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인피니티 라이프 (2)
에이든은 흔들리는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자신의 절망과 악운에 이제 질려버렸다.
자신이 살면 안 된다.
사는 것으로 악운이 퍼져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는 것을 이제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조금이지만 가벼워졌다.
‘이제 그쪽으로 갈게..... 미안해 하퍼......’
에이든의 몸이 조금씩 흔들린다.
현실 세계에서 단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에이든은 지금 이 순간만큼이 몇만 년의 시간보다도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진 죽음이 다가오자, 에이든의 마음은 공포가 아닌 환희로 물들어 있었다.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에이든한테 막히는 건 없었다.
‘곧..... 그리로.....’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에이든은 강물로 떨어진다.
.
.
.
.
...
.....
.......
‘저, 저기요? 안 들리세요? 저기요?’
‘......’
물이 막힌 귓구멍으로 향해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였던 하퍼의 따스한 목소리가 생각날 정도로 여성의 목소리 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 죽었나? 어, 어디를 불러야 하지? 911이었나? 자, 잠깐만.....’
여성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에이든은 천천히 깊은 심연의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둡고 추운 심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따뜻해.....’
알 수 없는 따뜻함을 느끼며 에이든은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
이것이 내가 [인피니티 라이프]의 마지막으로 생각한 부분이다.
제3자를 등장시킴으로써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마무리를 한다.
“.....작품에 정답은 없다.”
늘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마무리가 정답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그 정답은 독자들이 판단해 줄 것이며, 나는 그저 작품을 창조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 작품은 이제 완성되었으니 내 품을 떠날 준비만 하면 되었다.
“흐음...... 에밀라가 지금 시간에 받아주려나?”
에드워드 선생님과 루이 감독님의 시점에서 글을 확인해 보았다.
이제 전문 편집자와 출판사의 눈으로부터 이 글을 판단 받을 시간이었다.
“뭐. 메일로 보내면 월요일쯤에 받으시겠지.”
에밀라한테 문자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문밖에서 엄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BBQ 준비하게 내려와!
“네에! 금방 내려갈게요!”
***
토요일.
인간은 푹 쉬어야 할 자격이 있고, 이 주말이라는 녀석은 그걸 증명하는 증거였다.
그래. 쉬어야 한다.
쉬는 날이니까 쉬어야 하는 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치였다.
그런 주말에 에밀라는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이유야 여러 가지만 두 가지를 뽑는다면 하나는 빌에이든 미디어가 아직 완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SC라스틱과 공동으로 시작한 공모전 준비로 인해 사이트를 만들었고, 그 사이트의 디자인을 세세하게 검토해야 하는 역할을 같이 해야만 했다.
다만 직원들 중에 이러한 역할은 오직 에밀라만 가능했다.
빌에이든 미디어에서 공모전이라는 것을 열어본 경험은 오직 출판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해본 에밀라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확인하여야 하다 보니, 몇 명의 직원과 함께 주말에도 출근해야만 했다.
‘다니엘..... 린.....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얼른 일이나 나가라고 재촉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내심 떠올랐지만, 그래도 꿋꿋이 일을 시작했다.
‘제임스 작가님 출판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최근에 발매한 [일곱 개의 죄악]이 큰 성공을 겨두었다.
제임스 작가의 소설이니 당연한 것도 있지만, 다만,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일곱 개의 죄악] 같은 경우는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력에 가장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곱 개의 죄악]은 현재 여러 나라에서 번역을 해달라고 아우성 중이었다.
추리 소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짜릿한 쾌감 때문에, 예로부터 추리 소설 마니아들이 많았다.
영국의 셜록 홈즈가 아직까지 유명한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른 다른 시리즈를 내달라고 아우성이니 원......’
사람들은 [일곱 개의 죄악]을 읽자 회고록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기에 [죄악]은 총 7개이니, 7개의 시리즈로 나올 것임을 눈치챘고 빌에이든 미디어를 향해 얼른 제임스 작가를 독촉하라는 메일과 문자를 보냈다.
‘예전에는 영어만 보냈는데, 요즘에는 다국어로 보내져서 좀 무섭네.’
그뿐만 아니었다.
이미 루이 감독님이 침을 발라놓은 작품이었지만, 세계 유명한 감독으로부터 [일곱 개의 죄악]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문의 또한 쏟아졌다.
다른 사람이 보낸 문의 메일이라면 무시하겠지만, 그중에는 빌에이든 미디어가 차마 건들 수 없는 감독들도 있었기에 이럴 때마다 난처했다.
제임스 작가님이 얼른 확답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특히나 넷마이너스 측에서 계속해서 원한다고 연락이 오니 차단시켜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만큼 잘나간다는 뜻이니.....’
좋게좋게 생각하며 [블랙 & 월드 2부] 출판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아직 영화가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그 인기가 절정에 달한 제임스 작가 최초의 어반 판타지 소설.
그 2부를 2월에 출판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띠링!
“.....응?”
갑자기 에밀라의 메일에 알람 표시가 생겼다.
메일에 알람 표시는 오직 VIP가 보냈을 때만 생기기에 에밀라는 의아해하며 메일 창을 열었다.
“엥? 작가님?”
제임스 작가님이 메일을 보내 주셨다.
