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50화 (149/216)

150화. 만취

디테일의 차이가 명작과 망작을 구분 짓는다.

비단 작가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직업이나 사소한 디테일은 중요하다.

요리사는 이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남들이 쓰지 않는 재료를 연구하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른 물건들보다 더욱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디테일을 조정한다.

특히 작품에서의 디테일은 독자들이 작품을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셀리나는 그 디테일을 간과하고 있었다.

신인 작가였기에 자신의 상상하는 스토리를 중점으로 전개시키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동안에도 제임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느낌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뒤숭숭하기 때문인지 조언을 주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백조의 총]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이유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책을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과연 제목과 내용이 연관이 있나라고 말하면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제목이라는 건 책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니까요. 제목만 보고 책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백조]라는 이름이 들어가기에 처음에는 뮤지컬 혹은 춤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우선 제목을 비판했다.

유명 작가가 쓴 소설이라면 제목이 별로여도 이미 형성된 팬덤은 그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중에야 제목의 의도를 파악한다.

소설의 내용이 그에 따른 제목이 느껴져야 하지만, 아무리 중간에 끊은 소설이라고 해도 [백조의 총]이라는 제목은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출판사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네요.”

보통 이런 제목은 출판사 측에서 잡아준다.

내용의 진행 방향이 이상하다 싶으면 출판사 측에서 캐치하여 작가와 상의를 거치는 것이 기본이다.

“크으.....”

제임스는 또다시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연신 술만 배 안으로 넣는 제임스 작가를 보며 셀리나는 조용히 자신의 책을 생각했다.

“너무 안주도 없이 깡으로 먹는 거 아니야?”

메디슨 누나의 말에 나는 슬그머니 갈비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그냥 오늘은 좀 취하고 싶네.”

“뭔 일 있었어?”

“......뭔 일이 있긴. 그냥 별일 아니야.”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메디슨 누나는 걱정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집안이 술에 강하다 보니 누나는 내가 취한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는 건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정말 별일 아니야.”

***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었기에 메디슨은 3일 정도 제임스의 집에서 쉬려고 3일치 짐을 가져왔다.

제임스가 걱정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 역시 홀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홀로 있는 것도 짜증 나지만 오전부터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일을 하고 있는 메디슨한테는 휴식이 필요했다.

크리스마스에 업무 지시라니... 그래도 그만큼 중요한 일임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휴식을 취하러 왔는데 난생처음으로 취기 때문에 잠든 제임스를 볼 줄이야.

“무슨 일 있었나?”

누군가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올리비아와 셀리나는 이미 근처에 있는 호텔로 가버린 상태였다.

메디슨은 한숨을 내쉬며 뒤처리를 하였다.

‘아픈 아이들을 보며 뭔가 깨달은 게 있는 건가?’

제임스가 일어나고 나서 심정에 변화가 생겼을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술을 마신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일단은 그냥 잠을 자게 내버려 두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재롱아. 밥 줄게.”

뻐끔.

메디슨은 홀로 놀고 있는 물고기 밥을 주고 집 정리를 해주었다.

그래도 요즘에 청소를 많이 해서 그런지 집안이 깔끔한 편이었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사료를 우적우적 입에 넣고 있는 재롱이를 바라봤다.

“네 주인이 저렇게 술을 진탕으로 마신 건 처음이다.”

뻐끔?

“에휴. 내일 해장할 것 좀 만들고 자야겠다.”

제임스가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피자나 그런 걸 먹지 않고 라면이나 콩나물국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처럼 취기가 가득한 날에는 더욱 먹고 싶어 할 것 같았기에, 한인 마트에서 사온 콩나물로 대충 국을 끓였다.

콩나물국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금세 만들었다.

그렇게 소파에 다시 누웠을 때.

-띠링!

메디슨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

“하아.....”

문자를 본 후 메디슨은 또다시 머리를 부여잡았다.

끝난 줄 알았던 일이 다시 터져서 내일 다시 출근해 달라는 문자였다.

내일 쉬는 날이긴 했지만 회사 입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알았기에 가야만 했다.

“얼른 자야겠네.”

메디슨은 서둘러 소파에 누웠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굉장히 길어질 것 같았기에 가지고 온 짐들을 다시 집에 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

아침에 일어나보니 올리비아와 셀리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끄응..... 머리 아프네.”

숙취가 올라와서 그런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거실로 향했다.

‘누나가 청소했나?’

먹다 남은 음식이나 술병이 굴러다닐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짐도 사라졌네?’

일요일까지 집에서 푹 쉰다고 짐을 한가득 가져왔으면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라져 있었다.

‘콩나물국?’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이라도 먹어보려고 부엌으로 가니 냄비에 콩나물국이 끓여져 있었다.

