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브록스
명함에는 ‘실비아 스튜어트’라고 적혀 있었다.
‘스튜어트...?’
미국의 가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기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스튜어트 가문은 대대로 부동산 기업을 잇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있다고.
‘그보다 이 번호......’
주섬주섬 핸드폰을 켜 저번에 올리비아한테 받았던 번호와 비교해봤다.
어디선가 본 번호다 싶었더니 그 번호와 완전히 똑같았다.
‘[나인 드래곤] 회장이 왜 명함을 준 거지?’
일언반구 없이 명함만 주고 갔기에 이게 도통 뭐 하자는 건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라는 건가?
‘그보다 스튜어트..... 이 성이 흔한 성은 아닐 텐데.’
내 지인 중에서도 한 명이 스튜어트라는 성을 가지고 있기는 했는데.
‘에이. 그럴 리가.’
그런 우연이 있겠는가.
‘그냥 성이 똑같은 것뿐이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갑에 명함을 집어넣었다.
‘명함을 준 이유는 언젠가 알 수 있겠지. 일단 가지고만 있자.’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휴게실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벌컥.
문이 열리자 코를 씰룩거리게 하는 꽃향기와 함께 올리비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작가님 금방 씻으셨네요?”
“네. 남자는 빨리 씻으니까요.”
나는 짐을 챙겨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항균복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수술복이라고 해야 할지 이름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자주 보던 초록색 옷을 입은 나와 올리비아는 브록스가 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에는 브록스 말고도 여러 환자들이 있었다.
나는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브록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번에 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브록스의 모습에 목구멍이 갈라진 듯 턱턱 막혔다.
저 작은 아이의 몸에 뭐 저리 많은 기계가 꽂혀 있단 말인가.
삶을 연장해주는 기계들이라는 걸 알지만 그 안쓰러운 모습에 차마 뭐라고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내 말에 저번에 봤던 조셉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브록스가 있는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
쉬익..... 쉬익.....
브록스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진통제와 함께 무슨 약물을 투여했다고 하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고 애초에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시선은 오직 브록스를 향해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브록스의 옆에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야기 안 하나?”
“......예. 뭐.....”
그 모습에 조셉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브록스와 대화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닌가? 곧 일어날 시간이니 보고 가는게......”
나는 조셉의 말에 손을 들어 올리며 막았다.
“저도 브록스와 대화하고 싶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산타는 원래 선물만 주고 가는 거니까... 다음에 다시 올게요.”
“산타.....”
그 말에 조셉은 피식 웃음 지었다.
“자네가 산타라도 된다는 겐가?”
“아이들한테 행복을 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산타가 될 수 있지 않나요?”
그 말에 조셉은 한참동안이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를 만나는 게 조셉한테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걸세.”
나는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마스는 오로지 산타가 아이들한테 행복을 선물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브록스가 끝까지 산타가 있다고 믿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오늘은 산타한테 양보할게요. 저는 다음에 다시 오면 되니까요.”
조셉은 잠시 말없이 제임스를 바라보다 슬쩍 유리벽을 바라봤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아니 그러니까.....”
“이미 들켜버린 것을.”
“......예?”
조셉의 말에 고개를 돌려 브록스를 바라봤다.
유리벽 너머로 브록스는 실눈을 뜬 상태로 나를 바라보며 기쁜지 웃고 있었다.
“이런.....”
들켜버린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고 있는 브록스와 눈을 마주쳤다.
***
브록스의 얼굴만 보고 떠나려 했던 이유는 내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냥..... 모르겠다.
가슴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만큼은 브록스와 웃으며 대화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어른이니까......’
브록스가 날 봤는데 이대로 도망칠 순 없지.
사회의 풍파에 맞서 버텨야 하는 어른이 저 작은 아이와 대화하는 게 무섭다고 어찌 떠날 수 있겠는가.
저 아이도 필사적으로 버텨내고 있는 것을.
“작가.....님.....”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브록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산타 할아버지..... 소원을.... 들어주셨.....네요.”
아픈 얼굴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는지 브록스는 애써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나는 브록스의 곁으로 가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날 만나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냥 가지고 싶은 걸 부탁하지 그랬어.”
“저는..... 작가님과 대화하는 게..... 더 좋아요. 헤헤.....”
