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89화 (188/216)

189화. 유품

호텔에 하룻밤 예약을 해놨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선생님 집에 머물기로 하였다.

선생님 집도 빈방이 많았다 보니 하루 정도 머무는 건 어렵지 않았으며, 특히나 헬리아가 티아를 예뻐했기에 그냥 하루 머물기로 했다.

다이애나와 안토니도 선생님의 말에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어떨결에 하룻밤 묵게 됐는데..... 뭐 에드워드 선생님 집에 머문다는 것만으로 부러워할 사람도 많으니까.’

그렇게 목욕을 하고 헬리아가 준비해준 안토니의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따뜻한 커피..... 아니 조금 익숙한 향기가 나는 차를 드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유자차?”

“알고 있나?”

“그야 당연하죠? 집에 가면 자주 마시니까요.”

“최근 안토니가 사 왔는데 향기가 좋아서 자주 마시게 됐네. 자네도 한잔할 텐가?”

“저야 주면 좋죠.”

선생님은 말없이 커피잔에 이미 타 놓은 유자차를 따른 다음 나한테 주었다.

목욕을 하고 나와서 몸이 식어가고 있었는데 따뜻하고 향기로운 유자차를 마시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자네. 내가 에드월 그 녀석의 유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네. 안토니한테 들었어요. 중요한 것들은 선생님이 보관하신다고요.”

에드월 홈즈와 에드워드 잭슨은 서로의 뜻이 맞다 보니 절친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에드월의 유품을 에드워드가 대부분 챙겨서 보관하고 있었다.

“어제 자네가 보여준 책을 봤을 때...... 어처구니없지만 에드월 그 녀석의 글이 생각나더군. 물론 똑같다는 게 아닐세. 그저 향기만 내뿜던 자네가 에드월과 똑같은 자취를 걸으려 하는 걸 보고 의아했을 뿐이야.”

“똑같은 자취라니요?”

선생님은 말없이 유자차가 든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선생님은 다시 말을 꺼냈다.

“에드월의 정신이 서서히 이상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던 것인지 최후의 최후를 적으려는 것 같았지.”

“......아틀란티스 원주민일 때를 말하는 건가요?”

“알고 있나?”

“네. 에드월 홈즈의 팬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일걸요?”

“끌끌......”

선생님은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지만, 에드월은 결국 이겨내지 못했어..... 자신의 재능이 집어 삼켜진 거지. 본인은 후회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망가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았지. 그렇기에 그걸 이겨낸 자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세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내일 무슨 일 있어요?”

“이야기는 끝까지 듣게..... 아니, 이건 이야기로 할 게 아니지. 따라오게.”

선생님은 들고 있던 유자차를 전부 입으로 털어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시는 거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의 뒤를 따라갔다.

2층으로 올라간 선생님은 서재로 발을 들였다.

우리 집에 있는 것 보다 몇 배는 많을 책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웬만한 도서관보다 책이 많겠는데?’

책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이 정도 책을 모아두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쪽이네.”

선생님은 한쪽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곳에는 다른 책장들과 다르게 세월이 흔적을 가득 맞은 책장이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아니면 관리를 안 한 것인지 여기저기 나무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건 책이 아닌 다른 것들이었다.

“이건......”

“에드월의 유품들이네.”

“......!”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책장 안에 채워져 있는 물건들을 바라봤다.

그런 내 표정과는 반대로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 자고 가라는 건 이걸 위해서네.”

“.....설마. 봐도 돼요?”

“끌..... 맘대로 하게나. 자네라면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선생님은 책장에 꽂혀있는 두툼한 공책 한 권을 나에게로 내밀었다.

“아틀란티스 원주민이라는 필명을 쓸 때 그 녀석이 적었던 일기라네. 다른 일기장은 헬리아든, 안토니든, 다이애나든 읽을 수 있게 했지만 이것만큼은 읽을 수 없게 했네..... 보면 충격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조심히 선생님이 내민 글을 받아들였다.

“아틀란티스 원주민이라는 필명을 적을 때 그의 글은..... 사람에 관해 쓴 책이 많아. 마치 사람의 어두운 부분이나 밝은 부분을 들쑤셔놓으며 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조용히 공책을 쓰다듬었다.

세월의 흔적이 너무도 오래되어 종이가 누런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박물관에 기증한다면 양팔 벌려 환영할 정도의 위인의 생각이 적혀있는 글이었다.

“오늘 하루 천천히 읽어보게나.”

선생님은 서재 의자에 앉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떠나갔다.

나는 멍하니 손에 들려 있는 공책을 바라봤다.

***

에드월 또한 나와 비슷한 증상을 가졌었다.

하지만 에드월은 그걸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그 증상을 역으로 이용하여 글을 적고자 했다.

