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영화 (2)
살아오면서 기분이 우울하고 꿀꿀할 때가 있었다.
오늘도 그러했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그 강도가 좀 강했다.
더욱 우울하고, 꿀꿀한 그날에는 각자마다 해소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제임스한테 그 방법은 역시나 책을 보는 것이었다. 다만, 그 방법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새로운 책을 탐미하는 것이 아닌, 한 번씩 읽었던 것들을 읽고 또 읽는다.
재밌다고 생각한 책들만 있는 방안에서 같은 책들을 계속해서 읽으며 생각을 비우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영화를 보는 것이다.
재밌는 영화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오직 그거에만 집중할 수 있기에 생각을 비울 수 있었다.
“헤에.....”
오래간만에 영화관에 온 나는 과거와 달리 많이 달라진 외관에 살짝 놀랐다.
물론 몬태나 주에만 있는 영화관만 가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LA에 위치한 영화관은 굉장히 크고 깔끔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았다.
물론 과도하게 냄새나는 음식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구매하지 않았고, 애초부터 밥을 먹고 와서 많이 먹을 생각도 없었다.
그냥 팝콘에 카라멜 시럽을 뿌리고 다이어트 콜라를 구매한 뒤 영화 관람석에 앉았다.
“VIP좌석은 첨이네.”
“나도.”
좌석은 70개 정도에 소파도 가죽 소파라 그런지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다.
발을 쭈욱 뻗고 음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라니, 이거야말로 영화관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사치가 아닌가.
다만, 그런 사치를 누리면서도 제임스의 얼굴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전화는 끝나고 왔어?”
“응. 블루스타게이트에서 연락이 왔더라고, 영화보고 연락 한 번 해달래.”
“해야지. 애초에 한 번 가야지......”
“이번 주 토요일이야.”
“알고 있어.”
본래 시사회가 끝나고 있을 파티가 나 때문에 무산되었기에, 블루스타게이트는 이번 주 토요일에 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스태프 밑 관계자들을 모아서 파티하는 것이라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시작된다.”
잠시 좌석에 앉아있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
에드워드 선생님의 제자 중 한 명인 조엘은 이번 [사막의 전갈]을 맡으며 스승한테 많은 자문을 구했다.
제임스의 깐깐한 성격을 맞추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기 때문인지, 영화는 초반부터 잔잔한 음악으로 시작했다.
주인공 에단의 과거를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전달하기를 원했던 제임스였기에 초반부터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썼다.
초반부터 에단의 서글픈 과거가 나오기 시작한다.
행복했던 과거, 즐거웠던 과거,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마치 안개라도 끼는 것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음악은 더욱더 낮은 분위기로 변하였다.
그렇게 시작되는 에단의 복수극.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테러 조직은 더욱 컸고, 그 때문에 에단의 심신은 더욱 지쳐간다.
시각적으로든, 청각적으로든 영화는 에단의 분위기를 더욱 힘들게 하기 위해 모든 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암울하고, 우울하다, 힘들다.
아무리 복수하려고 노력을 해도 제자리에서 발버둥 치는 느낌에 에단의 분노는 점차 가라앉았고, 굳이 복수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에단은 상처 입은 고독한 늑대처럼 지쳐갔다.
그때 아내의 여동생이 등장하고 나서 노래는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작은 희망을 엿본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테러 조직보다 아내의 정보를 수집했다.
점점 알게 되는 아내의 정체에 에단은 절망보다는 희망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에단은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했다.
테러 조직의 위치를 파악하고, 조직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며 아내의 여동생을 구하려 한다.
에단은 마지막 순간 테러 조직의 수장과 함께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다만, 여기서 끝이 난다면 사람들이 2부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나의 발자국과 신발을 남기는 것으로 크레딧이 올라갔다.
강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였다.
“.....재밌는데?”
영화가 끝이 나고 누나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재밌었다. 딱히 흠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추격의 대가라는 별명답게 원작상에서 느껴지지 않던 추격신의 디테일이 확연히 살아났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현실 속에서도 저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
나는 얼음이 다 녹아버린 다이어트 콜라를 바라봤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팝콘과 콜라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어때? 원작자로서 첫 작품이 영화화된 기분은?”
“.....재밌는데?”
조금이지만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
[사막의 전갈] 첫 영화화는 나한테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솔직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미세한 균열을 배우들의 연기력과 마그누스 감독님의 센스로 잘 커버했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보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내가 원작을 만든 작가임에도, 그 영상미는 내 상상 이상을 구현해냈다.
‘첫 작품이 솔직히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으니까......’
[사막의 전갈]은 내가 아닌 출판사의 수정을 거쳤기에 솔직히 스스로가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이사벨이 나 몰래 투고한 것이었고 [드래곤 마스터]와 달리 내 노력의 결과가 그리 많이 들어간 작품은 아니었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이번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었다.
