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몸을 통제하는 감각기관이 모두 닫힌 것 같았다.
이 공간에 자신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느꼈다.
아니, 느껴지지조차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러리라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공간 위에서 나는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꼭 그러라고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이.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 나의 기억에 검은 막이라도 씌워 놓은 것인 양 아무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톡 토도독 톡.
긴 시간 동안 아무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던 어느 날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공의 상태에 누군가 물방울 하나 던진 듯한, 아주 작지만 크게 느껴지는 소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의 기척에 기분 좋을 것도 하건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만 계속 걸었다.
그때 누군가 느리게 나를 불렀다.
아주 힘 있지만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아 주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만, 그만하면 되었다.”
울컥, 가슴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감추고 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것들이 그 한마디에 나오겠다 아우성쳤다.
애써 그것을 속으로 삼킨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인 양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쪽이 아니다. 이곳이다.”
이번에도 무시하고 지나치려 한 걸음 내디딜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지금껏 길이 없는 무형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아늑하고 포근한 곳으로 변한 것이다.
순간 지금껏 자유롭다 여겼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나는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한 미약한 호기심이 머리를 들었다.
“당신은 신이십니까?”
감정을 삭이며 더듬더듬 천천히 물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고 목소리는 처음 말을 떼는 아이인 양 어렵게 나왔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어 내 앞에 나타난 이에게 물었다.
신이 내 앞에 있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래. 나는 네가 살고 있는 지구를 비롯한 이 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인이고 너희들이 신이라 칭하는 이다.”
무감정.
딱 그의 얼굴에 표현된 느낌은 그거 하나였다.
자신을 관리인이라 칭한 이는…… 우리가 신이라 생각한 이는 얼굴에 아무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느꼈던 따뜻함과 포근함과는 거리가 먼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확인을 하면 무언가 후련해질 줄 알았던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더욱 콱 막혀 버렸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나는 이번에도 쥐어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저를 가둬 두고 계십니까?”
“나는 너를 가둬 둔 적이 없다. 지금 너를 가둔 건 다름 아닌 너 자신이다. 영혼은 죄를 짓지 않는 한 누구도 구속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나는 길 잃은 너를 도와 자유롭게 해 주려는 것이니라.”
도움, 도움이라니, 인제 와서 도움이라니!!! 지금껏 참고 있던 울분이, 꾹 누르고 눌렀던 울분이 한꺼번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기억이 났다.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 다 기억이 나 버렸다.
나 스스로 영혼을 묶어 둘 만큼의 고통이, 슬픔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났다.
나는 죽어서 이 공간을 떠돌고 있었던 거였다.
그럼 저 신은 나의 영혼을 천국과 지옥 둘 중 하나로 보내 버리려고 온 것일 터였다.
나는 분명히 그래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속단을 해 버렸다.
신은 여전히 나를 보고만 있었다.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나의 질문에 신이 픽, 하고 웃었다.
비웃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즐거워서 웃는 것도 아닌 이상한 웃음이었다.
굳이 감정을 붙이자면 안타까운 그러한 웃음이었다.
“글쎄, 어떨 것 같으냐?”
“어떤 곳이든 상관없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정말 나는 어떤 곳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족이 없는 곳은 지옥이었으니까.
“…….”
신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얼른 보내 주세요. 어떤 곳이든.”
“너는 천국도 지옥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긴 삶 속에 천국도 지옥도 있는 것이니 살아나면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것도 너 자신일 것이다. 나는 그저 네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줄 뿐이다.”
새로운 인생이라……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었으니까.
“지구는 멸망했습니까?”
생각을 거치지 않고 질문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지금껏 그 말만을 속으로 되뇌었다는 듯이 나온 말에 나 또한 당황했지만, 지금의 나에겐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원동력인 존재가 나의 가족이었고, 그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지구였으니까
“그래. 지구는 더 이상 세계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대의 말처럼 멸망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배어 나왔다.
“인간들은 다 죽었습니까? 신이라면서요. 당신이 신이라면서 당신을 외치는 인간들을 모른 척했다는 말입니까? 왜요? 왜 그들을 살리지 못하셨습니까? 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신 겁니까? 왜…… 그럼…… 제 가족들은, 그들은 흐윽…… 흑……. 우리 부모님은요?”
두서없이 신에게 말했다.
질문이기도 비난이기도 했다.
나는 지구에 산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스스로 인지했다.
그리고 이제 더는 햇살 같았던 부모님의 미소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말았다.