나와 브록스의 대화를 올리비아와 조셉 그리고 브록스의 부모님이 조용히 뒤에서 지켜봤다.
브록스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부모의 손을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브록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가장 존경하는 작가님이기에 브록스한테 남은 시간을 하루 정도는 양보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덤덤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브록스의 어머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아버지만이 남아 브록스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냥 선물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하하. 나도 역시 브록스와 대화하고 싶었나 봐.”
“다.....행이에....요. 민폐.....끼치지..... 않아서.....”
“브록스. 너는 아직 어려, 어릴 때 어른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도 하나의 권리야.”
“그건..... 아니에요.....”
브록스는 처음으로 내 말을 부정했다.
“엄마하고 아빠.....가..... 올 때마다..... 모습이 달라져요.....”
자신의 투병 생활이 길어질 때마다 부모님의 옷은 점점 낡아졌고, 건강하던 얼굴엔 점점 주름이 쌓여갔다.
자신이 병원에 있던 시간은 불과 몇 년뿐인데 부모님까지 덩달아 야위어 갔고, 브록스의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저는..... 민폐 덩어리예요.”
오로지 나만 들을 수 있는 브록스의 중얼거림에 나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브록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밖에.
“제가..... 죽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이미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악마가 날카로운 흉기로 몸을 꾹꾹 찌르는 느낌이 났다.
살아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괴로웠다.
“괴로워서.....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엄마 아빠한테..... 기대게 돼요...... 이런 제가..... 부모님들도 밉겠죠?”
나는 그 말을 부정했다.
“부모님들이 미운 건 너의 힘없는 말과 이미 죽음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태도야...... 하루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마.”
“헤헤......”
브록스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닫으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살 수 있다고..... 다짐하면..... 안 돼요...... 기대가... 커지면.... 모두가... 더 힘들..어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아직 아는 것도 많이 없는 아이, 아직 경험해볼 것들이 수천만 개가 남아있는 아이가, 올 때마다 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자신이 민폐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죽음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태도, 삶을 잃어버리고 얼른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그런 브록스의 태도에 한편으로는 화도 났다.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나한테도,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브록스의 아빠한테도, 이 장면을 지켜보기 힘들어 떠나간 엄마한테도, 그저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의사한테도.
모든 것에서 화가 났지만 분출할 수 없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그 권리는 오직 브록스에게만 존재하니까.
“작가님......”
“......말하렴.”
서서히 닫히는 브록스의 눈꺼풀 사이로 작은 빛이 흘러나오는 착각을 받았다.
힘없는 말로 브록스는 아주 작게.....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로얀과..... 하스..... 그 둘의 모.....험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알고..... 싶어요.....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부탁...드려요.....”
당당히 책의 내용을 스포해 달라는 브록스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억지로 위로 끌어올렸다.
완결 나지 않은 책.
2부조차 아직 출판되지 않은 [드래곤 마스터]의 마지막 여정.
아직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은 [드래곤 마스터]라는 넓은 세계관에 나는 오늘 종점을 찍어야만 했다.
“물론이지.”
내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단 한 번도 마무리를 어떤 식으로 지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내 머릿속은 몇 부작이나 나누어져 있는 [드래곤 마스터]의 세계관이 톱니바퀴처럼 빠르게 맞아 돌아갔다.
어릴 때 적었던 [드래곤 마스터] 3부의 내용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머릿속의 세계관을 이어갔다.
단 3분이라는 시간.
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드래곤 마스터]의 모든 스토리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하스와 로얀의 모험의 끝을 바라봤다.
이 스토리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아니 조금 더 생각한다면 더욱 재밌는 스토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브록스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재미가 있든 없든.
이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나는 [드래곤 마스터]의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
조용히 브록스의 귓가로 [드래곤 마스터]의 마지막 스토리를 말해주었다.
그들의 끝은 어디인지, 그들의 모험은 어디까지인지, 그들을 가로막는 단체가 무엇인지, 그들이 이겨내야 할 시련이 무엇인지.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브록스가 궁금해할 것 같은 것들을 모조리 말해주었다.
희미하게 뜬 눈과 색색거리는 숨소리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브록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마워요.”
브록스는 아주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작은 중얼거림.
그저 입 모양으로 밖에 유추되지 않는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숙였던 허리를 천천히 일으켰다.
[글을 써주셔서 고마워요.]
작가로서 최고의 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