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복도 끝에 누군가가 서 있다.
검은 바지와 검은 가죽재킷,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헬멧.
이하늘이 뭐야, 하고 입 밖으로 중얼거리는 순간 헬멧의 정보 창이 떴다. 역시나 본명이 가려진 ‘무궁’이었다.
그 헌터가 영이면 어쩔 건데, 라는 건 머리에서 삭제됐다. 이하늘이 외쳤다.
“저기요! 저랑 잠깐 대화 좀…….”
그러나 헌터는 도망쳤다. 1층 로비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저기요!”
이하늘이 그를 쫓았다.
“야, 잠깐. 이하늘!”
이활은 그녀를 쫓았다.
헌터를 쫓는 이하늘을 쫓는 이활.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헌터가 가는 방향에 사람이 없었다는 것.
창피를 덜 당하게 되었으나 고맙진 않았다. 이하늘이 너무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외쳤다.
“저기요……! 잠깐 대화 좀 하자니까요……!”
“야, 이하늘! 달리기 ×발, 왜 이렇게 빨라!”
헌터가 막 코너를 돌았다. 이하늘이 따라서 코너를 돌 때 철컹, 하는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헌터가 맞은편 비상계단으로 간 것이다.
이하늘도 재빠르게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2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지하로 향하는 계단 두 개가 보였다.
헬멧 헌터는 막 지하로 향하는 계단 층계참을 지나고 있었다.
“저기……!”
“누나?”
다시 헌터를 부르며 쫓아가려는데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칫한 이하늘이 고개를 돌렸다.
“어?”
“응?”
“아니, 어?”
그녀는 멍청한 반응을 연발하며 다시 계단을 바라봤다.
막 검은 헬멧이 사라졌다. 그러자 그녀에게 말을 건 이가 함께 계단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아니, 이하늘. 좀 멈추라니……!”
겨우 이하늘을 쫓아서 막 비상계단으로 들어온 이활이 드물게 놀랐다.
“아, 깜짝이야. 너, 너. 너 뭐야?”
“왜 둘 다 뛰어와. 아까 그 사람 잡아야 했던 거야?”
“…….”
“근데 지하로 가면 안 될 텐데. 보호 센터에서 나가면 안 되잖아, 둘.”
막 비상계단 문을 열려고 했었는지 문고리에 손을 뻗고 있던 남자.
그리고 이활과 너무나 닮은 남자.
“영아…….”
아주 어렸을 때 이하늘은 ‘공’이란 한 글자를 발음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공’의 또 다른 말이 ‘영’이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선 공을 때때로 영이라고도 불렀다.
공이라는 발음이 어렵지 않은 지금도.
그녀의 동생 이공이 미소를 그렸다.
“왜 그래, 나 보고 싶었어?”
그가 안기라는 듯 두 팔을 벌렸다. 그러나 이공은 안다. 누나가 안기지 않을 거란 걸. 그냥 매번 해보는 짓이었다.
이하늘이 질색하면 소리 내어 웃으면서 팔을 내리려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이하늘이 아주 드물게 안겨온 탓이었다.
이공은 잠깐 멈칫했다가 눈을 깜박이며 누나의 등을 토닥였다.
“웬일로 안아주네. 집구석에 안 들어온다고 때릴 줄 알았는데.”
이공의 손길이 느려졌다. 그가 눈동자만 굴려 이활을 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활이 어떻게 된 거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긴. 의심 지우려고 쇼했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약처럼 마시는 자신의 길드원 하나를 불러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힌 채 비상계단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비상계단에 들어오자마자 길드원에게 헬멧을 주고 자신은 재킷만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숨겼고.’
이활처럼 특성 ‘힘숨찐’을 가지고 있는 이공은 현재 일반인이었다.
물론 일반인인 이하늘은 겉으로만 봤을 때 이공이 특성을 켜든 끄든 못 알아볼 게 분명했으나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이공을 보자마자 이하늘은 반사적으로 모노클에게 그가 헌터냐고 물었으니까.
〔현재 각성자가 아닙니다.〕
말인즉, 헬멧 헌터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이공이 아니라는 게 된다.
‘그렇게 확신했는데. 아니었다니.’
애꿎은 사람을 동생이라 착각한 게 무척 창피하면서도 이하늘은 안도했다.
