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190화 (189/216)

190화. 루이

제임스는 끊임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초기 때로 돌아간 것처럼 제임스의 손은 계속해서 타자기를 누르고 있었다.

이 서재 안에는 충분한 자료가 있었다.

에드월의 경험과 기억들이 남긴 자료는 제임스가 지금까지 경험한 자료들 중 가장 뛰어났다.

어느 상황에 대한 심리적 묘사가 전부 적혀있었기에, 후대가 자신이 남긴 자료를 보고 글을 쓰게 만들려 했다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렇게 제임스는 앉아서 글을 쓰고, 삭제하고, 수정하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계속 내용을 이어갔다.

주인공 ‘에이든(Aiden)’의 이야기를 말이다.

“끄응.......”

하지만 글을 적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글이 멈춘 건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적을 내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여기서 멈추자.”

제목을 [인피니티 라이프]라 정해놨기에 다른 일반 장르 소설보다도 내용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적은 건 일반 장르 소설보다도 적었다.

글자수도 기껏해야 25만 글자 정도로, 평균적으로 올라오는 일반 장르 소설보다 살짝 적은 정도였다.

“그래도 내용은 흠잡을 게 없어.”

나는 일단 파일을 저장한 뒤 천천히 드래그를 내려 전체적으로 살펴봤다.

창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Aiden(작은 불)의 이야기는 힘겹지만 어떻게든 버텨오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여러 사람을 보며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느끼며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 간다.

조금은 특별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남성의 이야기였다.

‘과연 이게 재밌을까?’

터무니없이 적은 글자 수와 그렇게 시선을 주목시키지 못할 것 같은 책의 내용.

“근데 지금 몇 시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핸드폰을 꺼내 봤다.

“.....아. 꺼져 있었네?”

아니 방전된 거라고 말하는 편이 더 좋으려나?

나는 할 수 없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는 노트북의 하단을 바라봤다.

“.....일요일? 지금 일요일이라고?”

일요일 오전 1시라 적혀있는 문구를 보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글자 수만 봐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많이 흘렀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와...... 진짜 이렇게 정신없이 글 쓴 건 오랜만인데.....?”

너무 오래 몸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서 일어났다.

-피잉......

“으윽......”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머리에 잠깐 현기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점점 시야가 돌아왔고, 제임스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운동을 해서 그런가 이제는 몸이 버티는 느낌이 나네?”

-꼬르르르륵......

“쩝. 그것도 아닌가?”

몸을 조금 움직이자, 지금까지 아무 음식도 먹지 않았기 때문인지 배가 얼른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뭣 좀 먹고 자자.”

지금까지 고생한 노트북 전원을 꺼주며 서재 밖으로 나갔다.

***

에드워드 선생님이 있는 곳은 주택가다 보니, 24시간 하는 식당을 가려면 조금 멀리 가야 했다.

그렇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냉장고를 열려고 했다.

사람이 배가 고프니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머?”

“어? 아직 일어나 계셨네요?”

“티아가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쿠키 좀 구워줄까 해서요. 다이애나도 어릴 때 새벽에 배가 고프면 쿠키를 해줬거든요.”

“쿠키는 조금 거북하지 않을까요? 그보다 지금 티아가 일어나 있나요?”

“어머. 물론이죠? 토요일 아침부터 티아하고 다이애나하고 메디슨양하고 뉴욕을 엄청 돌아다녔거든요. 오후에 낮잠을 자서 그런가 아직까지 일어나 있어요. 불러드릴까요?”

“아뇨. 그냥 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해주세요. 내일 아침에 만나면 되니까요. 그보다..... 혹시 지금 간단히 먹을 게 있을까요?”

“먹을 거요?”

“네. 하하. 빵 한 조각도 충분하거든요.”

“음..... 그러면 차라리 안토니랑 피자 먹으러 가실래요?”

“갑자기요?”

“호호. 갑자기가 아니에요. 안토니도 작가님처럼 프리랜서다 보니 새벽에 야식을 먹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가끔 새벽에 나가서 사 오는데 오늘도 간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냄새가 참기 힘들어서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토니도 배가 고프면 피자를 사 오는데, 피자 자체가 굉장히 냄새나다 보니 웬만하면 사 오지 말고 가서 먹고 오라고 말을 한다.

아무리 안전한 대도시라지만 혼자 먹고 오는 건 조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져오는 건 허락하지만 그래도 항상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피자 냄새를 맡으면 먹고 싶어지니까.

그런데 이번에 내가 따라가면 먹고 올 수 있으니 차라리 가서 먹으라는 것이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안토니한테 말하고 올게요. 곧 간다고 했으니 옷 갈아입고 오세요.”

“네. 고마워요.”

내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은 안토니의 옷이기에, 방으로 돌아가 강연에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고 내려왔다.

편한 츄리닝 복장을 하고 내려오니 안토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님? 음식을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내 안색을 보자 안토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먹고 와서 자려고요. 하하.”

뒷머리를 긁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안토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나한테 몇 개의 알약을 주었다.

“종합 비타민제입니다. 그 나이대 몸 관리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해요. 이거 꼭 챙겨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먹고 나서 꼭 자셔야 합니다. 얼굴 상태가 정말 안 좋습니다.”

“하하. 그럴게요.”

“자. 얼른 먹으러 가죠! 제가 정말 맛있는 피자집을 압니다!”

