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왜 거짓말을 하지?’
이활이 이하늘 몰래 인상을 구겼다.
그녀가 정말로 대한민국에 있는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숙식했다면, 자신이 2주 동안 허탕을 쳤을 리가 없다.
‘아니면,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내가 못 찾은 건가? 말이 되나?’
역시 경찰을 협박이라도 해서 CCTV를 뒤졌어야 했다고 그가 이를 갈았다.
경찰은 성인이 집 나간 거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돌아왔다. 돌아와서 다행이긴 한데…….
잠시 후 두 사람은 집 앞에 도착했다. 이하늘이 얼마 만에 집에 돌아온 거냐며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그때.
이활이 진지한 어조로 그녀에게 경고했다.
“너 그 회사 다니지 마.”
“뭐? 왜? 왜 이래라저래라야?”
“야, 말이 되냐? 야근한다고 2주씩이나 회사에서 숙식하게 만든다는 게? 블랙 기업 아냐, 거기? 아니, 회사 이름 대. 노동청에 신고해야…….”
“유난 떨지 마! 내 연봉이 얼만 줄 알아?”
“얼만데!”
기껏해야 자기가 헌터 일해서 받는 돈보다 많겠냐 싶어 외친 이활은, 경건하게 액수를 읊는 이하늘의 말에 침묵했다.
“뭐……?”
뭐야. ×발. 무슨 일을 하는데 그렇게 받아.
물론 공무원 헌터인 자신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활은 힘숨찐인 만큼 이하늘에게 사실대로 얼마를 버노라 말할 수 없었고, 덕분에 이하늘은 자신이 동생보다 많이 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이하늘의 목소리가 올라가면서 기분이 좋아진 듯 부드러워졌다.
“놀랐지? 누나가 이 정도다. 이제 너 고생할 필요 없어. 너야말로 일하는 거 관둬.”
이하늘이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집은 어두컴컴 그 자체였다.
“회사 그만두는 말 나온 김에 우리 얘기 좀 하자. 너 들어와서 앉아.”
엄마 같은 말투에 이활은 멍하니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러다 제 누나가 부엌의 불을 켜고 나서야 아차 했다.
‘아, 미친. 말려들었잖아.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따져야…….’
“너 보디가드 일 관둬.”
곧바로 쏟아지는 이하늘의 말에 이활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랬다. 이하늘은 이활이 보디가드, 그러니까 경호원 일을 하는 줄 알고 있다.
이활의 건너편에 앉은 이하늘이 따박따박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그런 분야는 헌터가 한다는데 비각성자 주제에 거기서 치여 살지 마. 생각보다 네가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그거 목숨값이잖아.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 와서 무슨 소리…….”
“이제 와서 내가 돈을 제대로 버니까 하는 말이야. 영이도 마찬가지야. 걔는 끝까지 나한테 무슨 일을 하는지 안 알려줬지만 걔도 버는 액수가 심상치 않으니 무슨 위험한 일이겠지.”
‘위험하긴 하지.’
이활은 속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하다가 정신 차리고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안 돼!”
“미친 새끼가, 어디서 폭력을!”
그러나 바로 누나에게 응징당했다.
“악!”
머리통에 한 방 맞은 이활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울분을 토했다. 힘숨찐을 켜놔서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갑자기 그만두라 그래! 어? 그리고 어떻게 그만둬, 내가 이 분야 최고야!”
“헛소리하지 마! 안 되겠다. 영이한테도 전화하자. 너 휴대폰 내놔. 영이 이 자식은 나 가출인지 실종인지 신고해 놓고 어딜 갔어. 또 일하러 갔니?”
그렇다. 이하늘의 또 다른 남동생이자 이활의 형이기도 한 ‘영이’, 그러니까 이공은 또 일하러 갔다.
‘탑 오르고 있겠지. 집착 오지는 새끼.’
제 누나를 찾는 것을 길드원에게 맡기고 예정대로 탑을 오르러 간 그였으니 확실히 집착이 심했다.
이활이 대답하지 않자 이하늘이 재빠르게 휴대폰을 뺏어갔다.
“아, 쫌!”
“쪼옴? 쪼옴? 누나한테 쪼옴? 이 자식이 오랜만에 처맞고 싶나.”
“아니, 왜? 나도 벌고 너도 벌고 그 새끼도 벌고 셋이서 다 벌면 좋……. 좋…….”
“× 같다고?”
“아니, 아니! 좋……! 좋지 않냐?”
이활은 무심코 말한 뒤에 속으로 욕을 삼켰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속셈은 이하늘이 이상한 회사를 관두게 하는 것.
그런데 이하늘이 도리어 저를 물고 늘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버렸다.
‘아, 얘랑 대화만 하면 늘 말려.’
그렇지만 이 작전도 나쁘진 않다. 일단 이런 식으로 너도 나도 일하게 만든 다음, 나중에 관두라고 다시 이야기를 꺼내면…….