메일에는 아무런 구연 설명도 없었고, 오직 [인피니티 라이프]라는 제목을 가진 파일 하나만 보내져 있었다.
“......예?”
오늘 주말인데?
지금 특근 중인데?
“설마 원고를 보내 주신 건가?”
현실을 부정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고인 것 같았다.
“......읽으면 안 돼.”
오늘은 특근이다.
곧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제임스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시간이라는 것이 악마의 심연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작가님의 소설이다.
지금 읽는 순간 저녁에나 정신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안 되는데.....”
어째서 내 손은 제임스 작가님이 보낸 원고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팬으로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제임스 작가의 신작에 손을 뻗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몇십 년 동안 면벽수련을 한 불교의 스님이라 할지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안 되에에......”
마음은 안 된다고 하지만 이미 손은 파일을 열고 있었다.
에밀라는 좌절하며 파일을 향해 눈을 돌렸다.
***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제임스의 신작은 글이 생각보다 짧았다.
짧다고 해서 한 권을 못 만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마음먹으면 하루에 쓸 수 있을 정도의 글자 수였다.
다만.
‘이 글자 수에.....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회고록을 적을 수 있을까?’
그건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하루하루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몇백, 몇천 권의 책을 써도 불가능한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제임스 작가는 짧은 글 안에 한 남자의 인생을 담고자 했다.
물론 1세부터 100세까지의 갓난아기부터 노인의 인생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20~30세 정도 되는 주인공의 일생이었지만, 너무도 훌륭했고 찬란했으며 가련했다.
너무 가련한 인생이었기에 책을 다 읽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련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스스로의 삶을 참지 못하고 그만 절망으로 찾아가는 그의 마지막은 뭍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것이다.
너무나도 불행한 삶.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은
‘마지막이 너무 잘 어울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일직선의 마무리가 이 이야기의 여운을 길게 머무르게 해주다가 마무리한다.
굉장히 긴 여운이지만,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여운에는 마무리가 존재했다.
‘그래도 너무..... 제임스 작가님 소설 같지가 않아.’
굳이 따지자면 에드월 홈즈의 소설이 가장 닮아있었다.
다만, 에드월 홈즈와는 다르게 이 소설은 절망이 너무 가득했다.
굳이 따지자면 아틀란티스의 원주민인 시절 소설과 매우 흡사했다.
‘그런데......’
소설을 보자 문뜩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절망 어린 사실이 에밀라의 몸을 옥죄여왔다.
‘밤이 왔네.’
아무래도 오늘은 특근에 야근까지 겹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런 에밀라의 고충을 모르고 제임스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자. 이것도 먹으렴?”
“감사합니다!”
아빠는 웬일이신지 직접 고기를 구워주며, 티아의 접시에 잘린 고기를 올려주었다.
보통의 BBQ와는 다른 Korea BBQ 방식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티아는 접시 위에 수북이 올라온 고기를 행복한 듯 바라봤다.
‘고기를 좋아하나?’
티아의 일기에 적힌 이야기를 읽어보면, 티아는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먹기 싫은 음식은 딱 잘라서 거절하는 것 같았다.
너무 단 음식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사 먹는 음식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뭐. 잘 먹으면 좋지.’
아빠는 기특하다는 얼굴을 하시며 평소 좋아하는 술은 입도 대지 않으시고 티아의 접시에 고기를 수북이 올려주었다.
-그르르릉.
-끄응.....
그런 티아의 뒤로 고기를 애원하는 팡이와 돌구가 앉아서 접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거 먹어.”
티아는 먼저 새끼인 돌구한테 양념이 안 된 고기를 조금씩 뜯어 주었는데, 그 모습에 심통이 난 팡이는 돌구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깨갱!
-니야아아앙!
마치 서열을 지키라는 듯한 팡이의 행동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돌구는 익숙하다는 듯 다시 주둥아리를 내밀었다.
“자. 돌구도 먹어.”
-왕!
아까부터 몇 대 맞는 걸 봤는지 티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구한테 물렁뼈가 붙어있는 삼겹살을 주었다.
‘개와 고양이는 친해질 수 없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 그냥 개가 참아주는 것 같은데?’
아직은 팡이가 살 때문에 덩치가 크지만, 몇 달 지나면 돌구가 더 커질 것이다.
뮤튜브 영상을 보면 고양이들한테 항상 처맞는 개들이 있던데, 그 녀석들도 전부 익숙한 듯 살아간다고 하니 서로 친하게 지내리라 생각된다.
‘지 팔자지 뭐.’
그래도 나중에 암컷을 데려온다고 하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될 것이다.
불쌍한 팡이는 영원한 고자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돌구는 짝이 있으니 조금 정도는 맞아도 억울하진 않겠지.
“오빠.”
엄마표 갈비를 입으로 가져가던 나는 뭔가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캐서린이 다가오자, 다시 갈비를 입으로 집어넣었다.
“아 씨! 먹지 말고 좀 들어!”
“뭐? 오늘부터 다이어트 한다고?”
“내, 내일부터 한다고 했잖아!”
오늘부터 하나, 내일부터 하나
그게 그거지.
“그래서 왜?”
“나도 LA 갈래!”
“응. 꺼져.”
“히잉.....”
이게 어딜 빌붙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