그럼 게이트에서 몬스터에게 죽도록 맞은 헌터가 영이가 아니라는 거네.
안도감에 이공을 끌어안은 이하늘은 그를 불렀다.
“이공.”
사뭇 진지한 목소리.
공적인 자리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잡을 때 영 대신 본명을 부르는 걸 아는 이공은 잠깐 긴장했다.
바로 풀며 평소처럼 반응했지만.
“왜 그래?”
“너 헌터 아니지?”
으음.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이공이 이하늘의 뒤통수를 눌렀다. 자신의 얼굴을 그녀에게 보였다간 거짓말 중인 걸 들킬 것 같았다.
헬멧 헌터를 이공이라 의심하던 이하늘을 직접 봤던 이활 역시 경악했다.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나 헌터 같아?”
이하늘은 모노클로 그가 각성자인지 아닌지 확인했으니 그가 헌터가 아니란 걸 안다.
그럼에도 물었던 건 모노클이 아닌 동생에게서 직접 답을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냥, 나중에 너나 활이나 헌터 되면 숨기지 말고 말해 달라고.”
당부도 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생각해 보니까 내가 헌터 안 좋아하는 것 때문에 너희들이 숨길 수도 있겠다 싶더라.”
쌍둥이들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정신 차린 이활이 뒤에서 혼잣말하듯 물었다.
“숨기지 않고 말하면?”
“…….”
“너 아마 우리를 이가을 그 새끼 대하듯 굴걸.”
몇 년 만에 듣는 이름.
이활이 그 이름을 이하늘 앞에서 거론할 줄 몰랐다. 이공은 싸늘하게 그를 응시하다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이하늘이 휙, 하고 이공 품에서 나와 이활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게 뭔 소리야? 그래서 말 안 하고 숨기겠다는 소리야, 각성하면?”
“…….”
“왜 말이 없어? 너 정말 각성하면 말 안 할 생각이었어?”
끝까지 대답이 없자 이하늘이 이활의 팔뚝을 쫘악 때렸다.
“아니, 이 미친놈이. 오늘 말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각성하면 말해라! 알았어? 영이 너도!”
“응. 난 말하지, 누나.”
“아니, 그렇다고 때릴 건 뭐야.”
“이활, 나 말하라고 했다?”
“아, 알았다고.”
물 흐르듯 대답하는 이공과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이활.
두 사람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우리를 이가을 그 새끼 대하듯 굴걸.’
부정해 줬으면 하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이하늘은 끝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쌍둥이들은 머리에 새기고 또 아로새겼다.
발각되든 말든 크게 신경 안 쓴다고 한 주제에 쇼까지 하면서 숨긴 한 명과 9년 전부터 그녀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한 명은 오늘도 다짐했다.
절대 들키지 말자.
º º º
“하늘 씨!”
입구에서 야간 조 대표 이세현이 손을 흔들었다.
로비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이공과 이야기―왜 이성적인 너마저 날 실종 신고했냐. 미안하다, 하지만 누나, 이활한테 들었는데 2주나 숙박하며 야근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 등등―하던 이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
이공활들이 동시에 물었다.
“아, 회사 대표님. 전해줄 게 있다고 지점 알려달라고 하셔서 알려드렸는데 벌써 오셨네.”
“폰도 없으면서 어떻게 연락을 해?”
“어? 어……. 아까 직원한테 전화 빌려서 했지.”
“언제?”
“병실에서 등록할 때. 회사 못 간다고 알려야 하니까 급해서.”
아니다. 시솝커의 부가 기능 톡으로 연락했다. 이하늘은 즉석에서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기 자신이 경이로웠다.
세 자릿수 넘었던 단톡 내용은 별거 없었다. 별거 있던 내용은 몇 개 안 온 갠톡이었다.
> 개인 | 밝또
[ N.R ] 밝또 : 하늘 씨^.^
[ N.R ] 밝또 : 게이트에 휘말렸었다며요? 힘들었겠다 ㅠ.ㅠ
[ N.R ] 밝또 : 오늘 인수인계는 물 건너갔네요
[ N.R ] 밝또 : 그래서 말인데 보호 센터 어느 지점으로 갔어요? 전할 게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