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2부 (2)
본래 [사막의 전쟁]이라 붙였던 이름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수정으로 시놉시스 또한 내용을 변경하였다 보니 빌에이든 미디어에서 [사막의 전갈]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처음 시놉시스를 적었을 때 비중 있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에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비중 있는 인물이 몇 명이나 더 있기는 했지만, 전부 조연 혹은 단역으로 추락하였다.
‘2부를 적으려면 확실히 이들을 활용해야만 하는데.......’
2부는 에이의 역할인 로버트와 라울한테 공고했던 대로, 에이와 라울을 주인공 삼아 움직일 것이다.
물론 아내의 여동생도 나올 예정이니 말이다.
“흠...... 일단 파일을 전부 메모장에 저장하자.”
지금 하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우선 집에 온 이상 [사막의 전갈]을 집필할 때 사용했던 스토리 메모장과 시놉시스 등을 전부 USB에 담아야 했다.
“어떻게 적어야 할까나.....”
과거에 느꼈던 그 찌릿한 영감을 떠올리는 건 역시나 불가능했다.
그럼 지금의 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과연 쉬운 일일까.
키보드를 몇 번이고 움직였지만 다시 전부 삭제하였다.
“하아..... 일단 써보자. 글을 쓰고 확인해보자.”
억지로라도 한 번 쥐어짜며 글을 써보자.
혹시 알아? 재밌을지.
***
에단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어쩔 수 없었다.
폭발하는 배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여러 파편으로 몸이 관통당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지만 결국 아내의 여동생인 로즐리로 인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에단과 로즐리는 결국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운명 같은 인연 때문에 만나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다 보니 만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
“하아..... 현타온다.”
우선 하나만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 소설들 중에서 ‘순탄한 로맨스’ 따위 없었다.
우선, 애인부터 죽은 다음에 시작을 하든가, 그 애인이 절망에 빠져 주인공을 걷어차는 그런 식의 로맨스는 있었다.
달콤하고 혀가 녹아내릴 것 같은 아름다운 그런 로맨스를 나는 매번 적을 때마다 실패했다.
‘이유야 뭐. 내가 모쏠..... 크흠.’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인해 로맨스를 적을 때마다 실패했다.
“.....그냥 둘을 갈라트려?”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고생했으니까 행복을 줘야지.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스토리를 진행하는 편이 더 좋기도 하니까. 그래 이대로 진행해야지..... 진행해야 하는데......’
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비참해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내 소설 중에서 그나마 로맨스에 가까운 건 [블랙 & 월드]이려나? 주인공들끼리 연애를 하기는 하니까..... 물론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적이 없지만.”
나는 고작 몇 글자 적힌 파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연애라......”
최근 캐서린의 소개팅 소동 때문인지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나는 왜 이때까지 사랑이라는 걸..... 해보긴 했지만,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걸까.
연애..... 그게 대체 뭘까?
“.....시리다.”
오늘따라 유난히 옆구리가 시렸다.
***
결국 나는 문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글에 대한 스토리는 이미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상태였지만,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마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이 글을 정말 쓰기 싫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손에 잡히지 않았기에 더 이상 글을 적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내일부터 다시 쓰기로 다짐했다.
물론 내일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은 해보려 한다.
“밥 먹어라.”
“네.”
엄마의 말에 거실에서 아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나는 식탁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식탁에는 아무것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티아가 아직 안 왔거든? 밥 먹어야 하니까 데려와.”
“아. 아직도 고모부네 집에 있나 보네요? 데려올게요. 근데 거기서 밥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물어보고 와봐. 한식만 먹어서 질려야 할 수도 있으니까.”
“네.”
“당신은 수저하고 밥 좀 퍼서 갔다 놔요.”
“.....알았어.”
아빠는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수저를 집으러 가셨고, 나는 있는 옷 그대로를 입고 문밖으로 나갔다.
“으으..... 추워.”
어차피 요 앞이다 보니 그냥 가벼운 차림으로 뛰어갈 생각이었지만, 마침 고모부 집 쪽에서 작은 인영이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작가님!”
-냐아앙?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티아는 고모부 집에서 나와 이미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팡이도 추운지 티아의 품에 꼭 숨어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밥 먹으러 데리러 가려는 중이었는데 잘됐네. 추우니까 얼른 집에 가자.”
“네!”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제육볶음과 함께 콩나물 김칫국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티아한테는 너무 매울 수 있으니 간장 불고기와 된장국을 따로 만들어 주셨다.
“얼른 와라. 팡이야 너도 밥 먹자.”
-냐앙!
돌구를 계속 팡이가 괴롭히다 보니, 돌구는 어쩔 수 없이 우리랑 같이 먹지 못하고 2층 가서 홀로 쓸쓸히 먹어야만 했다.
아빠가 팡이 밥까지 챙겨주자 우리는 그제야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티아야. 짐은 다 챙겨놨니?”
“네. 많이 가져오지 않아서 금방 챙길 수 있어요.”
“기껏 몬태나에 와서 집에만 있었는데 괜찮겠니? 어디 놀러 가거나 하지 못해서 어떻게?”
“괜찮아요! 제임스 작가님 생가를 구경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최고의 행복인걸요?”
“어쩜..... 그래도 이렇게 달랑 보내기만 하면 우리가 미안한데.....”
“아, 아니에요! 충분히 재밌었는걸요?”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은 편치 않으셨던 것 같았다.