“지구는 이미 멸망의 길을 걸었고 지구에서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리고 그대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본래 지구가 온전했다면 그대는 환생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태초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그대의 인생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그대는 비슷한 위치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혹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들어주겠다. 단, 그대가 내 조건을 받아 줘야만 한다는 전제하에.”
개소리. 전부 개소리였다.
들을 가치도 없는 개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신의 말을 개소리로 치부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구가 멸망한 것도,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도,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도 모두 현실이었다.
문뜩 꼭 내가 살아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까?”
순간 위압감이 나를 덮쳐 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니 나는 영혼만 존재하기에 숨을 쉴 수 없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는 건 사실이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쯤 거짓말처럼 나를 짓누르던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어이없게도 ‘아, 살았다’였다.
죽기를 바랐으면서 고통이 사라지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에 혐오감이 들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표현이라 나는 입을 다물고 허망하게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죽여 달라 말하면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할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의 기억은 지우지 말아 주세요.”
신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그대의 기억을 지울 생각이 없었다.”
뭐? 새로운 인생 시작하면 드라마나 영화처럼 기억을 없애는 거 아니었어?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이다. 그대는 특수한 케이스로 내가 삶을 부여해 주는 것이니 기억을 그대로 놔두는 것뿐이다.”
하긴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뭐든 못 할까. 그것이 내 속마음을 훔쳐보는 것이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드리웠다.
나는 왜 그런 웃음을 짓느냐 묻는 대신에 얼른 나를 보내 달라 말했다.
“그래, 원하는 삶이 있느냐? 맞춰서 보내 주마.”
순간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싶다, 라는 소망이 떠올랐다.
더불어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러면 외롭고 쓸쓸해서 혼자 우는 일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신의 말이 끝나고 암전이 찾아왔다.
* * *
볼 위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비가 오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오는 곡소리에 그것이 눈물임을 깨달았다.
“아들아, 아들아. 연아, 불쌍한 우리 연아.”
눈물의 주인공은 연신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제야 나는 신이 말했던, 중간부터의 삶이 죽은 누군가의 삶을 대신해야 함을 깨달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몸의 기억이 나의 기억에 융화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몸의 주인은 공작가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집에 칩거하며 살다가 황제의 후궁 첩지를 받고 황궁에 온 날 호수에 몸을 던졌다.
뭐 후궁? 나는 깜짝 놀랐다.
공작의 아들이 후궁? 그럼 황제가 여자인가?
나는 대한민국에서 자라 군대까지 무사히 갔다 온 남자라면 떠올릴 만한 질문들을 나는 던졌다.
그리고 후궁 첩지를 받자마자 자결한 몸의 주인에게도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 흐으윽, 아들, 흑, 연아.”
자신의 머리며 얼굴이며 쓰다듬는 손이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순간 나는 무언가 가슴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그리고 눈가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공, 공작님.”
누군가 소리쳤다.
하지만 나를 더듬는 손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작님, 공자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누군가 또 큰 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나를 더듬던 손이 멈췄다.
마침맞게 나 또한 눈을 떴다.
“연아?”
잘생긴 중년 남성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내려다보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이 몸의 아버지 공작이었다.
“아버지.”
나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몸의 주인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으나 아빠라는 말은 입에 붙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으로 누군가를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공작은 나의 몸을 와락 안더니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감사하다고 끊임없이 외쳤다.
나는 그런 공작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기에 가만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품에서 오열하며 울어 댔다.
“그만하고 이쪽으로 와.”
그 울음소리를 뚫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왔다.
나는 울던 것도 멈추고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공작이 나의 앞을 막아섰다.
“폐하, 차라리 소신의 목을 치십시오. 죽다 살아난 아들도 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공작이 간절함을 담아 완강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상대에게선 피식하는 차가운 소리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한 것 같군, 공작. 아무리 공작이라고 해도 그대가 안고 있는 이는 이미 내 소유일 텐데 공작이 그리 악을 써 봤자 달라질 것도 없지 않나? 그게 싫었으면 진작에 나를 죽이든가 했었어야지.”
목소리는 즐거운 듯이 가볍게 말했으나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목소리의 주인이 이 비극의 원흉인 황제임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고 본능이었다.
“폐하, 제국의 검이자 대대로 황가의 충신 가문인 웰렌 공작가에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원래 몸이 약한 자식이었습니다. 제 목을 내놓으라시면 내놓겠습니다. 우리 연이에 대한 명만은 거둬 주십시오.”
나를 지켜 주고 있던 등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순간 나와 황제의 눈이 마주쳤다.
황제의 눈은 웃지 않고 있었지만 입은 한쪽만 올라가 있었다.
마치 즐거운 놀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