내 걱정은 잠시일 뿐 역시 사람은 야식 먹으러 갈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았다.

***

안토니와 함께 온 피자집은 정말 맛있었다.

애초부터 자주 오는지 파자집 사장과 안토니도 많이 친근해 보였다.

나는 이왕 뉴욕에 온 거, 뉴욕에서 유명한 뉴욕 피자라는 것을 주문해봤다.

도우가 다른 피자들보다 얇고 오로지 피자와 이탈리안 소시지 그리고 토마토 소스만 있어서 손으로 접어서 먹을 수 있는 피자였다.

처음 먹어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뉴욕 현지에서 먹으니 맛있었다.

안토니는 포크와 나이프로 피자를 썰어 먹으며 말했다.

“글은 잘 쓰셨나요?”

“네. 뭐...... 그나저나 어제 제가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괜찮았나요?”

“아. 작가님이 글 쓴다는 건 저하고 루이 감독님만 알고 계실 겁니다. 누님분과 다이애나한테는 작가님이 그냥 심부름 때문에 멀리 가셨다고만 말해 놨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루이 감독님과 만나지도 못했네요. 정신없이 글 쓰느라 깜빡했는데.....”

“하하. 이해해주시는 눈치셨습니다. 애초에 루이 감독님 집이 근처에 있어서 자주 오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죠, 뭐.”

나는 다이어트 콜라를 입으로 가져갔다.

시원한 콜라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조금은 느글거리던 치즈의 느낌이 조금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글은 만족하십니까?”

“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하.....”

“만족스럽지 않으십니까?”

“개인적으로 만족은 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일단 잠이 깨고 집에 가면 수정을 몇 번 더 해봐야겠죠.”

“흐음.”

안토니는 들고 있던 포크를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시나리오 적을 때 솔직히 작가님처럼 무아지경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부럽기도 하네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시나리오를 자세히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정은 역시 중요하죠.”

“예. 그렇죠. 수정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어쩔 때는 수정하기 전 내용이 더 좋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수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를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있는 그대로라.....”

“하하. 그냥 실없는 말이라 들어주셔도 됩니다.”

“아뇨. 좋은 말이네요.”

나는 피자를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뉴욕에 온 김에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봐야지.’

특히 집에는 전설이 계시니까.

***

하루 종일 잘 것처럼 몸이 노곤했지만, 막상 자고 일어나니 시간은 그리 흐르지 않아 있었다.

오늘 저녁에 LA로 돌아갈 예정이다 보니, 티아와 누나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누나는 짐을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깔끔한 오피스룩을 꺼내 입었다.

“응? 어디 일하러 가?”

“어. 오늘 만나기로 했어.”

아무래도 누나도 일이 있었는데 뉴욕에 오는 김에 같이 온 듯싶었다.

“오늘? 그럼 우리가 먼저 돌아갔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나 혼자 있으려고 했지? 뉴욕에 온 것도 처음이 아니니까.”

“말을 하지 그랬어?”

“굳이 말해서 뭐 해? 어차피 이래저래 일요일까지 있었잖아? 그나저나 너 어제 뭐 했는데 안 보였어?”

“에드워드 선생님 주선으로 누군가 만나고 왔어. 심부름 같은 거지 뭐.”

나는 안토니한테 들었던 대로 누나가 걱정하지 않게 심부름을 갔다 왔다고 말했다.

“흐음? 그래?”

“응.”

누나는 살짝 의심쩍은 얼굴로 나를 볼뿐, 그 이상으로 말하진 않았다.

“얼굴에 다크써클 심하네. 집에 돌아가면 푹 쉬어. 어차피 시카고도 목요일이나 갈 거 아니야.”

“그래야지.”

“브로콜리 많이 먹어. 다크써클에 좋대.”

“.....그래야지.”

오이, 피망, 브로콜리.

이 3대 죄악의 음식은 터무니없게도 몸이 상당히 좋다.

“아무튼 갔다 올게. 다시 선생님 집에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누나가 떠나가고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티아랑 놀고 있는 다이애나를 봤다.

‘가기 전에 보여주고 싶었지만..... 갔다 와서 보여주지 뭐. 어차피 많은 분량도 아니니까.’

집중해서 읽는다고 해도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같이 가세.”

“근데 어제 약속이었는데 정말 괜찮을까요?”

“거참.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나? 고작 이런 일로 삐지거나 할 녀석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래도..... 선물이라도 사가야 하는 게 아닌지.....”

“그냥 가도 된다니까 거참.....”

선생님은 겉옷을 걸친 상태로 내 앞으로 다가오시며 말했다.

“어제 내가 사정을 말하니 이해했네. 걱정하지 말고 만나러 가세.”

결국 나는 선생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걸어가시게요? 가깝다는 말은 들었는데 걸어가도 될 정도예요?”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네.”

“정말 가깝네요.”

선생님을 따라 정말 5분 정도 걸으니, 파란색 지붕이 매력적인 집이 보였다.

선생님 집보다 큰 3층짜리 집이었는데, 굉장히 크고 아름다웠으며 앞에는 작은 분수대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눈을 정리하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손을 흔드셨다.

“여어! 에드워드! 오랜만이야!”

“루이. 네 말대로 제임스 데려왔네.”

루이 감독님은 잠시 눈삽을 내려놓더니 나를 보며 웃음을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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