9살의 어린아이. 거기에 홀로 몬태나라는 먼 거리까지 온 아이가 그냥 집에만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고, 오늘은 이미 저녁인데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저는 글 쓰는 게 가장 재밌어요! 제임스 작가님처럼 될 거예요!”
티아는 어딜 놀러 가는 것보다 글에 관한 걸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
“......”
다만, 티아가 방금 한 말에 엄마와 아빠는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왜, 왜요?”
“아니다 그냥..... 에휴. 이놈은 허구한 날 글만 쓰고, 여자도 데려올 생각하지도 않고, 이러다 장가는 갈 수 있을는지......”
“어렸을 적부터 글 쓰는 걸 가지고 뭐라 하지 않은 게 후회되네. 그때 막았으면 이렇게까지 글에 미치지 않았을 텐데.”
“......”
그때 글을 쓰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돈과 자리보다는 그저 내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 것 같으셨다.
“하긴, 오늘은 늦었고..... 내일 새벽에 바로 갈 거냐?”
“아뇨. 에일리를 만난 뒤에 가야 해요. 며칠 정도는 더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아무래도 금요일에 있을 코스프레, 피규어 대회장에 대한 점검이다 뭐다 해서 수요일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내일 저녁에 가는 거야?”
“그때 가도 상관없을 거예요. 티아 부모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제가 티아 집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주면 되니까요. 누나는 어차피 피곤하면 제 집에서 자니까요.”
“흠.....”
아빠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야 혹시 사냥 좋아하니?”
-찰싹!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손바닥으로 등을 찰싹 때렸다.
“악! 왜 그래?”
“여자아이한테 총을 들게 할 생각이에요?”
“아, 아니 그래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사냥 정도니까......”
“허튼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래 시킬 게 없다지만 그래도 총은 아니죠!”
“크흠!”
총기에 대한 생각이 비교적 자유로운 아빠와 달리, 엄마는 집안에 총기가 들어오면 질색을 하실 정도로 싫어하신다.
그렇다고 집에 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반드시 사용해야 할 때가 아니면 싫어하셨다.
“그럼..... 등산은 힘들겠고.”
“추운데 애 고생시킬 일 있어요?”
“말농장은.....”
“티아는 말을 안 좋아한대요. 어릴 적에 떨어진 트라우마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음......”
이런 말을 하기 그렇지만, 시골에서 할 게 뭐가 있겠는가.
“버팔로 버거는..... 그냥 비프 버거 먹는 게 더 좋을 테고.”
각 주마다 유명 음식들이 있는데, 몬태나주에는 버팔로 버거가 유명했다.
실제 버팔로 고기와 소고기를 섞은 패티를 넣은 버거인데 솔직히 그냥 비프 버거가 더 맛있었다.
근육 때문인지 뻑뻑해서, 몬태나에 살았던 나조차도 한 번 정도 먹은 것 같았다.
“진짜 없네.”
실망스러워 하는 부모님의 표정에 불고기를 입 안에 넣고 있던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충분히 재밌었어요! 진짜예요!”
“그래도..... 흠. 그럼 잠시만 기다려보렴.”
“네?”
“이왕 왔는데 이런 추억만 줄 수는 없지.”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신 아빠는 곧 방에서 책 몇 권을 가져왔다.
그 책을 본 나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거 제......”
“야, 양장본! 양장본이에요! 양장본!”
“.....그러게, 전부 내 오리지널 양장본인데 왜 가지고 오셨지?”
현재 내 양장본을 따라 하여 비슷한 책을 불법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가 있다고 들었다.
물론 SC라스틱과 빌에이든 미디어, 그리고 메디슨 누나의 회사 골든 문 게이트에서 대대적으로 법적조치를 하고 있지만 시중에 상당히 많이 풀렸다고 들었다.
그 때문인지 양장본의 가치가 더욱 올랐다고 하는데, 아무튼 티아는 양장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희귀성 때문이 아닌 양장본을 구매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어린 티아한테 너무 큰돈이었다 보니 신청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티아의 방에 가면 양장본을 사진을 프린트해서 액자로 걸어놓기까지 하였다.
“리, 리암의 일러스트 북! [드래곤 마스터]하고 [블랙 & 월드] 일러스트 북이에요! 저거 SNS로 봤어요!”
거기에 이사벨이 올 때마다 가지고 싶어서 항상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던 레어한 굿즈도 몇 가지 있었다.
“설마 주시게요?”
“어차피 내 건데 무슨 상관이냐?”
“그래도 아들이 준 건데.....”
“나한테 효도하고 싶으면 이런 책 말고 새색시나 데려와. 죽기 전에 손녀 보는 게 소원이다.”
“손자가 아니고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들내미 키워서 재미 다 봤으니 이제 손녀 보고 싶다. 이런 책들은 우리보다 그냥 아이들의 추억으로 삼는 게 더 좋아.”
“그래도 그거 가격이 상당한......”
“어차피 티아는 네 제자 아니냐? 거기에 영화에도 출연한다면서? 그냥 양보해라.”
“뭐..... 상관은 없지만.”
티아는 숟가락과 포크를 든 상태로 시선이 아빠가 들고 있는 양장본에 꽂혀 있었다.
이미 주겠다고 가져왔는데 갑자기 가져가면 실망할 게 분명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몬태나의 마지막 하루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