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크리스마스 이벤트 (2)
소아암 병동에는 암에 걸린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희귀병, 불치병뿐만 아니라 단순하게 잠시 입원한 아이들도 있었다.
쉽게 말해 그냥 어린이 병원 같은 느낌이었다.
‘구분되어 있는 건가.’
우리가 현재 가는 곳은 아직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고, 브록스는 향균실 즉, 작은 세균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는 중환자실이었다.
나는 올리비아가 준비한 루돌프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에 사슴뿔을 단 전형적인 루돌프 인형 옷이었다.
“그냥 산타 할아버지 옆에서 장단 맞추며 선물을 나눠주시다가, 시간이 지나면 작가님이신 거 밝히시면 돼요. 그리고 이번 이벤트는 영상으로 남길 거예요.”
“영상이요?”
“네. 후원 영상 같은 거예요.”
올리비아한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들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이벤트는 병원 측 후원 영상으로 남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근데 아이들이 저를 알아볼까요?”
“물론이죠. 아이들이 작가님의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아. 그리고 오늘 끝나고 혹시 일정 있으신가요?”
“딱히 없네요. 아. 돌아가면 한스 할아버지랑 술 마시기로 했어요.”
“한스?”
“시큐리티 할아버지세요. 크리스마스인데 혼자 있는 것보다야 함께 술이라도 마시는 편이 좋잖아요?”
그 말에 올리비아가 눈을 빛냈다.
“아! 그럼 저희도 함께해도 괜찮을까요?”
“저희?”
“네. 제 동생도 할 게 없어서 데려왔거든요. 봉사활동 왔어요.”
“상관은 없는데..... 저희 집에서 먹을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무엇보다 여동생도 작가님 팬이라 굉장히 좋아할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근데 제가 요리를 못해서 아무래도 음식을 포장해가야 할 것 같아요.”
“괜찮아요.”
어떻게든 같이 술을 마시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이는지라 어쩔 수 없이 승낙하였다.
***
이번 이벤트 봉사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다리가 한쪽 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한쪽 팔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리비아의 말로는 이 병원을 후원하는 사람이 이벤트에 대한 금액을 전부 부담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다.
‘[나인 드래곤] 회장......’
내 팬카페를 설립한 회장이자, 아직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최우수회원들조차 회장님을 모른다고 하며, 나이, 이름, 성별 그 무엇도 알 수 없었고,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끔가다 들어오는 최우수회원 단체 채팅방뿐이었다.
‘대체 누굴까?’
올리비아한테 받은 연락처가 있기는 하지만 딱히 연락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연락한다고 해도 뭐라 해야 할지 몰랐고, 기껏해야 인사 정도였는데, 인사를 한다고 해도 ‘제 카페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 들어주게.”
“네.”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산타 할아버지 분장을 한 의사의 말에 나는 선물 보따리를 들어 올렸다.
“앞에서 올리비아 양이 우리를 부르면 들어가면 되네. 아이들한테 손을 잘 흔들어 주게나. 그리고 선물을 나눠줄 때는 아이들한테 정체를 들킬 수 있으니 조용히 하게나.”
으샤.
할아버지 또한 선물 보따리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 앞에서 즐겁게 인사하고 있던 올리비아가 마지막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산타 할아버지와 그의 조수 루돌프를 불러볼까요?
-네에-!!!
-자 모두!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를 타고 와주세요~!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를 타고 와주세요!
실제로 내가 할아버지를 업을 건 아니었기에 그냥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의 뜨거운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산타 할아부지! 선물 주세요!”
“선물이요! 저 아픈 거 꾹 참아냈어요! 선물 주세요!”
“저도요! 저도 주세요!”
아이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산타 할아버지의 주목을 받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루돌프 섭섭하다......’
어떻게 된 게 아무도 루돌프는 안 찾네.
아이들한테 열렬하게 손을 흔들어 봤지만, 아이들의 눈은 전부 산타 할아버지한테 쏠려 있었다.
그래도 손을 흔드는 걸 멈추지 않았고 우리는 올리비아가 있는 단상에 도달했다.
단상에는 올리비아가 산타 복장을 한 상태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네.....’
뭔가 우아한 산타라고 해야 할까? 산타 복장을 한 엘프라고 해야 할까?
보자마자 넋이 나갔다.
올리비아는 우리가 도착하자 모두한테 들리도록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모두 산타 할아버지하고 루돌프한테 반갑다고 인사할까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활기찬 목소리가 병원에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산타 할아버지하고 루돌프가 우리를 위해 잠시 시간을 내주셨어요! 모두 감사하다고 인사할까요?
“산타 할아버지!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그 누구도 산타 할아버지를 태우고 온 루돌프를 칭찬하지 않았다.
약간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산타 할아버지는 이후에 세계 전역에 있는 또 다른 친구들한테 선물을 주러 가야 해요! 그러니 아쉬워하지 말고 차근차근 산타 할아버지 말을 듣고 선물 받으러 나오세요!
