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저건 또 무어냐고 토론할 새가 없었다. 균열에 빨려 들어가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10년 전 첫 재앙이었다.
‘그리고 균열에 빨려 들어간 사람 중 몇이…….’
헌터가 되어서 돌아왔다.
신체 능력이 인간 수준을 넘어서고 특별한 힘을 가진 구원자.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하여 헌터라 명명된 자들.
평범한 인간이었을 그들이 어떻게 헌터가 되었는가. 그건 하이레가 말한 내용 그대로다.
본인을 ‘레바브 시스템’이라 밝힌 초자연적 존재가 인간을 하나하나 선택해 각성시킨 것.
이하늘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그럼 레바브 시스템이 인간에게 각성하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리는지 아십니까?”
하이레가 물었다.
아까부터 너무 기초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이제 그러한 것들을 모르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네……. 메시지 창으로 알린다잖아요. 게임에서나 나오는.”
“그렇습니다. 그것을 헌터나 일반인이나 시스템 창이라고 부르죠.”
‘창의적이긴 해도 기본적인 지식만 나오는 거 보면 역시 내 머릿속에서 나온 꿈이 맞나 봐.’
이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가.”
하이레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시스템 창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네?”
이하늘은 방금 했던 생각을 정정했다.
이런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나올 리가 없어.
“그럼 본인이…… 레바브라는 말씀이세요?”
하이레의 말대로 헌터에게만 보인다는 창은 시스템 창이라고 불리긴 했으나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
레바브 창.
시스템 이름이 레바브니 당연한 결과긴 했다.
그런데 그 레바브 창을 보내는 이가 자신이라니? 본인이 레바브라고 밝힌 거나 다름없다.
하이레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이렇게 설명하면 될까요.”
대신 테이블 위 서류를 뒤집더니 가슴 주머니에 꽂힌 펜을 들었다.
그가 종이 상단부에 ‘시스템’과 하단부에 ‘헌터’를 썼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조는 정교한 시스템 레바브가 비과학적으로, 초자연적인 힘으로 모든 헌터와 연결해 메시지 창을 보내는 겁니다.”
맞다.
하이레가 ‘시스템’에서 여러 갈래의 화살표를 그려 ‘헌터’에 연결시키는 걸 보며 이하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실상은 이렇죠. 레바브 시스템 아래엔 레바브가 선택한,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반인들이 노동해서 메시지를 입력해 헌터들에게 보냅니다.”
이번엔 다른 구도가 완성되었다.
상단부의 ‘레바브’와 하단부의 ‘헌터’ 사이.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있다.
하이레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레바브가 선택한 일반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반인들에게서 여러 갈래 화살표가 나와 헌터에게…….
연결된다.
“그 말인즉, 레바브가 인간을 고용해 일을 시킨다는 건가요?”
“정확합니다.”
뭐 이래.
퍽 충격적인 이야기라 장시 벙쪘던 이하늘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레바브가 인간을 고용한다는 말은 전혀 못 들었는데.”
그런 파격적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모를 리 없다.
“고용된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니 당연합니다.”
하이레가 조용히 펜을 놓았다.
“레바브는 이 세계에 당도하자마자 나라마다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한국에선 저를 포함해 총 열한 명을 고용했고 10년 동안 다른 이를 새로 고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하늘 씨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레바브 시스템이 절 고용하려고 이곳으로 이동시켰단 말씀이세요?”
“예.”
선택됐다느니 그렇게 거창하게 말씀하셔도 뭔가 와 닿지 않는데요.
이하늘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뭐가 됐든 헌터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대충 말할 틈이 생기면 거절하고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가 레바브탑이랬지. 집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려나.’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꿈이라 여겼지만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현실 같았다.
하긴, 세상이 이미 게이트와 헌터로 득실거리는 비현실적인 현실로 바뀐 지 오랜데 이제 와서 부정하면 뭐가 남을까.
판단이 빠른 이하늘은 혹시 돌아갈 때도 순간 이동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까 고민했다.
“영 믿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사실 그래요. 레바브 시스템이 절 선택했다니. 그걸 누가 믿겠어요?”
“하지만 보셨을 겁니다. 이곳으로 이동하시기 전에 레바브 창을요.”
그건 그렇다. 반투명한 사각 창. 자신은 분명히 창을 보았다.
‘정확히 뭐라 적혀 있었더라?’
이하늘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인재상을 갖췄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제 어느 부분이 그러한지…….”
하이레가 뭔가를 떠올려낸 것처럼 아, 하고는 뒷면에 낙서한 서류를 뒤집었다.
“레바브가 이하늘 씨 인적 사항을 뽑아냈습니다. 성함을 제외하고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읽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이하늘의 미간이 말없이 좁혀졌다. 레바브 시스템이 멋대로 자신의 인적 사항을 뽑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을 빠르게 알아챈 하이레가 이하늘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본인 동의가 없으면 전 읽지 못합니다. 레바브가 다 모자이크 처리해 놨습니다.”
하이레가 보여준 서류엔 정말로 모자이크가 가득했다.
‘내 이름만 보이네.’
흐음. 짧게 고민하던 이하늘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레바브가 뽑은 자신의 인적 사항에 뭐라 적혀 있을지 그녀도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동의할게요.”
“동의하셔도 모자이크가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하이레가 무뚝뚝하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어조로 강조하더니 서류를 아예 테이블 위에 펼쳐놨다.
자연히 서류에 시선을 주던 이하늘은 적지 않게 놀랐다.
‘모자이크가 사라졌잖아?’
재출력해야 할 줄 알았는데. 바로 사라지다니.
남의 개인 정보를 출력한 것도 그렇고, 확실히 초월적 존재라 불리는 레바브의 능력을 직접 마주하니 신기하긴 했다.
‘아냐. 신기해하지 마. 읽기나 하자.’
과한 관심은 독이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 발가락 하나 들이지도 않을 곳이었다. 이하늘은 제 개인 정보가 적힌 서류에 집중했다.
『이름 : 이하늘(李하늘)
생월일 : 12월 31일(만 22세)
학력 :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4년제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