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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49화 (148/216)

149화. 셀리나

브록스와 만남 이후 내 마음은 뒤숭숭해졌다.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와 보니 겨울 하늘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멍하니 브록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렇게 길지 않았던 대화였기에 머릿속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브록스와 만났을 때 완결까지 정해놓았던 시놉시스를 수첩에 옮겼다.

상세하게 적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내용 그리고 완결로 정해놓았던 내용을 모조리 적어놨다.

하지만 수첩에 글을 적을 때마다 브록스와의 대화 내용이 계속해서 뇌리를 어지럽혔다.

‘정신 차리자.’

나는 머리를 툭툭 치고 다시 집중해보려 했지만 그럼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애써 글을 적고 있으려니 누군가 나한테 다가오는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작가님?”

“......”

“작가님?”

툭.

등 뒤를 누군가 툭 건드리자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봤다.

그곳에는 올리비아와 함께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키는 올리비아보다 상당히 작았으며 얼핏 보면 중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아..... 생각 좀 하느라, 죄송해요. 그보다 옆에 있는 아가씨가 혹시.....”

“여동생이에요.”

그 말에 올리비아의 여동생은 뭔가 우물쭈물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셀리나 콜린스라고 해요! 패, 팬이에요!”

나는 셀리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하하. 팬레터 잘 읽었어요.”

최초로 나한테 팬레터를 준 팬이 올리비아랑 셀리나였다.

그 당시 집에 가서 읽어봤기에 셀리나가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말에 셀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부, 부끄러워요......”

“저는 고마웠는데요 뭘. 아. 그보다 저희 집에 오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무, 물론이죠! 제임스 작가님이 작업하시는 곳에 정말 한번 가보고 싶었는걸요!”

팬들은 어째서 작가가 작업하는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차는 가지고 오셨나요?”

“물론이죠.”

술을 마시고 운전할 수 있으려나 했더니 올리비아는 괜찮다고 말했다.

“근처에 있는 호텔에 방을 미리 잡아놨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다행이네요. 슬슬 추워지니까 얼른 가죠.”

나는 주차해 놓은 차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병원을 슬쩍 바라봤다.

***

우리는 집에 도착하고 한스 할아버지를 찾았다.

“응?”

시큐리티 실에는 한스 할아버지가 온데간데없었고 다른 시큐리티 직원이 남아 있었다.

“한스 할아버지는요?”

“오늘은 몸이 피곤하시다고 금방 들어가셨어요. 볼일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도망치신 건 아니겠지?’

나는 시큐리티 직원과 집으로 들어가기 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저한테 온 택배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 있나요?”

“네. 있어요. 근데 양도 양인데 크기가 커서 들고 가시기 힘드실 거예요. 카트 빌려드릴 테니 내일 가져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두 분은 누구신가요?”

시큐리티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올리비아와 셀리나를 가리켰다.

“제 손님이세요. 저녁까지 있다가 갈 거예요.”

“아. 네. 확인했습니다.”

보안이 뛰어난 곳이다 보니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해야 했다.

“여자친구세요?”

“하하.....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이런.....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함께 할 사람이 있어서 부럽네요. 하하.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날이 있겠죠.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카트를 끌고 기다리고 있는 올리비아와 셀리나한테 다가갔다.

“택배에요?”

“네. 아무래도 선물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고마워라.”

발송인들을 보니 하나같이 내가 아는 이름들투성이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와아.....”

별거 아닌 집인데도 셀리나는 우상의 집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한 번 와봤던 올리비아는 변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어? 뭐가 달라진 것 같은데요.....”

“집이 너무 삭막해서 어항을 좀 들여놨거든요. 그나저나 음식하고 술이 없네요. 나가서 금방 사올게요.”

“앗! 저희도 같이 가요!”

“아뇨. 그냥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계세요. 그냥 제가 사올.....”

-벌컥!

그렇게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왔다.”

“응? 누나?”

“오늘부터 3일 동안 쉴 수 있으니까 왔는데.....”

누나는 무언가 가득 들고 있는 상태로 올리비아와 셀리나를 바라봤다.

“.....돌아갈까?”

“뭘 생각하는 거야. 얼른 들어와. 간단하게 술이나 한잔하자고 온 거니까.”

누나는 일단 저번에 봤던 올리비아한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안녕하세요. 잠시 실례할게요.”

“근데 옆에 분은 누구......?”

“아. 제 동생이에요. 셀리나 이분은 제임스 작가님이 친척 누님이셔.”

그 말에 셀리나는 메디슨 누나한테 다가갔다.

“아, 안녕하세요! 셀리나라고 해요! 크리스탈 빈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크리스탈 빈? 아. 혹시 작가세요?”

“네, 넵!”

“제 집은 아니지만 잘 왔어요. 편안히 있다 가세요.”

서로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누나가 가져온 짐을 확인했다.

술과 식재료들이 한가득 있었다.

“술이 적네?”

“술을 얼마나 마시려고? 그리고 술이 얼마나 무거운데.”

