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10)화 (10/90)

<제10화>

곧바로 시끄러운 목소리가 난리를 쳤다.

【머리로 장난치는 자! 머리로 장난치는 자! 머리로 장난치는 자를 골라라!〗

그 선택지가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으나 그녀는 안다.

이럴 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해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목소리의 뜻대로 그녀는 ‘머리로 장난치는 자’를 클릭했다.

〔‘머리로 장난치는 자’ 채널에 접속하겠습니까?〕

〔채널 탐색 중…….〕

〔탐색 완료. 접속까지 앞으로 30초, 29초, 28초…….〕

헌터와 관련된 것이라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이하늘.

그녀는 몰랐다.

소란스럽게 말을 거는 그들이 누군지.

또 레바브가 자신 주변에 ‘교욱 증! 방해 금ㅁ지!’라 적힌 보호막을 쳐놓는 바람에 이세현이 말을 걸고 있단 사실도 들리지 않아 몰랐다.

더불어 이제 ‘성신’이라 불리는 그들의 말을 직접 헌터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꿈에도 몰랐다.

º º º

“E급이라고?”

정돈 안 된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클이던 남자가 헛웃음을 쳤다.

“E급에, 날? 아니 뭐, 그래. 들어나 보자.”

“시, 시간제 흡수소멸형입니다. 과장님.”

관리국 피해수습과 3팀 팀장이 삐죽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을 더듬었다. 공격적인 눈빛에 등골이 서늘했다.

그러나 상대가 눈빛으로 저를 찢어 죽여도 브리핑을 해야 했다. 그게 규정이었으니까.

“아시다시피 시간 안에 게이트 안 닫으면 흡수된 피해자를 포함해 모든 게 소멸합니다. 피해자는 대략 30명으로 추정되고…….”

게이트는 등급과 유형으로 세세하게 나눌 수 있다.

등급은 전 세계에 나타난 것만 A급부터 F급까지 고작 여섯 개에 불과하지만 유형은 다양하다.

제한 시간이 있는 게이트부터 없는 게이트.

게이트 발생 시 주위를 빨아들이는 흡수형과 그렇지 않은 비흡수형, 또 부가적으로 폭발형이나 소멸형, 그밖에 등등…….

복잡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관리국에서 골치 아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과 같은 흡수형과 소멸형이 융합된 흡수소멸형이었다.

민간인을 끌어들이는 것도 모자라 시간 안에 닫지 않으면 사라졌으니까.

과장이 담배를 입에 문 채 브리핑하는 직원의 말을 잘랐다.

“그게 다가 아니니까 나를 불렀겠지.”

멈칫한 3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시간이 굉장히 촉박합니다.”

그렇다.

까다로운 유형에 제한 시간이 한 시간 미만일 경우.

그럴 땐 항시 대기 중인 공략대를 모두 제치고 관리국이 따로 하이클래스 헌터에게 명령에 가까운 지원 요청을 한다.

‘하이클래스’에 해당하는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래도 굳이 나를? E급에? 수준이 너무 안 맞잖아.”

게다가 난 오늘 휴일이었단 말이다.

과장이 중얼거리다 말고 고개를 올렸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아득한 어둠. 누군가가 거대한 발톱으로 찢은 것 같은 균열이 불길하게 허공에 떠 있다.

“뭐, 됐어. 알았다고.”

어쩌겠는가. 자신은 국가의 개였고 명령한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을.

불을 붙이지 않고 물고만 있던 담배를 던져 발로 비빈 그가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방독면을 썼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새카만 방독면이었다.

게이트에서 독가스 따위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아니, 간혹 나올 때도 있었지만 독가스를 예방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다.

『특진』

방독면 뺨 부근에 뚜렷하게 적힌 흰 글씨.

정확히는 관리국 특수진압과.

그곳에 소속된 모든 이들은 헌터다.

그리고 몇 가지를 담당한다.

첫째, 돌발 게이트가 열릴 때 지명되면 반드시 지원을 나간다.

둘째, 범죄를 저지른, 이른바 불법 헌터를―

“근데 요즘 헌터만 족쳐 봐서 뜻대로 풀릴지 모르겠다…….”

족친다.

그러므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방독면은 필수였다. 불법 헌터의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

뭐, 특진과 과장은 여러 이유로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지만.

“바리케이드 입구 제대로 지켜. 또 헌터가 되고 싶다고 달려드는 민간인 있으면 곤란하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답도 들었겠다, 과장은 게이트로 향했다.

그때, 과장 앞에 불쑥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그리 귀찮으면 공무원인지 뭔지를 때려치우면 되지 않느냐?〕

〔라고 ‘머리로 장난치는 자’가 말했어요.〕

우뚝. 과장이 걸음을 돌연 멈추었다.

