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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70화 (169/216)

170화. 안녕······ 브록스

누나는 예상보다도 더 늦게 왔다.

왔을 때 누나의 손에는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컵에 재롱이가 들어가 있었다.

물맞댐 작업을 마친 뒤 재롱이를 어항에 투여하고 우리는 근처의 한식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한국식 BBQ 음식점에 누나는 맛있다는 듯 연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식사가 끝이 나자 나와 누나는 냉면을 주문시켰다.

“우선..... [리턴 패션 디자이너] 제작 기간이 정해졌어.”

“언젠데?”

“늦어도 2분기까지 완성시킨다고 하더라. 1월 29일부터 제작을 시작하다 보니 캐스팅이고 여러 가지는 장호식 감독님이 직접 진행하신대.”

“미팅 날짜 잡히면 알려줘.”

“응. 그다음으로 [블랙 & 월드] 미팅인데, 가서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하긴, 미팅이 빨리 끝난 적은 없으니까. 아무튼 그게 끝?”

“더 있어. [드래곤 마스터]같은 경우는 번개 흉터 마법사처럼 아역부터 시작해야 하잖아? 이미지에 맞는 캐스팅을 하기 위해서 지금도 미션 그룹 측에서 아역을 찾고 있을 거야. 아마도 제작 기간이 조금 더 미뤄질 것 같아.”

“.....쩝. 할 수 없지 그 부분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어. 감독은 누가 정해졌는지 알아?”

“실버 블루노아.”

“......흠.”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번개 흉터 마법사처럼 아역 위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역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울리는 아역을 찾는 건 정말 어려웠고 아역을 찾지 못하면 내용을 조금 수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이었다면 조금은 더 빠르게 만들라고 말했을 테지만, 실버 블루노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믿을 수 있겠지.”

각 감독들마다 자신의 특색이 있고, 그런 특색들 때문에 별명이라는 게 존재한다.

실버 블루노아의 별명은 CG의 마법사로, 그가 만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눈이 즐거웠다.

물론 카메라 감독이다 보니 시나리오 작가는 따로 있지만 그 연출 때문에 과거 히어로 영화를 맡은 적도 많았다.

[드래곤 마스터]는 CG가 많이 필요한 판타지 세계다 보니 그 어느 영화들보다 CG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만큼 오래 걸린다는 거지만.

“[사막의 제국]도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이니까.”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것 보단, 그림으로 그리며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 보니 냉면이 나왔다.

“여기는 먹을 만하네.”

저번에는 밍밍했는데, 이곳은 그래도 나름 먹을 만했다.

누나는 비빔냉면을 좋아하기에, 남은 삼겹살에 비빔냉면을 싸 먹으며 말했다.

“네 집에서 자고 간다?”

“그래. 어차피 이틀 후에 또 만나야 하는데. 그냥 자고 가는 게 좋겠네. 그나저나 그거면 충분해? 또 뭐 시켜줄까?”

“이거면 충분해. 맞다. 그리고 브록스 병원에 또 갈 거야?”

그 말에 냉면을 푸고 있던 젓가락이 멈추었다.

“.....가야지.”

“일주일이라더라. 빨리 가줘.”

“.....알았어.”

누나가 말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무슨 시간인지 알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가야지.”

메디슨은 그날 제임스의 얼굴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이라면 사색에 잠기거나 슬픔에 잠겨있어야 할 제임스의 얼굴이 마치 현자처럼 그냥 멍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

제임스는 이번 휴식기에 많은 것을 각오했다.

브록스의 얼굴은 항상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꾹 참고 성장하기로 했다.

메디슨한테 브록스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참은 것일 뿐, 가슴속에 응어리지었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쩝.”

배가 불렀지만 가슴은 고팠다.

“후우.....”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하지만 각오라는 건 언제나 하더라도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각오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긴 시간은 그 마음을 너무도 가볍게 허물어 버린다.

고작해야 일주일.

솔직히 지금 간다고 해도 브록스는 대화가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저번에 갔을 때도 그랬으니까.

“너무 걱정되면..... 가지 마.”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누나는 그 표정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 온 이후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누나는 마음이 뒤숭숭할 거면 차라리 가지 말라고 했다.

작가로서의 걱정도, 동생이기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았기에 누나는 걱정하는 것이었다.

“누나.”

“왜?”

“로니 기억나?”

“.....기억나지.”

로니.

어린 시절 월리와 함께 브레드, 헤리 그리고 로니와 함께 놀았었다.

그중 월리는 나랑 싸우다 친해진 경우였고, 로니는 월리랑 애초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던 아이였다.

“평범한 녀석이었어.”

월리랑 친하게 지내던 흑인 아이. 첫 만남은 그러했다.

