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골촌놈인 줄 알았는데 천재작가였다-204화 (203/216)

204화. 야설

캐서린이 공모전을 참여 안 하려 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웹소설이기 때문이다.

웹소설의 지독함을 이미 경험한 캐서린은, 미래가 안 보이면 휴식도 없는 그런 글을 이제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차기작이 제임스한테 재밌다고 승낙을 받았으면 고려해보긴 해봤겠지만, 전부 재미없다고 삭제되었고 거기에 차기작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 또한 없었기에 공모전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 장점이 뭘까?’

제임스한테 모든 차기작이 다 삭제된 이후 캐서린은 그날 저녁 고기를 먹고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생각하건 바로 자신의 장점이었다.

‘제임스 오빠의 장점은 역시 필력과 스토리지.’

두 가지도 최정상급 장점이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현실 같은 세계관.’

그게 판타지 세계든, 인간이 아닌 동물이 주인공이 세계든 간에 모든 세계관이 현실과 비견될 것만 같은 현실성이 있었다.

현실에서 직접 느낄 것만 같은 두려움과 즐거움이 있기에 제임스의 소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순식간에 책에 빠져들게 할 수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 동안 쓴 글이 계속해서 변하고 진화한 거야.’

몇십 년 동안 지속되어 있는 꾸준함이 제임스의 글에 세계를 추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쓸 수가 없어.’

애초에 자신은 전기 공학 쪽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글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몰랐다.

오타도 많았고, 문단 실수도 많았기에 캐서린은 ‘야설’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일단 야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글을 쓰면 몇 명이라도 볼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내 장점일까?’

제임스가 항상 말해왔다.

너무 어중간하다고.

야설인데도 야설 같지가 않고, 로맨스인데도 로맨스 같지가 않았다.

너무 어중간한 선을 유지하기에 이렇다 할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바꿨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장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생각에 잠긴 캐서린은 컴퓨터를 켜고 예전에 제임스가 직접 수정해준 소설을 확인했다.

문단과 오타 그리고 내용의 이상함 정도만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었지만, 내용만 그대로고 글자와 문단이 모두 바뀐 상태로 보내져 있던 ‘굉장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던 소설을 말이다.

‘기껏해야 몇 화 안 되지만......’

이걸 본 뒤 캐서린은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만, 그 글을 쓰게 된 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독자들은 떨어져 나갔고, 댓글에 욕이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급히 완결을 내야 했지만 그 때문인지 차기작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커져갔다.

‘내 장점을 아는 것보다 먼저 단점을..... 아니 너무 많으니까 알아보지 말자.’

제임스의 글과 자신의 글을 비교하며 캐서린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몇 시간.

“......써볼까?”

캐서린은 아주 작지만 해답을 발견했다.

***

캐서린이 차기작이라고 준비해온 건 시놉시스와 서장 포함 1~2화 정도 되는 짧은 글이었다.

당연히 하루도 안 되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새벽 내내 잠도 안 자고 글을 적었을 것이다.

“흠.”

딸기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 집어넣으며 캐서린이 준비한 글을 본격적으로 읽었다.

남이 진심을 보인다면 나 또한 진심을 보여야 했기에, 공모전에 출시할 신디와 힐다랑 다르게 부족한 점을 전부 말해줄 생각이었다.

‘응?’

시놉시스를 읽고 서장을 읽어본 나는 눈이 커졌다.

“너......”

“응?”

“아예 이쪽 길을 걸으려는 거야?”

“응! 어때? 괜찮아?”

“아니 잠깐만...... 아니다. 네가 좋아서 쓰는 글인데 뭐 내가 할 말이 없지.”

캐서린이 준비한 글은 전작보다 더 야했다.

야설도 작품이고, 그 작품성을 인증해주는 여러 뛰어난 작품이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성인이 된 지 몇 년 안 된 여자애가 썼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뭐. 전작에서 보였던 애매한 장면은 없네.’

초반부터 목표 의식이 확실하다는 느낌 때문인지, 스토리를 확실히 잡고 내용에 진입하려는 의도가 확실히 보였다.

“1권짜리 정도 되는 분량 안에 스토리를 집어넣으려는 거지?”

“응.”

“흠.....”

캐서린의 차기작 스토리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녀여행을 간 5명의 여자 스토리였는데, 여행을 갔다가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적어 가며 풀어갈 것이 보였다.

로맨스라고 보기에는..... 아마 치정극?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국이라는 느낌이 강하네.”

“그 느낌이 뭔데?”

“뭐랄까..... 불륜, 막장, 이혼 같은?”

쉽게 말해 콩가루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때?”

“음. 솔직히 말하면 내용이 너무 흔하지?”

“.....그래?”

“글까지는 아니더라도 show 프로나 영화에 이런 내용은 굉장히 흔한 편이니까.”

생각나는 것만 몇 개가 존재한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스토리였다.

여자끼리 유부녀가 되기 전에 간 처녀여행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스토리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받아들여진다.

“일단 2화 분량까지 읽어봤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읽기 수월하다는 것 정도네.”

“수월해?”

“어. 저번과 다르게 군더더기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 있어.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전부 제외한 것 같기도 하고, 스토리를 조금만 더 고쳐보면 되겠네. 그리고 이 야한 내용들은..... 디테일이 꽤 올랐다?”

“진짜?”

“응. 예전에 [장미 길들이기] 때보다 확실히 진화된 느낌이 들어. 물론 이게 칭찬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

야설의 장점은 무엇일까?