보다 최고의 글을, 보다 재밌는 글을,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적기 위해 그는 노력했다.

‘......’

일기장에는 그러한 노력이 적혀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 양반..... 글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네.’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정신과 몸은 계속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마치 악마가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일기장에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증오와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달라는 기도문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나.....’

이후 그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 그는 자신과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지 않고 미친 듯이..... 그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인간에 대한 관찰이 일기장에 적혀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7대 욕망

인간이 사람한테 가지고 있는 악의와 선의

어느 페이지에는 한 인간의 성장 기록까지 적혀있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이 책을 읽었다면 솔직히 악마가 인간에 대해 기록한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처절하고 잔인했다.

“악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생물은 인간이라는 말이 있지. 딱 그런 느낌이네.”

책에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본성이 모두 적혀있었다.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삶을 짧은 글로 표현하는 건 역시 불가능해...... 아니, 인간의 삶뿐만 아니야.”

짧은 생을 살아가는 생물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글 안에 포함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글이라는 거다. 한계란 존재하지 않지만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글이다.

‘사람은 하루하루 다른 삶을 살아가지.’

그저 무심코 넘긴 하루라도, 그저 별 볼 일 없다고 넘긴 하루라도 어제와는 다른 하루였다.

그 모든 것을 기록하는 건 역시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에드월은 그러고자 했다.

그리고 에드월은 그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하루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였고, 제임스와는 다른 깔끔한 글 스타일은 그걸 가능케 하였다.

하지만, 생물의 한계를 넘는 건 불가능하였고 결국 정신이 이상해졌다.

-쓰윽.

나는 공책을 책상 위에 올리고 책장 안에 있는 것들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에드월이 사용했던 것 같은 팬부터 시작하여, 옷, 인형 등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살펴봤다. 특히 인형을 자세히 살펴봤다.

‘봉제 인형인데..... 손때가 많이 타 있네.’

그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인형을 바라봤을까?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인형을 바라보다 이내 의자에 앉았다.

“제목은 정해졌네.”

인생은 무한하다. 고로 거대하다.

짧은 생이라도 그 생이 무색할 리 없었다. 누구나 열심히 살아가고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에 자신이라는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인피니티 라이프]”

무한한 삶.

한 사람의 인생을 고작 짧은 글에 담으려 하는 나를 자책하는 제목이자, 무한한 삶은 자신의 특권이 아닌 모두의 특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제목이었다.

“브록스..... 아니, 이름은 브록스로 할 수 없어.”

나는 처음부터 결정했던 모든 스토리를 수정하기로 했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정할 수 없듯이, 브록스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브록스의 이름을 이곳에 넣는다면, 그건 브록스의 가치를 내가 정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픽션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기에 나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고아였던 스토리만 가져가자.’

세상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아이가 지금까지 느끼고 봐왔던 것들.

인간이라는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것들만을 보았던 아이가 이 험난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적을 것이다.

이 인생이 정답인지 아닌지.

나는 그것을 독자들한테 묻고자 한다.

“시작하자.”

-우드드득!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든 나는 파일에 제목을 적고 잔잔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아침이 밝고 메디슨과 티아는 식탁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이미 일어나 신문을 읽고 있는 에드워드가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음.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티아와 메디슨은 어제와 다른 분위기에 살짝 고개를 의아해하며 일단 식탁에 앉았다.

안토니는 헬리아를 도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이애나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제임스 보셨나요? 어제저녁부터 안 보여서요. 목욕하고 온다고 했는데 오지도 않아서요.”

같이 도둑 잡기를 하자고 했던 약속을 해놓고 어제저녁 내내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갔다고 생각해서 티아와 메디슨 그리고 다이애나 셋이서 도둑 잡기를 해야 했다.

“조금 바쁠 게다. 음..... 아무래도 오늘 제임스를 만나는 건 힘들 테니.”

“예? 어디 갔어요?”

“그런 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오늘은 다이애나하고 함께 제임스 제자하고 맨해튼을 돌아다니게나. 아마 오늘 만나는 건 무리일 테니.”

선생님의 알쏭달쏭한 말에 메디슨과 티아는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해주시지 않으셨다.

곧이어 다이애나가 깔끔하게 단정된 얼굴로 식탁으로 내려왔다.

“어라?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아침에 어울리지 않게 잔잔한 화장까지 한 다이애나는 식탁 어디를 둘러봐도 제임스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새벽에 내 심부름 받고 나갔다. 내일이나 올 게다.”

“내, 내일이요?”

어제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늘은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도 보지 못한다는 말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조금 있다가 셋이서 쇼핑이라도 하고 오너라. 내 카드 사용하고.”

“.....할아버지가 웬일이세요?”

“크, 크흠! 그런 게 있다.”

에드워드는 잠시 천장을 바라본 뒤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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