“네에-!!!!!”
산타 복장을 한 의사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고 그 안에서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선물을 꺼내 들었다.
“자아..... 아가사? 아가사 어린이 앞으로 나올까요?”
“저요! 저예요!”
아가사라는 말에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여자아이가 기쁜 듯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다행히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있는 아이인지 그렇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저! 아파도 울지 않았어요! 차에 쿵하고 부딪쳐서 많이 아팠는데! 그래도 울지 않았어요!”
울지 못할 정도로 아팠든가, 아니면 울었던 기억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팠을 테지.
의사 할아버지는 장하다는 눈빛으로 들고 있던 선물을 아가사한테 안겨주었다.
“그래, 이건 아가사가 지금까지 장하게 버텨와서 주는 할아버지 선물이란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있어주렴.”
“네!”
분홍색 포장지로 둘려있는 선물을 받아든 아가사는 행복한 듯 웃음 지었다.
“우리 사진 찍을까?”
“좋아여!”
올리비아와 나 그리고 의사 할아버지는 아가사의 옆에 섰다.
그러자 이 순간을 촬영하고 있던 스태프 한 명이 폴라로이드 가지고 와 영원할 추억의 순간을 찍었다.
아가사가 기쁘다는 듯이 부모님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자, 의사 할아버지는 보따리에서 나름 큼직해 보이는 파란색 포장지로 꾸며진 선물을 꺼내들었다.
“에이든 어린이 선물 받으러 나오세요.”
“자, 잠시만요!”
아이들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나오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얼굴이.....’
기쁜 듯이 뛰어오는 에이든이라는 남자아이의 얼굴에는 화상 자국이 가득했고, 발을 움직일 때마다 절뚝거렸다.
무엇보다도 부모님들과 같이 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에이든 뒤를 따라오고 계셨다.
‘방화 사건의 피해자......’
몇 주 전 일어난 일가족 방화 사건.
범인은 근처에 살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며, 당시 사망자인 아버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에이든은 아직까지도 피부 조직 이식 수술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헥헥.....”
폐 절반이 소실되었다고 들었다.
그 때문인지 짧은 거리를 뛰어오는데도 에이든은 숨을 헐떡였다.
“어서 오거라 에이든.”
“아, 안녕하세요! 산타 할아버지!”
“그래그래. 자. 선물 여깄단다.”
할아버지는 선물을 내밀었지만 에이든은 그 선물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제가 원하던 선물은 이게 아니에요. 이 선물 안 받아도 되니까.....”
에이든은 잠시 마지막 말을 얼버무리다가 이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엄마가.....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작은 소리였기에 에이든의 소리를 듣는 건 의사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근처에 있던 올리비아밖에 없었다.
나는 그 말에 말문이 턱 막혔지만 의사 할아버지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에이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곧 있으면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을 나는 알고 있단다. 시간이 흐르면 이루어질 일이니 에이든이 섭섭하지 않게 선물을 가지고 온 거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
에이든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그려졌다.
***
선물은 계속해서 나누어졌다.
어느 아이는 부모님의 손에 의지해야 올 수 있었고, 어느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와야 했다.
부모가 없는 아이도 많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날인 크리스마스임에도 웃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물의 크기가..... 절망의 크기인가.....’
몸이 거의 치료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아이들은 비교적 작은 선물을
치료 방법이 없거나, 얼마나 병원에 신세를 져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한테는 큰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이 양말 안에 받고 싶은 걸 쪽지로 넣어놨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에이든처럼 불가능한 걸 적은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저 선물로 아이들이 오늘 단 하루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듯 올리비아와 의사 할아버지는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아이들한테 선물을 나눠주었다.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에 얼마나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선물이라도 아이들이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내가 들고 있던 보따리까지 전부 비워지기 시작했다.
올리비아는 마지막 아이까지 선물을 받고 자리로 돌아가자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모두 선물 잘 받았나요?
“네에-!!!!!”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아까보다 더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이제 다른 아이들한테 선물을 주기 위해 돌아가셔야 해요. 그 대신 루돌프가 남아서 여러분들과 놀아준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가지 마세요!!!”
“싫어요! 산타 할아버지! 가지 말고 저희랑 더 놀아요!”
예상대로 아이들은 나랑 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의사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자신이 가지 못하면 슬퍼할 아이들이 남아 있을 거라며 아이들을 설득시킨 다음에야 자리에서 나갔다.
‘벗어야 하나?’
의사 할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이제 무얼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이었는데, 올리비아는 목에 손을 가져가며 무언가 벗는 시늉을 했다.
‘벗으라는 거네.’
나는 싱긋 웃으며 땀으로 범벅이 된 인형 모자를 벗었다.
“.....어?”
내 얼굴이 드러나자 아이들이 놀란 토끼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