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임여명이 대뜸 불러서 이하늘은 속으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임여명의 주둥아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니까.
‘내가 이성 잃었을 때 정신 놓고 욕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
하지만 긴장은 하되 쫄지는 말지어다.
그녀가 슬그머니 올라오려는 두려움을 버리는 사이, 임여명이 그녀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가 아까부터 들고 있던 쇼핑백이었다.
“응……? 나 주는 거야?”
“어. 네 거야.”
내 거라고?
일단 이하늘은 쇼핑백을 받았다. 그리고 비틀거렸다. 생각보다 엄청 무거웠다.
“뭐야, 이거?”
“직접 봐.”
쇼핑백 안에는 다름 아닌 책들이 잔뜩 있었다. 더불어 손 크기만 한 상자도.
무시하고 책을 살펴보려 했던 그녀는 상자에 적힌 글자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휴대폰이…… 있는데?”
임여명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건 하 대표가 준비한 거. 너 폰 없어서 연락이 불편하다고 준비한 것 같던데.”
아니, 그렇다고 휴대폰을 줘요?
이러려고 휴대폰을 안 샀던 게 아니었다. 이하늘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못 받겠어.”
“헛소리 말고 그냥 줄 때 받아. 안 받는 게 더 민폐니까.”
“아니, 하아……. 너는? 너도 휴대폰 잃어버렸잖아.”
정확히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린 거고, 또 자의가 아니라 강제였지만 하여튼.
임여명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난 어제 도로 정류장에 돌아가서 주웠어. 그러니까 신경 꺼. 남 걱정할 때 아니잖아.”
생각해 줘도 저래.
“이 책은 뭐야?”
“내가 산 거.”
왜…… 사서 나한테 주지.
이하늘은 의아한 빛을 지우지 않고 책등을 살폈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게이트 도감』
『어느 날 게이트가 열렸다』
『다른 세계를 엿보는 눈』
『성좌에게 선택받은 E급』
전부 헌터나 게이트에 관련된 책처럼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설마, 이걸 사다 준 이유가…….
“너, 2주 동안 그 책 전부 읽어. 그렇게까지 뭘 모르는 게 말이 돼?”
역시나.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이세현이 끼어들었다.
“신기하지 않아요, 하늘 씨? 우리 여명이가 보기와 달리 돈을 엄청 아끼는 짠돌이거든. 근데 하늘 씨를 위해서 책을 사던 거 있죠?”
‘별로 안 신기해…….’
“그뿐이야? 오늘부터 휴가인데 갑자기 출근해서 부득불 채널 접속을 하질 않나. 게이트 닫히자마자 하늘 씨한테 가보자 하질 않나. 하늘 씨가 걱정됐나 봐.”
‘날 걱정한 게 아니라…….’
―‘게이트 도감’ 한 번도 본 적 없어?
―난 내가 날마다 밤새워서 일찍 죽을 줄 알았는데 너 때문에 단명하게 생겼어!
―너, 진짜. 대체 뭐 하고 살았길래 상식도 없는 거야! 이 멍청한 또라이야!
‘자신의 정신 건강을 걱정한 것 아닐까요.’
아니나 다를까, 임여명이 개소리하지 말라는 눈빛을 했다.
“소설 잘 쓰시네? 한수 형한테 배웠어요? 이참에 대표 관두고 소설이나 써보는 게 어떤지.”
대표인 이세현에게도 싸가지가 없는 임여명이었다.
이하늘은 혹시 싸울까 싶어 화제를 돌리기 위하여 다급하게 물었다.
“그, 책값 줄게. 얼마야?”
“됐고, 읽기나 해. 특히 ‘게이트 도감’. 지금까지 나온 게이트 정보가 기록된 책이니까.”
게이트 도감.
지난 십 년간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게이트의 정보가 빠짐없이 기록된 책.
게이트에 진입하는 순간 헌터 앞에는 정보 창이 뜬다.
이하늘이 느낀 대로 정보 창에는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힌트가 존재. 무척 쓸모가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일반인에겐 전혀 아니었다. 정보 창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하던 중 ‘게이트 도감’이 세상에 나왔다.
게이트 정보만 적혀 있어도 감지덕지건만.
난해한 힌트를 알아듣기 쉽게 풀이한 글과 피와 살이 되는 조언도 첨부되어 있었다.
한 번 등장했던 게이트가 또 나타나는 경우는 비일비재해서, 모든 게이트 정보가 적힌 ‘게이트 도감’은 일반인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에선 ‘게이트 도감’이 ‘게이트에서 살아남기’라 불릴 정도.
대체 이 금쪽같은 책을 누가 쓰신 걸까요!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아는 것은 고작 이름, ‘이삭’뿐. 그마저도 가명일 수 있으므로 안다고 볼 수 없다.
‘게이트 도감’에 톡톡히 도움받은 일반인들은 이삭이 뛰어난 헌터거나 길드명일 거라고 추측 중이다.
그도 그럴 게, 모든 게이트가 기록됐다. 그만큼 수많은 게이트를 겪어보았다는 것 아닌가.