이활은 공무원 헌터 일을 당장 그만둘 생각이 없었고, 이하늘에게 관두겠다고 말함으로써 새로운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났다.
“그래, 좋잖아. 너 그만큼 벌고 나 그만큼 벌고 그 새끼도 그만큼 벌면, 그만큼 우리 가족 개부자 되는 건데 뭐가 나빠?”
“활아.”
애처럼 떼쓰는 이활에게 이하늘이 진지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이활이 움찔했다.
“너 어렸을 때부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도 안 보고 대뜸 일부터 했지.”
“…….”
“너도 그렇고 영이도 그렇고, 나 때문에 너희들이 너무 고생만 했어. 너희들이 나 그동안 고생했다고, 스펙 쌓아주겠다느니 뭐라느니 공부하라면서 그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었잖아.”
그랬다. 하늘의 동생 공활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하늘도 그들을 따라 돈을 벌려고 했으나 어째선지 그들처럼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을 찾지 못했다. 기껏해야 알바, 계약직, 알바, 계약직.
이하늘과 이공활들은 한 살 차이다. 정확히는 한 살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저보다 어린 건 어린 거였다.
이하늘은 늘, 매번, 밥 먹을 때마다, 또는 잘 때마다, 그리고 현실 도피 중에 게임하다가도.
자신의 무능함에 무력감이 들어 둘에게 미안해했더란다.
“활아. 너 고생했어. 난 이제 괜찮아. 고작 그 1, 2년 때문에 너희들이 몇 년씩이나 힘든 건 말이 안 돼. 이제 내가 고생할 차례야. 내가 돈 벌어서 너랑 영이 도와줄게. 지원해 줄게. 그동안 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거 해. 공부? 해. 대학 생활? 취미 생활? 다 해. 다 가져.”
“아니, 이하늘…….”
“원래 1년만 다니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원한다면 몇 년이고 다녀서 돈 벌어올 수 있어.”
이활은 결국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뭐라 하겠는가.
하늘이 저를 보우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럴 때마다 이활은 그녀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도 걸려서 가슴이 쿡쿡 쑤실 지경이었다.
‘어떡하지, ×발?’
이활은 오늘따라 등산, 아니 등반하고 있는 제 쌍둥이 형 새끼가 보고 싶었다.
‘와서 어떻게 좀 해봐, 새끼야…….’
º º º
가상공간처럼 생긴 커다란 원형의 공간.
벽에 가득 찬 화면에 대한민국의 지도가 떠 있다.
거기서 반짝거리는 붉은 표시가 총 세 개.
둘은 서울시 마포구에서, 하나는 레바브탑에서 빛났다.
“형, 저 여자 드디어 센터에서 나왔는데 이제 어떡해?”
검은 모자에 검은 재킷, 검은 바지를 입은 청년이 화면을 보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한가운데에 있는 책상 위에 걸터앉은 남자는 오래된 휴대폰을 만지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시스템 운영자 못 하게 하려고 별 지랄을 다 했는데 결국 돼버렸잖아. 소매치기도 해, 일이 잔뜩 많아지면 관둘지도 몰라서 다른 운영자 일부러 게이트에 넣어도 보고……. 제한 시간이 그렇게 짧게 잡힌 건 예상 밖이었지만.”
청년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 독하다. 나 같으면 2주 야근한다고 할 때 관둠. 애초에 주 60시간 근무잖아? 우리나라는 주 52시간 근무 제도를 가졌다고요. 이거 솔직히 신고해야 돼.”
“…….”
“형, 슬슬 나 혼자 떠들기 지치는데 뭐라고 말 좀 해줄래?”
“이상해.”
드디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청년은 자기가 백 마디 하면 저 형은 꼭 한마디만 한다며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대꾸했다.
“뭐가?”
“아직 3월 안 됐잖아.”
“어어. 그렇지? 형 연도도 헷갈리더니 이젠 날짜 감각도 없어?”
“그런데 왜 하늘이가 벌써 시스템 운영자가 됐지?”
뭐래.
청년이 차게 식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다가 눈썹을 올렸다.
“왜? 저 여자 2월에는 시스템 운영자가 될 운명이 아니래?”
남자는 청년의 질문을 무시했다.
대신 책상에서 내려와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비어 있던 그의 손에 책이 생겼다.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적힌 책. 그 중후반쯤을 펼친 그는 묵묵히 훑어보다가 중얼거렸다.
“내일 하늘이가 센터로 출근할 때 게이트 열어.”
청년이 오, 하고 지도를 보았다.
“어디에? 누구 휘말리게 하지? 이번엔 그 대표들을 넣어볼까? 그럼 좀 볼만하겠는데.”
“그 둘은 안 돼.”
“그럼?”
“하늘이를 게이트에 휘말리게 해.”
무덤덤한 어조였다. 너무나 예사스러워서 검은 모자를 쓴 청년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놀라 외칠 정도였다.
“형 미쳤어?”
“그만둘 생각이 없다면 잘리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