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 멸망을 굳이 막아야 하나요 (33)화 (33/90)

<제33화>

언노운 게이트. 문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균열.

레바브가 관리국에 알려주지 않은 게이트를 그렇게 불렀다. 못 알아차려서 관리국에 못 알려주는 건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안 알려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우리나라 게이트 만만세라니까.”

매번 끝내준다며 비아냥거린 피연의가 긴장한 신입의 어깨를 툭 쳤다.

“언노운 게이트 실제로 처음 보지? 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면.”

처음은 똑같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한다.

그 후도 비슷하다. 게이트를 재감정할 때처럼 피해수습과의 필수 아이템, 게이트 감정 스크롤을 꺼내 게이트 발생 좌표를 또박또박 적는다.

그러면 좌표가 스크롤에 흡수되듯 사라지고 게이트 정보가 대신 떠오르는데, 그를 토대로 신처과에 알린 뒤 기다리면 된다.

누구를? 바로…….

“저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누구십니까! 소속을 밝히세요! 지명된 공대원입니까? 다른 공대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기요! 막무가내로 들어가시면 안 됩, 아이쿠!”

방금 설치한 바리케이드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막 설명을 끝내고 언노운 게이트를 감정하려던 피연의는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검은 헬멧을 쓴, 무척이나 키가 큰 남자였다. 피연의의 눈썹이 올라갔다.

헬멧 앞 유리면도 온통 새카매 비치는 건 자신과 신입의 얼굴뿐이었다. 상대의 얼굴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아놔, 무례하네. 헌터시면 신원 확인 좀요. 각성 노리고 오신 일반인이면 나가시고.”

피연의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으나 헬멧남은 그녀를 보기 좋게 무시했다. 묵묵히 흉흉한 게이트를 볼 뿐.

“저기요. 무시해요? 어디 소속이에요.”

이중 균열 중 하나는 언노운 게이트였지만 또다른 하나는 레바브가 확실하게 알린 게이트였다.

흡수형에 F급, 무려 제한 시간 없음.

그러므로 헬멧 쓴 이 남자는, 공략접수과가 지명한 공대원이라면 F급 게이트와 수준이 비슷한 헌터일 텐데.

이 고압적인 자세는 무엇이란 말인가? 기세만 보면 무슨 S급이라도 되는 것 같다.

‘S급이어도 이건 상도덕이 아니지, 사람 말을 개무시해? 평가 개판으로 써줄까 보다.’

피해수습과에겐 사실 또 다른 일이 있다. 바로 게이트를 닫으러 온 공략대를 평가하여 공략접수과에 알리는 것.

피해수습과의 평가에 따라 만일 감점이 들어가면 그만큼 공략 지명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략대는 게이트 공략을 못 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피해수습과의 비위를 맞추기 마련이었는데…….

“이중 균열이란 말은 못 들었는데.”

이놈의 쇠악기는 왜 내 말을 태연히 씹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앉았나.

피연의의 목에 핏줄이 솟았다.

“신원 확인 안 하면 못 들어갑니다?”

“언노운이군요.”

“이봐요.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피연의의 입이 자연스럽게 다물어졌다. 헬멧남이 허공에서 익숙한 아이템을 꺼냈기 때문이다. 감정 스크롤이었다.

아이템 감정 스크롤이 아니라, 게이트 감정 스크롤.

괴짜가 아닌 이상 헌터는 게이트 감정 스크롤을 굳이 갖고 다니지 않는다. 게이트 재감정은 피해수습과가 도맡아서 해주니까.

갖고 다니는 헌터는 말 그대로 괴짜거나…….

‘아니면 탑 오르는 헌터거나.’

게이트 감정 스크롤은 탑을 등반하면서 얻는 부산물 중 하나였으므로.

그리고 그 부산물을 관리국에 판매하는 길드는 손에 꼽는다.

피연의는 말없이 스크롤에 좌표를 적는 헬멧남을 보며 거물 중 하나를 떠올렸다.

얼굴, 미상.

본명, 당연히 미상.

나이? 미상.

사는 곳? 한때 어느 기자가 알아내려고 쫓아갔다가 그대로 기자일을 관두고 해외로 튄 적이 있다.

알려진 거라곤 성별과 등급, 그리고 직업.

또……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헬멧과 아나 마나 한 닉네임뿐.

‘아, 아니, 악. 미친, 왜 이런 놈이 온 거야? 고지된 게이트는 F급이었는데?’

경악하던 피연의는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상대가 거물이라도 쫄 순 없었…….

“젠장.”

흡, 거물의 욕설에 잔뜩 쫄아 피연의가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스크롤에 뭐가 떴길래 저러나.

쫄려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라 슬쩍 눈을 내려 스크롤을 본 피연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등급―F급, 유형―흡수형, 제한 시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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