무척 뛰어난 실력을 가졌거나 다수의 경험이 없는 이상 설명이 안 된다는 뜻.
아무튼 헌터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그래서 베스트셀러인 ‘게이트 도감’을 이하늘은 처음으로 봤다.
……응. 처음으로.
그걸 귀신같이 눈치챈 임여명이 살다 살다 이런 애는 처음 본다는 얼굴을 했다.
“아예 처음 보는 거야, 너?”
“……으응.”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실물로는 처음이었다.
임여명이 할 말이 ×나게 많은데 참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게이트 도감’만 읽어도 게이트 내 생존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읽지 않았다니 ‘이 새끼 뭐야?’ 싶겠지.
‘하지만 나는.’
정말로, 헌터와 관련된 건 알고 싶지 않은걸.
왜냐하면 이하늘은 겁이 났다.
헌터에 대해 알게 됐다가 혹시라도 그에 대해 이해하게 될까 봐.
저를 버리고 간…… 오빠의 선택을 이해해 버릴까 봐.
“하늘 씨.”
“네, 네?”
부드러운 호명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하늘이 이세현을 보자 그녀가 임여명의 등을 퍼억 쳤다.
“사람이 보통 ‘게이트 도감’을 언제 사는 줄 알아요? 처음 게이트에 휘말리고 나서야.”
이세현의 말대로 미리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특히 안전불감증의 나라 대한민국 아닌가. 직접 겪어야만 위기를 느끼는 종특들만 모인 나라.
“그런데 하늘 씨 오늘 처음 휘말린 거랬죠? 그러니 지금까지 안 읽은 건 딱히 이상한 게 아니에요.”
“한 3년 전이면 통했을 말이네. 요즘은 게이트 피해자가 아닌데도 미리 사서 읽는 사람 많잖아요. 모르는 거 아니면서.”
“여명아.”
작작 하라는 목소리.
임여명은 이세현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봤다. 그러고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널 이상한 취급한 건 아니……라고는 못 하겠고.”
“…….”
“우리나라 게이트 생존율은 거의 매년 1위야.”
특히 3년 전부터는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건 헌터들이 개고생한 덕도 있지만 게이트에 휘말린 민간인들도 전부 해박해서 그래.”
임여명이 이하늘과 눈을 마주해 왔다. 유리알 같은 검은 눈동자가 더없이 진지하다.
“게이트에 휘말린 사람을 구하는 건 헌터뿐만이 아니야. 민간인들 서로 구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하기도 해.”
사람을 구하는 건 헌터뿐만이 아니다.
“너보고 사람을 구하라는 건 아니고. 오늘같이 게이트에 휘말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 너를 위해서 읽으라는 거야.”
헌터에 대해 알라고, 오빠에 대해 이해하라고…….
그날, 세계가 뒤집힌 날. 오빠가 나를 버리고 간 선택을 존중하라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를 구하려면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마냥 외면만 하지 말고.
“그러니까 2주 격리당하는 동안 읽어.”
말을 마친 임여명이 뒷머리를 거칠게 헝클이다가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이세현이 가만히 눈웃음을 지었다.
‘부끄러워하네, 여명이.’
임여명에겐 본인도 모르는 버릇이 있다.
부끄러울 때마다 모자를 뒤집어쓰는, 답지 않게 귀여운 버릇.
어느 때고 자신의 행동에 이유를 붙여가며 설득한 적 없었던 그가 이번엔 달리 한 것이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를 부끄러워하게 만든 상대의 반응은 어떨까?
이세현이 이하늘에게 시선을 돌린 차였다.
읽으라는 말에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이하늘이 중얼거렸다.
“넌…… 말만 예쁘게 하면 참 좋을 텐데.”
“……뭐?”
“……크흡!”
이하늘의 생각지 못한 발언에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는데 임여명의 얼빠진 반응으로 2차 방어에 실패했다.
이세현이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아니. 미안. 큭, 크흐흐…….”
“…….”
“…….”
“크흠. 어, 더 이야기할 거 있지? 하늘 씨랑 잘 얘기하고 나는 음료 좀 사 올게. ……흐흐, 말만, 예쁘게 하면 좋, 좋을 크흡, 여명아.”
웃음소리를 남기며 이세현은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남은 두 사람.
이하늘은 각오했다. 임여명이 또 속 긁는 말을 할 게 분명했으니.
그러나.
“근데 너.”
“으응?”
“오늘 게이트에서 뭐 했어?”
멈칫. 이하늘이 눈을 굴렸다.
“……뭐 했냐니?”
“제상 위에서 엎드리고.”
“…….”
“뭐 했냐고, 그때.”
간신히 잊었던 것을 묻는다.
이하늘은 입술을 깨물며 기절하기 직전을 떠올렸다.
º º º
【그러한데.】
막 문장 하나를 다 쓴 순간.
딱 엔터만 누르면 될 때 낯선 목소리가 또 들리며 자판이 사라졌다.
뭐야, 어디 갔―