부모님이 택배로 보내주신 김치를 넣은 칼칼한 콩나물국을 보자 절로 군침이 돌았다.

‘누나가 끓여주고 갔나 보네.’

숙취 때문에 고생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며 콩나물국을 선 자리에서 들이켰다.

어느 정도 취기가 사라지자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나는 어디 간 거지?’

머리를 긁적이며 연락을 해볼까 생각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짐까지 다 가져간 거라면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짐을 전부 가져갈 정도이니 아마 바빠서 며칠 못 올 것이다. 굳이 바쁜데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문자만 보내기로 했다.

‘SNS도 올려야지.’

나는 어제 온 택배 상자들을 한쪽으로 모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 했기에 상자들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아. 씻고 셀카 찍을걸.....”

막상 찍힌 사진을 보니 머리는 산발인데다 옷도 후줄근해서 보기 좋지 않았다.

작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씻고 다시 올릴까 했지만, 그것 또한 귀찮았기에 그냥 업로드하기로 했다.

SNS에 게시글이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댓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앍! 작가님 꼴이 그게 뭐예요!

-어제 술 많이 드셨나 보네요. 엄청 피곤해 보이세요.

-와아..... 미션 컴퍼니가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내는 건 처음 보네요....

-작가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셨나요?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SNS 댓글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뻐끔거리는 재롱이를 바라봤다.

“.....할 게 없네.”

다음 주 토요일까지 아리아나가 고향 집으로 휴가를 간 터라 그때까지는 운동도 스스로 해야 했다.

“글..... 써야지. 글.”

나는 멍하니 손가락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자잘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경련이 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아니었다.

얼른 글을 쓰라고 몸이 권유하고 있었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무언가에 영감을 받았을 때 이런 식으로 몸이 반응을 주었다.

마그누스 감독님은 이럴 때마다 재능에 몸을 맡겨 몸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글을...,. 써야지.”

더 많이. 더 재밌는. 더 다양한.

그런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브록스가 행복할 테니까.

“쓰자.....”

나는 커튼을 친 다음, 문을 잠갔다.

그 누구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느낌에 몸을 맡기고 글을 미친 듯이 쓰고 싶었다.

[도망가려는 거야?]

귓가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브록스가 괴로워하는 이 현실로부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가서 글의 세계로 빠지려는 것이냐고 묻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나는 컴퓨터 전원을 켜며 손가락을 미리 풀었다.

-투두두둑!

고작 하루 손가락을 풀지 않았다고 미세한 고통이 느껴졌다.

“[블랙 & 월드], [괴도 레이븐] 그리고 [사막의 제국].”

[리턴 패션 디자이너]는 지금 당장 쓸 이야기가 없었고, [일곱 개의 죄악]은 아직 책을 출판하지 않았기에 조금 더 천천히 써도 되겠지.

[드래곤 마스터 2부]도 현재 출판을 대기 중이니 우선 이 3가지부터 건드려볼까.

“시작하자.”

제임스는 풀린 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오직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제임스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뻐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재롱이는 무언가를 예견하고 있는 것인지 빠르게 어항을 쏘다녔다.

***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병원 측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 찍은 영상을 편집하여 병원 SNS에 게시했다.

영상을 올렸을 때는 올리비아의 산타 차림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아무리 아이들이 다치고 힘들어도 단지 그때만 불쌍해 보일 뿐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금세 잊어버린다.

그들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에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다.

병원 측에서도 그 상황을 알고 있기에 올리비아 같은 할리우드 대표 배우가 이벤트를 해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고 있었다.

-응?

-갑자기 왜 루돌프한테 시선을 주는 거임?

그렇게 편집된 영상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엑스트라로 생각하고 있던 루돌프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의 행동에 당혹감을 느꼈다.

산타가 떠나가고 갑자기 시선이 루돌프한테 쏠리더니,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졌다.

모습을 드러낸 동양인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화면에 사람들은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누구지?

제임스 작가가 아무리 작품의 세계에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주가 굉장히 많았고, 사람도 굉장히 많다 보니 제임스 작가를 모르는 이들이 상당했다.

-어? 제임스 작가님이 왜 저기 계시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법.

영상을 보던 상당수가 제임스 작가를 알아봤다.

-뭐야? 제임스 작가님도 참여한 거야?

-아이들 엄청 좋아하네..... 하긴, 나 같아도 좋아하겠다.

-아이들이 제임스 작가님 소설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보네?

영상 속 제임스 작가는 아이들한테 인사를 하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서류철을 꺼내 들고 올리비아와 사이좋게 앉았다.

-.....어?

영상 속 제임스 작가가 갑자기 마이크를 들더니 어떤 종이 뭉치를 읽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잔잔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공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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