“그냥..... 오늘은 취할 때까지 마셔볼까 했거든.”

누나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뭔 일 있니? 그럼 저 택배 상자 열어봐. 누가 좋은 양주 하나 보내줬을지 어떻게 알아?”

“보내줬으려나?”

“보통 양주나 와인을 선물로 보내는 경우가 많잖아. 일단 한 번 보고 없으면 그때 사오면 되지.”

누나의 말에 일단 택배 상자를 집어 들었다.

우선 빌에이든 미디어가 보낸 상자를 뜯어보았다.

“오? 진짜네?”

“그치?”

첫 상자부터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양주 6병이 있었다.

술 이름을 따져가며 즐기는 건 아니라 이름은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운 포장지와 유리병을 보면 비싼 술임을 알 수 있었다.

“블루스타 게이트에서도 술을 보냈는데. 뭐랄까 보드카나 럼 같은 걸 보내주실 줄 알았는데 와인을 보내주셨네.”

덩치에 맞지 않게 굉장히 고급스러운 와인을 보내주셨다.

SC라스틱에서는 명품 브랜드인 악세서리를, 미션 컴퍼니에서는 값비싼 굿즈를 보내주셨다.

“이건 집에서 보내주신 건가?”

스티로폼에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김치를 비롯한 엄마가 담근 갈비 같은 여러 가지 음식이 있었다.

“이야.....”

진공 포장이 터지지 않아서 냄새가 나지는 않았지만, 터지는 순간 폭탄이 되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음식은 충분하네. 굳이 나갈 필요도 없겠다.”

누나가 가져온 식재료도 있었으니 4명이서 충분히 먹고 마시겠지.

“준비하자.”

***

셀리나는 제임스 작가의 실물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어떤 표정을,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자신 또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제임스 작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하고 제임스 작가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출간 작품이라곤 하나밖에 없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쓰고 있었지만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었다.

작가를 포기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도전이기에 제임스 작가님을 약간 토템 같은 식으로 삼아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한잔하시겠어요?”

“아. 네.”

셀리나는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올렸다.

난 그 잔에 선물 받은 와인을 그대로 콸콸 부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고급스러운 와인을 조심스럽게 대할 텐데 난 그런 우아함은 없었다.

‘여유가 있다는 건가?’

셀리나도 딱히 와인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와인을 저렇게 막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셀리나는 마치 스토커처럼 제임스 작가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 안에 담았다.

“그래서 오늘 이벤트는 잘 끝났어?”

“뭐..... 아이들은 좋아하더라. 잘 끝난 것 같아.”

친척 누나와 대화하고 있는 제임스 작가님은 연신 술을 마셨다.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신가 보네.’

[나인 드래곤]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문이었다.

‘드래곤 투 내꼬야’와 ‘사촌 오빠는 드래곤’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회원이 알려준 사실이었지만, 믿기 힘든 말이라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보드카를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을 잘 마신다는데 그걸 누가 믿겠는가.

‘진짜 많이 드시네.’

마치 물처럼 양주를 들이켜는 제임스 작가를 보자 소문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가고, 셀리나도 어느 정도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셔서 용기가 생겼기 때문일까?

부끄러웠던 자신을 취기로 숨기며 셀리나는 슬며시 물었다.

“작가님.”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제 작품..... 읽어 보셨나요?”

제임스 작가님은 취하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폐가 될 것임을 알지만,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절실하기 때문인지 셀리나는 자신의 작품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재미없었죠?”

“음.....”

제임스 작가님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으신가요?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으신 건가요?”

“.....네!”

“재미없었어요.”

“......네에.”

제임스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필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내용에 부실한 점이 많아서 설명이 많았으면 했어요. 시대적 배경도 지구 배경인지, 이세계 배경인지 아니면 어느 수준의 과거인지도 알지 못했고요.”

“.....네에.”

“그래도 상상력은 좋았어요. 분명 죽었던 귀족이 마법에 걸려 며칠 동안의 삶을 얻고 그 시간동안 자신의 죽인 범인을 찾는 내용이었죠?”

“네...... 맞아요.”

앞에서 혹평을 들었기 때문일까? 제임스 작가님이 하신 칭찬이 그리 칭찬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님이라면 어떻게 적으셨겠어요?”

그 말에 작가님은 술잔에 있던 술을 입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앞서 말했던 것을 보완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야겠죠. 죽었던 귀족이 삶을 부여받은 이유도 상세히 적어야겠죠. 골동품점에서 구매한 유물 같이 우연적인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본이죠. 그리고 세계관은 아마 실제 일을 예로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중세이야기 중에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해결된 사건을 픽션으로 풀이하는 방법도 좋겠네요.”

술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제임스의 말은 평소와 달리 길어졌다.

‘아......’

제임스 작가와 자신한테 무슨 큰 기술적 차이가 있는 게 아니었다.

차이라고 한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는 생각의 깊이.

‘내 소설은 디테일하지 않았어....’

셀리나는 자신이 독자를 위한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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