〔말로는 귀찮다고 하고 착실히 노동하러 가는 이유가 뭐냐는데요. ‘머리로 장난치는 자’가.〕

“왜 이래.”

관리국 특수진압과 과장 최가영(男).

그는 1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스템의 말투에 인상을 팍 썼다.

“렉 걸렸냐? 말투 왜 이래. 미쳤어?”

1세대 헌터이자 한국 최초의 S급 헌터라 알려진 최가영도 그래, 감히 몰랐을 것이다.

시스템 창을 보내는 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더군다나 오늘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가 신입 초짜라는 것을.

º º º

성신.

10년 전 세계가 뒤집혔을 때 헌터와 함께 나타난 신적 존재.

그들은 별처럼 저 높은 어딘가에서 친히 굽어보고 선뜻 인간을 골라 이유 없이, 또는 뭔가를 바라며 힘을 빌려준다.

선택받는 이는 헌터 중에서도 극히 소수이나, 한 번 선택받으면 성신에게서 보호와 애정 따위를 받을 수 있으며.

고작 ‘말’로 맺었더라도 계약을 쉬이 깨트릴 수 없으―

【운영자! 안 되겠다, 내 언약을 파기하겠노라! 당장 언약 파기서를 꺼내거라!〗

계약을 쉬이 깨트릴 수 없―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어! 이 은혜도 모르는 언약자 같으니! 매일 앓을 바엔 공무원인지 뭔지 때려치우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라 했더니만! 시끄러우니까 닥치라? 이것은 파국이다!〗

이하늘은 정말이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스스로를 성신, 그리고 ‘머리로 장난치는 자’라고 밝힌 자로 인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사람들을 구하고자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자원한 이하늘.

그녀가 갑자기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려면 5분 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5분 전, 채널 접속까지 30초 남았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하늘은 살짝 긴장만 한 상태였다.

애국가를 제창하면 되는 정도. 딱 그만큼이었다.

그러나 이하늘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성신, ‘머리로 장난치는 자’ 개인 채널에 시스템 운영자, ‘가을하늘공활한데’가 입장합니다.〕

1초가 되자마자 이상한 창이 뜨면서 주변 환경이 변할 거란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물속에서 잉크가 번지듯 주위가 다른 배경으로 바뀔 거라는 것을.

당연히 이하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디…….”

태풍이 지나간 듯 난장판이 된 공터 같은 곳. 위가 뻥 뚫려 하늘은 보이지만 사방은 게이트 전용 바리케이드로 막혀 주위가 보이지 않았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게이트가 막 열린 곳이다.

‘또 순간 이동한 거야?’

이번에도 의자와 함께 이동한 이하늘이 당혹스러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E급이라고?”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멀지 않은 거리에 어느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헉.”

이하늘은 느닷없이 숨을 들이켜며 콰당 넘어졌다.

‘저거 설마 게이트?’

두 사람 근처에 있는 흉흉한 게이트 때문이다.

사진이 아닌 게이트의 실물을 처음 보는 이하늘은 저도 모르게 게이트를 관찰했다.

‘저런 곳에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 거야…….’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하늘은 바닥에서 겨우 일어났다.

낯선 두 사람 중 하나가 말을 더듬었다.

“시, 시간제 흡수소멸형입니다. 과장님.”

이하늘이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는데도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안 보이나?’

본인이 느끼기에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쪽을 쳐다도 보지 않는 거야.

【이봐, 운영자. 뭘 멍청하게 있느냐. 내 언약자에게 귀찮으면 관두라고 전하거라.〗

갑자기 작은 채팅 창에 글이 올라오고 이어폰에서 예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니야. 이건 이어폰에서 들리는 게 아니라…….’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자 왜 지금까지 못 봤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형체가 시야에 걸렸다.

지지직거리는 홀로그램과도 같은 것.

검게 물들어 얼굴도 외양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 그…… 시끄러운 목소리의 주인?’

검은 홀로그램이 손처럼 보이는 것으로 머리처럼 보이는 것을 벅벅 긁었다.

【쯧,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늘 고생만 하고 앉아 있으니. 최강으로 만들어준 보람이 없도다.〗

“저기, 혹시.”

【이봐, 운영자! 어서 내 언약자에게 말을 건네거라. 그리 귀찮으면 공무원인지 뭔지를 때려치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

▷튜토리얼 발생!◁

∙튜토리얼―레바브의 교욱

∙설명―아는 게 하낟도 업는 당신을 위해 준비햇다! 기초저긴 것만 숙지하면 당신도 진정한 시스템 운ㅇ영자!

―성신의 개념을 알아라(0/1)

―언약자의 개념을 알아라(0/1)

―채널 접속(CHANNEL ACCESS)의 개념을 알아라(0/1)

―성신의 말을 해당 언약자에게 전달해라(0/5)

∙완료 보상―‘진정한 시스템 운영자’ 자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