‘이게 노련미라는 건가.....’
추격의 대가라 불리는 마그누스 감독님의 진수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한 폭의 미화처럼 ‘추격’이라는 것에 아름다움을 추가하였다.
솔직히 원작에서는 추격이라는 말보단 [전갈]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만큼 사냥이라는 말이 걸맞았다.
함정을 파놓고 테러 조직원을 기다리는 고요한 사냥꾼.
‘이게 약간 거슬리긴 하는데......’
1 vs 다수를 이기는 방법은 세상에 여럿 존재하지만, 오로지 주먹이나 몸 하나만 가지고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테러 조직이라는 거대한 단체에 에단은 홀몸으로 덤벼야 했고, 거기에 아내의 여동생이라는 인질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걸 함정으로 표현했지.’
전갈처럼 자신의 영역에 사냥감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독이 퍼지는 것처럼 테러조직을 공포로 물들인다.
그것이 원작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다르다.
영화도 1 vs 다수를 이기는 방법을 표현하긴 했지만, 이건 소설과 다르게 ‘추격’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도망가면서 처리하는 형식.
솔직히 도주라는 말이 더욱 가까웠지만 그래도 마그누스 감독님은 이를 영상미와 스토리로 노련하게 해결했다.
개인적으로 이를 재밌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원작의 의미를 많이 해쳤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근데 뭐..... 애초에 [사막의 전갈]이 아니라 [사막의 전쟁]이었으니까.’
이름이 너무 흔하여서 [전갈]로 바꾸었지만, 본래 이름은 따로 있었다.
이는 스토리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딱히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호불호는 있겠네.”
“나는 재밌던데?”
“스토리가 아니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봤자 복잡해지겠지.
나는 영화관을 나오며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 그리고 목도리와 모자를 착용했다.
얼굴을 꼼꼼 감아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옆에 있던 누나는 질린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해.”
“하긴, 영화관이니까 널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답답해 보이기는 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나가자.”
영화관에서 나온 우리는 곧장 차에 탑승했다.
차에 타자마자 얼굴을 가리던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
“그래서 바로 가게?”
“응.”
나는 차를 운전하며 브록스가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운전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핸드폰을 하던 누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나한테 말했다.
“블루스타게이트가 SNS에 게시글을 올렸네?”
“뭐라고?”
“차 멈추고 잠시 봐봐.”
누나의 말에 나는 갓길에 차를 멈추고, 핸드폰을 받아들였다.
『Blue Star Gate
【사진】
저희 Blue Star Gate는 제임스 작가님의 뜻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사막의 전갈]이 개봉한 날부터 금요일까지 총 5일 동안 수익의 일부를 Blue Star Gate와 브록스의 이름으로 소아암과 맞서 싸우고 있는 아이들한테 기부를 할 예정입니다.』
“......누나가 알려줬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누나뿐이었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누나가 블루스타게이트 측과 전화를 하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폐였어?”
“아니......”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끄고 누나한테 돌려주었다.
“고맙네.....”
일주일 동안의 수입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기에, 큰 결단을 한 블루스타게이트의 뜻에 고마움을 느꼈다.
또한 브록스와 나의 관계는 조금 특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기부를 하려고 해도 선뜻 손을 뻗기 힘들었다.
블루스타게이트가 브록스의 이름으로 총대를 메고 추진해준다고 하니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난 내 핸드폰을 꺼내 다시 SNS로 들어갔다.
블루스타 게이트가 게시글을 올린 지 1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그누스] 좋은 일을 하는데, 투자자들은 설득하고 말하는 건가?」
「[라울 데이비스] 저는 찬성입니다. 브록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임스 작가님과 인연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출연료 절반을 기부해 이 뜻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아멜리 파커] 좋은 일이네요. 저도 출연료 일부를 기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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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는 이번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블루스타게이트와 제임스의 뜻을 같이하고 싶다며 출연료의 일부, 혹은 개인 사비를 털어 기부하겠다고 댓글을 남겼다.
“.....모두 고맙네.”
난 댓글을 읽으며 감사함을 느끼며 댓글을 남겼다.
「[제임스 권(Dragon one)] Thank you..... 브록스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랄게.」
***
미국의 장례식은 병원에서 치러지지 않는다.
종교단체나 혹은 주식회사에서 장례를 담당한다.
사람이 죽으면 방부제 처리를 한 뒤,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던 옷을 입히고 그 주위에 그 사람이 좋아했던 물건을 넣는다.
어느 사람은 담배나 마약을 넣는 경우도 있었고, 어느 사람은 만화책이나 술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브록스의 부모님은 매장이 아닌 화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브록스.”
우리는 브록스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관 안에는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브록스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