처음부터 인종차별 발언을 하던 월리와 달리 참으로 착했던 그 녀석.

로니의 가족조차도 건강했던 아이가 그런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몰랐으니까.

“심부전.....”

심장이 구조적 또는 기능적 이상으로 혈액을 받아들이는 기능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병이었다.

조기에 발견했더라도 치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그 병을 로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후 로니의 몸은 급격히 안 좋아졌고 결국 나와 만난 지 1년 만에 사망하였다.

로니는 브록스와 다르게 부모님이 한 분밖에 없었고, 솔직히 그 부모님도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로니는 어렸을 적에 엄마가 집을 나가서, 알콜 중독 아빠랑 같이 살았잖아..... 그 아빠가 무서워서 고모부 집이나 우리 집에서 재워준 적도 많았고.”

로니가 사라져도 아빠는 찾지 않았고 오히려 술을 마시러 갔다.

나는 로니의 아빠를 보며 저딴 아빠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로니가 아팠을 때 의외로 가장 절망한 건 우리가 아닌 로니의 아빠였다.

아는 사람들한테 어떻게든 돈을 빌리고, 집을 팔고, 고모부네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로니의 병원비를 충당하려 했었다.

로니가 죽고 나서 그 아빠도 같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소식일 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로니와 브록스의 상황은 다를지라도 그들의 얼굴은 똑같았다.

“후우..... 솔직히 나 로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어서 뇌가 강제로 잊혀버리게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브록스를 생각할 때마다 계속해서 생각났다.

이제는 얼굴조차 흐릿한 로니의 기억이 말이다.

“로니가 죽을 때 나는 병원에 가질 못했어.”

로니의 얼굴이 생각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처음 병실에 갔을 때는 로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중환자실에 들어간 이후부터 만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로니의 죽어가는 얼굴이 브록스의 얼굴로 상상하게 된다.

“이번에는 갈 거야.”

로니의 마지막은 지켜보지 못했지만, 브록스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게 내 성장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누나는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삐리리리리리~♪

왤까.

언제나 똑같았던 전화 소리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익숙하지가 않았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이 두근거리는 가슴이 멈추지 않았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본능이 저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올리비아?”

나보다 먼저 누나가 발신인을 확인하였다.

“안 받아?”

“.....받아야지.”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핸드폰을 귓가에 대자마자 올리비아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님! 브록스가.....!

그 순간. 내 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멈추었다.

좋지 않은 일은 항상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

무엇을 보던, 무엇을 느끼던, 무엇을 생각하던.

결과를 보면 그 다짐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삐익..... 삐익.....

가느다란 신호음이 아직 이 아이가 살아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

-쉐엑..... 쉐엑.....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중환자실에 있는 이 아이가 내일까지 살 수 없음을 온몸에 느껴진다.

죽음이 무서웠던 아이는 이제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

“브록스......”

브록스는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내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들었음에도 힘이 없는 것인지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가쁜 숨을 내쉴 뿐이었다.

“만족스러운 삶.....이었길 바라.”

이 작디작은 아이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여 현세에 떠돌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비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었다.

“너와의 대화는 늘 즐거웠어. 재밌었고, 행복했고, 나한테 도움이 되었어. 네 삶에 내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나한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주었어.”

사람은 성장해야 한다.

최근에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 성장의 발판을 브록스한테서 얻었다.

“고마워.”

그 말을 마지막을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후우.....”

문에 등을 기대고 나서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일 리가 없었다. 무슨 의미를 가진 한숨인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런 나한테 브록스의 부모님들이 다가왔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에 봤을 때는 무척이나 수척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물론 얼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묻어나 있었지만,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당연히 와야죠.”

나는 브록스의 아버지가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식은땀이 흥건하여 축축한 손은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그들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것이다.

“브록스는 행복할 겁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났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조셉?”

중환자실에서 나가자 조셉이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었다.

내가 나온 걸 확인한 조셉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은..... 솔직히 생명을 유지할 확률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네, 적절한 후원을 받는다고 하여도 회복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 너무 어려서 면역력이 약하니까......”

“......”

“몇 번이고 봐온 일이지만 이런 일은 익숙해지지가 않아..... 항상 마음이 걸려,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생각해도 죽음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네.”

조셉의 말은 나는 이해했다.

“젊을 때 나는 의사로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지...... 근데, 아무리 성장해도 죽음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를 볼 때마다 항상 좌절하네...... 자네는 그러지 말게.”

조셉은 천천히 걸음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브록스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끝내기 위함이었다.

“브록스한테 추억을 선물해줘서 고맙네. 이 늦은 시간에 와줘서 고맙고.”

그렇게 난..... 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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