두더라도 일단 이 소설을 선택했다.

세계관부터 시작하여 ‘영웅’이라는 주제가 아이들의 동심에 가장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럼 맥플러리 사주는 거야?”

“당연하지.”

도움이 안 됐더라도 사줄 예정이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한다고.

“아싸! 그럼 나 이제 집에 갈게!”

“그래. 늦은 시간에 수고했다.”

이사벨이 내 방에서 나가고, 나는 한참이나 파일을 뒤적거렸다.

“일단..... 이것도 [드래곤 마스터] 수준으로 수정이 길어지겠네..... 하아. 그냥 다시 쓰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도둑질이 너무 반복되니 시리즈로 진행시키려면 중요한 내용을 확대시켜 하나의 스토리로 집약해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드래곤 마스터]보다 수정이 길어질 것이다.

그보다도

“제목을 뭐로 할까?”

초능력자, 의적, 괴도, 어반 판타지......

스토리에 들어가는 직업들과 세계관을 매칭하다 보니 제목이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그냥 대충 지어놓자. 출판사랑 다시 얘기해보면 되겠지.”

나는 파일 이름을 [초능력 세계]라고 지어놓은 다음 천천히 내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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