제임스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야설이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다만, 읽어본 적은 있었다.

그냥 평범한 장르 소설에 남녀간의 사랑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경우부터, 그냥 각 잡고 이건 야하니까 각오하고 보라는 것까지 있었다.

‘야설의 최대 장점은 아무래도 다른 소설들보다 집중된다는 게 아닐까?’

잘 쓴 야설 한해서지만, 그래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중요한 걸 야설은 가지고 있었다.

등급과 여러 가지 이유로 보겠다는 사람들은 적었지만, 그래도 문학적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뭐. 이걸로 이제 밀고 나가게?”

“응!”

상업적인 야설의 시초는 프랑스 혁명기에 등장하였고,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고 들었다.

과거에는 종이가 비쌌기에 귀족들의 재산 중 일부인 ‘책’은 너무도 비쌌지만, 야설 같은 경우는 포장용 푸른색 종이로 만들었기에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서민들이 쉽게 찾아 읽었고 이는 오늘날에 대해서 서민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큰 핵심 조건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야설이 가치 없는 책, 천박한 책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야설로 밀고 나가려면 여러 책을 읽어보는 게 가장 좋지. 많지는 않지만 야설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있으니까. 베이지의 100가지 그림자라는 웹소설을 주제로 한 야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아 그건 나도 알아.”

“그런 걸 주로 읽어봐. 이 글의 장점만 가지고 스토리만 조금 더 변경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 특히 일본 쪽 소설을 많이 알아봐.”

“일본 쪽?”

“야설을 당당한 문학으로 취급한 나라기도 하니까. 전문적인 소설이 많아. 뭐...... 번역본이 조금 이상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잘 찾아서 읽어봐.”

예전에 어디선가 흘리듯이 들은 말인데, 출판 대국 중 한 곳인 일본도 프랑스와 같이 야설로 인해 사람들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뭐. 부정확한 정보라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야설이라는게 사람들의 이목과 집중을 끌기에는 최적이라는 거겠지.

“잘해봐.”

“아싸! 꼭 성공할 테니까 두고 봐!”

“그래그래, 영화화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연락 주고.”

가장 먼저 달려가서 볼 테니까.

근데 우리는 깜빡한 게 있었다.

“야....설? 그게 뭐예요?”

티아는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우리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아빠와 엄마가 싸늘한 눈동자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용일아.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우리한테 자세히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니?”

“티아야. 잠깐 캐서린 언니랑 함께 방에 들어가 있겠니? 저녁 시간이 되면 불러줄 테니까 한숨 자고 있으렴.”

“네에!”

엄마와 아빠의 싸늘한 말에 캐서린도 뭔가 심각함을 느꼈는지 서둘러 티아를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자,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

당황했기 때문인지 말이 횡설수설 튀어나왔다.

‘망할 캐서린.’

두고 보자.

***

어찌저찌 오해가 풀리고, 엄마와 아빠는 캐서린한테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예의라는 것을 배웠지만, 그냥 순수 미국인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뭐. 오해가 잘 풀렸으니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식겁했다.

“티아야 먹을만 하니?”

“네!”

엄마의 말에 불고기를 밥하고 먹고 있던 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 어느 아이들이라도 불고기를 싫어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티아라도 맛있게 먹을 줄 알았다.

“그나저나 아까 캐서린이 와서 뭘 이야기하고 있던 거예요?”

그 말에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자기도 LA로 가고 싶다고 한다더구나.”

“에..... 그걸 왜 아빠하고 엄마한테 말해요?”

“딱히 말한 것도 아니다. 그냥 네가 안 와서 대화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니까.”

“그래서 뭐라 하셨어요?”

아빠는 된장국에 숟가락을 가져가며 말했다.

“가라고 했다.”

“아니 그래도 그냥 그렇게 막무가내로.....”

“막무가내가 아니다. 지금 세상이 농사만으로 살아가는 시대냐? 나 때도 어떻게든 서울로 상경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보려고 했었다. 캐서린도 몬태나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LA같이 큰 도시도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근데 개는 왜 지 부모한테 말 안 하고 아빠하고 엄마한테......”

“캐서린 부모 측도 시골에서만 살아서 불안한 거겠지. 우리는 사돈 측 딸들이 대도시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너도 LA에 살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우리한테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었겠지.”

“하긴..... 그러고 보니 캐서린이 알게 모르게 월리한테 많이 의존하고 있었으니까요.”

“월리가 장교로 입대하면 이제 집에 있기 힘들 테니까, 캐서린도 많이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진지하게 들어준 것뿐이다.”

어릴 적부터 월리와 캐서린이 많이 봐왔던 아빠와 엄마였기에 캐서린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딸처럼 더욱 챙겨주고 싶어 했다.

“캐서린도 부모님한테 LA에 가는 건 허락을 받았다더라. 그런데 LA 땅값이 좀 비싸냐? 집에서는 지원을 못 해준다고 하더라.”

“당연하죠. 저처럼 LA에 자주 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데 가는 거니까요.”

“너한테 도움 요청했었다며?”

“같은 이유로 거절했지만요.”

“스스로 꿈을 이루고 싶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는 생각 또한 중요한 거다. 캐서린한테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스스로의 선택은 자기가 하겠지. 너도 성인이니 도와줄지 말지는 스스로 선택해라.”

“네에.....”

“크흠. 괜한 이야기 하지 말고 밥이나 마저 먹어라.”

우리는 다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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